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75화
신생, 소속 가수라고는 퍼스트라이트뿐인 회사 보이드 엔터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엔터테인먼트를 산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 경우에는 될지도 모르겠다. 될 법도 하다. 지금 VMC는 아버지가 자기 망나니 아들을 위해, 그 아버지를 들이박는 형국이 됐다. 아들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준 강효준의 외할아버지, VMC 고문의 입장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행히, 강효준이라는 대안이 있었다. 아무래도 저렇게 양가 할아버지가 편애하는 걸 보니, 재벌계에 강효준 같은 손주가 드문 모양이다. 키울 때 밥값 많이 드는 게 좀 큰 단점이지만 재벌이라 돈 걱정이 안 들었을 테니까…….
브삼을 산다.
브삼을. 진짜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전화가 끝나고, 나는 강효준에게 말했다.
“형, 내가 옆에서 조언해 줬으니까 업어줘요.”
“부대표님. 정해원 못 걷겠다는데.”
강효준이 떠넘겼더니 부대표가 달려왔다.
“걸으면 안 되지!”
그러더니 와서 날 업어줬다.
술 취한 사람한테 업히는 건 민지호가 운전한 차에서 급정거를 연달아 당한 것 같은 공포였다. 다신 업어달라고 안 해야겠다.
아무튼 부대표는 취했지만, 인사불성인 건 아니었다. 강효준이 불러서 둘이 같이 밖에 나가더니 그 자리에서 내가 보기에 담배 반값 정도는 연달아 피웠다. 술로 기능이 떨어진 뇌를 니코틴으로 회복시키는 것 같다.
황새벽이 옆에 오더니 물었다.
“무슨 얘기하는 거야, 둘이?”
“우리 회사로 VVV엔터 먹자고.”
“아.”
황새벽은 더 깊이 파고들 체력이 없는지 그냥 대충 호응했다. 그렇게 같이 밖을 보고 있으니까 멤버들이 하나둘 옆으로 모였다.
그사이 다른 직원들은 이미 배부르고 취해서 돌아가고 있었고, 멤버들의 배가 덜 찬 걸 아는 신지운과 안주원은 소면을 삶고 있었다. 남은 재료로 물회를 해준다고 했다. 박선재가 말했다.
“우리 팀의 생존력은 몽복즈가 90%쯤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 말에 내가 물었다.
“몽복즈?”
“응, 주원이 형이랑 지운이 형. 복숭아랑 자몽이잖아.”
“……누가 그래?”
“햇살이들 말고 누가 저 형들을 과일이라고 해줘. 부모님 눈에도 그렇게 안 보일걸…….”
맞는 말이다. 우리 햇살이들은 쟤네가 과일이라고 우기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줬다.
하긴. 처음에 갑자기 팀에 합류하겠다는 나도 받아줬는데…….
그나저나 나랑 황새벽은 소랑 거북이인데, 쟤넨 귀여운 게 질투난다. 하. 나도 귀여운 걸로 마케팅할 걸 그랬다. 하마와 코뿔소보다는 낫지만…….
그렇게 생각하다가 나는 멤버들에게 말했다.
“하마랑 코뿔소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갑자기?”
내 말에 황새벽은 황당해하고, 막내즈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한효석이 대답했다.
“그래도 뿔이 있으니까, 무기 있는 코뿔소가 이기겠죠?”
“물에서 싸우면 하마!”
“하마가 성격도 더 호전적이래.”
“그럼 하마가 선빵 날려서 이기겠네.”
황새벽도 같이 진지해졌다.
그렇게 쓸데없는 소리도 하고, 핸드폰을 꺼내서 밤바다 사진을 찍었다. 햇살이들에게 빨리 바다 사진 보여주고 싶은데 예능 방영까지 못 보여주는 게 아쉬웠다.
그렇게 햇살이들 보여줄 사진을 찍고 있는데 몽복이들이 물회를 가져다줬다. 우린 그걸 먹으면서 2차로 술을 마셨다. 나는 빼고.
어느 정도 배부르게 먹고 나서 내가 물었다.
“나 맑은 날 불러줄 사람.”
“내가 불러줄게.”
웬일로 황새벽이 말해서, 민지호가 바로 눈치채고 말했다.
“큰일났다, 새부기 취했다!”
술만 마시면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는 황새벽은 지금도 취해서 멤버들과 햇살이들에 대한 사랑이 폭발한 게 분명했다. 평소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누워 있고, 어려우면 앉아 있고, 중요한 순간이 아니면 일어서지 않던 놈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서는 건.
어쨌든 취했거나 말거나 노래를 부르겠다니까 한효석은 동영상을 찍고, 안주원은 사진을 찍었다.
황새벽의 맑은 날은 락버전이었다.
“……아, 본투비 락커야.”
나는 중얼거렸고, 옆에서 신지운과 민지호가 키득거렸다.
[너는 나의 영원한 햇살이야]
[끝없는 어둠과 빗속에서도]
[내가 너를 만날 때, 세상은 맑은 날이야]
이제 일본 활동을 빼도 미니앨범만 6집, 정규 앨범도 3집을 준비하고 있으니 슬슬 오랜만에 부르는 곡은 헷갈려서 한 번 더 가사를 숙지하는 일이 생겼다. 그래도 맑은 날의 가사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헷갈리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불러서이기도 하고, 그냥 멤버들과 햇살이들이 좋아하는 곡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도 좋아했다.
내가 맑은 날을 좋아하는 건, 그때 가사를 쓸 때의 마음이 생각나기 때문이었다. 그때 느꼈던 불안함의 상당 부분이 지금은 정말로 많이 가라앉았다고 생각한다. 팬들이 늘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도 점점 더 견고해진다.
락버전 맑은 날이 밖까지 들렸는지 부대표가 통창으로 와서 엄지를 척 내밀었다.
황새벽이 술에 취하면 사랑을 갈구한다는 걸 아는 우리 멤버들은 아낌없이 황새벽을 칭찬해 줬다.
다음 날 아침에 나는 X됐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는 걸 눌러 참았다.
어제 갓 싱싱하게 삐었을 때는 몰랐는데, 다음 날이 되니까 진짜 민지호가 밟고 다닌 것처럼 아팠다. 왜 하필 밟고 다니는 주체로 민지호가 떠올랐는지는…… 너무 당연하구나.
“내가 어제 왜 걸었지. 머리가 나쁜가…….”
내가 후회하는 소리에 먼저 일어나서 이불 정리를 하던 한효석이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죠.”
“걱정을 해줘, 뭐라고 하지 말고.”
“누가 발목을 삐고 그렇게 돌아다녀요. 형은 진짜 음악만 잘하는 것 같아요.”
“……칭찬이야, 욕이야?”
“욕인데요, 어떻게 이걸 헷갈려요, 형.”
예전에 황새벽이 리더가 적성이 아니라고 할 때, 황새벽이 정말로 못한다면 한효석이 리더가 되어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착각이었다. 아니어서 다행이다. 쟤가 리더거나 나보다 형이었으면 진짜 괴롭고 올바른 삶을 살 뻔했다. 지금도 불쌍한 내 맥북이 저놈 캐리어에 갇혀 있는데…….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며 몸을 일으켰다. 어제 목발 가져왔을 때는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팬미팅 전까지 나으려면 다친 발을 땅에 딛지 않아야 할 것 같았다.
아침 촬영에 보물찾기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보물찾기를 못 하니까, 멤버들이 보물을 찾는 사이에 앉아서 마이크를 들고 해설을 했다. 다들 방송에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렇다고 촬영을 멈출 수도 없었다.
* * *
부대표가 허허 웃으며 강효준 대표에게 말했다.
“브엠이 대단하긴 하네. 어떻게 아직도 기사 한 줄이 안 나요?”
“돈을 워낙 많이 썼잖아요. 기자들한테.”
하루가 지났는데도 기사가 전혀 뜨지 않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딱 한 곳에서 촬영 중에 사고가 있었다는 기사가 떴다. 정말로 기사 하나였기 때문에, 여론도 그 기사를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어? 흉기???? 사고??]
[애초에 A그룹이 어딘데]
[↳알려지지 않았으면 해서 A그룹이라고 썼겠지 뭘 궁금해 해]
[한 군데 밖에 기사 안 뜬 거면 그냥 기자가 어그로 끌었을 확률이…….]
[촬영 스태프가 소품이라고 했다는데]
[↳잘 읽어 봐 소품을 진짜 칼이랑 바꿨대]
[아니 기사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뭐 정보가 없네]
[↳이 정도면 그냥 잊어버려도 될 듯]
[↳진짜면 기사가 더 나오겠지ㅋㅋㅋ흉기 사고면 진짜 큰 건인데 이렇게 조용할 리가]
적어도 기사를 올린 곳이 두 군데는 있어야 신뢰가 들 텐데, 딱 기자 한 명이 올린 기사뿐이니 그냥 찌라시 소설인가 보다, 하고 넘기고 있었다.
강효준이 말했다.
“조사하다 보면, 어차피 결국은 이춘형도 끌려 나올 거예요. 그때 되면 기사가 나겠지.”
“지금 돌아가는 꼴 보면 그래도 안 날 수도 있어요. 이야, 브엠이 언론사 관리는 끝판왕이라더니…….”
평소에는 그래도 VMC를 까는 기사도 올라오고 하는데, 오늘은 정말로 밀봉을 한 듯이 연예면이 닫혀 있었다. 기자들도 이미 사고 소식을 들었을 텐데, 아무도 회사에 문의하지 않았다.
강효준은 어차피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때가 되면 결국 기자들이 기사를 쓰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기사 이야기부터 꺼낸 뒤, 부대표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해원이, 이렇게 안 되겠어요.”
“…….”
“우리 천재 프로듀서한테 이런 말 하기 미안한데…… 이렇게 살면 걔 서른도 못 넘겨요. 어디서 칼 맞아 죽을까 봐 겁나.”
퍼스트라이트를 정말 자식이라도 된 것처럼 아끼는 부대표가 비난하려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강효준도 알고 있었다. 전과자를 잡겠다고, 전과자가 있을 확률이 높은 곳에 자기 발로 들어갔다. 이건 겁이 없는 걸 넘어서, 자해였다.
“잠깐 활동 쉬게 할까요?”
강효준 대표의 말에 부대표가 멈칫했다.
“아, 그렇다고 그건 좀 또 과하지 않나…….”
멈추면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발버둥을 치지 않으면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아서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는다. 그렇게 점점 물 밖으로 나가버리면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물 밖으로 나가면 죽을 것 같아도, 일단 건져 놓으면 알아서 생존할 방법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놔뒀다가는 지치는 순간 익사하게 생겼으니까.
부대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팬미팅 못 하게 하면 그건 진짜 못 돌아오는 강이니까 그 이후에 봐서 쉬게 하든지…….”
어차피 그 이후 기간은 클라루스가 활동을 시작하고, 월드컵도 있어서 쉬어도 정신을 뺏을 곳이 많았다. 3주 뒤에 한국 팬미팅, 그리고 그로부터 두 주 뒤에 일본 팬미팅이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팬미팅이 끝난 직후부터 정해원의 활동을 중단시키기로 합의했다.
* * *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사가 별로 나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촬영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본격적인 팬미팅 편곡과 다음 정규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내가 발목을 다친 걸 고려해서, 자체 컨텐츠도 원래 예정되어 있던 야외촬영을 뒤로 미루고 일자형 테이블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크게 기사가 나는 것도 아니고 하니, 그대로 넘어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칼 든 범죄자가 이춘형의 전 수행비서였다는 걸, 나중에 이춘형을 공격할 무기로 강효준이 쥐고 있을 생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더 이상 우리 팬들의 피로도를 높이고 싶지 않았다.
복장에 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조금의 터치도 없던 회사에는 한동안 칼정장 입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강효준의 친할아버지가 투자 건에 대해서 면밀하게 살피는 중이었다. 정말로 보이드 엔터가 VVV엔터를 인수하려는 준비가 시작되었다는 게, 외부인이 회사에 보일 때마다 느껴졌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죽기 살기로 정규 앨범에 매달리는 일뿐이었다. 보이드 엔터의 성공은 퍼스트라이트의 성공에 달려 있다. 그러니까 투자에는 이 정규 앨범의 성과도 중요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예능 촬영에서 돌아오자마자 계속 밤새고 작업을 하는데도 아무도 잔소리를 안 했다. 누가 쉬라고 하면 ‘걷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우기려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너무 아무도 뭐라고 안 하니까 또, 그것도 좀 찝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