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81화
-아, 무슨 일이 난 건 아니고.
“응.”
-내가 길에서 우연히 장선영 부대표님을 만났는데.
“VMC에서 나갔다는 부대표님? 캔캔 스튜디오 제작자? 효준이 형 외할아버지 오른팔?”
-응, 그분.
“을 어쩌다가 길에서 우연히 만났어?”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그랬는데. 그분이 영화를 제작하던 중간에 쫓겨나셔서. 제작하던 영화 걱정이 많이 되나 봐. 그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부대표님 해고되고, 제작비를 엄청 삭감했다더라.
“음.”
영화 쪽은 잘 모르겠다.
내가 물었다.
“그거, 제작비 많이 들일 정도로 자신 있는 영화래?”
-어, 그렇대.
“제목이 뭔데.”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올 거래.
“그래……. 알았어. 또 뭐 일 있으면 알려줘.”
-그래, 그리고 웬만하면 혼자 다니지 마.
“에이, 지금 이춘형이 사람 쓴 거라고 난리 났는데 몸 사리고 있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좀 무섭긴 했기 때문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잽싸게 차에 짐을 싣고 운전석에 앉았다.
강효준 대표의 집 방향으로 차를 몰며 나는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스물세 살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온 영화가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생각나는 게 없었다. 아무래도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나 혼자 힘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체념하며 서울로 돌아갔다. 강효준 대표에게 미리 말을 해놔서, 경비초소에서 차를 들여보내 줬다. 집에 상주하는 직원이 정문을 열어줘서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댔다. 주차장 엘리베이터로 한 층을 올라가면 바로 마당이랑 영화관 시설이 있는 곳이 나왔다.
태어날 때부터 이런 집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국밥을 다섯 그릇씩 말아먹으면서 지나치게 일하는 워커홀릭 하마가 됐다는 게 신기했다. 솔직히 나였으면 좀 편하게 살았을 것 같은데. 나는 생각하며 영화를 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방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처음 목적이었던 사운드오브뮤직을 큰 화면에, 좋은 사운드로 보고, 이어서 누벨바그 영화를 감독 별로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은 훨씬 좋아졌는데, 그러고 있으니 내 방에 있던 2년이 생각났다.
나는 내가 그곳에 2년이나 있었는지 몰랐다. 처음에는 정말로 고통스러울 만큼 시간이 안 가다가, 중간부터는 가능하면 평생 이러고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해졌다. 아마 누나가 일하러 가라고 문을 부수고 들어오지 않았으면, 방 안에서 먹고 살 방법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때는 한 달에 얼마씩 벌면 그 방에서 나가지 않고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도 했다. 몇 살까지 산다고 가정해야 하는지도 생각했다. 오래 살지 않아야 했다. 그때 짠 계획 상으로는 그랬다.
방에 있는 게 얼마나 편안했는지 새삼 떠올랐다. 그러고 나니 내가 알게모르게 엄청 활동 중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방에 있었으면 위협을 당할 일도 없었겠지, 생각했다. 그러다 곧이어서 방에 있었으면 무대도 못 섰으리라는 게 떠올랐다.
“다행이다. 방에서 나와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방문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그때와 언제든 방문을 닫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방에 있을 때의 삶과 지금의 삶은 비교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일정을 확인했다. 내일 영국으로 가야 하는데, 그럼 그 전에 영화를 두 개는 더 봐야 일정이 맞았다.
그래서 바로 다음 영화를 꺼내러 가는데 너무 영화만 봐서 확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우와, 어지러.”
이거 회복 중인 거 맞나? 건강이 더 안 좋아지겠는데? 근데 마음이 편하면 몸도 좋아지는 거 아닌가? 그럼 계속 영화나 더 볼까…….
생각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영화를 틀고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강효준 대표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내 몰골을 보고 멈칫했다.
“밥 먹었어?”
“먹었죠.”
“언제.”
“집에서요.”
“너 어제 왔잖아?”
“그래요?”
하긴 영화 본 시간을 가늠해보니까 그쯤 됐겠다. 강효준이 황당해하며 말했다.
“야, 이게 쉬는 거냐?”
“아니, 보라고 사놓은 건데 다 봐야지.”
“템플 스테이를 보낼 걸 그랬나……. 연락은 왜 안 돼?”
“영화 보고 있으니까…….”
나는 말하며 주섬주섬 던져 놨던 핸드폰을 찾았다. 연락이 엄청 쌓여 있었다. 그러니까, 중간에 사고가 터져도 여러 번 터진 것처럼 엄청나게 많이.
“……뭔 일 났어요?”
“났지. 나한테는 안 좋은 일인데.”
“무슨 일이요?”
“클라루스 그린 레이. 빌보드 핫백 1위야, 지금.”
“우와!”
나는 어지러운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났다.
“근데 그걸 왜 지금 알려줘요?”
“하…….”
이건 내가 봐도 짜증나는 새끼였다. 히히.
강효준이 뭐라도 먹자고 먹을 걸 찾으러 간 후 뒤늦게 핸드폰을 보니 전부 그 얘기였다.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사이에, 내가 참여한 클라루스의 곡이 빌보드 핫백 1위에, 그것도 압도적인 기세와 성적으로 올라섰으니 다들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다들 연락이 안 돼서 당황한 것 같았지만 우리 멤버들만은 아니었다.
[막내♥ : 해원이 형 뭐 하는데 이렇게 핸드폰을 안 봐ㅠㅠ]
[안쭈 : 아마 영화 보고 있겠지?]
[거대자몽 : 쿨하네 빌보드 핫백 1위 곡에 참여했지만 우리 곡은 아니라 관심이 없는 거지]
[민조♥ : 나도 없는데!]
[효식♥ : 넌 좀 가져라 관심]
[막내♥ : 형 지금 영화 뭐 보려나??]
[새부기 :.]
[효식♥ : 형 힘들어도 읽고 있다는 시늉은 해줘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새부기 :.]
[막내♥ : 새벽이 형 야식 먹을까?]
[새부기 : 뭐 먹을래 일단 건너와 봐 프렌치토스트부터 시작하자]
[민조♥ : 나도! 그리고 상서로운 송아지는 쉬면서 명곡을 만들어 오거라!!!]
[효식♥ : 형한테 송아지가 뭐야 송아지 형이라고 해야지]
[민조♥ :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효식♥ : 아무튼 명곡은 만들어 주세요 형]
[알았어 기다려바바]
[새부기 : ㅇ]
[안쭈 : 부담 가지지는 말고 쉬는 김에 푹 쉬고 와]
[거대자몽 : 뭔 소리야 부담 가져 형]
나는 단톡방을 보며 실실 웃었다. 시끌시끌한 멤버들을 보고 있으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빌보드 핫백 1위.
“클라루스 형들 진짜 대단하다.”
“이래서 멤버 우리 회사로 데려오겠냐? 너무 잘 나가는데.”
강효준은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은 누구라도 알아볼 정도로 엄청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쩌느니 해도 결국 신인 때부터 으쌰으쌰하며 말 그대로 ‘함께’ 성장해왔으니까. 힘든 시절을 함께 한 사람은, 좋은 시절에 만난 사람과는 다른 어떤 애틋함이 있다. 좋은 시절, 서로 제일 좋은 모습을 알고 있는 사이도 좋지만, 힘든 시절 서로의 찌질함을 알고 있는 사이도 좋았다.
나는 클라루스 형들에게 연락도 돌리고, 광합성도 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갔다. 하얀색 관리가 잘 된 벤치가 있어서 거기 앉아 클라루스 형들 한 명, 한 명에게 연락을 돌렸다. 내가 문자를 하자마자 송다온이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받았더니 송다온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 해원아. 와. 진짜로. 와!
“아니, 형. 핫백 1위를 몇 번을 했는데 그렇게 흥분해요?”
-이게 몇 년 만에 낸 팀 앨범이잖아. 있잖아, 솔로로 아무리 잘 돼도 팀이 잘 되는 것만큼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아.
“정말요?”
-응? 아.
송다온은 무심코, 솔로와 팀 활동 중 자신이 어느 것에 더 몰두해 있는지를 내뱉었다. 송다온이 자기도 말하고 자기 속을 알았는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얼른 말했다.
“형은 정말로 클라루스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너도 그렇잖아. 너도 퍼스트라이트 엄청 좋아하지 않냐?
“그럼요. 목숨도 걸 수 있어요, 저는.”
-난 그 정도는 아니야. 내 목숨이 더 중요해.
송다온의 말에 나는 웃었다. 그리고 물었다.
“형, 클라루스. 유지할 수 있으면 하고 싶은 거죠?”
-응. 나는 그렇지. 진심이야, 나 혼자 꽉 찬 공연장을 보고 있는 거 당연히 좋지. 너무, 너무 좋아. 그런데 멤버들이랑 같이 무대에 있으면 느낌이 다르더라. 그냥, 달라.
나는 송다온이 볼 수도 없을 텐데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있었다.
콘서트, 그리고 최근에 팬미팅을 할 때도 느꼈다. 내 옆에 멤버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도망치지 않을 수 있는 거라는 생각.
연습을 하다가 서로 너무 지쳐서 감정 싸움이 일어나고, 동선 때문에 싸우고, 숙소 생활 때문에 싸우고 그러다가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만나서 활동하고, 어쩔 수 없이 같은 집으로 돌아오며 마음을 푼다.
이게 다 따로 살고, 팀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어려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오랜 시간 팀 활동을 하지 않고, 숙소 생활도 더 이상 하지 않는 클라루스 멤버들도 그럴 것이다.
나는 경쾌하게 축하를 건넸다.
“형, 진짜, 진짜 축하해요.”
-그으래, 고마워.
“형, 21세기 음악의 역사인 기분이 어때요?”
내 말에 송다온이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과장도 아닌데 웃겼나 보다.
-좋지.
“그렇죠?”
-고맙다. 우리 팀 활동…… 어쩌면 유종의 미 거두게 해줘서.
이번 앨범이 맺음이 아닐 거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가능할 거라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멤버들이 모두 원하기만 한다면, 보이드 엔터가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내가 말했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죠.”
-응?
“계약이란 게 원래, 도장 찍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른다더라고요. 제가 TRV 나올 때, 어른들이 말하는 게.”
-…….
“그러니까 도장 찍을 때까지는 형이 원하는 거 좀 더 알아볼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죄송해요, 제가 뭘 안다고.”
-아니야, 네 말 맞다. 그래, 그게 맞지.
송다온은 한동안 그렇게 중얼거렸고, 다시 한번 나는 축하를, 송다온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선배도 대대대선배에게 너무 나댄 것 아닌가, 좀 걱정이 됐다.
혼자 말하지 말았어야 했던 게 있나, 되짚고 있을 때. 상태창이 보였다.
[(GREEN RAY)의 S+급 히트가 확실시 됩니다]
[(GREEN RAY)가 빌보드 핫백 차트에서 1위(1주차)를 기록합니다]
오.
상태창이 지금 뜬 걸 보니 아마 내가 영화 보는 동안은 기다려준 것 같다. 스템이도 영화를 좋아하나 보다.
그러더니 뭔가 레벨업하는 것처럼 글자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L급 히트곡 제작 확률이 상승합니다]
[L급 히트곡 제작 확률 0.35%(+1.65%)]
와.
뭐야.
내가 생각하는데 상태창이 이어졌다.
[‘과거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 제작자 ‘장선영’]
아마 이건 보상이라고 뜨지 않는 걸 보니, 보상이 아닌 모양이다. 하긴 지난번에 신지운의 표정을 본 이후 과거의 미래는 내 멘탈을 위해 안 볼 거라고 다짐했었으니까.
그런데 저걸 보고 오면, 현재에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스파이가 거론했던 걸 보면 장선영 전 부대표의 그 영화가 중요한 문제인 모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