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96화
정해원은 분명히 뭔가를 꾸미고 있었다. 또다시.
강효준 대표는 처음에는, 정해원이 있는 게 사업하는 입장에서 돛단배에 부는 순풍 같은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돛단배는 자기가 물고 나온 수저로 수월히 뚝딱뚝딱 만들었고, 거기에 순풍이 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해원은 마치 배의 숙명은 항해기 때문에 잠시도 정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 선장 같았다. 다른 배가 못 뜨는 지금 나가면 만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선원들을 꼬드기는 미치광이였다.
어찌 되었든 그 선장에게 배를 맡긴 건 자신이었기 때문에, 강효준은 억울하지만,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정해원은 황당함을 넘어 불쾌함까지 드러내는 강효준 대표의 표정을 힐끔 보더니 히히 웃고는 멤버들에게로 돌아갔다.
분명히 뭔가 위험한 짓을 하려는 거였다.
강효준 대표는 복도로 나오자마자 스파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했지만 워낙 입이 무거워 말해줄 것 같지 않았다. 개인의 성취를 위해서 스파이 짓을 하는 거라면 바로바로 VVV엔터 부사장인 자신에게 보고를 했을 테지만 이 스파이는 아니었다. 개인의 성취를 위한 게 아니라 정말로 오로지, 오로지 개인의 즐거움을 위함이다.
“……왜 이렇게 미친놈들이 많지.”
강효준 대표는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드디어, 정해원의 스파이가 아닌 강효준의 스파이도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 * *
무대는 두 가지였고, 오늘 Lunatic will be king의 사전녹화였다. 타이틀과 커플링곡의 분위기가 엄청 달랐기 때문에, 사전녹화를 이렇게 두 번 하게 되었다.
다들 탈색에 강한 내 머리를 그냥 두기 아까워해서, 모처럼 다시 탈색을 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탈색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탈색을 한 앨범이 더 신경을 썼다, 이런 건 아니지만 좀 더 ‘중요한 기점이다’는 맞는 것 같다.
“이게 무슨 색이지? 밝은 청록색?”
내가 내 머리 색을 거울로 확인하며 중얼거리니까 신지운이 본인 얼굴을 감상하다가 별 관심 없이 날 보며 말했다.
“그게 중요해? 내가 잘생긴 게 중요하지.”
어휴, 징한 놈…….
나는 신지운을 떠밀어 버리고, 커플링곡 분위기에 맞게 내 옷을 찾아 입었다.
루나틱은 말 그대로 ‘이상하게 만들어보자’라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그냥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었다.
천둥이라든지, 빗소리가 많이 들어갔다. 중간중간 내 생각에 ‘미친 소리’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을 많이 집어넣었다. 특히 웃음소리를 넣고 싶어서 미친 사람처럼 웃는 소리를 일곱 명이 다 한 번씩 시도해 봤다.
의외로 신지운과 안주원이 제일 잘했다. 이것도 연기는 연기여서, 연기 경력자들이 제일 내가 원하는 웃음소리를 수월하게 내줬던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의 웃음소리를 효과음으로 사용해서 필요한 곳에 중간중간 넣었는데 아주 미친 것 같고 좋았다.
낮은음으로 그르렁거리는 소리는 황새벽이 내준 걸 썼다. ‘반 정도 미친 늑대인간 같은’ 소리를 원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황새벽이 민망하다고 안 할 것 같아서 표현을 바꿨다.
‘새벽 세 시 반에 민조가 갑자기 연습실이 너무 가고 싶다고 깨울 때 낼 것 같은 소리’로. 어찌 됐든 ‘미치겠다’는 점에서 동일해서 인지 내가 원하는 그르렁 소리가 완벽하게 나왔다.
나는 이너를 입고 위에 크롭 재킷을 입었다. 전체적으로 보라색과 검은색의 이미지를 쓰면서 만든 곡이었기 때문에 의상도 그 두 가지 색깔을 강조했다. 한효석이 나에게 말했다.
“와, 형. 운동한 보람이 있어요.”
“운동시키려고 밑밥 깔지 마.”
“아니, 형은 타고 난 운동신경이 있는데 안 하니까…….”
“솔직히 타고 난 걸로 치면 황새벽이 타고났지.”
내 말을 귀신같이 알아들은 황새벽이 정색하며 돌아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한효석이 말했다.
“형 저랑 운동해요.”
“난 운동이 싫은 게 아니라 네가 어색한 거야.”
“그니까요. 어색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 봐요, 형.”
“그거 지금 설득하는 거냐? 영원히 운동에서 손 떼게 하는 거 아니고?”
“운동 한 번 안 해도 힘이 이렇게 센데 운동하면 장난 아닐걸요.”
창과 방패였다. 그래도 요즘엔 둘이 서로 안 맞는 걸 화제로 삼고 있어서, 어쩌다 취향이 맞으면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모든 게 정반대인 컨셉을 잡고 싶은 모양이다. 뭐든 스치면 자기 컨셉으로 가져오는 게 아주 아이돌 그 자체였다.
무리한 연습 스케줄로 좀 낮아져 있던 컨디션은 무대 앞에서, 팬들이 기다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천장 없이 치솟았다.
우리는 금방 신이 나서 무대로 향했다.
* * *
퍼스트라이트 팬이자 걸그룹 CICA의 멤버 루아, @ruarua_nim은 스캔들의 후유증으로 이번 앨범은 쉬어갈까도 잠깐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선공개 트레일러가 나왔을 때, 루아는 본인이 휴덕을 고민했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이어서 나온 세 개 버전의 컨셉 포토도 순서대로 공개될 때마다 전부 좋았다.
‘영원’이라는 주제에 맞춘 세 가지 버전 중 첫 번째, ‘mythology’가 공개될 때부터 팬들은 해석에 열을 올렸다.
첫 번째 버전은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컨셉 포토였다. 멤버 각자가 하나씩 신화를 모티브로 해서 컨셉 포토를 촬영했는데, 공개되는 순간 ‘포카 제발’이 실트에 올라왔다.
루아는 이미 덕밍아웃 한 거, 당당하게 친구들과 모여 앨범깡을 했는데 정해원의 포카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곧 럭키드로우가 포함된 세트가 올 테니 기대해 볼 수 있는 데다가, 최애가 아닌 누가 나와도 완성도 높은 포카들 뿐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이미 만족스러웠다.
[타팬인데 진심 7명 다 잘 나왔다]
[퍼라 컨포 장인이네]
[퍼라는 모던한 것도 맛집인데 컨셉츄얼한 것도 X나 잘 받아먹더라]
[↳멤버마다 다 다른 상징물 들고 있는 거 덕후 심장을 울림ㅠㅠㅠㅠ]
[진짜 미치겠다 개완벽함]
[멤버마다 신화 컨셉이랑 상응하는 식물 가져다 놓고 찍은 거 심하게 변태같다]
[퍼라 신지운 컨포 X나 좋아 자기 얼굴 보고 있고 수선화 있는데 수선화 학명이 나르시스…….]
[↳개잘어울린다]
[↳과몰입 미치겠네]
그리고 다행히 루아는 새로 지른 세트, 첫 번째 버전에서 정해원의 포카를 얻었다. 본인의 탄생화이자, 페르세포네가 하데스가 건넨 석류를 먹고 1년의 일부를 명계에서 보내게 되었다는 신화를 배경으로 컨셉 포토 촬영장의 포카였다. 컨셉 포토는 정해원이 석류를 권유하는 듯한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탄생화…… 석류…….”
루아는 감격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바로 포카를 겹겹이 둘러싸 보관하며 두 번째 버전을 확인했다. 두 번째 버전은 ‘timeless’로, 유행을 타지 않는 패션에 관한 화보였다.
그리고 세 번째 버전, ‘Eternity’가 공개되었을 때, 루아는 꽤 긴 시간 컨셉 포토를 보고 있었다. Eternity, 영원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컨셉 포토의 주제는 퍼스트라이트였다.
[퍼라 세 번째 컨포 뭐야ㅠㅠㅠㅠ]
[↳왜왜?
[↳↳버전 제목이 영원인데 전부 단체 사진…….]
일곱 명 단체, 혹은 서너 명, 적어도 두 명씩은 모여 있는 컨셉 포토가 버전 3의 포토북을 채우고 있었다. 일곱 명이 맞춰서 쓴 적 있던 폰케이스, 반지 등의 사진도 함께였다.
[퍼라팬들 세 번째 컨포 나오고 X나 오열중ㅋㅋㅋㅋㅋㅋㅋ]
[↳그럴 수밖에 없지 않냐 팬들한테 우리 팀이 영원할 거라고 앨범 컨셉으로 보여 주는데…….]
[퍼라 컨포 진짜 현실에 없는 이상적인 청춘같다]
[↳아 그러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색감 너무 좋다]
[퍼라 아련하면서 날티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같이 있을 수 있는 표현이냐ㅋㅋㅋㅋㅋㅋㅋ]
[기사에 해원이 인터뷰도 좋아 아이돌이야 말로 영원을 말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대ㅠㅠㅠㅠ]
[↳해원아ㅠㅠㅠㅠㅠㅠㅠ]
[↳진짜 퍼라 분위기 너무 부럽다…….]
루아가 퍼스트라이트 컴백 당일까지 덕심에 빠져서 매사 나사 풀린 사람처럼 헤헤거리고 돌아다니고 있을 때, 동갑내기, 적은 말수가 청순함으로 이미지가 잡힌 정시연이 옆에 와서 앉았다. 루아가 시연에게 말했다.
“30분 남았어.”
“응.”
“아, 나 떨려 어떡해. 어, 민조 X버스 왔다.”
“선배님.”
“민조 선배님 X버스 오셨다.”
“지호 선배님.”
“아…… 미안해. 카메라 앞에서는 실수 안 할게.”
친구는 루아의 덕질에는 별말이 없었지만, 무심코 호칭을 떼고 말하면 옆에서 꼬박꼬박 고쳐줬다. 루아가 자기 입을 탁탁 때리고 심호흡했다.
“아, 미치겠다. 새로고침 할까?”
“응.”
“우와, 떴어! 떴어, 어떡해!”
“…….”
노트북으로 새로고침을 하고 옆에서 방방 뛰는 루아와 달리, 침착하던 시연이 리액션 영상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조정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
“선배님, 애칭 안 돼. 욕 안 돼.”
“알았어. 진짜 조심할게.”
“과하게 흥분하지 말고.”
“그건 안 돼.”
“말은 해봤어.”
시연이 말하고 리액션 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루아는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질렀다.
“악! 주원이…… 선배님…… 와, 미친 거 아니야? 와, 시작부터 이렇게 얼굴로 충격 주고 시작하는 거 반칙 아냐? 우와…… 와!”
루아가 옆에서 비명 지르고 팔짝팔짝 뛰는 내내, 시연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잊을 만하면 한마디씩 했다.
“음…… 명곡이네.”
“어머어머, 천재 작곡가. 아, 와, 너무 좋다, 진짜. 어어, 우리 천재 메보…… 선배님.”
“OIN 스튜디오랑 퍼스트라이트 선배님 합이 잘 맞는 것 같아.”
[영원한 게 싫었어 슬픔도 영원할까 봐]
[젊음은 유한하고 영원은 거짓말쟁이들의 약속이라고]
시연도 처음 듣는 순간부터 심장을 뛰게 하는 곡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뮤직비디오도 마치 곡과 동시에 기획한 것처럼 완벽하게 어우러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뮤직비디오의 감독이 정해원과 솔로 작업까지 함께한, OIN 스튜디오 홍 감독이었기 때문에 충분한 소통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게 신인 입장에서는 부러운 부분이었다.
[이제는 영원을 영원을 영원을, 말해]
[이제는 영원을 영원을 영원을, 말해]
무엇보다 ‘영원’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팬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돌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황상 리패키지가 나올 가능성이 커 보였다. 시연은 벌써부터 리패키지의 음악들이 궁금해졌다.
시연은 철저히 롤모델로서 퍼스트라이트를 분석하느라 옆에서 루아가 사실상 녹화를 포기한 걸 뒤늦게 알았다.
“아, 노래 너무 좋아. 어떡해. 어머어. 아, 하라메 나온 부분…… 으아악! 최애, 최애! 내 최애! 얼굴! 얼굴! 어, 잘생겨서 눈물 나와…….”
“……이 영상은 못 쓰겠다.”
시연은 체념하고 뮤직비디오나 마저 분석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