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78화
강 회장이 영 못마땅해하며 물었다.
-꼭 선유도역 근처에 회사가 있어야 하니?
“방송국이 가까워요.”
-회사 근처에 괜찮은 건물이 없더란 말이지.
강 회장은 본의를 쉽게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건물이 작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강 회장이 말했다.
-정해원 씨라고 했지. 자기 얼굴이 담보라고 한 친구는, 정말로 담이 크더라.
“할아버지 담 큰 사람 좋아하시잖아요.”
회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해원이 미리 알고 주차장에서 기다린 건 플러스 점수를 받은 듯했다. 강효준이 긴장하며 기다리는데 강 회장이 말을 이었다.
-보이드 엔터는 회사가 너무 작아. VVV엔터를 혹여 인수한다고 해도 감당을 못해서 같이 고꾸라질 거다. 그러니 네 회사 규모를 좀 더 키워봐라.
“…….”
-너희 회사에 클라루스 멤버, 한 명이라도 잡고 나면, 그때 투자해 주마.
강 회장은 손주라도 허투루 투자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오래 함께 일한 사람들의 가치를 따지는 것이 미안하긴 하지만, 클라루스 멤버를 한 명이라도 잡는 것이 이 회사의 규모를 좌우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강효준은 잠깐의 뜸도 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예, 그럼 멤버 계약 후에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제가.”
-오냐. 아, 그리고 너도 요즘 낚시 좋아한다며, 정해원 씨가 그러더라. 조만간 같이 가자.
그 잠깐 사이에 강 회장의 기호를 파악하고 거짓말을 해놨나 보다. 웬 낚시…….
강효준은 한숨이 나왔으나 구두 밑창 닳게 돌아다니는 게 세일즈맨의 기초라는 강 회장의 말을 떠올리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안 그래도 여쭤보려고 했어요. 비서실 통해서 일정 잡을까요?”
-그래라.
강 회장이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낚시가 싫은 건 아니지만 강 회장과 일 이야기하며 며칠 동안 낚싯배 탈 생각을 하니 부담스러웠다.
그때, 퍼스트라이트 팬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팬미팅 첫 번째 VCR이 시작된 것이었다.
* * *
팬미팅은 즐거운 분위기로 흘러갔다. 나도 멤버들도 내내 들떠 있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우리 멤버들이 재미있는 사람들은 아닌데. 햇살이들은 별것 아닌 농담에도 웃어줘서 우리가 스스로를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중간에 VCR에 팬들이 시선을 고정했다.
VCR의 컨셉은 퍼스트라이트가 직접 찍는 뮤직비디오였다. 영상 속 멤버들이 모여서 어떤 곡의 뮤직비디오를 찍을지부터, 어떤 내용으로 찍을지까지 상의하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정규 2집, 폴라리스의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단순하지만 서로 웃을 수 있는 안무를 만들었고, 서로의 일상을 촬영했다.
팬들은 우리가 만들면서 웃을 거라고 예상한 장면에서 웃어주고,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장면을 좋아해 줬다.
그렇게 팬미팅이 끝나고, 일주일 뒤에는 다시 일본 팬미팅을 위해 출국했다.
그사이에 스케줄이 많아서 정신이 없어 클라루스 신곡 앨범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몰랐었는데,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저절로 상황을 알게 됐다.
“와…….”
우리는 공항 온 사방에 뒤덮인 클라루스 광고에 감탄했다. 오늘 1시에 발매되는 클라루스의 광고로 공항이 뒤덮여 있었다.
어디서나 클라루스가 보였다.
나는 왠지 모르게 기가 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새삼, 클라루스가 어느 정도 위상인지 공항에서 느껴졌다. 외국인이 가장 많은 공간에, 가장 친숙한 존재의 광고가 송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인천공항뿐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 명소란 명소에 전부 클라루스의 광고가 깔려 있었다.
그렇게 광고를 보고 있는데, 민지호가 말했다.
“저기 해원이 형 있다!”
“오.”
내가 거의 데뷔 초일 때부터 함께 하고 있던 주얼리 브랜드에 화면에 내가 지나가고 있었다. 겁나 민망했다. 그리고 한효석이 안주원의 사진도 찾아냈다. 지난번에 뉴욕에 갔을 때 만난 디자이너네 브랜드였다.
그렇게 면세점 구경을 하며,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핸드폰을 켜보니 클라루스 송다온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다온이 형 : 떨려…….]
[다온이 형 : 그래도 빨리 팬들한테 들려주고 싶어]
이렇게 오랜 시간 활동해도, 모처럼의 컴백은 떨리는 모양이다. 내가 문자로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데, 안주원이 나에게 VVV엔터 1본부에서 낸 언론 자료를 보여줬다.
아무래도 강효준 대표가 손 좀 많이 쓴 것 같다. 기사 중간중간 내 이름이 나왔다.
“끼워팔기하네, 민망하게.”
“뭐가 끼워팔기야. 너도 작곡 참여한 거 맞잖아. 심지어 컨셉은 비비드에서 가져온 건데.”
안주원이 정색하고 말하는 사이, 민지호가 내 쪽을 보더니 시무룩하게 말했다.
“나 비비드 좋아했는데…….”
“아이, 미안해, 미안해.”
모두가 비비드를 앨범에 수록곡으로 쓰느냐, 마느냐 고민할 때 타이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민지호였다. 그래서 클라루스에게 이 곡을 주기로, 그것도 조각을 해서 일부분만 쓰게 됐다고 했을 때 민지호는 크게 실망했었다. 그리고 결국 민지호의 말대로 그 컨셉을 그대로 살린 앨범을 클라루스가 내게 되었다. 이게 잘 되면, 민지호의 눈이 정확했던 셈이 된다.
그렇게 잠깐 이야기하다 보니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이동하는 중에도 중간중간 클라루스 광고가 보였다. 잠깐 공연장을 보여준다고 그쪽으로 향했는데, 가는 길에 우리 팬미팅 광고가 보였다.
“……우리가 이 정도예요?”
나와 같은 차에 탄 한효석이 광고 크기에 압도당해서 중얼거렸다. 매니저가 잠깐 차를 세워줘서, 우리는 차에서 내려 광고를 올려다보았다. 뒤를 보니 다른 멤버들이 탄 차들도 멈추고 있었다.
팬미팅 광고를 저렇게 크게 하고 있었다는 걸 우리도 몰랐다.
지금까지는 그냥 큰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는 것에 신나 했는데, 공연장이 커진다는 건 더 많은 팬들이 생겼다는 뜻이라는 게 이제 실감이 된다.
더 많은 팬들이 들어오는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고, 그래서 더 크게 광고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린다.
그렇게 점점 더 큰 공연장으로 가고 싶었다. 더 많은 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
* * *
[비비드 컨셉이 정해원이 만든 곡에서 가져온 거래]
[↳컨트 분위기 너무 좋았는데 그게ㅠㅠㅠ]
[정해원 대단하다 스물세 살에 송다온 솔로곡+클라루스 작곡 참여 했네ㅋㅋㅋㅋ]
[↳돈 X나 벌겠다]
[그냥 성공한 게 아니라 스물세 살에 성공한 게 부럽다…….]
[↳나도ㅠㅠㅠ]
[↳심지어 저렇게 생김ㅎㅎ]
[다시 태어나면 정해원으로 태어나고 싶다]
[↳2년 동안 국혐이라고 욕 먹어야 되는데?]
[↳↳인터넷 안 보면 되지 않냐ㅎㅎ]
[원래 박수원이 쓴 타이틀 보류 중이었는데 정해원이 자기 곡 잘라서 붙여보라고 한 거래. 이거 듣고 멤버들이랑 직원들 다 좋아해서 컴백 확정된 거라고 함]
[↳브삼 정해원 열심히 밀어주네 룩스(클라루스 팬클럽) 입장에서 안 빡치나]
[↳↳솔직히 클라루스 팬들 입장에서 빡칠 듯ㅎㅎ 억지로 정해원 푸시하려고 완성된 곡에 정해원 곡 구겨 넣는 거 티나]
[↳↳↳뭐라냐]
[↳↳↳X나 올드하네]
[↳↳↳뇌피셜 그만 쓰고 자러 가라]
[↳↳↳이 새끼 절대 룩스 아님]
[↳↳↳야이씨X 지금 앨범이 얼마나 오래 안 나왔는데 해원 후배님이 자기 곡을 구겨 넣든 뭘 하든 앨범 나오게 해줬다잖아 룩스면 다 오열하면서 고마워함]
[↳↳↳↳그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노래가 있어도 브삼에서 컴백 안 시켜줬는데 후배도 남의 회사 후배 밀어주려고 그곡으로 컴백한다고ㅋㅋㅋㅋㅋㅋㅋ??]
[↳↳↳↳정해원까들은 그냥 논리가 없어]
[↳↳↳↳↳애초에 논리가 있으면 국선아 주작 다 밝혀진 마당에 안 나대지]
[↳↳↳↳↳어떡하냐 울 애들 타이틀까지 참여했으면 점점 더 잘 나갈텐데^^]
[와 확실히 룩스가 화력이 좋긴 좋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정해원까들 이렇게 빠르게 진압된 거 처음인 듯ㅋㅋㅋㅋㅋㅋ]
[↳나 같아도 내 본진 안 나오던 앨범 나오게 해주면 평생 고마워할 듯…….]
[퍼라 해원이 여기저기 공백기 끝내고 다니네]
[↳빅 블루 앨범도ㅠㅠㅠ]
[↳심지어 퍼라 자체도 앨범 안 나올까봐 팬들 심각하게 걱정할 때 합류해서 앨범 낸 거…….]
[↳직업이 해결사네]
[퍼라 지금 어디임?]
[↳일본]
[퍼라 요즘 일본 인기 심상치 않음]
[↳퍼라 일본 인기 심상치 않다는 얘기 너무 많이 들었는데ㅎㅎ]
[↳↳근데 진짜 심상치 않아…….]
[↳↳퍼라 커버인 잡지 아마X 재팬 1위임 품절돼서 한국팬은 거의 구하지도 못했어]
[↳↳↳퍼라 진짜 잘나가는구나ㄷㄷ]
[심상치 않다고 말만 하지 말고 누가 지표 좀 가져오면 안 돼? 솔직히 슬슬 좀 언플 같음]
[↳지표를 보고도 안 믿은 건 아닐까?]
[↳(스크린샷) 이번에 팬미팅 굿즈 매진 됨 우치와는 전 멤버 매진]
[↳X루카리에서 포카 시세도 엄청 올랐더라]
[보이드 신생인데 퍼라 터져서 돈 쓸어 모으겠네]
[와 내가 TRV 사장이면 진짜 멘탈 나갈 듯…….]
[↳그래도 퍼라 잘 되면 좀 이득 아냐? 거기 묶인 앨범 있을 거 아냐]
[↳↳없엉 퍼라가 나올 때 싹 다 들고 나왔대]
[↳↳↳왜? 의리로????]
[↳↳↳↳ㄴㄴㄴ퍼라 망할 줄 알고 판 거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업자득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일본 팬미팅 공연장은 엄청 컸다. 우리가 한국에서 콘서트를 하는 규모보다 컸는데, 매진이라고 들었다. 언어가 다른데도 이렇게 우리를 좋아해 주고, 우리 음악을 들어주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팬미팅까지 남은 일주일 사이에 일본 스케줄을 했다. 그런데 왠지 보이드 엔터 직원들이 날 엄청 안쓰럽게 봤다.
나는 이제 슬슬 날씨가 더워져서, 얼린 물통을 목에 대고 있다가 강영호 매니저를 붙잡아서 물었다.
“형, 나 무슨 일 있어요?”
“응? 무슨 질문이에요, 그게.”
“아니, 이상하게 다들 날 엄청…… 떠날 사람처럼 보는데?”
내 말에 강영호 매니저가 확연히 난처해하며 말했다.
“어우, 전혀 모르겠네.”
그러더니 도망쳤다.
이상한데.
나는 생각하다가, ‘모르겠다’라고 발뺌할 수 없을 강효준 대표를 붙잡았다. 그리고 만난 김에 지난번 일부터 물었다.
“형, 형네 할아버지, 회사 보고 간 이후에 뭐라고 안 하셨어요?”
“몰라도 된다니까, 회사가 알아서 할게, 이제.”
“아니, 그건 알겠는데. 내 인상 어떠냐고. 내가 그날 선 많이 넘었다며요. 너무 비호감으로 기억되는 거 아니에요?”
“전혀. 네 배짱이 마음에 든다고 하시더라.”
“강 회장님 좀 싸가지없는 애들 좋아해요?”
“네가 싸가지가 없진 않지. 진상이라서 그렇지.”
강효준이 자꾸 나한테 진상이라고 하니까, 멤버들도 나더러 진상이라고 하고, 그걸 보고 햇살이들도 요즘 내 진상짓을 모아서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다행히 햇살이들이 내 진상짓이라고 부르며 모아놓은 영상의 댓글이 다 좋았다. 집냥이 생활에 익숙해진 길냥이 같아서 귀엽다고 했다. 소에서 고양이가 됐다. 소보단 고양이가 귀여우니까 계속 진상 부려야겠다. 히히.
아무튼 내가 물었다.
“근데 진짜로, 직원분들이 자꾸 저한테 잘 쉬고 오라고 인사한다니까요. 저 쉬어요?”
“아, 그거.”
“아, 그거?”
“별건 아니고, 팬미팅 끝나면 너 한 달 정도만 활동 쉬라고.”
“…….”
“어차피 월드컵 기간에 방송 쉬어서 스케줄 많이 없어. 한 달 금방 가.”
“없긴 뭐가 없어요, 많잖아요. 내가 왜 쉬어요?”
“너 쉴 때 됐어. 중간에 사고 난 게 몇 번이야. 잠깐이라도 쉬는 게 정상이야. 수면장애도 계속 있잖아.”
“그냥 잠이 줄어든 거고, 싫어요. 안 쉴 거예요.”
생각해서 쉬라는 거 아는데 순간 철렁했다.
어질어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