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98화
탑백 진입 15위.
그리고 초동이 뜨기 시작했다.
[4시 36만 장]
[↳오 시작부터 크게 터졌네]
[6시 77만 장]
[↳이거 많은 거임?]
[↳↳하루에 77만 장이 그럼 적냐ㅋㅋㅋㅋㅋㅋ]
[↳↳↳아니 요즘 300만 장도 팔고 그러니까…….]
[↳↳↳↳초동으로 300만 장 넘게 파는 팀 딱 두 팀임ㅋㅋㅋㅋㅋ]
[퍼라 슈스네 6시 77만 장이 적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누구랑 비교하는데 적냐ㅋㅋㅋㅋㅋㅋ]
[내 돌 총판 36만 장 나오면 나 광화문에서 머리 풀고 춤춘다ㅎㅎ]
[↳좋은 의미로 광화문에서 머리 풀고 춤추는 돌팬 보고 싶다]
[↳↳웅웅 고마워 나도 그러고 싶다ㅠㅠㅠ]
클라루스 멤버, 송다온은 퍼스트라이트의 신곡 정규 앨범을 쭉 확인했다.
“아, 어떻게 곡이 다 좋냐.”
진심으로 부러웠다. 열심히 만든 좋은 앨범으로 컴백 해서, 좋은 반응으로 활동하고 있는 게. 상승세를 타고 있는 그 순간의 벅참이 떠올랐다. 좋은 앨범을 들고나왔을 때, 팬들을 ‘사는 게 재미있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벅차게 만들었을 때의 희열은 어느새 추억이 됐다.
퍼스트라이트에게는 그게 현재라는 게 부러웠다.
멤버 전원 제대 후 첫 컴백이자, 아마 클라루스의 마지막 컴백이 될 활동이 끝나고 나서 잠깐은 멤버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동안 얼마나 무대가 그리웠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길지 않았고, 멤버 단톡방은 다시 얼어붙었다.
너무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멤버들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좀 많이 이상했다. 가족보다도, 학교 친구들보다도 더 많이 본 사람들이었다. 같이 있으면 마냥 재미있는 친구로서의 시기를 넘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가족 같아졌다. 가족 같다는 건 절대적인 아군일 때가 있는 만큼, 꼴보기 싫어지는 순간도 많은 사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독립해서 숙소에 채연재만 남았을 때, 다른 멤버들이 빈 둥지 증후군 생기는 거 아니냐고 낄낄거리며 장난을 쳤었다.
그렇게 따로 살아보니 자유로우면서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고독감이 쏟아졌다.
“너무 오래 같이 살았나?”
송다온이 투덜거렸다.
독립을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새삼 신기했다. 기껏해야 자기보다 두 살 많은 채연재가, 막내라고 해도 채연재보다 겨우 네 살 어린 이 팀의 멤버들과 함께 있으면 세상 다시 없이 자기희생적인 사람이 됐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멤버들과 있을 때만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송다온의 동갑내기이자 위로 형이 둘이 더 있는데도 리더로 살아온 서민혁도 마찬가지였다. 서민혁은 원래도 상남자 같은 면이 있기는 했지만, 동시에 호인이기도 했는데, 클라루스에 손해가 가는 일이 생기면 쩨쩨할 정도로 하나하나 재고 비교하고 따지고 싸움을 걸었다.
송다온 본인도 올해 서른셋이 되었는데, 여전히 힘들면 멤버들에게 연락하고 징징거리고 치댔다. 평소에는 애교 비슷한 것도 없는데, 멤버들과 있으면 팬들이 ‘막내딸’이라고 부르는 그 모습이 나왔다.
강효준이 어떻게든 클라루스를 계속 이어가게 하겠다고 했는데, 진짜로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강효준이 가져온 장기 프로젝트는 확실히 좋았다. 멤버들과 여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멤버들도 분명히 좋아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게 정해원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라는 게 제일 신기했다. 어떻게 멤버의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은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지?
사실, 정해원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대해서는 놀라기도 지쳤다. 정해원은 그냥 인간 자체가 신기했다.
얼마 전에 우연히 퍼스트라이트 음방 앵콜 무대에서 패닉 상태에 빠진 정해원의 편집 영상을 봤다. 퍼스트라이트와 아이노가 북적북적하게 무대를 채우며 그 순간을 넘겨주는 모습이었다. 영상 조회수가 어마어마해서 알고리즘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런 멘탈 상태로도 평생 사랑만 받고 자란 사람 같은 노래를 잘도 뽑아냈다.
본인이 버겁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천재성이었는데도, 거기 매몰되지 않고, 건방져지지도 않았다. 이제 스무 살 좀 넘은 놈이!
열 살이 어린 동생인데도 어딘지 형 같고, 노련했다. 제일 신기한 건, 본인이 그렇게 신기한 인간이라는 걸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살면서 각종 인간군상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인간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못 볼 것 같았다.
그렇게 정해원의 미스터리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하며 퍼스트라이트의 음악을 듣고 있을 때, 곡이 넘어갔다. ‘Letters to’였다.
나머지 곡들과는 약간 분위기가 달라서 확인해보니 정해원 작곡에 안주원이 선두 작사, 그리고 정해원을 포함한 나머지 멤버들의 이름이 전원 작사에 올라와 있었다.
[말하지 못한 것들을 편지로 적을게]
[매일 봐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 부끄러워서]
[그래서 그냥 연필로 적을게 키보드보다는 느리게]
[그 속도대로 생각하며 적을게]
(새벽)
[새벽에 태어난 락스타]
[항상 멤버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만]
[리더는 스스로를 챙겨야 일곱 명이 돼]
[모두가 웃을 때도 네 눈은 옆을 보고 있어]
[슬플 때 가장 먼저 알아주는 사람이란 거 알아]
(해원)
[내 친구 생일은 늦지만 가장 형 같은 프로듀서]
[화려한 세상이 불러도 새벽별 하나 켠 시퀀서 앞에 앉아]
[주어진 휴식도 너에게는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
[당연한 일을 한다는 듯이 말하지만]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아]
(주원)
[우리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특이함]
[그래서 네 가사가 좋더라]
[힘들 때 나보다 남이 먼저인 건 강한 거야 네가 그래]
[그나저나 거울을 보고 불평 좀 하지 마]
[네가 그러면 세상의 거울을 없애야 할걸?]
(지운)
[본인이 귀엽다고 믿는 거대한 자몽]
[천일의 한 번 정도는 귀여울 때도 있어]
[그 외에는 네 말을 믿어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우리 팀이 영원을 말할 수 있는 건 네가 있어서야]
[열일곱 살이던 해부터 그렇게 말해온 게 너의 의리]
(효석)
[너의 규칙이 우리 팀을 장기적으로 이끌어]
[싫은 소리가 즐겁지 않은 것도 알지만 좀 더 해줘]
[네가 제일 귀여운 동생은 아니지만]
[형 같은 동생도 괜찮지 않아?]
[아이돌과 발레는 너에게서 공존해]
(지호)
[무대 위의 슈퍼파워 힘을 나눠 받아]
[멸망이 코앞까지 닥쳐도 노래하고 춤을 출]
[아이돌이 아닌 상상은 불가능해]
[무대를 즐기는 법을 사랑하는 법을]
[옆에서 춤추며 웃는 너를 보며 알게 되었어]
(선재)
[집에서도 퍼스트라이트에서도 막내]
[형들을 책임지는 동생, 친구를 업고 달리는 빠른]
[마지막에 태어났지만 첫 번째로 노래해]
[세상에 슬픔이 자욱하더라도]
[너의 노래는 세상을 웃게 해]
[말하지 못한 것들을 편지로 적을게]
[매일 봐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 부끄러워서]
[그래서 그냥 연필로 적을게 키보드보다는 느리게]
[그 속도대로 생각하며 적을게]
찾아보니 안주원이 멤버들에게 쓴 편지를 정해원이 곡으로 만들었다는 모양이었다. 피아노와 신스 사운드가 비교적 단순하게 만들어져 가사를 더욱 귀에 확실하게 꽂히게 했다. 하지만 리듬이 좋아서 전혀 심심하게 들리지 않았다.
노래와 랩이 반반 섞인 노래에서는 멤버들이 이 녹음을 하면서 엄청 민망해하고, 웃었다는 것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민망해하면 민망해하는 대로, 웃음소리는 웃음소리 그대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었다. 그런 사운드까지 전부 음악의 일부로 녹여 만든, 멤버들과 팬들을 위한 음악이었다.
“아, 팬들이 진짜 좋아하겠다.”
송다온이 중얼거리며 의자 뒤로 기댔다.
그렇게 앨범이 한 바퀴 돌고, 다시 첫 번째 트랙으로 돌아왔다. 이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음악과 신지운이 쓴 짤막한 랩이 있는 Eternity였다.
[I believe without a doubt, 영원을, 영원을]
그리고 두 번째 트랙인 타이틀로 이어졌다.
[끝이 없는 것처럼 영원을 말해 영원히 살 것처럼]
[영원히 춤추고 영원히 노래할 것처럼]
이상하게 울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클라루스는 데뷔 초부터,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빛’이라는 키워드를 주요하게 여기며 앨범을 만들어왔다. 팬들은 그래서 영원하다는 말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게 이제 끝나간다는 게 생각해보니까 말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싫었다. 멤버들도 싫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송다온은 다시, 강효준이 준 기획안을 펼치고, 강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이 기획안, 우리 멤버 중 누구랑 같이 회의한 거 아니야? 진짜 해원이 아이디어야?”
-그렇다니까. 빌드업은 우리가 했어도, 뼈대가 되는 아이디어는 전부 정해원이 만든 거야.
“타이틀도 우리 영향 있지?”
-영향 정도가 아니지. 미국에서 클라루스 팬들이 광고 걸어놓은 걸 봤대. 그걸 보고 나서 만들어왔더라고, 타이틀. 너한테 미리 연락하지 않았어?
“아, 몇 달 전에 연락한 그게 그 얘기였구나.”
안 그래도 정해원이 장문에 문자를 보냈었다.
길에서 클라루스 팬들이 걸어놓은 ‘영원히 빛나자 클라루스’라는 광고를 보았다는 이야기였다. 자세히 말은 안 했지만 팬들이 클라루스 계약 종료라는 우려 때문에 걸어놓은 광고였으리라는 것을 안 봐도 알았다.
그걸 보고 곡을 만들 건데, 그래도 되냐고 물었다. 그걸 뭐 하러 허락받냐고 그때는 대답하며 웃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곡이 나오면 꼭 들어달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정해원은 클라루스의 해체에 크게 이입하고,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했다.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걔는 아이돌이라는 직업에 뼈를 묻었잖아. 그런데 솔직히, 한국 대중음악이……. 아니, 한국이라고 안 붙여도 그냥 대중음악이 클라루스 빼고 말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너희가 더 오래 뭐…… 역사를 기록해주길 바라는 것 같던데.
그 말에 송다온이 흐흐 웃더니 대꾸했다.
“그래봤자 스키퍼잖아.”
-그게 뭐가 중요하냐? 오히려 룩스도 아닌데 이렇게 열정적인 거에 더 점수 줘야 하는 거 아냐?
“전혀 아니야. 이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이 잘도 케이팝을 하고 있네. 룩스가 제일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내 팬이 제일 먼저 보이는 거야. 이건 세상 모든 아이돌이 다 똑같다…… 그보다 너 얼마 있어.”
송다온의 질문에 강효준이 어이없어 웃었다.
-지금은 보이드랑 영화 몰빵했고, 너희 중에 한 명이라도 보이드에서 잡으면 할아버지가 투자해준대.
“어? 어이없네. 나부터 잡아야지 영화 투자를 왜 해. 어떻게 돈이 없어?”
-하, 나 진짜 살면서 돈 없냐는 얘기 처음 듣네.
“없잖아.”
-좀은 있어, 너 잡을 만큼 없는 거지.
“그게 없는 거지. 계약하자며. 내가 일순위가 아니야? 너 이렇게 건성으로 할 거냐?”
-야, 고민 끝나면 계약금이나 제시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만들어 놓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송다온은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다시 퍼스트라이트의 타이틀 유스를 들었다.
[우리의 기억은 영원한 슬픔까지도 반짝이게 해서]
[우리의 순간은 영원한 슬픔까지도 반짝이게 해서]
[이제는 영원을 영원을 영원을 말해]
안 그래도 정해원이 얼마 전에, 타이틀을 만들 때 클라루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화로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게 이런 부분일 줄은 몰랐다.
언젠가 팬들에게 본인들이 했었던 약속을, 지금은 퍼스트라이트가 자신의 팬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송다온은 단톡방을 열고, 모처럼 레터스 투와 유스 두 곡을 보냈다. 그리고 이어서 적었다.
[멤버들 나]
[보이드랑 계약할래]
[근데 강효준 돈 없대]
[그래도 할 거야 양가 할아버지가 재벌인데 설마 계약금을 안 주겠어?]
[일단 나는 그럴 거야]
[클라루스를 계속하고 싶어서]
그리고 답을 보기가 무서워서 핸드폰을 멀리 던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