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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86화 (286/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86화

뉴욕에 도착한 김에 폴 존스를 만나서 한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원래도 할 얘기가 많았는데, 내가 맷 아스테어와 만나고 온 덕에 할 얘기가 몇 배로 늘어났다. 결국 우리는 밥을 먹고, 호텔로 와서 폴 존스네 팀과 함께 영화 사운드트랙 이야기를 하며 밤을 새웠다.

그래도 같이 작업도 하고 그랬더니 폴 존스와도 폴 존스의 팀과도 친해졌다.

폴 존스는 다행히 로체스터 주제가를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 이상으로 기뻐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앉았다가 일어서서 돌아다녔다가 다시 앉는 것을 반복했다.

“로체스터 주제가를 부르다니.”

“아직 확정된 거 아니라니까?”

“확정이지, 네가 만들 건데!”

폴 존스가 상기된 얼굴로 말하는 게 아주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좋은 부담감이었다.

폴 존스가 말을 이었다.

“내가 당장 은퇴하게 돼도 로체스터의 주제가가 대신 내 이름을 알리고 다닐걸.”

“은퇴할 거 아니잖아?”

나는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에 나는 은퇴라는 걸 할 생각이 없다. 프리랜서의 장점이 뭔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나에게 가장 큰 리턴은 오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다.

내 말에 폴 존스가 웃었다.

“예를 들자는 거지.”

“우리 사고 치지 말고, 오래가자.”

“사고 안 친다니까.”

말은 저렇게 해도 폴 존스는 파티를 너무 좋아한다. 뭐만 하면 축하해야 한다고 그러고, 한국에 있는 나한테까지 올 수 있냐고 물어보곤 했다. 내가 일하러 올 때나 여기까지 오는 거지, 맨날 올 수 있는 줄 아나……. 물론 미국 스케줄이 많으면 자주 오겠지만.

어찌 됐든 그래도 여전히 음악이 최우선인 녀석이기는 했다. 밤샘하며 확정되지도 않은 로체스터 주제가 이야기했던 걸 보면.

폴 존스를 만나는 것 외에도 이상할 정도로 만날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나와 런던, 뉴욕 일정을 계속 함께한 송경균 매니저는 거의 기절 직전으로 비행기에 탔다.

“형, 진짜 죄송해요.”

내가 좌석에 거의 파묻혀서 말하니까, 뉴욕에 도착해서 3박 5일 동안 같이 끌려다닌 송경균 매니저가 대답했다.

“슈스의 삶 경험하고 좋죠, 뭐.”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저도요…….”

“형, 휴가가 원래 이렇게 힘든 거예요?”

“해원 씨가 망친 거예요…….”

“망치다니, 너무하네…….”

우리는 반쯤 잠결에 그런 대화를 나눴고,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잠들었다.

그렇게 자고 나는 3주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생각해 보니까 3주 내내 엄청 바쁘기는 했는데, 한편으로는 3주 내내 부정적인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우울하다든지, 외롭다든지, 혹은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두려움 같은 것들이 없었다.

특히 악몽은 단 하루도 꾸지 않았다. 오히려 3주 내내 바빴기 때문에 더더욱 그게 가능했던 것 같다. 바빴지만, 대중의 평가와는 떨어져 있었던 3주. 나는 늘 대중의 애정에 목말라하는 사람이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시간이 잠깐 필요했던 것 같다. 이런 결단을 내려준 걸 생각해 보니, 새삼 괜찮은 회사다.

멤버들이 다 회사에 있어서 숙소가 비어 있어, 나는 짐을 풀고 긴 비행의 여독을 샤워로 씻어냈다. 그 후에 좀 쉬다가 편한 옷을 입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3주 만에 만나는 멤버들은 다들 나를 반가워해 줬다. 나는 그런 멤버들과 적당히 인사를 하며 민지호를 찾았다.

“민조 어디 있어?”

그러니까 구석에서 자던 민지호가 베개로 쓰던 쿠션을 들고 내 쪽으로 왔다. 엄청 피곤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뜬금없이 독립했다고 그래서 신경 쓰였는데 그럴 필요 없었다. 민지호는 반쯤 잠든 상태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떠들기 시작했다.

“형, 들었어? 나 멤버들이랑 코레오그래피 영상 찍을 거다? 형 것까지 안무 일곱 개 만들어써……. 그리고 주원이 형은 오디션 봤고, 지운이 형은 광고를 찍었고, 선재랑 효식이는 작곡했고, 새부기는 맨날 맛있는 거 만들어줬어…….”

내가 남 말할 때는 아니지만, 다들 엄청 바빴다, 참.

민지호는 졸려서 비틀비틀하면서도 날 연습실 모니터 앞에 끌고 갔다.

“형, 이거 빨리 외워야 돼……. 촬영도 해야 한단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

나는 피곤한 상태로 적당히 대답했지만, 민지호가 만들어놓은 안무를 틀었을 때는 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와…… 미쳤네.”

민지호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재능이 있었으니까.

민지호가 만든 안무는 동작 자체도 세련된 느낌이었지만, 거기서 주는 포인트들이 안무에 독특한 매력을 부여했다. 팔다리, 몸뿐만 아니라 머리의 위치와 시선 같은 작은 차이들이 그랬다.

몸으로 비트를, 시선으로 멜로디를 느끼게 하는 안무들. 어떤 것들은 시간으로 만들어지지만 어떤 것들은 재능에서만 태어난다.

민지호는 두 가지를 다 얻었다. 재능도 있는데, 춤에 시간을 들인 만큼 노련해지기까지 했다.

민지호가 내 반응을 보더니, 누가 봐도 안무에 반한 걸 알아보고 그대로 연습실 바닥에 누웠다. 그러더니 만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숙제 끝!”

그렇게 말하고 그대로 모로 몸을 돌려 눕더니 그냥 잠을 청했다. 순식간에 잠들어버린 민지호를 보며 안주원이 나에게 말했다.

“지호 진짜 고생했어.”

“하긴, 안무를 일곱 개를 짠 거잖아.”

“내 말이.”

내 안무를 보고 나서 다른 여섯 명의 안무들도 보니까, 하나, 하나가 다 멤버들을 생각해서 짠 안무들이란 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민지호가 계속 연습실에만 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이렇게 바쁘게 지냈는 줄 몰랐다.

“아, 민조 어른 되지 마.”

내가 말했지만 민지호는 잠들어서 대답이 없었다. 하기야, 3주 내내 안무만 만들었으니 기절해서 자는 게 정상이긴 하다. 내가 생각하는데 한효석이 말했다.

“형한테 보여줄 안무 제일 걱정했어요, 민지호.”

“왜?”

“쟤 형 춤 좋아하잖아요.”

“…….”

“형이 계속해서 춤을 좋아하길 바라면서 만들었을 거예요, 안무.”

“…….아, 나 진짜.”

울컥하네. 짜증 나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민지호가 만들어준 안무를, 민지호의 선물을 다시 돌려 봤다. 노래도 내가 특히 부르기 좋은 노래가 있듯이, 춤도 나에게 맞는 춤이 있다. 민지호가 준 안무는 금방 외워졌고, 나는 그 춤 동작에서 희열을 느꼈다.

* * *

그 이후에 나는 멤버들과 모처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연습실 바닥에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내가 사 온 간식들이 담긴 캐리어를 열었다. 박선재가 캐리어 안을 사진으로 찍으며 말했다.

“형, 과자 투어 하러 간 거야?”

“그건 아닌데 그냥…… 어차피 금방 다 먹잖아.”

“하긴.”

박선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캐리어 안에서 먹을 걸 골랐다. 먹을 걸로 꽉 채워온 캐리어를 연습실 한 가운데다 펼쳐 놓고 우리는 계속 먹고, 이야기를 했다. 3주 동안 안 만났더니 할 말이 엄청 많았다. 그리고 신기하게 데뷔해서 어느 정도 연차가 차니까, 요즘 들어 슬슬 국선아 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같이 연습생 생활을 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그때의 이야기가 잘라내 버릴 수 없는 중요한 추억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야기하다가 로체스터 주제가 관련 상의를 위해서 대표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까 내내 바쁘던 강효준 대표가 의자에 뒤로 기대서 얼굴에 손수건을 덮고 자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나갔다가 큰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형! 형! 큰일 났어요! 형!”

“어?”

강효준 대표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가 내가 장난친 걸 알고 욕을 하며 다시 앉았다.

“너는 피곤하고 지친 형을 놀리고 싶냐.”

“누가 회사에서 자요, 그러니까.”

“하……. 뭐 왜 왔어.”

“왜 왔냐니, 소속 아티스트가 3주를 쉬고 간만에 회사를 왔는데 반가워해야지.”

“안 반갑다, 진상아. 내가 영국이랑 미국 가서 스케줄 하고 오랬지, 만들어 오랬냐? 일을 몇 개를 만들어 온 거야.”

“아니, 맷 아스테어를 만났는데 그럼 어떡해요. 로체스터 시리즈 주제가를 할 수도 있는데 그럼 거절해요?”

“그건 아니지…….”

그러더니 정말로 진지하게 나를 보며 물었다.

“해원아, 내가 진짜로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안 그래도 무섭게 생긴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니까 좀 쫄렸다. 나는 얼떨결에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뭐…… 뭔데요?”

“너 혹시.”

“네.”

“시간 여행하니?”

“……네?”

“그게 아니면 스파이가 대본을 입수해서 읽어봤어?”

음. 충분히 할만한 고민이다. 후자는.

전자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꿈꿨나. 물론 그쪽이 사실이긴 한데.

“뭐, 정확히는 말할 수 없지만 스파이가 알려줬다니까요?”

“스파이…… 아니, 박중운 팀장한테 내가 ‘가장 외로운 시간’이라는 영화 제작중인 거 아냐고 물어보니까 못 들어봤다더라.”

“……비밀로 하라고 했어요.”

아니, 뭐. 그렇게 자세히 알려고 그러지.

어쨌든 그래도 스파이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것도 보통 스파이가 아니라 능력 있는 스파이가 존재하는 덕에, 무엇이든 알아내지 못해야 맞는 것을 알아내면 전부 스파이를 탓할 수 있다. 내 말에 강효준 대표는 뭔가 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걸로 하자.”

“네, 그런 거라니까요. 궁금해하지 마요. 알아서 좋을 게 없어요. 공범 돼요.”

“범죄 저지르지 마. 수습하기 힘들어.”

“수습은 해줄 거예요?”

“응, 네가 싫어해도 할 거야.”

“싫어하는 건 뭐예요?”

“네가 불법을 저지르고 자수하고 싶어 해도, 덮을 거라고.”

그건 좀 섬뜩하다. 내가 지금까지 본 강효준 대표는 A&R의 성향이 강했는데, 지금 처음으로 사업가 집안의 재벌 3세기는 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불법 저지르지 말라는 말보다 이게 더 무서웠다. 어휴, 똑바로 살아야지. 어차피 그럴 거지만.

그렇게 생각하는데 강효준 대표가 말을 이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 이 영화에 대해서 좀 알아?”

“네. 제 생각에는 꽤 알아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솔직히 털어놨다.

“하지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야만 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임 감독님이 원하는 대로 제작비 주면?”

“그럼 정말로 크게 터질 거예요. 이 영화.”

“이 영화, 너무 복잡해서 관객들이 꺼릴 거라는 평이 있던데.”

“임 감독님이 관객들을 이해시킬 거예요.”

나는 안다. 확실하게. 내 눈으로 보고 왔으니까. 이 영화는 거물이다.

내 확신에 강효준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좋아. 그럼 임 감독님이 원하는 대로 제작비 내줄게, 내가.”

“어, 그건 좀 부담스러운데.”

“투자는 내가 하는 거야. 망해도 네 탓 안 해.”

하긴 그만큼 먹는데,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내가 생각하는데 강효준이 서류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그런데 이건 네가 봐라.”

“……어?”

캐스팅 관련 자료였다.

[윤재한 아역 : 안주원]

우와.

X발.

“안주원이 주인공 아역에 캐스팅 됐어요?”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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