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92화
내가 올린 입장문의 반응을 05 둘이 번갈아 확인 후 반응을 알려주고 나서, 안심한 나는 잠깐 작업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아, 다행이다.”
해프닝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상대 여자 아이돌 햇살이가 큰맘 먹고 나서준 덕이었다. 신인으로서 더더욱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이렇게 예절샷 사진까지 공개해 준 게 고맙고 미안했다. 스캔들 때문에 괜히 만나면 더 어색하게 생겼다. 하지만 서로에게 그게 좋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해프닝은 황당하고 억울했지만 좋은 일도 있었다. 하나.
[스파이 : 회사에서 기인호 팀장이 사직서 냈더라?]
[스파이 : 강효준 부사장님이 이름 알아달라고 하자마자 사직서 내서 놀랐어…… 탄탄한 이춘형 라인인 줄 알았는데…….]
[스파이 : VMC 이제 진짜 전쟁인 듯]
나는 그걸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좋은 소식이긴 한데. 이렇게 하나, 하나 꼬리만 자르는 걸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춘형은 꼬리가 많았다. 심지어 늘어났다. 목을 자를 때까지는 계속 늘어날 것 같았다.
강효준이 투자한 영화는 성공할 거고, 클라루스는 어떻게든 잡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런데 그거면 충분한가? 그쪽은 우리 후배이자, 팬까지 건드리는데?
나는 좀 생각하다가 스파이에게 물었다.
[형 진짜 미안한데]
[스파이 : 어려운 거야?]
[응…….]
이상하게도 잠깐 박중운 팀장의 기뻐하는 모습이 톡 너머로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톡을 이어갔다.
[이춘형 빼도 박도 못할 약점 잡아줘. 큰 걸로. 나랑 엮인 거 말고, 그냥 빼박 범죄.]
그냥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춘형 개인의 비리를 잡고 싶다고.
저런 놈이 범죄 안 저지르고 깨끗하게 살아왔을 리는 당연히 없을 테니까.
그럼 사적인 복수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의 정의와 질서에도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그때 스파이에게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스파이가 약간 흥분해서 말했다.
-강효준 부사장님도 그거 물어보던데. 너 그…… 얼굴 다쳤을 때.
“아, 그래?”
그 형도 나름 가만히 있지는 않았나 보다. 스파이가 말했다.
-전부터 네가 주시하라고 해서 몇 가지 있는데, 큰 건은 아니지만 살붙이면…….
“음. 악편은 말고. 내가 당해보니까, 그건 좋은 일이 아니더라.”
-그럼, 확실하게 불법을 잡으란 거구나.
“응. 딱 한 방. 근데 위험하면…….”
-고맙다. 네가 내 삶의 낙이야.
“아니, 뭘…….”
-그러니까 자잘한 거 말고. 큰 거 한 방 말이지.
“응. 한 방에 보내자. 한 방에.”
-해원아. 믿고 맡겨준 거…… 후회하지 않을 거야.
……응? 그 정도라고?
스파이의 목소리가 촉촉해서 나까지 좀 무서웠다.
하지만 무서워하는 티를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름으로 센 척을 했다.
“알았어, 믿어볼게.”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람 쓰는 게 이렇게 살 떨리다니. 나는 나중에 내 사업은 못 할 것 같다. 평생 강효준 대표를 앞세우고 나는 비선 실세 정도를 노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양이형이 작업실로 들어왔다. 나는 옆자리를 두들기며 말했다.
“형, 우리 오늘도 건실하게 밤샘하자.”
“언제나처럼 미친놈이네, 이거.”
“알았어, 알았어. 사랑해. 됐지?”
“아, X발 진짜.”
사람 쓰는 게 어려운 것에 물론 양이형은 제외된다. 흐흐.
나는 좋으면서 괜히 욕을 퍼붓는 양이형과 함께 후반부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에 정규에 맞춰 상당히 많은 양의 영상을 찍게 되었다. 나는 모든 영상의 음악 마무리 작업을 하기로 했다. 남한테 못 맡기는 것도 진짜 병이다.
“너랑 일하고 있는 내가 호구 새끼다.”
양이형도 옆에서 투덜거렸다.
* * *
7월 25일. 퍼스트라이트 정규 2집.
선공개 트레일러 공개 당일.
열대야가 극성이었고, 서울은 정말로 끔찍할 만큼 더웠다. 12시 컨셉 트레일러 공개를 2시간 앞둔 10시의 보이드 엔터는 긴장감과 빡빡한 일정으로 이보다 더 어수선할 수 있을까, 싶게 어수선했다.
회사에는 꽤 많은 직원들이 남아 있었고, 멤버들 역시 연습실에 앉아 있었다.
회사에서는 뜨거운 월드컵 분위기를 피해서, 컴백 시기도 컨셉 트레일러 공개도 늦추려 했지만 선공개를 해야 한다는 멤버들의 주장, 이게 여름에 대한 곡이 많은 앨범이니 8월 내에 나와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 합쳐져, 월드컵의 열기가 여전한 상태에서 선공개 트레일러가 덜컥 올라가게 되었다.
하반기의 일정은 빡빡했다. 컴백 당일까지 거의 매일 공개 예정 스케줄이 있었다. 멤버들에게서 매일매일 새롭게 해달라는 것이 늘어났다.
이 정도면 대표가 한마디 할 법도 한데, 그냥 알았다고 전부 통과시켰다. 강효준 대표는 원래 활동에 있어서 그다지 말을 보태지 않는 편이었고, 멤버들이 1순위, 정선미 팀장이 2순위, 그 외 나머지 직원들의 의견이 3순위로 본인 의견은 주변 식당 사장님 의견 뒤인 5위 정도에 있었다. 내가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가서 적자 나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강효준 대표가 앨범만 잘 뽑히면 적자가 나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크, 사람이 여유가 있다.
보이드 엔터에게 적자보다 무서운 건 낮은 퀄리티였기 때문에, 우리의 안무 연습도 빡빡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번 컴백이 끝나면 콘서트, 연말 시상식이 촘촘하게 겹쳐 있었다.
그건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아이돌들도 월드컵 일정을 최대한 피하려다 보니 별수 없는 극악 스케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애초에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대부분 더위를 많이 타서, 에어컨이 강하게 틀어져 있는 연습실 밖으로는 웬만하면 안 나가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안주원은 영화 촬영을 위해서 연달아 촬영장과 연습실을 오가고 있었다.
선공개 트레일러 공개 34분 전에 연습실에 도착한 안주원이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민지호가 소리쳤다.
“형, 탔어!”
“그니까. 큰일 났다…….”
안주원이 지쳐서 중얼중얼거렸다.
감독이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안주원에게 ‘운동 잘하냐’고 물어봤다고 하더니, 계속 야외 농구장에서 농구 하는 씬을 그렇게 찍는다는 거였다. 안주원이 에어컨을 끌어안고 있는 신지운에게 물었다.
“원래 이렇게 한 컷을 오래 찍는 거야?”
“난 뭐 아냐. 감독마다 다르겠지.”
“왜 짜증을 내.”
“덥잖아.”
“얘들아, 싸우지 말자…….”
피곤하고 더운 상태라 조금이라도 신경이 예민해지는 기운이 보이면 죽어 있던 황새벽이 힘껏 손을 뻗으며 말렸다. 물론 본인은 ‘손을 뻗었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남이 보기에는 손가락 정도 겨우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면 리더가 불쌍해서라도 다들 싸움을 멈췄다.
아무튼 안주원이 촬영 중인 영화의 임 감독이 진짜 집요하다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촬영 중간에 한 인터뷰에서, 주인공 아역 배우는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느니, 청춘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얼굴이라느니, 하도 얼굴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려놔서 크게 부담을 가진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원래 안주원은 자신감이 낮은 편이라 더 힘들어했다. 남을 실망하게 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더 그랬다.
그래도 나는 안주원이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었다. 실망하게 하기 싫어하는 마음에 짓눌릴 정도로 약한 놈은 절대 아니었다. 보이는 것과 다르게 야망이 있는 놈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중에 제일, 심지어는 민지호보다도 큰 야망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10분 전, 우리는 시간이 남은 걸 알면서도 무한 새로고침을 시작했다. 지쳐 있던 멤버들, 안주원과 황새벽도 전부 피곤한 걸 완전히 잊어버리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나는 오늘 선공개 곡이 나오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회의를 했는지, 그리고 그 회의에서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를 떠올렸다
“……진짜 많이 싸웠다, 우리.”
내가 중얼거리니까 그 싸움의 중심에 있던 신지운이 핀잔했다.
“형이 곡을 다양하게 만드니까 그렇지. 그게 다 좋으니까.”
“넌 무슨 칭찬을 그렇게 욕같이 하냐?”
“왜냐하면 칭찬이긴 한데, 너무 힘들었거든.”
투덜거리는 신지운의 마음은 이해가 가서, 나는 흐흐 웃고 말았다.
퍼스트라이트 정규 3집, 영원(Eternity).
오늘 선공개 트레일러에 들어갈 두 곡, ‘Run into the desert’와 ‘Lunatic will be king’은 타이틀곡인 ‘Youth’와는 정반대의 컨셉을 가진 곡이었다.
한쪽은 청량함을 컨셉으로 한 곡이고, 다른 한쪽은 어두움, 다크히어로를 컨셉으로 한 곡이었다.
그중 루나틱은 그냥 말하자면 좀 이상한 곡인데, 정선미 팀장이 그 곡의 이상함을 엄청 마음에 들어 했다. ‘Youth’가 처음부터 딱 타이틀로 정해지다 보니, 정선미 팀장이 마음에 들어 한 컨셉을 밀고 나가기 어려웠었다. 거기에 대해 회의를 거듭하고, 결국 선공개를 하기로 한 후에도, 그럼 ‘Run into the desert’와 ‘Lunatic will be king’ 중에 뭘 선공개할지도 문제가 됐다. 또 싸우기는 내가 힘들어서, 감독이 하고 싶은 대로 촬영하면 내가 거기 맞게 음악을 편집하기로 했다.
그리고 12시.
그 많은 회의와 싸움의 결실, 선공개 트레일러가 업로드되었다.
* * *
regular_1228, 이재희는 긴 덕질 경력으로 어떤 육감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
그냥 왠지 그랬다.
“……이상해. 이번에 잘될 것 같아.”
아직 공개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8월 정도에 정규 앨범이 나올 거라는 증권사 찌라시 정도가 있었고, 그냥 퍼스트라이트의 활동 패턴상 이쯤이면 나올 때가 됐다는 팬들의 예상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근거가 없는 상황 속에서도 이재희는 왠지 이번 앨범이 잘 될 것 같다는, 이상할 정도로 강력한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어젯밤, 앨범 컨셉 포토 한 장이 공개되었고, 바로 다음 날 올라올 선공개 트레일러를 포함, 컴백일까지의 일정이 쭉 공개되었다.
퍼스트라이트 정규 3집, 영원(Eternity)이라고 적힌 컨셉 포토는 일곱 개의, 영원의 상징, 다이아몬드를 든 손만이 찍혀 있었다.
몇몇 팬들은 그 손이 누구 손인지 추측할 필요도 없이, 피부색과 손의 모양으로 정해원의 손임을 추측했다.
[해원이 손 모르는 사람이 봐도 피아노 잘 칠 거라고 생각할 손이야ㅋㅋㅋ]
이재희도 동의했다.
그리고 다음 날, 12시에 선공개 트레일러가 예정되었다.
[퍼스트라이트-Eternity trailer]
신지운을 썸네일로 한 업로드 예약이 올라오자마자 팬들이 다시 한번 뒤집혔다.
[썸네일 ㅁㅊ]
[심장 뜯겨져 나갈 것 같다]
[얘들아 퍼라 정규 트레일러 썸네일 보고 와줘 신지운이 X나X나 잘생김]
[↳얼굴이 서사다 진심]
[↳퍼라는 잘생긴 애가 계속 나오냐 어떻게]
[↳얜 잘생긴 거 아는데도 면역이 안 돼 볼 때마다 여전히 놀라ㅋㅋㅋㅋㅋㅋ]
[썸네일만 봐도 돈맛이 나냐 어떻게ㅋㅋㅋ]
[퍼라팬도 아닌데 썸네일 때문에 트레일러 개같이 기대된다]
그리고 12시. 퍼스트라이트 정규 3집 선공개 트레일러가 업로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