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77화
주차장으로 급하게 달려간 강효준은 먼저 주차장에 와 있는 정해원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낚싯배 처음 타봤거든요. 그렇게 흔들리는지 몰랐어요.”
“작은 배를 타면 당연히 흔들리지.”
“그래도 문어를 잡아서 보람은 있었어요.”
이제 보름이 지나서 거의 회복이 되고 있었지만 팬미팅을 대비해서, 아직까지는 목발을 사용하고 있었다.
강효준의 친할아버지, 강 회장은 차에서 내리며 정해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강 회장이 강효준에게 말했다.
“직접 내려와야지, 소속 연예인을 보내?”
강효준이 뭐라고 대답하나, 생각하는데 정해원이 말했다.
“투자를 할 만한가, 회사 보시러 온 거잖아요. 연예인은 얼굴이 담보라던데요?”
원래 강 회장은 자신에게 좀 덤비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정해원은 그걸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분명히 스파이가 할아버지네 회사까지는 마수를 뻗지 않았다고 했는데, 강 회장이 도착하는 걸 손자인 자신보다도 먼저 알고 있는 이 상황을 보면 상황이 뻔했다.
강 회장은 다행히 본인 얼굴이 담보라면서 잔망을 떠는 정해원이 거슬리지 않는 듯했다. 정해원이 강효준에게 말했다.
“작업실도 시간 되면 보여드려요, 형.”
“어, 가 있어.”
강효준은 정해원을 보내고 강 회장에게로 향했다.
“연락 주고 오시지.”
“나 오는 거 이미 알았던 것 같은데 무슨 엄살이냐?”
“더 빨리 알았으면 준비 했죠.”
“준비하지 말라고 빨리 온 거 아니니. 준비하고 보여 주는 건 누가 못 하냐.”
강 회장은 말하며 느긋한 걸음을 옮기고, 강 회장의 수행비서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붙잡아놨다. 강 회장이 말했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하나냐?”
“용돈 주시면 하나 더 설치할게요.”
강 회장이 손자의 등을 퍽 때리자 강효준이 아픈 시늉을 했다. 강 회장은 수행비서들 중 한 사람에게 엘리베이터를 알아보라고 맡기고 보이드 엔터로 향했다. 곧이어 강 회장과 함께 온 직원들이 보이드 엔터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 * *
강 회장은 엄청 무서운 할아버지였다. 본인이 무섭게 생겨서 깐족거리는 걸 재미있어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 기호를 알기 위해서 누군가는 깐족거려 봤다는 뜻일 텐데, 진짜 용감한 사람이지, 싶다.
나는 엄청 쫄아서, 소파에 누웠는데도 몸이 다 안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누워 있다가 언제 강 회장이 작업실을 보러 올지 모르니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깥 상황을 살피다가, 전화를 걸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내 말에 스파이, 박중운 팀장이 대답했다.
-보이드가 워낙 작은 회사잖아. 꼼꼼하게 알아보겠지.
“그래도. 아까 보니까 탕비실 관리 어떻게 하고 있는지까지 확인하더라. 보이드 엔터에 투자가 아니라 여기 사러 온 사람들 같더라고.”
박중운 팀장이 미리 내려가 보라고 해서, 나는 나름대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팬미팅이 코앞이었다. 나는 완전히 달리지는 못해도 걸어 다닐 정도는 됐다. 과격한 안무 빼고는 전부 참가하기로 했다.
나는 사흘 뒤 체육관 리허설이 있어서, 나는 발목을 최대한 아꼈다. 3주 내내 거의 안 걸었기 때문에 잠깐 움직여도 어질어질했다.
그렇게 작업실에서 찜질을 하며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봤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사이에 강효준이 친할아버지와 작업실 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나는 문을 열었고, 두 사람이 작업실로 들어왔다. 강 회장은 한동안 작업실을 둘러보다가 나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떠났다.
나는 강효준과 같이 주차장까지 배웅을 했고, 강 회장이 타고 온 차를 뒤따라 차 네 대가 주르륵 주차장을 빠져나가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차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형, 형네 할아버지 아니에요? 나는 그렇다쳐도 형은 왜 쫄아요.”
“우리 할아버지 무섭잖아……. 넌 안 쫄아보이더니.”
“무슨 소리예요. 무서워 죽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진이 빠져서 이야기하다가 내가 물었다.
“혹시 저 선 넘은 거 없어요?”
“선? 계속 넘던데.”
아?
“괜찮아요?”
“괜찮아, 할아버지 원래 그런 거 좋아해. 크게 되려면 담이 커야 된다고.”
“그럼 다행이고.”
회사를 보고 갔으니까, 이제는 강 회장이 직원들과 투자를 할지, 말지를 상의하게 될 거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보이드 엔터에는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한동안 고요하다가, 체육관 리허설로 또 한바탕 시끌시끌했고 팬미팅 당일까지 그 북적거림이 이어졌다.
그 사이에 강 회장에게는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연락이 안 오는 게 좋은 건지, 오는 게 좋은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일단은 좀 더 기다리려는 모양이었다.
팬미팅 무대를 이해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고 있을 때, 클라루스의 컨셉 트레일러가 드디어 올라왔다.
진짜로 컴백이었다.
나는 메이크업을 받으며,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컴백 티저를 눌렀다. 그러니까 급하게 보이드 엔터 A&R이며, 클라루스의 오랜 팬인 오아영이 달려왔다.
“컨트 올라왔죠?”
“소리 키울까요?”
“그래도 돼요?”
나는 소리를 키웠고, 내 핸드폰으로 다 같이 클라루스의 컨셉 트레일러를 봤다.
시작부터 심장 뛰는 색감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VIVIDLY]
“와, 분위기 독특하다.”
계속해서 꽃이 피어나는 배경으로 그저 클라루스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여줄 뿐인 컨셉 트레일러였다. 그런데 그 영상에 정말로 ‘예술적’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부대표도 옆에서 같이 보며 감탄했다.
“아트다, 아트. 진짜 예술이네.”
내가 만든 곡중에, 우리 앨범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던 데모, VIVID는 이번 클라루스 컴백의 컨셉이 되었다.
원래 비비드라는 곡은 피어나는 꽃들에 대한 노래였다. 내가 어릴 때, 가족들과 꽃박람회를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온갖 선명한 색깔의 꽃에 대한 감상을 최대한 그대로 음악에 옮기려 시도했었다.
그런데 그 곡은 지금 퍼스트라이트의 색깔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워낙 도드라지는 곡이라 어느 앨범에 들어가도 확 튀는 느낌이었다.
A&R 팀에서 일본 싱글로는 좋지 않겠냐고 했는데, 강효준이 일단은 아껴놓는 게 어떠냐고 했다. 강효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강효준은 클라루스의 오랜 A&R 생활을 했으므로, 그 취향이라는 게 아마도 클라루스를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클라루스가 준비하던 곡과 정말로 잘 맞아떨어졌던 걸 보면.
나는 곡의 일부분, 그러니까 브릿지만 원래 클라루스가 컴백하던 곡에 더하자고 제안했던 거였다. 그러니까 그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버리게 되었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다.
그런데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곡의 가사나 분위기를 클라루스의 컨셉으로 완벽하게 녹였고, 심지어 원래 VIVID의, 그러니까 브릿지를 잘라낸 나머지 부분들은 오케스트레이션을 해서 컨셉 트레일러에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나도 오케스트레이션을 할 수는 있지만, 잘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거절하고, 내가 좋아하는 베테랑 작곡가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 작곡가가 내 곡으로 오케스트레이션을 해줬다는 건, 나에게는 큰 영광이고, 기쁨이었다.
그렇게 대작곡가가 오케스트레이션을 해준 건데, 칭찬은 내가 듣고 있다. 허허…….
“와, 우리 해원이 천재다, 천재.”
부대표가 오늘도 과하게 감동해서 훌쩍거렸다. 거듭 느끼지만 저 인상으로 우는 건 약간 공포인 것 같다…….
오랜 공백을 깬 클라루스 개인, 개인의 모습과 절묘하게 배치하여 끊임없이 피어나게 만든 꽃들의 이미지. 그 완벽한 컨셉 트레일러를 보고 있는 건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1분도 안 되는 길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다온이 형 컨트 미쳤어요…….]
내가 바로 톡을 보내니까, 클라루스 송다온에게 답이 왔다.
[다온이 형 : 강효준이랑 간만에 작업 같이 하니까 그냥 일사천리더라 안 되는 게 없어 해달라는 거 다 바로 처리해줘]
[다온이 형 : 컨트도 1본부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데 다 해결했어]
[다온이 형 : 역시 예쁘지?]
역시 예쁘다. 그 말이 맞았다. 클라루스 멤버들의 의견이 가득 들어간 컨셉 트레일러에서, 그 멤버들의 예술적인 역량이 보였다.
거울로 힐끔 보니까, 오아영 A&R은 다시 자기 핸드폰으로 컨셉 트레일러를 재탕 삼탕 하고 있었다. 팬의 표정을 바로 볼 수 있어서 좋다.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내가 물었다.
“어떠세요? 팬으로서. 팬이 좋아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내 말에 오아영 A&R이 결국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말했다.
“완벽해요.”
“그렇죠? 이게 클라루스 형들 역량이라니까…….”
나는 그렇게 흐뭇해져서 다시 팬미팅으로 집중했다.
* * *
강효준은 팬미팅 무대를 확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무대와 조명을 확인했다. 팬미팅 감독은 퍼스트라이트와 줄곧 함께하고 있어서, 다른 누구보다, 가끔은 보이드 엔터 직원들, 심지어는 멤버 본인보다도 뭐가 필요한지 더 잘 알아줄 때가 있었다.
제일 먼저 세팅을 끝낸 민지호는 무대에 달려 올라가서 행복한 눈으로 아직은 비어있는, 곧 가득 채워질 객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효준은 무대 아래 서서 민지호를 올려다보았다. 가끔 신기했다. 회사에서는 육아의 보조를 위해 열정 그 자체 캐릭터인 부대표를 데려와야 했을 정도로 애처럼 구는데, 무대에서는 다른 사람이었다.
민지호가 무대에 서면, 왜 그렇게 정해원이 민지호를 부러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믿음직 스러웠다. 무대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거기 불이 붙어도 민지호는 무대를 중단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잠시 후 멤버들이 하나, 하나 무대로 올라왔다. 민지호가 정해원에게 말했다.
“형, 나는 우리 노래가 좋은 게, 너무 행복해.”
그 말에 정해원과 같이 무대에 올라왔던 신지운이 핀잔했다.
“뭔 소리야, 저게.”
그러자 정해원이 신지운에게 핀잔했다.
“저걸 못 알아들어? 딱 들으면 몰라?”
“아는데 설명을 이상하게 하잖아.”
“안 이상해!”
그렇게 티격태격했지만, 강효준 역시 민지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했다.
보이드 엔터 소속 가수의 노래가, 퍼스트라이트의 노래가 좋은 음악이라는 것은 대표인 강효준 역시 만족스럽게 했다. 본업이 A&R이라고 생각해 여전히 새로운 곡을 전부 들어보지만, 퍼스트라이트의 곡보다 많이 듣는 곡은 없었다. 일 때문이 아니라 그냥 좋았다. 퍼스트라이트의 노래, 정해원이 만들어가는 음악들을 강효준은 다른 어떤 음악보다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팬미팅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강효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효준은 핸드폰에 뜬 이름에 놀라 헛손질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예, 할아버지.”
-보이드 엔터, 작은 줄은 알았는데 참 작더라.
“엘리베이터 설치할게요.”
강효준이 바로 대답했는데, 잠깐 강 회장이 뜸을 들였다. 그 틈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