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90화 (29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90화

열애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의혹이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 출국한 여자아이돌이 있었던 듯했다. 하필 이때 개인 여행으로 미국으로 갔던지라 의혹이 생겼던 모양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폴 존스와 점심을 먹었던 같은 식당에도 들렀다. 그것도 같은 시간에.

나와 그 여자아이돌이 식당에서 각각 나오는 모습을 식당 밖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건 그쪽에서 해명해줘야지, 내가 해명하기 어려웠다. 영화 주제가 때문에 만나서 이야기한 거라 가급적 보안을 유지하는 게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은 다 그냥 의혹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제일 큰 문제는 누군가가, 그 여자아이돌의 멀티프로필을 유출한 것이었다.

내 사진이었다.

멤버들이 심각한 상황에 몰려와 안주원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민지호가 말했다.

“어, 루아는 절대 아닌데?”

“응?”

내가 돌아보니까 민지호가 말했다.

“우리 전 소속사잖아. 연습생때 봐서 알아. 근데 루아 아직 19살이야.”

그 말에 멤버들이 날 본다. 순간 내가 미성년자 만나는 범죄자로 보이냐고 한 마디 할 뻔했는데, 다행히 멤버들이 알아서 입을 열었다.

“그럼 절대 아니네.”

“아니, 근데 왜 멀티프로필을 형 사진을 해놨지?”

“햇살이겠지.”

황새벽의 말에 우리 모두 ‘아!’ 하고 황새벽을 돌아봤다. 황새벽이 X위터에 의혹을 올려놓은 것을 쭉쭉 넘기며 말했다.

“성지 순례한 거네. 너 지난번에 여기서 식사한 거 맛있었다고 라방에서 말했잖아.”

“아…….”

내가 한숨 쉬고 있을 때, 급하게 문이 열렸다. 부대표와 강효준 대표가 동시에 내려와서 사색이 된 얼굴로 연습실에 들어서고 있었다. 부대표가 말했다.

“해, 해원아!”

“아니에요.”

“그치? 어오, X발…….”

내가 대답하자마자 부대표가 기가 빨려 연습실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강효준 대표는 애초에 믿지도 않았는지, 전화로 노브 엔터와 전화 중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팬인 것 같다고 하니까 부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 일리가 있지.”

그리고 우리는 강효준 대표가 전화하다가 복도로 나가는 걸 슬쩍 따라가서 보고 있었다. 복도에서 강효준 대표가 전화하는 것이 들렸다.

아마 노브 엔터 쪽에서 보이드 엔터도 신생이고, 강효준 대표도 어리니까 기선을 제압하려 했던 것 같다. 저쪽에서 소리치면서 욕을 하고 있는지, 그 소리가 전화를 너머 고요한 복도 멀리까지 들렸다.

민지호가 누가 봐도 질색하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저 공동 대표가 나 IMX랑 같이 데뷔시키려고 했는데. IMX 멤버들한테 따돌림당해서 속상해하니까 내 성격이 이상해서 그렇다고 했어…… 지가 더 이상한데! 백 배 이상한데!”

“그러게, 딱 들어도 성격 X나 지랄 맞네.”

“형, 아무리 그래도 이쁘게 말해야지!”

“그래, 그래.”

하지만 내 동생에게 X같이 군 새끼에게까지 이쁘게 말할 필요가 있나 싶다.

아무튼 그렇게 평소 양가 할아버지에게 워낙 욕을 들어서 욕을 한 귀로 흘리는 일에 익숙한 강효준 대표가 설득하는 게 들렸다.

“보니까 해원이 팬인 것 같은데, 어렵게 갈 것 없잖아요? 그냥 팬이라고 공지 하나 내주세요. 우리도 낼 테니까.”

강효준 대표 말대로, 그렇게 하면 모든 해명이 끝나는 것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쪽에서 싫다고 하는 게 들렸다.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게 쉽게 갈 길을 안 하겠다고 하니까 강효준 대표가 슬슬 짜증을 냈다.

“그럼 어쩌고 싶은데요…… 아니, 우리가 알아서 뭘 해. 우리만 아니라고 기사 내면 사람들이 믿어요? 아, 말이 안 통하네. 내가 지금 그 회사로 갈게요. 뭘 오지 마요. 대화가 안 통하면 얼굴 보고 해야지.”

강효준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고, 만나면 좀 쫄릴 것 같은지 저쪽에서 안 만나겠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효준은 간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전화를 끊은 후에 부대표에게 말했다.

“부대표님, 갑시다.”

“갑시다, 갑시다.”

그렇게 말하며 떠나는 뒷모습이 든든했다. 한효석이 말했다.

“둘이 걷는데 복도가 꽉 차네.”

“어깨 부자들이야.”

민지호의 말에 한효석이 되물었다.

“깡패 아냐?”

“예쁜 말 써야지!”

“……어깨 부자는 예쁜 말이냐?”

그렇게 되물었지만, 곧 대화 중인 상대가 민지호라는 것을 감안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에도 내내 X위터를 심란하게 살피던 안주원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안주원이 말했다.

“아, 해원아. 이거 봐봐.”

“좋은 소식이지, 이번에는? 제발.”

안주원의 표정을 보며 예상하고 핸드폰을 봤더니, 황새벽의 일본팬 계정이었다.

[@04nn0312 응? 잠깐만 루아 멀티프로필 익숙한데…….]

[@04nn0312 지금 뒤지고 있어요 사진이 10만 장이라 좀 걸림]

[@04nn0312 (사진) 찾았다 이거 재작년 일본 팬싸 출근 사진]

[@04nn0312 이날 못 갔는데 띔해준 친구가 해원이 오시라 찍은 사진 보내줬어요]

[@04nn0312 낯선 여돌에게서 익숙한 햇살이의 냄새가 난다]

우리 모두 같이 보다가, 내가 물었다.

“……띔이 뭐야?”

“오시는 뭐야?”

신지운도 의아해하고, 박선재가 말했다.

“진짜 일본 햇살이야? 한국어 진짜 잘한다.”

“민지호보다 잘하는데.”

한효석의 말에 민지호가 대꾸했다.

“아니, 내가 더 잘하는데!”

“너 띔이랑 오시가 뭔지 알아?”

“그건 몰라…… 흑, 서러워.”

민지호가 우는 시늉을 해서 옆에서 멤버들이 낄낄거렸다.

다행히 안주원이 옆에서 띔은 팬사인회에 못 온 친구 대신 팬사인회에서 부탁해주는 거고, 오시는 최애의 일본어 표현이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그럼 친구가 고양이 귀 해달라고 했다고 하는 게 다 띔이야?”

“어, 그렇지.”

서치왕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우린 이렇게 의지 되고 좋은데 햇살이들은 안주원이 자기 계정을 볼까봐 엄청 초조해했다.

예전에는 안주원도 조작멤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이 많았어서, 인터넷을 많이 확인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실제로도 그래서 서치왕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팬들 계정 염탐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가끔 팬들이 ‘주원아 그걸 왜 알아!! 알면 안 돼!!!!!!’하는 걸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팬들이 진짜로 싫어하면 안 할 텐데, 안주원이 팬들의 걱정이나, 바라는 것들을 다 알아주는 걸 좋아하는 부분도 있어서 계속 서치왕 캐릭터를 잡아가고 있었다.

[주원이는 햇살이들 마음 다알아ㅠㅠㅠ]

그렇게 말하는 걸 X버스에서도 많이 봤다.

그나저나 다행인 건, 멀티프로필 사진이 일본팬이 찍은 팬사인회 출근 사진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거의 바로 열애설이 헛소리였다는 게 알려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해명이 된 후, 우리는 진이 빠져 죄다 연습실 바닥에 쓰러졌다.

* * *

걸그룹 CICA의 멤버, 루아는 빈 보컬 연습실 문을 잠가놓고 소파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한숨을 푹푹 쉬며 천장을 보던 루아가 전화로 친언니에게 말을 이었다.

“언니, 나 너무 우울해.”

-아, 그니까. 어느 여돌이 남돌 사진을 프사로 해놔.

“아, 지금 뭐라고 할 때야? 우울하다고. 달래주라고.”

그렇게 징징거리거나 말거나, 루아의 언니가 말을 이었다.

-네 최애는 무슨 봉변이야?

“아니, 그럼 뉴욕을 스케줄 갔는데, 내 최애가 맛있다고 한 집을 안 가? 그리고 해원이 거기 있는지 몰랐지. 알았으면 내가…… 아는 척을 해서 더 큰 문제가 생길 뻔했네. 아, 해원아. 내가 미안해.”

-회사에서 뭐래.

“가만히 있으래.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입 닥치고 있으라고. 솔직히…… 우리 이번 앨범 좀 조용했잖아.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아. 어우, 어른들 무서워. 어른 되기 시렁.”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보컬 연습실 창문에 옹기종기 달라붙은 얼굴들이 보였다. CICA의 멤버들이었다. 루아가 말했다.

“애들 왔다.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하지 마. 귀찮아.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전화를 끊고, 루아가 문을 열었다. 민폐를 끼친 것 같아서 한숨만 푹푹 쉬는데 멤버들이 박스들을 들고 들어왔다.

“루아야, 우리가 숙소에서 굿즈 다 가져왔어.”

“어어?”

“라방 한 번 시원하게 켜서, 덕밍아웃하자.”

리더의 말에 루아가 문을 깜빡깜빡 거렸다.

“……우리 팀 그런 이미지 아닌데요? 우리 컨셉은? 청순함은?”

“그거는 시연이가 할 거야.”

그 말에 멤버 시연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참 말이 없고 청순한 친구였다.

덕밍아웃. 이대로 괜찮은가.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리더의 말대로 청순함은 시연이 해주면 되지 자기 몫이 아니었다. 팀에 하나 정도, 케이팝 진하게 파는 멤버가 있는 게 뭐가 문젠가? 케이팝 팀인데? 이 기회에 아예 그 방면으로 나가보는 건 어떨까?

무엇보다 루아는 한 방에 스캔들을 잠재울 사진이 있었다. 열애설이 난 그 식당에서, 덕메들과 예절샷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걸…… 공개해도 되는 걸까. 이 갈림길에서 나의 아이돌 인생은 어떻게 될까…….

멤버들이 문을 잠갔는데, 앞으로 정장을 입은 남자 둘이 지나갔다. 루아가 사색이 되어 말했다.

“도, 돈 받으러 왔나? 나 때문에 스캔들 나서? 우, 우리 회사 망해?”

“우리 루아는 참 상상력이 풍부하다.”

“누가 봐도 돈 받으러 온 사람들인데!”

루아가 울상이 되는 와중에도 소중한 굿즈들을 끌어모았다. 막내가 궁금한지 잠깐 문을 열었다가 욕이 들려서 바로 문을 닫았다. 시연이 옆에서 조용히 막내의 귀를 막아주고, 리더는 필터를 골랐다.

* * *

강효준 대표가 명함들을 노브 엔터, 권병철 공동 대표이사 앞에 하나씩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게 VMC 임원들이랑 자주 밥 먹는 기자들인데.”

“그게 뭐요?”

권병철 대표가 묻자 강효준 대표가 말했다.

“여기 이 기자들이 죄다 받아쓰더라고요?”

“…….”

라고 스파이가 정리해줬다. 참 빠르다.

강효준이 명함을 앞에 깔아놓고 말을 이었다.

“브엠에서 가만히 있으래요?”

“……하, X발.”

권병철 대표가 혀를 차며 이마를 손가락으로 슥슥 밀었다. 전화로는 욕을 했는데, 실제로 만나니까 욕이 잘 안 나왔다. 권병철 대표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누가 브엠이랑 척지고 싶어 해요.”

그 말에 강효준이 자기를 가리켰다.

“나랑 척지는 건 괜찮고?”

“아니, 그래도…… 유력 하다니까. 아, 내가 무슨 힘이 있어요.”

“말 돌리지 말고요. 나랑 척지는 건 괜찮냐고.”

“…….”

안 괜찮아 보였다. 안 괜찮을 인상이었다. 분명 10살 이상 어리다고 들었는데, 전혀 안 그래보였다.

정해원과 루아가 같은 식당에 있었다는 목격담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VMC에서 연락이 왔다. 대충 정해원이랑 엮이면 신인 걸그룹한테도 아주 나쁘진 않을 거라고.

루아는 자기가 정해원의 팬인 걸 밝히겠다고 했지만, 팀 컨셉에 안 맞는다고 권병철이 바로 반대했다.

VMC가 순탄하게 이춘형 것이 되진 않으리라는 소식을, 이미 강효준에게 욕을 한바탕 퍼붓고 나서야 전해 들었다. 솔직히 쫄렸다. X나게 쫄렸다. 사실 VMC와 상관없이 그냥 무섭게 생겼고, 같이 온 부대표는 주먹을 못 쓸 수가 없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여차하면 그냥 이유없이 처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 어떡하지.

생각하고 있는데, CICA의 매니저가 좋은 소식을 들고 달려왔다.

“어, 대표님! 루아 라방 켜서…… 덕밍아웃하는데요?”

몇 초 전에 들었으면 돌았냐고 날뛰었을 텐데, 지금 들으니까 너무 기뻤다.

“내가 시켰다, 인마. 매니저가 모르고 있으면 어떡하냐, 새끼야.”

그렇게 말하고, 권병철 대표는 슬쩍 강효준의 표정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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