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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83화 (28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83화

‘가장 외로운 시간’의 포스터를 보다가 주머니를 뒤져보니 영수증 겸용 입장권이 있었다. 남은 시간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스물네 살 1월. 처음 영화 삼라만상을 확인했을 때에서부터 1년 전이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반년 전에 온 문자가 보였다.

[안주원11 : 나 영화 촬영한다 무섭네ㅜㅜ]

나는 안주원의 번호를 누르려고 손을 움직였다.

지금 저 영화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먼저, 안주원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그런데 다행히 이번에는 번호가 눌렸다. 안주원이 거의 바로 전화를 받았다.

-해원아?

“……어.”

전화가 걸릴 줄 몰랐다.

나는 입을 열었다.

“알겠어.”

-응?

“삼십 대에. 더 늦으면 사십 대에 같이 활동하자.”

-…….

그렇게 말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거 몇 마디 했다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왜 안심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기분이 그랬다.

그리고 안주원에게 다시 문자가 왔다.

[안주원11 : 고마워]

세 글자가.

고맙다고 할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장 안주원다운 대답이긴 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세 글자를 한동안 보다가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아이맥스관이었다. 솔직히 약간 설렌다.

상영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 광고 중이었다. 자리로 가서 앉자 곧 ‘가장 외로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영화에 집중했다.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올 영화, 제작자도 못 봤을 영화를 미리 보고 있었다.

영화는 ‘사람들과 다른 시간선을 살아가는 착한 남자’에 대한 판타지 영화였다. 남자는 목표를 가지고 시간 여행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최종적으로는 원하던 목표를 이루게 되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하는 만큼, 보고 나면 가슴에 뭉클한 따듯함이 남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기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시각적인 놀라움을 관객들에게 선물했다.

나는 안주원에게 미안하지만, 정말로 완벽하게 영화를 즐겼다. 거대한 화면에서 끊임없이 흘러가는 환상적인 장면들은 관객들이 영화관이라는 것을 잊고 환호하게 했다.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이 전부 약속을 지키고, 결국 그 약속의 이행이 주인공의 꿈을 이루게 해주는 결말에서는 관객들에게 인류애가 차오르게 했다.

영화관 안은 탄성과 웃음, 환호, 그리고 눈물이 가득했다. 좋은 영화였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하게 재미있었다.

아쉬운 부분이 아주, 아주 사소하지만 딱 하나 있는데, 이건 나중에 감독도 ‘아쉬웠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던 부분이었다.

주인공이 어렸을 때 좋아하던 음악을 완전히 다른 시간의 사람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있는데, 감독이 거기 무조건 써야 한다고 확신한 올드팝이 있었다. 그런데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인 이 그 음악의 사용료가 어마어마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영화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믿었던 제작자 장선영 VMC 부대표는 그 음원 사용료를 내줬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나왔을 때,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등장한 올드팝이 영 주인공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들려줬는데, 주인공 성향이 그런 음악을 좋아했을 것 같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감독은 나중에, 본인이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만든 캐릭터와 수정을 거듭하며 달라진 캐릭터 사이에 갭이 생겼는데, 처음 선곡한 곡을 밀고 나간 게 문제였다고 했다.

그나저나 이제는 이춘형이 무탈하게 VMC에서 승진하지 못하는 바람에 개싸움이 되어 장선영 부대표가 해고되었다.

언뜻 봐도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필요한 영화인데, 어쩌면 명작 하나가 완성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이건 진짜 꼭 막아야겠다. 그래도 내가 방에 틀어박혔던 2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게 영화 덕분인데, 입은 은혜가 있지…….

그렇게 영화관을 나왔을 때, 나는 과거의 미래에서 돌아왔다. 내가 깬 것을 발견한 송경균 매니저가 말했다.

“어,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네요?”

신기하게 시간은 딱 내가 잠든 만큼 지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지난번에도 그랬던 것 같다. 진짜로 그 시간에 살다 오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튼 나는 거기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빨리 맥북을 꺼내고, 바로 ‘그 장면’에 어울릴 만한, 그 주인공이 자기가 좋아하는 곡이라며 꺼내서 들려줄 만한 음악을 시도했다.

내가 깨자마자 일하니까 송경균 매니저가 혀를 찼다.

“어휴, 일 중독자.”

“아, 왜에. 지금 몇 시간을 잤는데.”

“자다 깨서 바로 스마트폰 보면 스마트폰 중독이고, 바로 술 마시면 알코올중독이잖아요. 자다 깨서 바로 일하는 사람은 일 중독자지.”

하.

좀 맞는 말이네…….

* * *

연습실에 누워 있던 민지호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민지호가 답이 없어서인지 정해원이 개인톡을 보냈다.

[해원이 형 : 민조야 나 공항 도착했어]

[해원이 형 : 잘살고 있지?]

정해원에게 답을 보내지 않았던 건 정해원이 영국으로 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해원이 멘탈 회복을 위해 휴식기에 들어간 이후, 민지호는 지금까지 퍼스트라이트가 얼마나 정해원에게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원래도 알고 있었는데, 그 생각 이상이었다.

차라리 정해원이 합류하기 전에는 여섯 명 모두가 국선아의 후유증 때문에 남을 신뢰하지 않고, 심지어는 멤버들조차 의지하지 않아서 각자 자기가 알아서 스케줄을 만들어 보려고 밖을 살폈었다.

그런데 정해원이 합류한 이후에는 정해원이 만들어준 곡으로 활동하고, 그 곡 안에서 생각하고, 빌드업하는 게 익숙해졌다. 퍼스트라이트는 계속해서 흥하고 있고, 그러므로 이제 밖으로 시선을 돌릴 이유가 현저히 줄었다.

그중에서도 민지호는 정해원이 메인 프로듀서로 단단히 자리 잡은 이후부터, 아예 외부 활동에 관한 관심이 사라졌다. 정해원이 만들어준 곡에 춤을 추는 게 좋았다. 팬들도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만큼 완벽한 게 있을까?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그런데 정해원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해 보니 이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게 당연하기 위해서는 정해원이 히트곡 메이커가 되어야 했다. 무대보다 곡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민지호는 무대를 사랑했고, 그곳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로지 무대 하나만 보고, 반응이 끔찍할 걸 알면서 다시 연예계에 발을 디뎠던 정해원의 마음을 알았다.

그랬던 정해원이 지금 충분히 무대를 즐기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같이 안무를 짜면서 밤을 새워도 피곤한 줄 모르던 그 형도 지금의 삶을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휴식을 싫어하는 정해원이 휴식을 취해야 했던 것처럼, 자신도 완벽한 길에서 한 걸음 벗어나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그냥 정해원이 끌고 가는 우마차에 올라탄 것과 다름없었다. 밭도 갈고 마차도 끌게 하다니. 이건 동물 학대였다. 아니, 송아지 학대였다!

민지호는 며칠째 좋아하는 곡을 틀어놓고 연습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회사에 있다가 민지호의 상태를 좀 확인해 달라는 황새벽의 연락을 받은 안주원이 연습실로 들어왔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잘 해주는 안주원이 민지호의 근처에 같이 드러누웠다.

“뭐 하고 있었어?”

“나 요즘 안무 만들고 있어. 형도 같이해.”

“음…… 효석이랑 하는 게 낫겠지, 아무래도?”

“아니. 나 형들이랑 다 할 거야.”

“다?”

“응. 나 안무 일곱 개 만들 거야. 선곡은 다 했고 이제 두 개 만들었어.”

그러더니 스피커와 연결한 핸드폰으로 달려갔다. 민지호가 곡을 바꿨다.

“이건 효석이랑 할 거.”

그리고 민지호가 바로 자기가 만든 안무를 보여주었다.

자리에 앉은 안주원은 정해원이 휴식기에 들어간 후, 내내 연습실에만 있던 민지호가 뭘 하고 있었는지 이제 알았다.

민지호는 멤버 한 명, 한 명과 어울리는 안무를 만들고 있었다. 자신을 포함한 일곱 명 모두의 춤을 살린 동작들이었다.

어려웠고, 안주원은 춤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안무를 만들어준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숙지할 자신이 있었다.

민지호가 두 번째 안무를 보여주기 위해, 음악을 바꾸러 가며 말했다.

“해원이 형 쉬는 동안, 난 이걸 하기로 했어. 방학 숙제처럼!”

“멋있다, 지호야. 진짜 엄청 멋있어.”

“당연히 멋있지! 한 개 더 만들면 회사에 말해서 프로젝트로 하자고 할 거야. 형들한테도 그때 말하려고 했지!”

민지호의 말에 안주원이 심각하게 감동한 표정으로 물었다.

“연습실에서 그냥 찍을 거야?”

“그러려고 그랬는데? 딴 데서 찍을까?”

“내가 연출해도 돼? 기획안 가져올게. 마음에 안 들면 싫다고 해도 돼.”

“형, 나 싫다는 말 엄청 잘하잖아! 일단 기획안을 가져와!”

민지호 역시 자기 계획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안주원의 반응에 더욱 흥분했다. 민지호가 두 번째 안무를 보여준 후 다시 처음 안주원이 들어올 때 틀어놨던 음악을 틀고 바닥에 누웠다.

안주원은 왜 하필 지금 민지호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컨텐츠를 만들고 있는지 이해했다. 정해원이 오기 전에 뭔가 해놓을 생각이었다. 정해원이 쉬어도 팀이 잘 돌아간다는 걸 보여주려고.

안주원도 다시 누우며 말했다.

“해원이가 너 엄청 부러워하잖아.”

“당연하지, 난 최고니까!”

“걔가 사람을 잘 보는구나.”

그 말에 민지호가 무슨 말인지 헷갈려서 잠깐 응? 하더니 곧 이해하고 히히 웃었다.

* * *

알찬 비행이었다.

공항에서부터 현지 기자를 만나 짧은 인터뷰를 만났는데, 영국이 매형의 나라인 것이 마음에 드냐고 했다. 칭찬을 해줘야 하는 타이밍인 것 같아서 지난번에 왔을 때 잘 쉬었고 누나가 여기서 미술을 한 걸 보면 현대미술계의 중심지인 것 같다,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허허. 영어 공부 좀 더 해야지.

영국 가는 비행기를 탈 거라는 톡 이후 내내 답이 없던 민지호에게 개인톡을 했더니, 톡 하나를 달랑 보냈다.

[민조♥ : 나 독립할 거야]

그러더니 내가 톡을 보내도 읽씹 했다.

또 영국 갔다고 뭐라고 할 줄 알았다. 차라리 뭐라고 하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저런 영문 모를 톡 하나 보내고 끝이니 더 신경이 쓰였다. 나는 황새벽에게 확인을 위해 톡을 했다.

[민조 요즘 별일 없지?]

그렇게 보냈더니 톡하기 귀찮아하는 황새벽이 바로 전화를 했다. 황새벽이 말했다.

-요즘 연습실에서 잘 안 나와.

“그건 원래도 그랬잖아.”

-더 안 나와. 안 그래도 지금 안주원 회사에 있다고 해서 연습실 가보라고 했어.

“너무 처박혀 있으면 좀 끌고 나오고 그래.”

-야, 우리 멤버들이 내 말을 듣냐? 넌 언제 내가 작업실에서 나오라고 했을 때 나온 적 있어?

“……하긴. 아무튼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해줘. 너도.”

-나 뭐.

“무리하지 말라고.”

-……내가?

“야, 리더 힘들잖아.”

맨날 아무것도 안 하는 듯이 말하는 황새벽이지만 리더라는 게, 정말 본인은 얻는 것 하나 없이 회사와 팀에게 봉사만 하는 자리였다.

잠깐 근황 이야기를 들은 후 전화를 끊었을 때, 마중 나온 누나 부부와 노을이가 보였다. 낯선 장소에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나는 세 사람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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