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82화
장선영 부대표에 대하여 내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아, 영화 쪽은 솔직히 그렇게까지는 관심이 없는데…….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2년의 빈 시간이 있어서 본 것뿐이다. 게다가 그게 영화계에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하니까 이렇게 스파이도 알려주고, 스템이도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벤치에 앉아서 혼자 멍하니 있는데 고기 냄새가 났다. 그때부터 배가 고팠기 때문에 나는 냉큼 고기를 먹으러 집으로 돌아갔다.
강효준 대표의 냉장고는 거의 고기와 샐러드밖에 없었다. 어차피 집에서 밥을 거의 먹지도 않고, 밖에서는 술을 많이 마시니까 집에서라도 건강 챙기는 시늉을 하려고 샐러드를 채워놓는 모양이었다.
고기를 마시며 강효준이 말했다.
“안 쉬고 일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더라. 쉬라니까 아예 일을 안 하네?”
“아, 형이 쉬라며어.”
“그래도 일할 줄 알았지, 네가 워낙 일중독자잖아.”
“진짜 형이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내가 본론을 물었다.
“근데 혹시 장선영 부대표님이 준비하던 영화 뭔지 알아요?”
“이번 영화? 뭐더라, 그 재난 블록버스터?”
“그거 말고요. 지금 촬영 들어간 거.”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고 물어봤는데 강효준이 신중하게 고민한 후 대꾸했다.
“전혀 모르겠는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회사에 관심이 없어요? 형 나중에 VMC 먹으면 형이 경영하지 말고 전문경영인한테 싹 다 맡겨요, 꼭.”
“당연하지.”
“장선영 부대표님이 준비하던 영화, 제작비 삭감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다더라고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스파이가.”
“그건 알지. 근데 왜 나한테 말 안 하고 너한테 먼저 말하냐고, 회사 일을. 브삼 직원이잖아?”
강효준이 투덜거리더니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더니 바로 어디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자 강효준이 말했다.
“아, 부대표님.”
장선영 전 부대표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나 보다. 하여튼 회사 돌아가는 건 잘 모르는데, 실행력 하나는 좋은 사람이다.
“요즘 어떠세요? 아. 네. 그 다른 게 아니라 제가 건너, 건너 제작비 삭감 때문에 걱정하신다고 들어서요. 아, 예. 무슨 영화예요, 그게?”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장선영 전 부대표는 열심히 설명하는 것 같았지만 강효준 대표는 역시 영화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집에 굳이 저렇게 좋은 영화관 장비를 갖춰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돈이 많아서 아무 데나 쓴 건가?
그렇게 전화하던 강효준이 말했다.
“아뇨, 그런 생각으로 전화한 건 아니고…… 아니, 뭐 그런 걸로 실망을 해요.”
“왜요?”
내가 물어보니까 강효준이 손을 뻗어 테이블 한쪽에 있던 펜을 들고 같이 둔 메모지에 적었다.
[곡 달래]
아하.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강효준은 전화를 이어갔다.
“알았어요, 주기적으로 연락드릴게. 끊어요.”
외할아버지의 오른팔이라 강효준과도 꽤 친한 모양이었다. 강효준이 말했다.
“‘가장 외로운 시간’이라는 영화라는데.”
“……어?”
아는 영화인데?
“그 막 시간 뒤죽박죽인 영화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러게요.”
아, 기억이 날 것도 같은데.
그래도 많은 게 잊힌 기억 속에서, 이름은 들어본 걸 보면 나에게 엄청 인상적인 영화였던 모양이다.
궁금하다, 궁금해.
나는 내가 곧 영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때 영국에서도 스케줄이 있어서 매니저랑 같이 갈 거니까, 가는 길에 과거의 미래를 확인하고 와야겠다, 아무래도.
* * *
“이상하네. 해원이 형 숙소 왜 안 와?”
민지호가 묻자 샐러드에 치즈를 갈아 넣던 한효석이 대꾸했다.
“숙소 안 오고 그냥 쉬기로 했잖아.”
“그래도 그 형 쉬는 거 싫어하잖아. 슬슬 쉬는 거 지겨워할 때가 됐는데.”
“해원이 형 쉬는 거 좋아하는 거 아니야? 2년 동안 쉬었잖아.”
그 말에 옆에서 샐러드를 기다리던 박선재가 핀잔했다.
“환자가 누워 있는 게 쉬는 건 아니지.”
“그런가. 선재야, 치즈 한 종류 더 넣을까.”
“이미 치즈가 샐러드보다 더 많은데?”
“풀이 많으면 민지호가 안 먹잖아.”
“하긴 그건 그래. 아, 우리 효식이 많이 내려놨다.”
“이렇게라도 주면 풀을 먹는 게 어디야.”
“민조도 어른이야, 이제.”
박선재가 말하자 민지호가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그럼, 그럼 어른이지.”
그러더니 핸드폰을 확인하고 말했다.
“해원이 형 핸드폰도 이틀에 한 번밖에 안 봐.”
“그러니까.”
한효석이 민지호의 샐러드 위에 두툼한 베이컨을 얹어주며 말을 이었다.
“핫백 1위 하고, 형 기사 엄청 많이 나더라.”
“작곡도 참여하고 컨셉도 해원이 형이 만든 거니까! 아, 나 비비드 좋았는데. 내 취향이었는데!”
그 말에 박선재도 한효석도 공감했다.
정해원이 VIVID를 처음 만들어 왔을 때, 멤버들은 첫 소절만 듣고도 ‘이건 민지호 취향이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었다. 그리고 그 컨셉은 오랜 시간 클라루스의 앨범을 기다리며 한없이 높아진 팬들의 기준을 충족시켰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민지호가 커피 테이블 위에 샐러드를 놓을 자리만 슥슥 치워 만들며 말했다.
“이쪽 숙소도 해원이 형 없으니까 바로 복잡해지네.”
그 말에 여기에서 정해원, 신지운과 같은 숙소를 쓰고 있는 박선재가 말했다.
“지운이 형 먹고 바로바로 치우라는 잔소리 안 들어서 신났어. 근데 나는 해원이 형 빨리 왔으면 좋겠다…….”
박선재가 그렇게 말하며 샐러드를 내려놓았다. 특별히 관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웬만하면 풀을 안 먹고 싶어 하는 민지호에게 먹이기 위한 친구들의 노력이었다. 민지호는 치즈와 베이컨 속에 숨어 있는 풀떼기를 슬쩍슬쩍 들춰봤다. 그 안에서 각종 초록색을 발견하고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친구들의 노력을 높이 사 먹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먹는 사이에 단톡방이 울렸다. 민지호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해원이 형 : 지금 공항이야]
[해원이 형 : 영국 갔다 올게!]
[해원이 형 : 사 올 거 있으면 여기 써놔]
* * *
공항에 도착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내가 공항에 오는 걸 알고 기자들이 있었다. 심지어 많았다.
아마 클라루스 컴백 이후, 그리고 빌보드 핫백에 차트인한 이후 회사에서 계속 내가 휴가 중이라고 했던지라, 인터뷰를 하려면 여기 와야겠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해원 씨, 클라루스 작곡…….”
“혹시 영국 출국도 클라루스와 관계가 있는 건가요?”
클라루스가 진짜 엄청 대단한 그룹이기는 한 게, 나에게 오는 모든 질문이 클라루스와 관련된 질문이었다.
아, 우리 팀이 이렇게 돼야 하는데……. 내가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그나저나 기자들이 있을지 몰라서 옷을 많이는 신경 못 썼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다. 누나가 하도 셀럽이야, 뭐야? 이러면서 꼴 보기 싫어해서, 옷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하, 나 진짜로 연예인인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나와 같이 영국으로 출발하는, 작년부터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매니저 송경균은 열정적으로 기자들에게 누나 가족을 보러 가는 거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강영호 매니저가 처음 일할 때와 비슷하게 열정적이었다. 어쩐지 강영호가 예뻐라 하더니.
그렇게 생각하며 우리는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탔다. 가서 노을이 잠깐 보고, 스케줄이 있어 그걸 할 예정이었다. 원래는 화보 촬영 하나만 있었는데, 내가 영국으로 간다고 한 이후에 인터뷰 스케줄이 하나 더 생겼다. 누나네 가족한테 자꾸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서 다 거절하기 힘들었다는 모양이었다.
겨우 비행기에 타서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송경균 매니저에게 말했다.
“형, 나 이제 잘 거예요.”
“어, 네. 그러세요.”
“저 진짜 깨워도 모르고 잘 거니까 놀라지 마세요.”
“……또요?”
지난번 삼라만상 상황을 보고 왔을 때, 송경균 매니저가 과거의 미래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크게 놀랐었다. 그때 나는 깨워도 안 일어나지, 생방송 스케줄은 다가오고 있지,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송경균 매니저에게는 끔찍하게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미리 말을 해놨다.
“저 수면제 먹고 잘 거라서, 진짜 푹 잘 거예요.”
“아, 그래요?”
대답은 하는데 그때 너무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셌는지 표정이 막 밝아지지는 않았다.
나도 과거의 미래를 보고 싶지 않다. 솔직히 그쪽 세상은 너무 엉망진창이라, 매 순간, 순간이 절망적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버티고 과로사할 때까지 살아남은 건 내가 그때 키우고 있던 걸그룹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직 자식이 있어본 적은 없지만, 생긴다면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다. 나보다 그 친구들이 잘되었으면 좋겠고, 나보다 훨씬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때의 그 친구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으니, 나는 어떻게든 그때 못 준 성공을 주고 싶었다.
나는 기획, 특히 걸그룹 쪽 기획은 전혀 모르지만 내가 곡을 만들어주거나, 혹은 그 멤버들에게 작곡을 알려줄 수는 있을 것 같다. 팀에 작곡이 가능한 멤버가 있다는 건, 내가 우리 팀을 봤을 때 확실한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 멤버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었다.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라는 말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게 되니까. 하고 싶은 컨셉을 좀 더 밀어붙일 수 있게 되고, 통과시켜 추진할 수 있다. 물론 직원들이 해주는 기획이 중요하지만, 멤버들의 의견, 하고 싶은 것들을 녹이는 건 팀이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컨셉을 밀어붙인다는 생각을 하니, VIVID를 꼭 하고 싶다고 주장하던 민지호가 떠올랐다. 그게 안 된다니까 엄청 실망했던 것도, 심지어 다른 팀에 준다고 해서 나한테 잠깐 삐졌던 것도 생각이 난다. 물론 치킨 사주니까 바로 풀렸지만.
영국에 갔다 올 때 비비드 같은 노래를 하나 더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행기가 정시에 인천 공항을 출발하고,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진 이후에 나는 송경균 매니저에게 말했다.
“형, 그럼 저 잘게요.”
“식사는요?”
“저는 괜찮아요.”
나는 말하고 뒤로 기대 눈을 감았다.
[‘과거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 제작자 ‘장선영’]
이게 맞나 싶다. 그래도 궁금하기도 하고, 스파이와 스템이가 둘 다 확인해 보는 게 어떠냐고 말 꺼낸 걸 무시하는 건 너어어무 찝찝하다. 어쩔 수 없지.
[영화 제작자 ‘장선영’에 대한 기억을 확인합니다]
[확인 중…….]
이것도 좀 익숙해졌다.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리고, 나는 과거의 미래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다시 눈을 뜬 곳은 용산의 영화관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영화관 건물에는 아직도 크리스마스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에스컬레이터 위쪽 광고판에 붙어 있는 거대한 포스터를 확인했다.
‘가장 외로운 시간’
여기 오니까 확실하게 기억이 났다.
저 영화가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흥행했었는지. 저건 국내에서만 흥행한 영화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