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94화
선주문량이 지난번 앨범을 확실하게 웃돌 거라는 예상을 들은 후, 나는 더더욱 긴장되는 마음과 안정감이 뒤섞이는 기묘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잠깐 쉬는 시간에 나는 햇살이들과 놀면서 확실한 안정을 찾기 위해 X버스를 확인했다.
[해원아 이거 봐봐!]
[인석 : 이번에도 우리 퍼스트라이트 선배님들이랑 활동 겹친다???]
[인석 : 앨범 들고 인사하러 갈 거야……. 떨려…….]
[인석 : 퍼라 선배님들 진짜 착하셔ㅠㅠ 우리가 후밴데 우리랑 똑같이 엄청 꾸벅 인사해 주셔……. 해원 선배님은 맨날 우리 편하게 해주려고 장난치시고ㅋㅋㅋ]
요즘 햇살이들이 종종 후배들이 우리 이야기를 하는 걸 가져다가 보여줄 때가 있었다. 다른 팀의 멤버가 올린 글을 어떻게 알고 가져왔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르지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 보일까 봐 참고 진짜로 물어보지는 않고 있다.
내 생각에는 아직도 내가 신인 같고, 여전히 모르는 게 엄청 많은 느낌인데 점점 음방을 가면 후배가 늘어나고 있었다.
후배들이 인사하러 오면 나름으로 열심히 받아준다. 나를 제외하면 우리 멤버들이 다 후배든 선배든 상관없이 똑같이 어려워하는 놈들이기 때문에, 허리까지 꾸벅꾸벅 숙여서 인사하는 게 착해 보였나 보다. 늘 서로 ‘누가 오래 인사하나’ 내기하는 것 같이 돼서, 중간에 내가 끊고 후배들을 나가라고 내쫓았다. 그게 편하게 해주려고 장난치는 것처럼 보였다니 다행이다.
햇살이들이 보여준 것 중에 뉴데이즈의 작곡 멤버, 채유호가 올린 것도 있었다. 그리고 채유호는 나에게 개인적으로도 연락을 했다.
[뉴데이즈 유호 : 형 정말 형 덕분에 곡 나왔어요 저 정말 포기할 뻔했는데…….]
[뉴데이즈 유호 : 형 혹시 3분 정도만 시간 내주실 수 있으세요? 이번 앨범도 드리고, 부모님이 형 꼭 드리라고 먹을 것 좀 챙겨주셔서요.]
[시간 많지ㅋㅋㅋ]
[회사인데 어디야?]
[뉴데이즈 유호 : 저 여기서 선유도 5분 안에 도착합니다!]
뉴데이즈는 이제 완전히 멤버 채유호가 만드는 곡으로 타이틀을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특히 작곡 고민을 너무 많이 해서, 몇 번 전화로 상담을 해줬다.
채유호는 정말로 5분 안에 도착했다. 물어볼 때마다 바쁜데 미안하다고 하더니, 이번에 앨범이 나오자마자 부모님이 챙겨주셨다는 각종 해산물과 함께 회사까지 찾아온 거였다. 숙소에서 멤버들과 먹어야겠다. 술 좋아하는 05들이 엄청 좋아할 게 분명했다.
그나마 우리 멤버들이 낯을 안 가리는 팀들이 같이 더 라이징을 나온 팀이니까, 다들 오래갔으면 좋겠다. 물론 싫은 팀도 있지만, 그렇다고 ‘망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내 팀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간절했다. 나는 정말로 온전히 우리 팀의 성공에 집중하고 싶었다.
* * *
“해원이 쟤는 뭐…… 정치할 건가? 뭔 사람을 저렇게 후리고 다녀.”
정해원이 채유호와 만나서 해산물을 두 손에 들고 온 걸 보며 부대표가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정해원은 선배고 후배고, 심지어 내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인맥을 넓혀가고 있었다.
강효준 대표가 좀비처럼 눈을 반만 뜨고 커피 캡슐을 꺼내며 말했다.
“쟤 바빠서 정치를 시켜줘도 안 할 것 같은데요. 음악 말고는 관심이 없어서.”
“어휴, 뭐 자기는 아닌 것처럼 저렇게 뻔뻔하게……. 눈이나 다 뜨세요.”
“이상하게 커피를 마셔도 잠이 안 깨네.”
강효준 대표가 말하며 이상하다는 듯이 커피를 보더니 중얼거렸다.
“……아, 디카페인이었구나. 이게 왜 있지.”
아침부터 계속 커피를 마셔도 잠이 안 깨더니 이유가 있었다. 그런 강효준 대표를 본 부대표는 디카페인이 아닌 커피 캡슐을 찾아주고 이 회사는 틀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떠났다. 강효준 대표는 드디어 카페인을 수혈하며 수정된 제안서를 확인했다.
올해 말이면 클라루스와 VVV엔터 1본부와의 계약이 끝났다.
강효준 대표는 클라루스에게 어쩌면 손해가 될지 모르는 것을 감수하고 계약해 달라는 부탁을 할 예정이었다.
물론 ‘옛정에 호소’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단기적으로는 손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반드시 이 계약이 유용하리라는 매우 구체적인 계획안이었다. ‘클라루스’라는 팀의 이름을 방치하고, 먼지에 묻히게 하지 않겠다는 출사표이자, 확신을 멤버들에게 줄 생각이었다.
* * *
컨셉 포토 반응은 좋았고, 선주문량은 180만 장을 넘어섰다.
180만 장.
나는 그 숫자를 듣자마자 한효석과 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덤벨 운동을 하는 사이, 한효석이 카운트를 해줬다.
“일곱…… 일곱.”
“야, 인마.”
“어, 형. 이거 아니지.”
“여덟 해!”
“아니, 형이 여덟을 해야 세죠.”
“여덟, 여덟, 여덟.”
“일곱.”
“하…… 효식아. 나 소리 좀 질러도 되냐.”
“아, 형. 당연하죠.”
한효석이 활짝 웃었다.
“그러고 나서 한 세트 더 할 수만 있다면…….”
“아니, 안 지르고 그만할래.”
나는 결국 덤벨을 내려놨고, 한효석이 시키는 운동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고 쓰러졌다. 한효석이 혀를 차더니 말했다.
“무거운 거 들고 있다가, 내려놓으면 몸이 가벼운 것 같잖아요.”
“……동의하기 싫지만, 어.”
“그니까 마음이 무거울 때도, 물리적으로 해결하자고요. 우리.”
미친놈아. 꺼져, 꺼져!
나는 소리치고 싶었지만 너무 힘들어서 목소리도 안 나왔다.
선주문량이 180만 장을 넘을 것 같다는 보이드 엔터의 소식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햇살이들이 이만큼 앨범을 사주는 게,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니까. 각자 열심히 일해서, 돈을 아껴서 우리 앨범을 사주는 것이다. 그런 팬들이 정말로 많아야 가능한 숫자였다.
그만큼 좋은 퀄리티의 앨범을 내놓아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해서 말하기도 입이 아까울 정도다. 이번 정규 앨범의 전곡을 내가 만들다 보니까, 그런 ‘좋은 앨범’에 대한 책임에 있어 회피할 곳이 없다는 게 내 나약한 멘탈을 흔들었다.
그래서 내가 그걸 한효석에게 상담한 게 나비효과로 돌아왔다. 아니지. 솔직히 이럴 줄 알았다. 자업자득…….
한효석이 ‘마음이 무거울 때는 무거운 걸 들면 해결된다’고 나를 꼬셔 헬스장에 가뒀다. 요즘 하루 종일 연습실에 있어서 안 그래도 체력이 없는데, 남은 체력을 이렇게 꼴아 박고 나니 나는 작업실까지 갈 힘도 남지 않았다.
“효식아, 형 업어조. 못 일어나.”
“형, 그럼 제가…….”
“아니야, 너 가. 꺼져.”
산뜻한 저 표정을 보니 운동 좀 더 하면 업어준다고 할 게 뻔해서 꺼지라고 했더니, 아직도 안 지쳤는지 매트 운동을 하러 갔다. 원래 발레가 전공이라, 한효석의 스트레칭은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한효석이 할 때는 수월해 보여서, 몇 번 따라 해보려다가 근육 찢길 뻔한 이후로 다시는 따라 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한효석의 개소리에 동조하기 싫지만 마음이 무거울 때 무거운 걸 들었더니, 진짜 좀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저렇게 무거운 게 많은데 내 마음까지 굳이 무겁게 가질 필요가 있나 싶다. 사실 너무 힘들어서 불안해할 체력도 없었다.
뭐, 여러모로 효과가 있다 보니 마음이 우울하면 제일 먼저 한효석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왜 내 스스로 고통을 불러들이는 건가, 한효석과 운동하는 내내 후회하다 보면 내가 뭘 걱정했었는지조차 잊게 되곤 했다.
그러나 편하게 누워 있다 보니 다시 180만 장이 떠오르려 해서 고개를 휘휘 젓는 찰나를 귀신같이 눈치챈 한효석이 말했다.
“형 그럼 마무리로 간단하게 스트레칭 한번 하고 가요.”
“아, 스트레칭 시작할 때 뭘 또 해.”
“스트레칭하면 덜 힘들다니까요?”
“아, 나 안 할래에. 네가 로우덤벨만 하고 끝낸다며어.”
“에이, 제가 언제요. 형, 형이 세계 최고 아이돌이에요. 인정할 테니까 빨리 일어나요.”
한효석이 말하며 날 질질 끌고 매트로 데려갔다. 괴롭다…….
그러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신지운과 안주원이 운동하러 들어왔다. 둘은 역시나 한효석을 보고 바로 뒷걸음질쳤다.
“어, 공오, 공오 도망친다.”
내가 바로 손가락질하니까 한효석이 환하게 웃으며 움찔거리는 05 둘을 돌아봤다. 신지운도 안주원도 날 지옥에 끌어들인 악마처럼 봤다. 미안하지만 내가 살아야겠어……. 한효석이 말했다.
“아, 운동할 맛 나는 형들이네.”
“야. 나 뭐. 열심히 해줬잖아.”
억울했지만, 나는 한효석의 관심이 신지운과 안주원에게 쏠렸을 때 재빨리 도망쳤다.
고통을 겪고 나니까 180만 장에 대한 부담이 좀 줄었다.
어쨌든 한효석과 운동의 큰 효과는 내가 아까 한 걱정이, 한효석과 운동을 해야 할 정도로 큰 걱정이었는지를 비교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안 해도 되는 걱정들은 ‘한효석과의 운동’ 앞에서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
그렇게 운동을 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려고 차에 타는데 스파이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아보니 스파이가 말했다.
-어, 해원아.
“응. 이춘형 관련된 거 뭐 좀 찾았어?”
-어, 불법적인 의심이 되는 게 하나 있는데…… 이게…… 아니다. 증거까지 찾아보고, 다시 연락할게.
“왜? 뭔데?”
-아냐. 아직 의심 단계라서 말해주긴 좀 그래.
“근데 확실히, 법을 완전히 위반한 거야?”
-응. 그건 확실해. 근데 이게, 확실한지 알려면 이춘형이랑 좀 더 가까운 사람을 알아야 할 것 같거든? 나는 아무래도 지난번에 너 해코지하라고 보낸 전 수행비서 있잖아. 그놈이 내 얼굴 봐서 이춘형 측근들이 절대 나한테 빈틈을 안 줘.
“빈틈을 안주는데, 법을 완전히 위반한 건 어떻게 안 거야? 철저히 숨긴 거 아니야?”
-아, 나도 살짝…….
법을 어겼구나.
나는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 더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스파이가 물었다.
-혹시 이춘형한테 접근해 볼 만한 사람 있어?
음…….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스파이에게 물었다.
“나는?”
-너?
“내가 효준이 형 배신하고 왔다고, VVV엔터에서 계약 후하게 해달라고 하면서 이춘형한테 접근하면 믿을까?”
-……응. 이춘형은 믿을걸.
“그래?”
-응, 네가 원래 사교성이 좋잖아……. 그리고 이거는 그냥 내 생각인데, 네가 좀 이춘형이 딱 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나. 그런 게 좀 있어.
“에이, 그건 뭐야.”
나는 대답하며, 이중스파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 원래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는 거니까. 이춘형에게 친근하게 말 몇 마디 걸어보는 거야, 크게 손해될 게 없다.
나는 좀 더 알아보고 연락한다는 스파이와 연락을 끊고, 연습실로 향했다.
잠시 후 음악방송 넥스트위크에서 처음으로 우리 새 타이틀이 짧게 지나갈 예정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최대한 몸과 마음을 바쁘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음악방송에서 퍼스트라이트 정규 3집 타이틀, ‘Youth’의 10초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