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74화
아까는 너무 아파서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칼에 살짝 스친 것 같았는데, 살짝이어도 칼은 칼이라 생각보다 상처가 컸다. 병원이 멀어서 보건지소에 갔는데, 응급조치를 해주고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결국 멀리 있는 종합병원까지 갔다. 발목 염좌인데 바로 병원을 안 오고 촬영을 했다고 강영호 매니저가 일러서 의사가 엄청 한심하게 봤다. 언젠가부터 어디 가면 내가 할 말을 옆에서 매니저나 시큐리티가 대신해 주기 시작했는데, 약간 유치원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안 그러게 해달라고 하려면 누구한테 말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일단 강효준 대표는 아티스트 과보호가 기본이라 안 먹힐 거고, 부대표도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발목에 반깁스를 해서 고정을 했다. 촬영은 어쩔 수 없지만 3주는 안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3주……. 중간에 있는 스케줄들은 다 앉아서 해야 하게 생겼다.
병원에서 돌아와 보니까 벌써 아홉 시였다. 최대한 빨리 갔다가 온다고 온 건데, 병원이 머니까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돌아와서 레일바이크 부분 분량 어떻게 됐냐고 예능팀 쪽에 물어봤더니 보이드랑 상의해서 최대한 사용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들었다. 그건 다행이다.
그사이에 신지운은 새벽 낚시로 잡은 생선의 회를 뜨고 있었고, 안주원은 문어 세비체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끼리 밥 먹는 장면 촬영이 끝나고 나서, 예능팀은 각자 숙소로 돌아가거나, 자기들끼리 회식을 하러 가고, 우리 보이드 엔터 직원들도 남을 사람은 남아서 본격적으로 저녁 식사에 들어갔다. 우리 회사에 TRV 출신이 많다 보니, 스파이는 서로 불편하기도 하고, 자기 임무도 끝났다면서 서울로 돌아갔다. 깔끔하게 일 처리 하고 돌아가는 것도 스파이 같았다. 내가 다친 것에 대해서 스파이로서 책임을 다한 것 같지 않다고 헛소리를 한 것 빼고는 깔끔했다.
숙소에 돌아온 이후에는 다른 멤버들도 그렇지만, 박선재가 특히 날 너무 한심해해서 내가 징징거렸다.
“형아 아프잖아, 막냉아.”
“누가 다치랬어?”
“하, 우리 막냉이. 형이 사랑하는 만큼 형을 사랑하지는 않나 봐…….”
“응, 그렇게 됐다, 형.”
진짜 섭섭할 뻔했다. 농담이겠지? 농담이지?
숙소가 워낙 커서, 직원들이 다 둘러앉아 고기 굽고, 회를 먹고, 또 시키고, 물회도 시키고, 라면도 끓이고, 어쨌든 멈추지 않고 계속 먹으며 술을 마실 자리가 충분했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절대 빠지지 않겠다고 서울에서 허둥지둥 달려온 부대표가 두 손에 옛날 스타일로 튀긴, 치킨보다는 통닭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닭을 왕창 사 와서 그것도 먹었다. 맛있었다.
그렇게 먼 길 운전을 끝내자마자 빈속에 술을 왕창 들이켠 부대표는 중간부터 내 반깁스한 발목을 보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돌겠다.
“우리 해원이…… 안 그래도 고생하는 애 발목을 밟아놔?”
“진짜로 이건 제가 넘어진 거라니까요?”
“아, 그 새끼 때문에 신경 쓰여서 넘어진 거 아냐! 발목을 똑같이 뽀개 놔야 돼. 아니지! 두 배로! 양쪽 발목을 다!”
“아니, 그니까…….”
“이 전과자 새끼 어디 있어, 아주 내가 가만 안 둬!”
눈물을 흘리면 약해 보인다고 누가 그랬나. 만취해서 눈물범벅이 된 술톤 얼굴로 전과자 잡으러 가겠다고 일어나는 부대표는 성난 코뿔소처럼 보였다.
나는 열심히 부대표를 말리는데, 직원들도 취해서 말리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 멤버들은 오히려 부추겼다.
“부대표님, 저도 같이 가요.”
“민조가 경찰서 앞에서 난동 부리면 경찰들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을걸요.”
“내가 난동 부릴까!”
그때쯤에 경찰서에 다녀온 강효준 대표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강효준 대표를 빨리 불렀다.
“형, 부대표님 좀 말려주세요.”
그렇게 말했는데 내 말을 못 들었는지 그냥 적당히 빈자리를 찾아 앉아서, 회식용으로 사 온 종이 소주잔에다가 소주를 한 잔 따랐다. 그런데 그걸로 안 되겠는지 누가 물 마시던 건지 모르는 종이컵의 물을 창밖으로 털어버리고 거기 소주를 콸콸 따랐다. 종족이 하마라서 원래 술을 잘 마시긴 하는데 저렇게 마시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발목을 안 쓰려고 방석으로 쭉 미끄러져 강효준 쪽으로 갔다.
“형, 술 소주잔에 마셔요.”
“오늘 그냥 마셔야 돼.”
“왜요?”
“이춘형한테 선전포고하고 와서.”
그 말에 부대표도 직원들도 멤버들도 멈췄다. 그리고 강효준을 돌아보았다. 강효준은 결국 종이컵에 따라놓은 소주를 반 컵 정도 마셨다. 그냥 종이컵에 입만 댔다가 뗀 것 같은데 어떻게 반 컵이 사라지는지 미스터리다. 신지운이 뜬 볼락회를 한 점 간장에 찍어 먹고, 나머지 반 컵을 마셨다. 그러더니 김을 손바닥에 올리고 거기 직원들이 주문한 보리숭어 회를 쌓아서 초장에 찍어 먹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폭음 중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맛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저 형의 재능은 먹방에 있는 게 아닌지…….
그런 강효준 대표에게 부대표가 물었다.
“뭐라고 선전포고를 했어요? 조만간 친다고?”
“네.”
그 말에 신지운이 물었다.
“그냥 조용히 뒤통수 때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부대표가 말했다.
“아니지, 지운아. 정정당당하게 앞에서 눈을 마주 보고 패야지.”
아니, 부대표 지금 신지운한테 뭘 가르치는 거냐. 엇나갔던 놈 겨우 정상 범주로 데려다 놨더니…….
아무튼 강효준 대표가 또 종이컵에 술을 따르려고 해서 나는 빨리 뺏고 소주컵을 줬다.
“형, 이건 물컵, 이건 소주컵.”
평소엔 의외로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라 알았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냥 내 손을 치워버렸다. 두 번째에서야 알았다. 선전포고 때문에만 스트레스를 받은 게 아니라, 나한테 빡치기도 했다는 걸.
하긴…… 내가 칼 든 전과자 잡겠다고 나대긴 했었지……. 최대한 조용히 정리하려 하겠지만, 진짜 조용히 끝날지 모르겠다.
앉은 자리에서 빠르게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난 강효준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도 일단 따라 나갔다. 걸을 때마다 발목이 진짜 뒤지게 아팠다.
그래도 3주 동안 움직이지 말라는데, 2주는 어떻게 넘어가도 그 뒤에는 팬미팅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운 나쁘면 연습을 빠지게 생겼다. 최대한 빨리 회복해야 하니까 지금만 좀 걷고 당분간 절대 안 걸어야지. 가까운 거리도 누구한테 업어달라고 해야겠다.
“형 어디 가요?”
“전화.”
그러더니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못 본 척 내가 앞에 둔 평상 같은 데 앉았더니 체력 쓰기도 귀찮은지 그냥 전화를 꺼냈다.
어디로 전화하나 했더니 할아버지라고 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주변이 워낙 조용해서 전화 소리가 들렸는데, 외손자를 편애하는 그 나긋나긋한 편의 목소리가 전혀 아니었다.
-왜, 아주 그 집에 입양 가려고 전화했냐?
“……그런 개족보가 어디 있어요? 그럼 어머니랑 저랑 남매가 되는 거예요?”
들어보니까 강효준이 A&R 일을 시작하면서 아무래도 엔터계 사업을 하는 외할아버지와 친해지니까, 친할아버지가 실망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걸 구경하다가 말했다.
“아니, 양가 할아버지한테 다 잘했어야지. 그걸 못 하나?”
내 말에 강효준이 내 후드를 잡아서 뒤집어씌워 꽉 누르고 떠밀었다. 나는 그대로 평상에 드러누웠다. 하늘에 별이 엄청 많은 밤이었다.
“별 예쁘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나는 누운 김에 실컷 별구경을 했다.
그렇게 누워서, 아무 생각도 안 하니까 그때부터 몸이 떨렸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다친 손보다, 안 다친 얼굴이 더 욱신거리는 기분이었다. 이상하다.
강효준은 나를 힐끔 보더니 전화를 이어갔다.
“할아버지, 저 건설은 진짜 관심 없어요.”
그거 한마디 했는데 욕이 날아왔다. 누워있는 나까지 괜히 무릎 꿇고 들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인 욕이었다.
그렇게 쌍욕을 하는 걸 네네, 죄송해요, 하면서 하나도 안 죄송한 표정으로 대답하면서 듣고 난 강효준이 말했다.
“그러니까 투자해 주세요, 저한테.”
“어휴.”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투자 소리를 저렇게 쌍욕 한가운데다가 때려 박으면 퍽이나 해주고 싶겠다. 할아버지가 시키려는 일 별로고 나 하고 싶은 일 할 거니까 딴 데다 투자해 줘라, 이 말을 정말 있는 그대로 내뱉고 있는 거였다. 저 형은 재벌 아니었으면 취직 자체를 못 했을 거다. 저 성격으로 면접은…… 아니, 재벌이라 저 성격이 된 건가?
아무튼 나는 핸드폰에 급하게 썼다.
우선으로 쓴 건 건설업의 장점이었다.
이건 그냥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공감해주는 거. 지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다 맞습니다. 옳은 혜안이라는 거 압니다.
한참 어른한테 투자해 달라고 하면서, 이 정도는 기본 아닌가?
강효준이 내가 쓴 걸 힐끔 보더니, 다행히 참고했다. 나한테 빡친 것과 별개로 쓸 건 쓴다.
“……그래서, 할아버지 말씀이 맞는다는 건 저도 알아요.”
-그래도 나름 공부는 했구나.
“안…… 당연히 했죠, 할아버지 말씀인데. 제가 할아버지 손자인데, 당연히 저한테 제일 큰 게 할아버지 말씀이죠.”
안 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려는 걸 미리 알고 선수 쳐서 적은 걸 보여줬더니 무사히 수습했다.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저 할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할아버지 많이 존경해요. 사?”
-사?
“아, 사랑도 하고요.”
아바타에게도 급이 있다면 강효준은 하급이다. 어휴.
-네가 돈이 급하긴 급하구나.
“할아버지, 저 돈 욕심 없어요. 돈이 급한 게 아니에요.”
-그럼.
“근데 문제는 야망이 너무 커요. 할아버지 닮아서.”
-…….
“할아버지, 저 건설업. 잘할 자신이 있어요, 솔직히. 다시 말씀드리지만, 할아버지 말씀 맞는 거도 알고요. 문제가, 건설업에서는 1등을 할 자신이 없어요.”
-…….
“엔터업으로는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큰 엔터 회사를 만들 자신이.”
돈이 급하냐는 질문의 대답부터 마지막 말은 내가 시킨 게 아니었다. 하급 아바타여도 열 번에 한 번씩은 응용도 하고 그러나 보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허허, 성장했구나, 서당 개 하마.
그리고 강효준도 나도 숨죽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친할아버지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준비 잘해 와야 할 거다. 남들한테 투자할 때와 똑같은 기준으로 볼 거야. 손자라고 안 봐준다.
“네, 그러실 분인 거 압니다.”
-곧 보자.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강효준도 나도 동시에 안도와 만족과 환희가 뒤섞인 기분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물었다.
“그걸로 1본부랑 계약 안 하는 클라루스 형들 잡을 거예요?”
내가 물어보니까, 그래도 전화하면서 빡친 게 좀 풀렸는지 강효준이 대답했다.
“보이드 엔터로 VVV엔터를 살 거야.”
“……응?”
“그러라는 거 아니었어?”
내가 그런 미친 생각을 했다고?
……근데 그 미친 생각을 실행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