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84화 (28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84화

“아니, 쟤를 왜 기다려?”

정해원의 누나 정수연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정해원을 공항에서 기다리는 기자들을 힐끔 보았다.

물론 클라루스 곡에 연달아 참여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실감이 나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다. 특히 정해원의 매형이 영국인이라는 게 이곳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한 것 같았다.

멀찍이서 기다리고 있으니 정해원이 인터뷰를 마치고 조카에게 눈을 고정한 상태로 촐랑촐랑 달려왔다.

“노을아아.”

“야, 우린 안 보이냐?”

“누나 안녕, 매형 안녕.”

정해원이 양쪽에 건성으로 인사하더니 노을이한테 오자마자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 바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정수연은 동생이 저 브랜드 바지를 입고 공항 바닥에 앉는 것을 보며 재정 상태가 아주 여유로운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이렇게 잘되고 있는데도 드문드문 대중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던 때가 떠올랐다. 정수연은 그 생각들을 빨리 치워버리고 괜히 사진을 찍고 있는 남편을 타박했다.

“이따가 예쁜 데서 찍지, 공항에서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어?”

“최애가 셋이니까.”

“안 끼워줘도 되거든요.”

“아니야. 수연이가 내 찐 최애야. 나 연프.”

그렇게 한국어로 말하며 눈을 찡긋거렸다. 케이팝을 너무 많이 한다. 정해원은 그런 누나 부부를 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매니저는 숙소로 가고, 네 사람은 집으로 향했다. 노을이는 뒷좌석에 정해원과 앉아서 갔는데 평소보다 수다스러웠다.

“이거.”

“이거? 구름?”

“아니이, 이거.”

“새?”

“새!”

“이제 새도 알아? 와. 저거는?”

“저거!”

“응, 저거는 자동차.”

“자옹쨔.”

“우리 노을이 왜 이렇게 똑똑해? 누구 닮아서 이렇게 똑똑해?”

그렇게 이야기하며, 노을이가 스티커에 꽂혀 있다는 말에 선물로 사 온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이고 있었다. 노을이는 정해원의 물건에 스티커를 붙이다가 붙일 곳이 없으니 정해원의 얼굴에도 붙이기 시작했다.

얼굴로 먹고사는 앤데 저렇게 스티커를 붙여도 되나, 노을이한테 하지 말라고 할까 정수연은 생각했지만, 왠지 그런 걱정이 오글거려 그만두었다.

공항에서 집까지 가는 내내 둘이 신나게 놀더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을이가 달려가서 퍼스트라이트의 콘서트 DVD를 가져왔다.

“이거어.”

“노을이 삼촌 여기 나오는 거 알아? 진짜?”

노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아빠에게 틀어달라고 가져가서는 셋이 같이 콘서트 DVD를 보기 시작하는 거였다. 정해원은 잘 됐다고 콘서트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니터링하던 중간에 슬쩍 정수연 쪽을 보더니 말했다.

“누나, 나 작업하던 거 이어서 해야 할 것 같은데.”

“너 쉬러 왔다며.”

“이게 좀 급해.”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나려고 하니까 노을이가 붙잡아 앉혔다. 차마 고사리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앉은 정해원이 어떻게 하냐고 정수연을 보고 있었다. 정수연이 노을이를 안아 들었다.

“삼촌 일해야 해.”

“안 해.”

“해야지, 왜 안 해. 쟤도 먹고살아야지.”

그 말에 정해원이 흐흐 웃었다.

“너무 현실적인 거 아니냐고.”

“노을이도 결국 이 험한 세상을 헤쳐가야 하는데, 쓴맛도 알고 그래야지.”

“노을이가 쓴맛을 왜 알아. 몰라도 돼. 삼촌이 다 해줄 거야.”

“웃기고 있네. 가서 일이나 해.”

“으응.”

그러더니 콘서트에 집중한 앤서니 맥긴리의 등을 툭툭 치고 비워준 방으로 향했다.

* * *

나는 영화에 삽입할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83년생이라는 설정이었으므로, 83년생이 시간여행을 하면 들려줄 만한 음악이어야 했다.

나는 원래 시대 상관없이 음악을 다 많이 듣기 때문에, 맞춤한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뽑을 수 있었다. 그걸 집 근처를 산책하며 들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메모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건 사랑 노래여야 한다는 거였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랑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목소리였다. 누가 부르는가.

나는 시대를 상징하는 목소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감히 제안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목소리를 상정하고 곡을 만들었다.

그렇게 산책을 한 바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키보드를 꺼냈다.

노을이가 문 닫아놓는 걸 싫어해서, 방문을 열어놨더니 내가 키보드를 누르는 걸 보고 아장아장 방으로 들어왔다. 매형은 일이 있어 나갔고, 누나가 달려와서 노을이를 안아 들었다.

“삼촌 일하는 거 방해하면 안 돼.”

“아니야아.”

노을이가 확고하게 아니라고 해서 누나도 나도 웃었다. 누나가 노을이에게 물었다.

“방해 아니야?”

“응. 아니야.”

“와, 얘 좀 봐?”

나는 노을이에게 들려줄 겸 헤드셋을 껐다. 그리고 녹음도 할 겸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해언어를 흥얼거리면서.

이상하게 쉬웠다. 재미있게 본 영화의 주인공이 좋아하는 곡. 아마 그 곡의 설정이 너무 상세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런던에 도착해서 가사를 제외한 곡의 대부분의 구성을 완성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가사를 만들며 같이 편곡까지 휘리릭 해버렸다.

[가을 해가 지는 곳에서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며]

[바다 위로 보내는 마음이 들리길]

[나무 냄새 가득한 방에 우리가 머물던 기억]

[다시 해가 떠오를 즈음엔 당신에게 닿길]

[우산 없는 빗길도 두려움 없이 달려갈 수 있던]

[젖은 머리칼을 털어주며 우리는 그저 웃기만 했죠]

[서울의 새벽 별은 당신과 세어본 게 전부예요]

[해가 져도 외롭지 않았던 건 그날이 처음이어서]

[노을이 있는 모든 순간 당신과 있기를 바라게 해요.]

[가을 해가 지는 곳에서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며]

[바다 위로 보내는 마음이 들리길]

[나무 냄새 가득한 방에 우리 함께 머물던 기억]

[다시 해가 떠오를 즈음에 당신에게 닿길]

“아.”

편곡하다가 노을이와 누나가 방에 있는 걸 잊어버렸다. 내가 돌아보니 노을이는 이미 내 침대 위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누나도 아직 방에 있어서 내가 말했다.

“미안해. 잊어버렸어.”

“야, 아티스트가 작업에 집중한 걸 미안해하는 거 아니야.”

내가 이런 상황에서 사과하면, 나보다 선배인 예술가들은 전부 저렇게 말했다. 신기하다.

누나가 나한테 스케치 노트 한 장을 뜯어서 줬다.

“이거 팬들 보여줘.”

“오, 햇살이들이 노을이 궁금해했는데 보여줄 수 있겠다.”

창문 아래 책상에서 작업 중인 나와 침대에 앉아 내가 일하는 걸 보며 졸고 있는 노을이의 엄청 귀여운 뒷모습이었다.

나는 회사 허락을 받아 바로 스케치를 X버스에 올렸다. 함께 산책하며 이것저것 찍은 사진도 올렸다.

[해원 : (사진)(사진)(사진)]

[해원 : 노을이가 일하는 거 기다리고 있어서 누나가 그려줬어요ㅜㅜ 귀여워ㅜㅜ]

‘일’이라는 단어를 뺄 걸 그랬다. 햇살이들이 뭐라고 했다.

[↳또 일할 줄 알았어 내가]

[↳쉰다며? 너 휴식이 무슨 뜻인지 몰라……?]

[↳노을이 뒤통수 동그래ㅠㅠㅠㅠㅠㅠ 미치겠다ㅠㅠㅠㅠ]

[↳노을이랑 같이 찍은 사진 백 장 더 올리지 않으면 X버스에 벌금 내야한다던데???]

[↳↳맞아 나도 이거 들었어]

[↳↳해원아 이거 봐봐 큰일났어ㅠㅠㅠ]

나는 댓글을 보며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러다가 매니저가 스케줄을 위해 도착해서, 바로 누나와 노을이에게 인사하고 집을 나왔다.

“휴식 중인데 왜 이렇게 바쁘지.”

내가 혼잣말하니까 매니저가 어이없어하며 날 봤다.

“해원 씨가 일을 만드니까 바쁘죠!”

그건 맞는 말이다. 역시 소처럼 살 운명인가 보다. 내가 염소자리긴 한데…….

아무튼 나는 출발하기 직전에 강효준 대표에게 메일을 보내놨다. 메일을 보내자마자 확인하더니, 바로 들었는지 차로 이동하던 중에 답이 왔다.

[강 대표 : 이거 어쩌라고]

[장선영 부대표님 통해서 감독님한테 꽂아주시라고요]

[강 대표 : 이미 들려주라고 보냈어]

[강 대표 : 데모도 보내?]

[아뇨]

[강 대표 : 그럼 내가 어떻게 쓸지 찾아볼게 곡 좋네]

‘크리스마스에 나올 영화를 미리 보고 와서, 주인공이 들을 음악을 만들어봤다’는 설명을 안 했는데도 강효준은 메일에 부탁한 걸 다 해줬다.

곡을 다 만들고 나서, 나는 이걸 감독에게 보내지 않기로 했다. 곡을 만들던 중간에, 그 장면에 더 어울리는 곡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 * *

강효준은 다시 메일을 확인했다.

[음악을 다 만들고 보니까, 영화에 필요한 곡은 이게 아니었어요.

시대를 상징하는 음악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 주는 거더라고요. 첨부한 데모는 그냥 나중에 쓸 수 있으면 쓰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감독님한테 박유미 선배님의 ‘문라이즈’를 들려주세요. 자세한 건 물어보지 말고, 그냥 스파이가 했다고 생각해요, 형…….]

그래서 다짜고짜 감독에게 박유미의 문라이즈를 들려주라고 장선영 부대표 편에 부탁을 마쳤다.

그 후에는 안주원이 기획안을 작성해 가져온 민지호의 코레오그래피 프로젝트를 확인했다.

“이놈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일을 만들어 와.”

좀 쉬게 해주려고 해도 자기들이 스스로를 달달 볶고 있었다.

하지만 민지호가 가져온 건 거절할 수 없는 컨텐츠였다. 그 성장이 기특했다. 자기도 이 정도인데 부대표에게 보여주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기획안을 진행하기 위해 장소 섭외를 마칠 즈음, 장선영 부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 네. 부대표님.”

-효준아, 임 감독이 혹시 정해원 씨 시간여행 하냐고 묻던데?

“모르겠는데요. 물어볼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만약 이 세상에서 누군가가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면 그건 정해원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스파이가 알려줬거나…… 설마 스파이가 대본까지 미리 입수한 건 아닐 테지만……. 사실 이 상황은 스파이가 입수한 대본을 정해원이 미리 봤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장선영 부대표가 말을 이었다.

-임 감독 뒤집어지더라. 이거래. 자기도 몰랐대, 주인공이 박유미의 ‘문라이즈’를 좋아할 거라는 걸. 자기가 학생 때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였는데도…… 그 친구가 몇억 아꼈다. 복제권에 공연권까지 달라는 걸…… 임 감독이 이 영화, 진짜 잘 만들어보고 싶대. 그런 의미에서 미안한데.

강효준의 경험상 보통 이렇게 아는 사람이 ‘미안한데’라고 시작하면 이어지는 답은 하나였다. 돈.

-……너 투자 좀 안 할래? 이 영화 진짜 물건이야. 되는 영화야. 너 아니면 VMC에서 돈을 끌어다 줄 사람이 없어.

예상한 바로 그 답이었다.

강효준이 선뜻 답했다.

“제가 투자해 드리면요, 우리 회사 안주원이라는 애 한번 안 보실래요. 얘야말로 진짜 물건인데.”

정해원이 물어오는 건 웬만하면 해주는 게 맞았다. 정해원은 곡을 자기가 만들었다가, 원하는 게 아니라면서 다른 곡을 추천할 정도로 영화의 완성도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괜찮은 영화라면, 강효준은 한 발 담그는 정도로 끝내지 말고 아예 입수를 해버릴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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