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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88화 (28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88화

휴가는 내가 더 이상 못 쉬겠다고 반납해서, 회사와 타협해 이틀 더 쉬다가 작업실로 들어왔다.

모처럼 작업실 문을 열었더니 안에 있던 양이형이 일어났다. 평소에는 내가 들어와도 돌아도 안 보던 사람이 일어나서 반겨줘서 나는 뒤로 물러섰다.

“왜 이래, 소름 끼치게.”

“너 진짜 로체스터 주제가, 폴 존스랑 작업하냐?”

“아마? 근데 곡이 좋아야지.”

“야, 빨리 앉아. 작업해.”

로체스터 주제가가 정말 대단한 일이긴 한 모양이다. 양이형이 일어나서 맞아주는 건 진짜 엄청나게 특별할 때만 가능하니까.

나는 자리에 앉아 바로 모니터를 켰다.

전달받은 제목은 ‘VESPER’였다. 저녁, 저녁 기도. 제목에서 맷 아스테어 음악 감독이 설명해준, 그리고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로체스터 시리즈의 분위기를 합치면 대충 어떤 곡을 만들어야 할지는 감이 잡혔다.

문제는 잘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다. 좋은 음악을 잘, 화제성 있게.

곡이 나온 후에 거기에 맞게 오프닝 시퀀스를 제작하게 될 거라고 들었다. 살다 보면 무조건 잘 해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그게 내 생각에는 지금이었다.

어쨌든 기한이 좀 있으니, 나는 우선 이번 8월에 나올 우리 앨범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이거는 그럼 9월부터 작업 시작하자.”

내가 파일만 만들어서 정리해놓고 정규 앨범 작업을 시작하니까 양이형이 옆에서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넌 어떻게 그게 집중이 되냐?”

“뭐가?”

“이렇게 초대형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일이 되냐고.”

“정규가 더 급하잖아?”

“그래도 신경이 쓰이잖아, 독한 새끼야.”

“뭐가 독해. 딴소리 하지 말고 빨리 일하자. 앉아, 형.”

나는 재촉하고 정규 앨범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월드컵 기간은 우리에게 앨범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일만 한 건 아니고, 경기가 있을 때는 연습실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축구를 봤다. 엔터 회사라 어쩔 수 없이 경기 시간에도 회사에 있던 직원들도 와서 같이 축구를 보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명씩 민지호와 코레오그래피 영상을 촬영했다. 영상의 편집은 안주원이 직접 했다. 본인이 영상 편집부터 필요한 모든 디자인까지 다 하겠다고 나섰다.

결과물은 우리 마음에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직후부터, 준비한 것들이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 * *

[지금 뜬 탐테 뭐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뭐 주나봐ㅠㅠㅠ]

[↳매일???]

[↳탐테가 근데 죄다 애들 생일시네]

[↳멤버별로 뭐 올라오나봐ㅠㅠㅠ]

[↳↳보이드 좋은 의미로 X나 변태같다ㄷㄷ]

그리고 월요일 오후 3시 12분. 황새벽과 민지호의 코래오그래피 영상이 올라왔다.

[떴다]

[???미친]

[민지호 코래오그래피????]

[↳지호가 안무 영상 일곱 개 만들었나본데]

[↳↳???]

[↳↳ㅠㅠㅠㅠ]

[↳↳아니 지호야ㅠㅠㅠㅠ]

[이걸 멤버별로 다 준다고?]

[새부기 X잘이네]

[민지호 ㄹㅇ미친놈이네 춤을 어떻게 저렇게 추지]

[퍼라 새벽이 춤멤이야??? 프리해보이는데 개잘추네]

[↳아니 보컬멤]

[↳도입부 장인이야]

[↳↳근데 춤 왜 이렇게 잘 춰ㄷㄷ]

[새벽이가 춤을 잘 추기도 하는데 지호가 안무를 진짜 잘 만들어준 듯 그냥 새벽이가 가진 장점 다 살려서 만들어줬어…….]

[영상 편집에 주원이라고 쓰여있는데????]

[↳주원이가 편집했나봐ㅠㅠㅠㅠㅠ]

둘째날로 넘어가는 12시 28분 정해원의 영상, 그 후로 이어서 매일 멤버들의 안무 영상이 생일시에 올라왔다.

[퍼라 지호가 안무 일곱 개 만들고 주원이 전부 편집했나봐]

[↳와ㅠㅠㅠㅠㅠ]

[↳퍼라팬들 개부럽다 진심…….]

[보면서 어떻게 춤멤도 아닌데 이렇게 잘 추지 하다가 춤멤들 거 보면 진짜 춤멤은 춤멤이더라]

[월드컵 기간에 팬들 보여준다고 저런 프로젝트를 시도한 것도 부럽고 저걸 해준 회사도 X나 부럽고 동생이 들고 왔다고 자기가 영상편집해준 형이 있는 것도 부러워…….]

[↳그리고 서바 그룹이라 멤버 하나하나 개인기 좋은 것도…….]

[나 해원이 춤멤인 거 진짜 몰랐어 작곡멤으로만 알았는데 생각해보니까 포지션이 작곡멤이 아니겠구나…….]

[↳민조가 원래 해원이 형 작곡하느라 춤 출 시간 모자란 거 제일 안타까워하는 동생이라ㅠㅠ]

[퍼라 지호 어제 라방하면서 해원이가 부담이 너무 크니까 편하게 쉬어도 다 일이 진행될 거라는 거 보여주고 싶었대]

[↳ㅠㅠㅠㅠㅠ]

[↳퍼라 영원하자ㅠㅠㅠㅠ]

[퍼라가 확실히 우여곡절이 많았어서 팬들 눈물 뽑는 포인트가 있어ㅠㅠㅠ]

* * *

안무 영상이 나오는 사이에, 우리는 계속해서 회의를 거듭했다.

비주얼 디렉터 정선미 팀장은 보통 A&R팀, 우리 멤버들과 많은 회의에 회의를 진행했다. 내가 곡을 만들기 전에도, 만든 이후에도 어마어마한 자료를 준비해 앨범 진행의 가장 큰 방향을 잡아주었다.

기존에도 TRV의 앨범 제작 전반을 맡고 있었던 만큼, 비주얼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앨범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을 누구보다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처음 강효준 대표가 엔터 회사를 차리고 앨범 제작 부분에 대해 얼타고 있을 때, 삐걱거리는 부분마다 나타나 해결사 역할을 한 것은 정선미 팀장이었다.

보이드 엔터는 같은 규모의 여타 엔터 회사에 ‘비해서는’ 직원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멀티플레이를 해나가거나, 한 분야의 담당 직원이 퇴사하면 커버할 직원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드 엔터에서 퇴사했을 때 가장 크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정선미 팀장이었다.

평소 정선미 팀장이 가져오는 컨셉들은 타이틀곡과 아주 밀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난히 앨범의 한 곡에 꽂혀서, 그 컨셉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오늘 영화 촬영 마치고 뒤늦게 도착한 안주원이 조용히 들어와서 내 뒷자리로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물었다.

“어디까지 했어?”

“다크히어로 해야 한다고.”

“아.”

정선미 팀장이 마음에 들어한 수록곡은 다크히어로에 관한 곡이었다.

그냥 요즘 자기 일에 열정적인 스파이를 보면서, 그런 곡을 하나 정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극도로 자기만족형인 히어로에 관한 이야기였다. 스파이가 감정적으로 반응할까 봐 형을 보고 만들었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타이틀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으로 정해져 있어서, 앨범 컨셉도 타이틀 위주로 맞추게 될 거라고 우리 모두 생각했다.

하지만 정선미 팀장은 수록곡인 다크히어로에 꽂혔고, 거기 맞춰서 정규 컨셉을 만들어 가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부대표가 찝찝해하며 말했다.

“우리 애들 귀여워서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이제 그 귀여운 소년의 이미지를 벗어날 때라고 생각해요.”

부대표도 정선미 팀장도 헛소리를 하는데, 멤버들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우리 멤버들이야 자기 세뇌에 빠졌다 쳐도, 이 사람들은 또 왜 이러지.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아무튼 정선미 팀장의 주장도 논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직전 정규 앨범 ‘극야’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랬다. 정규 1집 앨범 ‘백야’, 그리고 정규 2집 앨범 ‘극야’. 밤이 계속되는 시간과 낮이 계속되는 시간의 앨범의 다음으로 올 것에 대한 정선미 팀장의 주장은 이랬다.

“정규 2집 앨범이 극야잖아요. 이 밤에서 이어지는 내용인 다크히어로가 퍼스트라이트 정규 3집의 전체 컨셉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 말에 내가 만든 타이틀대로, ‘영원’을 주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지운이 말했다.

“하지만 1집과의 연계도 있어야 하잖아요. 거기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백야와 극야라는 게 둘 다 지속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낮이든 밤이든. 그러니까 영원으로 가는 게 명료할 것 같은데.”

치열했다. 평소에도 신지운은 태클을 잘 거는 타입이어서, 우리 회사 실권자의 말에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반대로 평소 회의에서 목소리가 크던 민지호는 조용히 앉아서 다과로 준비해놓은 과자를 집어 들었다. 민지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을 때는 목청 좋게 나서지만, 원하는 게 없을 때는 ‘딴 사람이 알아서 해줬으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음악에 있어서는 의견이 강하지만 앨범 컨셉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의견이 약했다.

그래서 무엇이든 쉽게 넘어가지 않는 신지운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나는 최대한 의견을 내지 않았다. 나도 음악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잘 모르기도 하고, 모르는 것에 비해서 ‘작곡가’라서 의견에 무게가 실릴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당연하게 앨범 커버를 도맡고 있는 안주원을 돌아보았다.

“넌?”

“나는 둘 다 했으면 좋겠지.”

안주원은 싸우는 걸 싫어하는 놈이라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둘 다가 솔직히 돈은 안 아끼는 이 회사에서 한효석은 처연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타이틀곡이 원래부터 더 취향이었고, 박선재는 다크히어로 쪽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다 보니 원래 은근 잘 싸우는 둘도 티격태격했다. 둘 다 논리는 신지운, 정선미 팀장과 동일했다. 정규 2집에서 연계되는 분위기로는 다크히어로가 어울린다는 의견과 1집과의 연계도 신경 써야 한다는 의견.

남은 건 황새벽이었는데,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는 다크히어로가 1집이랑 연계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정규 1집에 투 빌런즈가 있었잖아.”

“어!”

자기 유닛 얘기가 나오자마자 민지호가 벌떡 일어섰다.

“그럼 나 다크히어로!”

그러자 옆에서 신지운이 핀잔했다.

“지 얘기 나오니까 좋아하네.”

“형도 형 얘기 좋아하잖아!”

“너만큼은 안 좋아해.”

“왜! 좋아해 봐!”

자기 얘기 나오는 걸 민지호만 좋아하는 게 아닌 게, 앨범도 타이틀곡 분위기로 가야 한다던 한효석도 투 빌런즈 이야기가 나오자 슬쩍 말했다.

“하긴 연계가 있네.”

그 말에 박선재가 옆에서 놀렸다.

“너도 당당하게 내 얘기 나오니까 좋다고 해.”

“체면이 있지.”

“민조 봐.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그건 맞네.”

“나 왜!”

이제 셋이 또 티격태격하는 걸 뒤로 하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안주원이 나에게 물었다.

“해원아, 너는?”

“솔직히…… 타이틀곡을 주된 컨셉으로 해야 한다는 신지운의 말이, 좀 더 논리적으로 들리긴 해.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팬들을 생각해보면 컨셉이 강한 앨범을 좀 더 재미있어하긴 했떤 것 같아.”

“그건 그래.”

안주원이 동의했다. 다른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신지운이 나에게 말했다.

“햇살이들이 컨셉이 강한 앨범을 좋아하는 건 관련된 이야깃거리가 있어서잖아? 그냥 무작정 빡센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은 그러니까, 만약에 수록곡을 앨범 컨셉 전면에 세울 거면 좀 더 이 연결이 탄탄해야 한다는 거지.”

“어, 웬일로 나랑 똑같은 생각을.”

“우와, 안 기쁘다.”

“내 말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낄낄거리며 나는 정선미 팀장이 나눠준 자료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황새벽이 나에게 말했다.

“트랙리스트대로 쭉 틀어줘. 들어보면서 생각하자.”

“아, 그러자.”

나는 대답하고, 내 핸드폰에 들어있는 데모를 트랙리스트 순서대로 플레이했다. 사실 이렇게 순서대로 들어본 건 처음이라 나는 긴장하며 사람들 얼굴을 살폈다. 요즘 많이 우는 부대표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눈을 감쌌다.

“크, 명반이다, 명반.”

나는 흐흐 웃으며 멤버들 얼굴을 살폈다. 나는 늘 써야 하는 곡보다 많은 곡을 만들고, 앨범에 수록곡을 넣는 기준은 언제나 하나였다. 멤버들의 의견. 물론 A&R팀과 트랙리스트 전반을 결정하지만, 결국 멤버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빼버렸다. 나는 멤버들의 선호를 알기 위해 반응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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