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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85화 (285/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85화

장선영 전 VMC 부대표는 강효준 대표와 전화를 하며 손으로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안주원?”

-네.

영화계 외에는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은 장선영 부대표는 아이돌 쪽에는 사실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캐스팅에 관여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대부분 감독에게 무게를 실어주는 편이라 최소한으로만 참견하려 애썼다. 그래서 신인 배우 발굴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장선영 부대표는 이름을 검색해서 나오는 얼굴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이렇게 생긴 애를 어떻게 그렇게 꽁꽁 숨겨놨어?”

-……그거 주원이가 들으면 되게 섭섭해할 것 같은데요.

“몇 살이야?”

-스물두 살이요.

“학생 역도 하겠네.”

-그렇죠. 아직 앤데 뭐. 열아홉이나 스물둘이나.

“어이구? 너는 뭐 얼마나 먹었다고.”

장선영 부대표는 말하면서, 옆에 놨던 안경을 찾아 썼다. 그리고 ‘가장 외로운 시간’의 캐스팅 상황을 훑었다. 거기서 빈자리를 찾은 장선영 부대표가 말했다.

“작은 역이 하나 있긴 해. 그런데 많이 작아.”

-더 좋죠. 활동도 해야 하니까.

“알았어, 한번 보자. 근데 아무리 그래도 임 감독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당연하죠.

“그거 알면 됐고, 정해원 씨한테는 고맙다고 전해주고.”

-네, 영국에서 돌아오면 전해줄게요.

“그래……. 근데. 안주원 씨 진짜로 이렇게 생겼어?”

-실물이 훨씬 낫죠. 지금 바로 프로필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대화하던 장선영 부대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너 안 그러더니 왜 이렇게 능글거려? 점점 너희 외할아버지 닮아가?”

-그래요? 우리 강 회장님이 싫어하실 텐데.

“뭐 어떡해? 사실인데.”

장선영 부대표가 말하고 나서 별일이라고 생각하며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강효준이 바로 보내준 안주원의 프로필을 임 감독에게 보냈다. 탐미주의자인 임 감독이 이 얼굴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피지컬도 좋았다.

그렇게 프로필을 보낸 후, 장선영 부대표는 진이 빠진 상태로 안경을 다시 벗어 내려놓았다.

이춘형, 그 놈팡이가 갑자기 제 아버지와 손잡고 자신을 쫓아낼 때는 피눈물이 났었다. 그동안 회사에 안겨준 게 얼마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쫓겨난단 말인가.

그렇게 한동안 분노하고, 우울해했다. 그러다 한순간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사방이 막힌 굴에 빛이 새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박유미의 문라이즈.

임 감독은 시대를 상징하는 곡을 꼭 영화에 쓰고 싶다고 했다. 임 감독이 원한 곡은 현시점에서 뮤직비디오가 15억 뷰를 넘어가는, 2010년 발매 곡이었다.

한 레전드 밴드의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곡. 그 곡을 꼭 넣어야 한다고 설득하던 임 감독 말이, 이건 들으면 누구나 아는 곡이라고 했다. 떼창도 가능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50대 후반의 장선영 부대표에게는 낯선 곡이어서, 그 장면에 이 곡이 삽입되었을 때 자기 또래, 혹은 그 이상 연령대에서 설득력이 있을지 고민이었다.

그런데 박유미의 문라이즈는 아니었다.

장선영 부대표는 80년대 후반에 발매된 이 곡의 원곡을 알았다. 박유미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 가수인지도 알았다. 그러므로 이 곡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영화의 설득력을 월등히 높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임 감독이 바로 이 곡이었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곡 하나 바뀌는 덕에 제작비를 엄청나게 아꼈다. 심지어는 바로 이어서 투자자가 생기고, 비어 있던 캐스팅까지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장선영 부대표는 원래 복수는 절반으로 은혜는 두 배로 갚는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 익사할 뻔한 영화를 건져줬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한동안 생각하던 장선영 부대표는 정해원이 영국에 있다고 들었던 것을 떠올리고, 전화번호 하나를 찾았다. 장선영 부대표가 영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부터 알던 오랜 친구의 번호였다.

* * *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누나가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누나와 매형은 연애하던 때부터 수요일 밤은 영화 보는 날로 정했다. 노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꼭 영화를 보러 나갔고 지금은 집에서 본다고 했다.

오늘은 내가 있으니까 오래간만에 데이트하라고 등 떠밀어서 내보냈다. 누나가 모처럼 차려입으며 나한테 물었다.

“진짜 괜찮아?”

“그만 물어보고 나가, 나가.”

“여기까지 와서 계속 일만 하다 가는 것 같아서 그러지.”

“뭐가 일이야. 작곡도, 노을이랑 노는 것도 일 아니야.”

“그게 어떻게 일이 아니냐? 둘 다 중노동이지.”

그렇게 핀잔하면서도 나갈 준비를 마쳤더니 매형이 누나를 보고 감탄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누나와 손을 잡고 나갔다. 둘이 연애하는 건 별로 안 보고 싶은 장면이라서 빨리 나가라고 떠밀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나는 노을이와 노을이가 가지고 있는 인형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봤다. 누나는 이 시리즈를 너무 많이 봐서 소리도 듣기 싫다고 했지만 나는 처음이라서 스릴 넘치게 볼 수 있었다.

저녁에는 내가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못 끓이니까, 인스턴트 짜장면을 끓여서 완전히 식힌 후 누나가 해주고 간 주먹밥이랑 같이 먹었다. 노을이가 밥을 안 먹어서 걱정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인생 첫 인스턴트 짜장면을 잘 먹었다.

“잘 먹네. 아, 착하다. 맛있어?”

“응. 조아.”

“노을이 조아아?”

그렇게 혀가 짧아져서 말하는 나에게 더 달라고 손까지 내밀었다. 아기는 잘 때도 귀엽지만, 맛있게 먹을 때도 진짜 귀여운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숨바꼭질을 좀 하다 보니 노을이는 너무 열정적으로 놀아서인지 슬슬 졸려 했다. 안아달라고 팔을 뻗고 걸어와서 안아 들고 잠깐 돌아다녔더니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노을이가 세상 귀엽기는 하지만, 그 무한 체력에 맞춰서 노느라 체력을 다 쓴 나도 잠이 왔다. 덕분에 노을이를 침대에 내려주고 소파에서 영화를 잠깐 보다가, 중간에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그렇게 자다 보니까 집에 온 매형이 나를 깨웠다.

“방에 가서 자.”

눈을 뜬 나는 정지해 놨던 영화, 로체스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와, 육아가 힘들긴 힘들구나. 로체스터를 틀어놓고 자다니.”

“로체스터 명작이지.”

그러더니 보려고 옆에 와서 앉았다. 누나도 와서 앉으며 말했다.

“왜 이걸 틀어놔. 안 볼 수가 없잖아.”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또 영화를 본다. 둘 다 영화를 그만큼 좋아하기도 하지만, 로체스터가 그만큼 재미있기도 했다. 나도 잠깐을 푹 잤더니 개운해져서 영화를 봤다.

로체스터는 최고의 스파이 영화 시리즈 중 하나였다. 내가 박중운 팀장에게 보라고 추천해 줬더니 보고 감동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나도 참 좋아하는 영화지만 절대 눈물 나올 영화는 아닌데 도대체 어디서 눈물이 났는지 정말 모르겠다.

무엇보다 백미는 음악이었다. 음악감독, 맷 아스테어가 만들어낸 로체스터의 음반은 내 인생 최고의 명반 중 하나였다.

나도 언젠가 저런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푹 빠져 영화를 보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사생 문제 때문에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를 거의 받지 않았다.

그래서 받지 않았더니, 거의 바로 영어로 된 문자가 왔다.

영어는 비교적 쉬운 단어로 적혀 있었다. 요약하자면 런던에 있는 동안 한번 만나보자는 내용이었다.

[맷 아스테어]

그렇게 적혀 있었다.

“로체스터를 보고 있으니까 맷 아스테어한테 문자가 오네.”

나는 약간 잠이 덜 깨서 문자를 보고 중얼거렸고, 바로 매형이 영화를 정지했다. 누나가 날 보며 물었다.

“뭐?”

“응? 내가 뭐랬어?”

“맷 아스테어한테 문자 왔다고.”

“에이, 설마.”

그럴 리가…… 맷 아스테어 음악감독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본인에게 전화가 온다고?

나는 믿기지 않았지만 바로 번호를 눌러 전화를 했다.

말도 안 되지만, 상대는 정말로 맷 아스테어였다. 현존하는 가장 성공한 영화 음악가.

간단하게 인사하고 연락을 했는데 영어로 엄청 빠르게 말했다. 억양도 낯설고 나도 심하게 당황해서 문장을 통으로 못 알아들었지만 한 단어는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선영’.

“그니까…… 장선영 부대표님이 소개해 주셨다고요?”

내가 짧은 영어로 물어보니까 맷 아스테어가 대답했다.

-네, 그것도 그렇지만 안 그래도 이번에 제작 중인 로체스터 시리즈의 주제가를 제작할 팀을 섭외 중이었는데. 이미 폴 존스 씨와 정해원 씨 페어도 목록에 있었거든요. 겸사겸사 연락을 해봤어요.

퍼스트라이트와 콜라보했던 폴 존스의 이름이 나왔다. 내가 얼이 빠져서 네, 네, 대답만 하고 있을 때 맷 아스테어가 말을 이었다.

-해원 씨가 영국에 있을 때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전 지금 당장도 좋습니다.”

-잘됐네요. 그럼 지금 보죠.

당장 보자는 게 빈말이긴 했지만 지금 봐도 상관은 없다. 나는 좀 더 이야기를 하다가 들떠서 말했다.

“폴 존스에게 고마워해야겠네요. 덕분에 고려를 해주셨다니.”

-응? 반대죠. 정해원 씨와 팀 작업을 할 가수로 폴 존스 씨가 나온 건데.

맷 아스테어쯤 되는 거장도 하얀 거짓말을 하는구나, 싶었다.

바로 차를 보내주겠다고 해서, 매형이 서둘러 주소를 불러줬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후에 우리는 모두 소파에 늘어졌다.

누나가 나에게 말했다.

“난 네가 잘나가는 게, 지금 막 실감이 됐어.”

“솔직히 나도…….”

나도 공감하자 매형이 정색했다.

“아니. 나는 늘 느껴.”

“와, 매형 지금 진짜 전화로 들었으면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진지하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며, 진이 빠져서 우리는 셋이 흐흐 웃었다.

그리고 진짜로 곧 맷 아스테어가 보낸 차가 왔다. 나는 늦은 밤에, 맷 아스테어의 단골 술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신기한 밤이었다.

* * *

공항으로 떠나는 날, 나는 집 앞에서 누나와 인사를 했다. 매형은 노을이 때문에 못 나와서 누나만 배웅을 나왔다.

노을이가 잘 때 몰래 나갔어야 하는데, 비행기 시간 때문에 깨어 있을 때 나가는 바람에 울음이 터졌다.

매형은 집에서 쩔쩔매고 있을 텐데, 나와 누나는 내가 못 가게 내 캐리어에 엎드려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우는 노을이의 영상을 보며 웃었다. 내가 말했다.

“와, 어른들 못 됐다. 애는 서러운데 어른들은 다 웃고 있어.”

“마음은 아픈데, 너무 귀엽지 않니.”

솔직히 귀엽긴 귀여웠다. 노을이는 서럽게 우는데 어른 셋이 다 카메라부터 찾고 있었으니까.

“진짜 어떻게 노을이 놓고 가지.”

“데려가. 한 달만 키워줘. 노을이가 삼촌 너무 좋아하잖아.”

그렇게 말하는 게 아예 농담 같지는 않은 걸 보니까 육아가 힘들긴 힘든 모양이었다. 물론 진짜 데려간다고 하면 못 데려가게 하겠지만.

누나는 언제나처럼 나와 매니저가 차에 타자마자 쿨하게 손을 흔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차에서 이번에 영국에서 찍은 사진들을 훑었다.

누나도 매형도 일정을 최대한 빼고 나랑 노을이랑 같이 여기저기 영국 여행을 했다. 매형도 내 사진을 매일 몇백 장씩 찍어줬고, 나도 거기에는 못 미치지만 누나네 가족사진을 엄청나게 찍어줬다.

그리고 맷 아스테어와 이야기한 것도 재미있었다. 솔직히 너무 떨려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기는 하는데…….

나는 런던에서 바로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탔다. 뉴욕에 도착하면 폴 존스를 만나기로 했는데, 맷 아스테어가 로체스터 주제가 관련 진행 상황은 내가 직접 전해줘도 된다고 했다. 폴 존스도 워낙 바쁜 사람이라,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휴가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나는 걱정할 시간도 없이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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