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89화
정신없는 휴가였지만 그래도 휴가는 휴가였다. 물론 일도 좀 해야 했지만, 가족과도 꽤 오래 보고, 부모님과 2박 3일로 여행도 다녀왔다.
요즘 부모님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대화를 시작하면 3분 이내에 자식 자랑이 시작됐다. 그 짧은 여행 동안에도 그랬다. 나는 나름으로 모자도 눌러쓰고, 빠른 걸음으로 다니는데 부모님이 엄청 큰 소리로 ‘해원아!’하고 부르셨다. 그러고는 너무 큰 소리로 불러서 알아보는 사람 있으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시늉을 하시는 거다. 진짜 시늉이었다. 거기서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무지하게 섭섭하셨을 테니까.
다행히 매번 고마운 한두 사람이 날 인지해 줬고, 우리 부모님의 자랑을 완성해 주셨다. 매번 밥이라도 한 끼 사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절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가는 곳마다 내 사인을 걸어놨다. 밥집 사장님들은 내가 누군지 잘 몰라도 연예인이라니까 그런가보다, 하면서 일단 사인을 받아 가셨다.
그중에는 팬의 부모님이 하시는 식당도 있었던 모양이어서, 우리 팀 서치왕 안주원이 찾아다가 보여줬다.
[미쳤나 봐 해원이 우리 식당 왔었대 이게 말이 돼? 내 최애가 와서 사인 남기고 갔는데 나는 못 봤대 X발 말이 되냐고 미친 세상아ㅠㅠㅠㅠㅠ 엄마가 해원이 오자마자 전화했는데 자느라 못 봤어 X발 오늘부터 미라클모닝한다…….]
[아무튼 엄마가 해원이 가게 들어오기 전부터 일단 키 크고 마르고 머리 개작아서 연예인인 건 분명한데 누군지 궁금했다함 근데 나름 꽁꽁 싸매고 왔는데 해원이 부모님이 해원아! 자리있다! 하고 부르셔서 바로 정해원인 거 알았다하심ㅋㅋ큐ㅠㅠ 안 그럴 것 같이 생겼는데 사근사근하고 잘 웃어서 사위 삼고 싶으셨대…… 엄마…… 딸 노력할게…….]
[↳안 그럴 것ㅋㅋㅋㅋㅋ같이 생겼나욬ㅋㅋㅋㅋㅋ]
[↳↳그니까요ㅋㅋㅋㅋㅋㅋ사인해 달라고 했더니 엄마가 당연히 자기 모를 줄 알고 퍼스트라이트 열심히 홍보해서 딸이 팬이라고 했더니 엄청 좋아하더래요…….]
[↳↳↳아닠ㅋㅋㅋㅋㅋ해원아ㅋㅋㅋㅋㅋㅋ왜 당연히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데ㅋㅋㅋㅋㅋㅋ]
[↳↳↳해원이는 이제 연차 꽤 됐는데 목격담마다 신인 같네요ㅋㅋㅋㅋㅋㅋ]
[↳↳↳↳퍼라가 진짜 초심이 쭉 가는 팀인 듯]
[↳↳↳↳퍼라 팀 분위기가 약간이라도 초심 잃는 것 같으면 멤버들이 엄청 갈궈서 그래요ㅋㅋㅋ]
[↳↳↳↳↳어우 퍼라에서 여섯 명이 갈구면 무섭겠네요ㄷㄷㄷ]
활동을 하면 할수록, ‘여전히 신인처럼 열심히 한다’라는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무튼 계속 활동을 하다 보면 햇살이들이랑 제일 많이 이야기하고, 햇살이들이 있는 공간에서 일하고, 햇살이들을 위해서 일을 하니 세상에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잠깐씩 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도 휴가는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 정규의 수록곡들을 한 번 쭉 듣고 나니,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좀 불안하게 들린다고.
퀄리티에 대한 불안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걸 판단해주는 건 A&R팀과 강효준이었다. 다행히 나는 비교적 솔직한 평가단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내가 불안하다고 생각한 부분은 수록곡들의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정규 앨범을 만들 때 내가 멘탈이 좀 나가 있었구나, 하는 게 지금 느껴졌다.
수록곡을 쭉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 확신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작곡을 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무대에 서기 위한 방도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팀에서 노래를 제일 잘하는 것도, 춤을 제일 잘 추는 것도, 하물며 제일 잘생긴 것도 아니었다. 리더이자 맏형도 막내도 아니다. 심지어는 아주 호감형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 팀에 존재하기 위한 의무가 작곡이라고 머릿속 한편에서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작곡을 하면서 나름으로 나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 멘탈 상태가 반영된 곡이 많아서인지, 트랙을 한 번 쭉 듣고 나서 회의실이 비교적 조용했다. 그러다 정선미 팀장과 신지운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타이틀곡 컨셉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다크히어로를 선공개 곡으로 하면?”
다크히어로 컨셉으로 가자는 정선미 팀장은 타이틀 컨셉이 맞는 것 같다고 하고, 신지운은 다크히어로를 선공개 곡으로 선보이자고 했다. 둘이 의견이 처음으로 맞아지자, 마주 보고 으하하 유쾌하게 웃었다.
“선공개 좋아!”
민지호가 말하며 일어나려는 걸 박선재와 한효석이 미리 알고 붙잡아 못 일어나게 했다. 박선재가 말했다.
“말할 때마다 일어날 필요 없다니까?”
“그래야 나한테 집중하잖아!”
민지호의 말에 한효석이 핀잔했다.
“목소리가 그렇게 큰데 안 들리겠냐.”
“그런가!”
“어우, 귀…….”
한효석이 괴로워하며 민지호가 소리친 귀를 손으로 감쌌다.
의견이 합쳐지자, 부대표가 자료를 주섬주섬 모아 히히 웃으며 일어났다.
“그럼 내가 대표님한테 돈 뜯어올게.”
든든하다, 든든해.
어차피 강효준 대표가 필요한 만큼 지원해주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또 이렇게 적극적으로 돈을 뜯는 사람이 있는 게 든든했다.
회의가 끝나고, 우리는 연습실로 돌아왔다. 민지호는 회의 전보다 많이 신이 나서 말했다.
“뮤직비디오 두 개! 찍는다! 신나!”
반대로 회의 내내 엄한 아버지 같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황새벽이 연습실 구석에 쿠션을 대고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내가 물었다.
“작업실 가서 자지?”
“멤버들 다 여기 있잖아, 외로워…….”
황새벽은 원래 시끄러운 곳에서 잘 자서 그냥 벽 쪽으로 고개를 놓고 바로 잠이 들었다. 나는 이런 곳에서 잘 못 자는데 신기하다.
민지호는 바로 다크히어로 컨셉의 안무를 짜는데 몰두했다. 나도 같이 도와주려는데 박선재와 한효석은 맥북 하나를 들고 주섬주섬 나에게 다가왔다.
“형, 이거 한 번만 들어주세요.”
“나랑 효식이가 만든 거.”
내가 휴가 기간에 쉬는 사이, 둘이서 곡 하나를 만들었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연습실 벽에 앉았고, 두 동생이 양옆에 앉았다. 나는 둘 사이에서 둘이 만든 곡을 들었다. 아직 어색한 면이 있어, 앨범에 수록할 정도는 확실히 아니었다. 하지만 한 곡을 끝까지 만들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한효석이 기본적으로 발레 전공이라, 클래식에 익숙하다보니 클래식 샘플링이 들어가 있었다. 한효석이 말했다.
“샘플링하면 더 쉬울 줄 알았는데, 너무 어려워요.”
그 말에 박선재도 동의했다.
“새로운 느낌이 안 나는 데다가, 샘플링한 부분이 앞뒤랑 붕 떠버리는 거야.”
“맞아, 샘플링 어렵지.”
나는 대답하고, 두 사람의 곡을 꼼꼼하게 들어본 후 말했다.
“근데 확실히 너희가 음악을 아니까 빨리 늘긴 한다. 리듬도 좋고.”
나름 칭찬했는데, 둘이 한 마디씩 핀잔했다.
“못하는 거 알아, 칭찬하지 마.”
“매정하게 말해요, 형. 평소처럼.”
“내가 언제 그렇게 매정했어, 이 놈들아.”
라고 말실수했다가 엄청 정색하는 눈빛을 동생들에게 받았다. 하, 나름 좋은 형이라고 믿으면서 살았는데 자만했나 보다.
“이거를…… 잠깐만. 재료를 좀 바꿔보자.”
나는 그 자리에서 필요한 악기를 샀다. 그리고 악기들을 바꾼 후, 사운드를 산만하게 느껴지게 하는 부분들도 빼버렸다.
“시퀀서에서 시각적으로 맞춰놓으면, 귀에서도 정리가 되게 들리거든……. 여기 기타 리프는 새부기한테 다시 녹음해 달라고 해.”
“자는데?”
“깨워, 걔가 동생들이 해달라는 거 안 해주는 거 봤냐.”
“하긴.”
박선재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새벽은 저렇게 체력이 없지만, 필요할 때도 누워 있는 사람은 아니다.
몇 가지 수정 겸 교육을 한 후 다시 들어보니까 사운드가 정돈된 느낌이 났다. 한효석이 감탄했다.
“형, 작곡을 아예 모를 때는 몰랐는데, 해보니까 형이 천재인 거 알겠어요.”
“그으래, 그래.”
하도 사람들이 천재라고 하니까 매번 아니라고 하기도 지쳐서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엄연히 천재의 기준이 있다. 천재만이 만들 수 있는, 심지어는 그 천재도 몇 년에 하나씩이나 겨우 뽑아낼 수 있는 곡들도 내 마음 속에 리스트로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내 기준에서는 나에게 천재라고 하는 건, 좀 언어의 오용이고 남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천재의 기준이 다를 것 아닌가? 한 곡을 완성하기만 해도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까, 나는 매번 아니라고 겸손을 떨지 않기로 했다.
빈말이면 더더욱 아니라고 손사래 칠 필요가 없고, 진심이라면 그 사람의 진심인데 내 기준에서 판단할 필요가 없다.
우리 셋은 수정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봤다
한 곡을 끝까지 만들어냈다는 게 너무 기특해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내가 쉬는 동안 다들 뭔가를 하고 있었다는 게 좋았다.
그렇게 곡 수정을 봐주고 나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연하게 유튜브로 들어가 영상 하나를 눌렀다. 그리고 연습실 모니터와 연결했다.
안무에 집중해있던 민지호도 신이나서 모니터를 가리켰다.
“아자몽이다!”
“……아니, 이걸 왜 봐?”
신지운이 모니터를 끄려는 걸 같이 있던 안주원이 붙잡아 앉혔다. 신지운은 어차피 짧은 광고라고 생각했는지 한숨 쉬고 포기했다.
신지운은 얼마 전 한 패션브랜드의 뷰티 광고를 찍었다. 립스틱 광고였다.
뺨에 새로 나온 세 가지 색깔의 립스틱을 그리고 납득하기 어렵지만 나름 잘생긴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황새벽이 특별히 몸을 일으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이야, 지운아. 잘생겼다.”
“……형 사실 체력 없는 거 아니지? 없는 척하는 거지?”
“무슨 소리야. 나 체력 하나도 없어…….”
“아니, 무슨 체력이 없는 사람이 먹는 얘기할 때랑 놀릴 거 있을 때는 바로, 바로 일어나냐고.”
“삶의 활력소니까…….”
황새벽은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말하고 다시 모니터를 보며 은근하게 놀렸다. 황새벽 말고 다른 멤버들도 같은 광고를 보고 또 보고, 정지해서 보며 초 단위로 쪼개가며 놀렸다.
솔직히 잘생긴 걸 우리도 알고 본인도 아니까 놀릴 수 있는 것 같다. 신지운의 광고가 끝나자마자 황새벽이 말했다.
“우리 효석이 나오는 것도 보자.”
“형, 피곤해 보이는데 쉬세요.”
“어, 깼어.”
그리고 한효석이 찍은 광고도 봤다. 자기 광고에는 괴로워하던 신지운도 같이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있으니까 한효석이 날 돌아봤다.
“형, 이번에 미국에서 찍고 온 광고 언제 나와요?”
“어? 어…… 글쎄?”
이번에는 표적이 내 쪽으로 쏠릴 분위기라 모른 척했다. 언제 나오는지 너무 정확하게 들었지만, 날짜가 닥칠 때까지 최대한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잠깐 핸드폰을 확인하던 안주원이 멈칫하더니, 날 힐끔 봤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왔다. 약간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