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79화
하.
돌겠네.
내가 물었다.
“우리 멤버들도 다 쉬는 거예요?”
“아니, 너만.”
그러더니 강효준 대표가 피곤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말로 너 이길 자신 없으니까 이제 부대표랑 얘기해.”
“뭘 얘기해요, 혼자서는 절대 안 쉴 거예요. 저 쉬게 하면 그…… 노동법?”
“너 프리랜서라 도움 안 돼.”
“아, 모르겠고 전 안 쉴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활동 중단은 무슨…….”
안 쉴 거라고 말했으니까, 정리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일본 방송 스케줄을 했다.
이것저것 질문하고, 멤버 개인, 개인에 대해서 다른 멤버들이 설명해 주기도 하고 하는 방송이었다.
“팀의 막내라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박선재에게 MC가 묻자, 박선재가 섭섭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막내기는 한데, 지호가 좀 더 막내 포지션을 가져가고 있거든요. 형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고…….”
민지호가 그 말을 듣고 히히 웃었다. 본인도 부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민지호가 말했다.
“저는 솔직히, 형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선재도 형이고, 효식이도 형이면 내가 완전 막내 되는 건데!”
“아, 퍼스트라이트는 막내가 좋은 자린가 봐요?”
MC가 묻자 한효석이 말했다.
“저희는 솔직히 형으로 갈수록 좀 손해예요. 양보해야 되고.”
그 말에 신지운이 날 가리키며 말했다.
“이 형이 분위기를 잘못 잡았어. 자업자득이야. 해원이 형이 원래 한 살만 차이 나도 한참 동생처럼 돌봐주거든요. 좀 꼰대여 가지고.”
“꼰대야, 잘 챙겨주는 거야. 하나만 해.”
“잘 챙겨주는 꼰대지.”
아,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동생들이 형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듣기 좋았다. 안주원도 마찬가지인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황새벽만 피곤해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요즘 들어 형이 하나 정도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해…….”
그 말에 멤버들이 그 마음 다 안다는 듯이 황새벽을 토닥거렸다.
그렇게 방송 촬영도 끝나고, 바로 팬미팅 리허설, 그리고 그다음 날이 팬미팅이었다.
팬미팅을 위해 일찌감치 자려고 했는데 잠이 잘 안 왔다. 생각해 보니까 오늘 촬영할 때 도시락을 거의 안 먹은 기억이 났다.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나, 싶어 룸메이트인 민지호에게 물었다.
“민조, 룸서비스 시킬까?”
“아니! 그냥 잘래.”
평소에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데, 큰 무대에 설 일 있으면 그 식욕을 딱 잘라버린다.
나 혼자서라도 뭔가 먹을까 메뉴를 확인하는데 민지호가 말했다.
“형 쉰다는 거 들었어?”
“아, 그거. 안 쉬기로 했어.”
“그래?”
민지호가 히히 웃더니 말했다.
“그래, 평생 쉬지 말고 일해.”
“어, 그러려고.”
“근데 형 평생이 얼마나 길지는 모르겠어.”
역시 민지호만큼은 무대를 쉰다는 게 얼마나 불안한 일인지, 내 마음을 알아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들어보니까 아니었다. 잠깐만 더 생각해봐도, 평소 민지호에 비해 느낌표가 약간 모자랐다. 몇 초 더 생각해보니까 엄청 무서운 말을 하고 있었다.
“야, ‘얼마나 길지’라니…….”
“형 무슨 일 있어도 무대 올라갈 거지?”
“응.”
“무슨 일 있어도 멘탈 안 흔들리고 좋은 곡 뽑아낼 자신도 있어?”
“어…….”
생각해 보니까 그 두 가지가 좀 다르다.
“형 좀만 곡 안 나와도 재능이 고갈됐을까 봐 걱정하잖아. 무대랑 달라. 형이 작곡 좋아하는 건 사실인데, 무대만큼 좋아하진 않아서. 무대는 그냥 올려만 주면 좋아하지만, 작곡은 아니잖아. 마음에 드는 곡이 안 나오면 하기 싫어지잖아. 억지로 하는 거, 솔직히 좀 있잖아.”
왠지 그럴듯하다. 민지호에게 설득당하면 안 되는데…….
민지호가 팔짱을 끼고 앉아서 말을 이었다.
“나중에 30대 되면 무대 위해서 싫어도 운동 많이 해야 될 거고, 식단도 평생 해야 될 거야. 그런 것처럼 쉬는 것도 관리인 거야.”
“…….”
“형 우리 어른 됐으니까, 이제 싫어하는 것도 해야 돼.”
“……필요 없는 것 같다고, 쉬는 거.”
“형만 그렇게 생각하면 뭐 해, 우리 다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또 모르는 번호였다.
이제 사생들이 전화 거는 것에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모르는 번호가 보일 때마다 움찔움찔한다. 악몽을 꾸면, 원래는 혀만 잘려 나갔는데 요즘은 얼굴이 베이는 꿈을 꾼다.
며칠 전에도 메이크업을 하다가 조금 얼굴이 긁히는 느낌이 나서 급하게 거울을 확인했다. 좀 차가운 상태의 스패츌러였는데, 그거에 지나치게 놀라서 메이크업해 주던 분도 덩달아 놀랐다. 미리 차갑다고 말해주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해서, 내가 더 미안했다.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었는데…….
물론 내가 진상짓을 종종 하긴 하는데, 이건 꼴보고 싫은 선을 넘어선 것 같았다. 쉬는 게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국 솔직하게 민지호에게 말했다.
“내가 없는 게 더 나으면 어떡하지.”
그게 제일 무서웠다.
그냥 거기서 떨어져 나온 후에 끝일까 봐. 쉬면 사람들이 날 잊을까 봐. 내가 필요 없게 되는 게 겁나서. 아마 일을 쉬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그런 두려움에 시달리는 게 아닌가, 싶다.
내 말에 민지호가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그러더니 천장을 보며 말했다.
“그럼 형이 더 노력해야지.”
“……그래?”
“없는 게 더 나으면 진짜 안 되잖아. 형이 더 열심히 해서, 있는 게 더 낫게 만들어.”
“이야, 그건 진짜 맞는 말이다.”
“원래 내 말은 다 맞아. 느낌표가 없어서 진정성 없게 들리겠지만.”
“반대야. 너무 느낌표가 많아서 진정성 없어 보여.”
“그래도 쓸 거야!”
“응, 알아.”
나는 흐흐 웃고, 다시 물었다.
“팬들이 나 잊어버릴까 봐 못 쉬겠더라.”
“잠깐만, 봐봐.”
민지호가 말하더니 유튜브에서 갑자기 내 직캠 하나를 찾아 켜줬다.
야외 콘서트에서 비가 오던 날, 몬스터에서 프루티로 이어지는 무대를 찍은 내 직캠이었다.
직캠 중에서 제일 조회 수가 잘 나온다고 안주원에게 몇 번 들었는데 진짜였다.
“……민조야, 이거 우리 왜 보고 있는 거야? 민망한데?”
“봐봐, 엄청 잘하잖아. 이런 무대 하는 사람이 한 달 만에 잊히겠냐고.”
아, 그런 거구나.
나는 실없이 웃었다. 민지호는 무대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잊힐까 봐 걱정하는 나에게 무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좋은 무대를 할 수 있으면 잊히지 않을 거라고. 정말 민지호의 기준으로 한 판단이었고, 그게 지금 나에게 정말로 필요했다.
“솔직히 잘한다, 나.”
“형, 그건 내가 말해줄게. 형이 말하지 마.”
“이렇게 보니까 나 얼굴도 좀 괜찮은 거 같아.”
“형 엄청 잘생겼다니까!”
“엄청은 아니고…… 적당히 생겼지.”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내 직캠이 끝나고, 민지호의 가장 조회 수가 잘 나오는 직캠, 그리고 안주원에게 연락해서 다른 멤버들의 레전드 직캠을 추천받아서 멤버들 걸 돌아가면서 봤다. 그렇게 이것저것 보다가 우리는 잠이 들었다.
나는 민지호와의 대화 후에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민지호가 어른이 된 게 좀 섭섭해서 그렇지…….
* * *
해외 공연할 때 제일 신기한 건, 팬들이 우리 말을 정말 많이 알아듣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정말 보고 싶었어요.”
황새벽이 그렇게 말하고 통역을 기다렸는데, 통역이 시작되기도 전에 팬들이 다 알아듣고 환호했다.
일본 팬들이 들고 부채는 각자의 취향대로 커스텀을 했는지 화려했다. 원래 판매하는 굿즈도 있지만, 완전히 자체 제작한 부채도 있었다.
늘 내 이름이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아이돌, 아니, 인간이면 다 그렇지 않을까. 우리 팀에 잘난 놈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쩌다가 날 좋아해 주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팬미팅은 양일 모두 팬으로 가득 찬 공연장에서 할 수 있었다. 팬미팅이 끝나가니까, 다음 콘서트에서나 우리 팬으로 가득한 공연장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 공연을 끝내기 싫었다.
“콘서트에서 봐요!”
“햇살이들 안녕! 사랑해!”
우리는 팬미팅으로 이번 일본 일정을 끝냈다.
공연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서, 민지호와 라이브 방송을 했다. 그 방송까지 끝나니까 새벽이라, 바로 잠들었는데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민지호가 나를 깨웠다.
“형, 아침 먹으러 갈래?”
“어, 주원이랑 효식이 따라가게?”
“응!”
이번 룸메이트인 둘이 맛집 투어를 한다는 모양이었다.
“난 그냥 잘래. 잘 갔다 와.”
“알았어, 사진 보내줄게!”
민지호가 맛집 탐방을 떠나고, 나는 침대에 잠깐 누웠다.
어차피 한 달을 쉴 거면 그사이에 작업이나 왕창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년에 활동할 곡까지 다 만들어와야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맥북 앞에 앉았는데, 강영호 매니저가 들어왔다. 나는 내 맥북을 뒤로 숨겼다.
“형 설마 내 맥북 납치하려는 거 아니지?”
“아뇨, 아뇨. 작업은 해야죠. 그거 뺏었다가 무슨 일 나려고.”
손을 내저은 강영호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여행 일정이에요.”
“나 여행 가요?”
내가 묻고 스케줄을 봤는데, 시작부터 빡빡했다.
“무슨 여행을 영국 갔다가 미국을 가요. 지구를 한 바퀴 돌아요? 왜?”
“그리고 대표님이 블루레이 수집하셨다는데요.”
강영호 매니저가 보여준 블루레이 목록을 받았는데, 엄청 탐나는 목록이었다. 활동 중단에 대한 마음을 바꾸게 할 정도였다.
“와, 이걸 한 달 동안 보려면…… 여행 못 가는데. 이거 봐야 되는데.”
생각해 보니까 한동안 영화를 못 봤다. 물론 아주 못 본 건 아닌데, 영상미 있는 영화를 보려고 하면 멤버들이 재미없는 거 보지 말라고 구박해서 숙소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물론 나는 스펙타클한 것도, 서스펜스도, 환상적인 것도 다 좋아한다. 하지만 오로지 영상미만을 맛볼 수 있는 영화를 넋 놓고 보는 것도 정말로 좋아한다.
상담 일정이 좀 많긴 한데, 그래도 활중, 점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까 멘탈을 보강하고 와서 오래가면 그게 남는 거긴 하잖아?
거기다가 쉰다고 해도 영국에서는 영국 스케줄, 미국에서는 미국 스케줄이 하나씩 있었다. 남은 시간과 블루레이 목록을 확인했다. 하루에 적어도 영화 세 편씩은 봐야 알찬 한 달을 보낼 수 있었다.
“……미쳤다. 와, 이거 블루레이를 어떻게 구했지?”
수록곡이 아직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쉬면서 좀 더 괜찮은 곡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번 정규 앨범을 전부 내 곡으로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진짜 좋겠다. 점점 활동 중단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 날 저녁에는 바로, 왜 회사에서 활동을 중단시켰는지 완전히 이해했다.
예능 촬영에서 문제가 생기던 날, 유일하게 기사를 올려줬던 기자가 단독 기사 두 개를 동시에 올렸다.
[예능 촬영 중 얼굴 노리고 칼 휘둘러……. 범인은 이춘형의 전 수행비서 이모씨]
[퍼스트라이트 해원 한 달간 활동 중단]
기사를 본 사람은 누구나, 이 두 기사를 연관 지었다. 쉬는 게 맞았다. 기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내 생각보다 훨씬 격했다. 월드컵이 코앞인데도 이렇게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
활동을 쉬지 않았으면 나는 모두가 내 편이라고 해도 그 격동 한가운데 있을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