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99화
그렇게 핸드폰을 던지고 5분 뒤, 클라루스 송다온은 다시 슬금슬금 핸드폰을 집어 들어 단톡방을 확인했다. 숫자 5가 남아 있는 걸로 봐서, 아직 한 명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
“아, 왜 안 봐, 이 바쁜 인간들아.”
평소에도 아주 대담한 편은 아니던 송다온은 초조한 얼굴로 다시 핸드폰 화면을 꺼서 소파에 두고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몇 걸음 걸어가는데 핸드폰이 울려서 돌아보니 클라루스 멤버이자 한 살 동생인 박윤태로부터 전화가 오고 있었다.
멤버 중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올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왕 전화가 올 거면 형이나, 최소한 형 같은 친구 서민혁에게서 오기를 바랐다. 그 셋에게는 칭얼거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막내는 막내라서 또 좀 괜찮았다. 멤버들 중에 제일 전화 받기가 무서운 건 왠지 모르게, 두 명의 동생 중 하나인 박윤태였다.
제대 후에 야심차게 기획안을 준비해왔던, 오랜 브삼에서의 계류로 어느 순간부터인가 열정의 불꽃이 꺼지고, 이번 활동 중에도 ‘다 같이 활동하는 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라는 말을 처음으로 꺼냈던 것이 박윤태였다.
“아오씨, 무서운데…….”
그래도 먼저 저질러 놓고 받지 않을 수는 없으니, 송다온은 자기도 모르게 소파 아래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어어, 윤태야.”
-…….
“야, 전화한 사람이 말을 해야지.”
-…….
숨 막히는 침묵.
송다온은 그 클리셰적인 문장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역시 클리셰란 가장 인간을 잘 반영한 것들이라고. 한 살 동생, 박윤태의 침묵은 정말로 숨이 막혔다.
* * *
컴백을 하고 첫 주는 언제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주말은 출퇴근 시간에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적은 만큼, 팬들의 스트리밍이 조금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요일 우리의 탑백 순위는 4위까지 올라와 있었다. 정규 앨범이라 팬들이 더더욱 뭔가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들었다.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우리는 이번 정규에서 팬들에게 ‘떡밥이 넘쳐 흐른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갈 수 있는 예능은 최대한 다 나갔고, 오늘부터 그 예능들도 하나둘 공개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오늘 내가 혼자 나간 유튜브 채널 업로드가 있어서, 스케줄과 스케줄 사이에 모니터링할 생각이었다. 다음 스케줄이 VMC에서 잡아 놓은 컴백쇼라, VMC 빌딩에 간 김에 VVV엔터가 있는 층으로 갔다. 그리고 강효준 대표에게 모니터링 겸 밥 먹자고 하려고 부사장실에 가보니 전화 중이었다.
“야, 고민 끝나면 계약금이나 제시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만들어 놓을 테니까.”
계약금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괜히 좀 설렜다. 클라루스 멤버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듣고 있는 사이에 강효준 대표가 전화를 끊었다. 내가 물었다.
“누구예요?”
“송다.”
“계약금 얘기했어요?”
“어, 내가 돈이 없다고 무시하더라고.”
“형 진짜로 돈 없잖아.”
“뭐, 너도 빚쟁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열심히 갚고 있다. 물론 퍼스트라이트가 잘 되기는 했어도, 내가 송다온, 그리고 클라루스 앨범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못 갚고 파산할 양이었다. 다행히 미국 시장의 힘이 어마어마한 덕분에 휙휙
메워지고 있었다. 사실 내가 송다온과 작업하게 된 것도 강효준 대표가 인맥을 쓴 덕분이라는 걸 생각하면, 사실 나는 저 형이 없었으면 그냥 파산이었다. 이후에 폴 존스와 콜라보한 음원이 잘 되면서 대출에 대한 걱정을 거의 확실히 놓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진짜 객기를 부렸구나, 싶어 철렁하면서 강효준 대표가 고마우면서 동시에 저 형이 대출받으라고 부추겼잖아?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내 결정에는 퍼스트라이트 관련 모든 라이선스를 TRV에 남겨놓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이 가장 컸다. 그리고 TRV 부대표의 지분을 전부 넘겨받은 덕분에, 박종렬 엔터의 지분도 다소나마 가지게 됐다.
언젠가, 내 예지몽에서 키우던 걸그룹의 연습생이 박종렬 엔터나 TRV로 들어가게 되면 이 지분으로 어떻게든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다. 그래서 팔지 않고 다 끌어안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어지간히 욕심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회사 근처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배달시켜 먹으며 물었다.
“다온이 형이 보이드로 올 생각 있대요?”
“있나 봐.”
“그 형이 마음이 약하네.”
“내 말이.”
강효준이 동의했다.
그나저나 웬일로 햄버거를 네 개밖에 안 시켰다. 나는 그중에서 내 거 하나를 가져가며 물었다.
“형 요새 돈 아끼느라 조금 먹는 거예요?”
“밥 먹었어.”
“아.”
어쩐지. 조금밖에 안 먹더라.
강효준은 햄버거 한 개를 세 입으로 컷하며 세 개를 먹어치우고 핸드폰을 보더니 일어났다.
“송다가 집으로 와보라는데.”
“왜요?”
“가서 봐야지.”
그러더니 대충 자리를 정리해 놓고 나갔다. 왜 오라고 했는지 몰라서 괜히 나도 쫄렸다. 하지만 집으로 불렀다는 걸 보면 나쁜 소식은 아닐 것 같다는 긍정적인 예상이 들었다.
내가 남은 햄버거를 먹는 사이에 스트리밍이 시작돼서, 도중부터 켜놓고 보기 시작했다.
나는 국선아 시절 출연자였고, 누구보다 일찍 국선아에서 내 악편에 대한 이야기를 확 털어버렸던 신희범의 유튜브에 출연했다.
그래도 한 번은 은혜를 갚는 의미에서 출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유튜브 출연 한번 하라고 먼저 말 꺼냈던 신희범은, 우리가 진짜로 출연하겠다고 할 때마다 자기가 국선아 너무 까서 안 된다고 신희범이 우리를 깠다. 그 형은 아직도 뭔가 나에게 이유 모를 애틋함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제는 나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신희범의 채널은 화제성이 다소 떨어진 상태라 나와줄 수 있냐고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했다. 나는 신희범의 연락이 무지하게 반가워서, 이번 컴백 전에 유튜브 촬영을 해놨다.
내가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신희범이 달려와 날 와락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내가 낯을 가리는 건 아닌데 신희범과 있을 때는 약간 기가 빨리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허허.
아무튼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인사한 후 바로 메이크업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직도 국선아 관련된 질문 제목에 깐 게 제일 조회수가 잘 나와. 너 때문인가 봐. 근데 너 메이크업 지우고 온 거 맞아?
-응, 형이 지우고 오랬잖아.
-얜 뭐 피부가 이래. 별이들 정해원 피부 보여? 카메라 좀 땡겨 봐봐.
신희범은 내 얼굴을 엄청 구체적으로 칭찬해 줬다. 부담스럽긴 했는데 나는 원래 칭찬을 좋아해서 솔직히 좋았다. 히히.
메이크업은 약간의 리패키지 스포였다.
소수의 팬들은 이미 예상하는 부분이지만, 우리의 정규 앨범 컨셉 포토 첫 번째 버전, ‘mythology’는 리패키지 타이틀로 이어졌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멤버 한 명, 한 명의 컨셉을 디테일하게 잡았다.
그래서 신희범은 내 첫 번째 컨셉 포토 이미지를 더더욱 드라마틱하게 강조한 메이크업을 해줬다.
-그니까 명계의 신인 거잖아.
-그치, 그런 컨셉이지.
-컨셉 잘 잡았다. 너랑 잘 어울려.
-나 어두워 보여?
-그냥 하는 말이야, 새끼야. 그럼 안 어울린다고 하냐?
신희범이 짜증 내는 부분이 웃겼다. 국선아 때부터 쭉 웃기던 형이었는데 아이돌 그만두고 전업 유튜버가 되면서 더 뭔가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됐다.
-야, 근데 너네 멤버들끼리 국선아 얘기 해?
-어, 나 처음 합류했을 때는 아예 말을 안 꺼냈는데, 요즘에는 그때 얘기 진짜 많이 해. 또 지나니까 좋은 추억도 있더라고. 우리도 나이가 드는 건가?
-뭐래, 짜증 나게. 야, 나 내년에 서른이야.
-와…… 형이 서른인 거 진짜 이상하다. 형은 뭔가 체감이 그냥 딱 스물네 살에 멈춰 있는 거 같은데.
-그래? 난 진짜 너 확 어른된 게 느껴지는데. 사실 열여덟 살은 진짜 애새끼긴 했지. 생각해 보면 네가 지금도 국선아 때 나보다 어린 거잖아.
-아, 그러네.
-그러니까 그때 내 눈에 네가 얼마나 애였겠냐. 근데 그 애새끼가 나 그때 기회 못 잡으면 끝인 거 아니까 챙겨주겠다고 지 거 양보하고 그랬는데, 방송은 막 그렇게 나가구우…….
-아, 왜, 왜 울어어!
-원래 나이 들면 그냥 눈물이 난다, 인마.
신희범은 나이 핑계를 댔지만 사실 저 형은 국선아 때도 원래 잘 우는 편이었다. 그때도 너무 자주 울어서 욕먹겠다고 또 걱정하면서 울었다. 그때 우린 진짜 걱정이 많았다. 비교해보니 지금의 우리는 정서적으로 훨씬 편안해졌구나, 싶다.
신희범은 몇 년 동안 메이크업 유튜버로 살아온 짬이 있었다. 특히 일반적인 메이크업보다 분장에 가까운 메이크업에 소질이 있었다. 덕분에 헤어도 기가 막히게 만졌는데, 아이돌 연습생 출신이라, 무대를 뛰어도 안 흔들리게 고정하는 것에 엄청 신경을 기울였다.
신희범이 해준 메이크업은 엄청나게 과한데, 그게 컨셉적으로 완성도가 있었다. 회사에서는 촬영 후 그 메이크업에 엄청 만족했다.
그리고 다행히 업로드 후 팬들 반응을 보니까 다들 마음에 들어 하는 게 느껴졌다.
[해원아……. 사진 백만 장 남겨 놨지? 이거 사진 안 남겨 놨으면 아이돌 직무유기야…….]
[↳안 남겨놨을 리가 없어 엉엉ㅠㅠㅠㅠ]
[↳해원이 프로 아이돌이라 이백만 장 정도 찍어 놨을 듯]
[희범이 형 계속 해원이한테 자기 쳐다보지 말라고 할 때 X나 공감함ㅋㅋㅋㅋㅋ저렇게 생긴 애가 빤히 보면 아무래도 그렇죠…….]
[정해원 센 컨셉을 특히 잘 받아먹는듯]
[↳그래서 콘서트에서 보면 평생 못 헤어 나와요……. 친구 따라서 가줬다가 입덕함…….]
[↳↳진짜 해원이는 콘서트에서 봐야 진짜임222]
[다시 봐도 리패키지 타이틀 미솔로지일 듯]
[↳하 설렌다]
[↳내 돌 타이틀로 활동하는 중에 리패키지 떡밥 기다리고 있네 X나 행복하다]
[퍼라 진짜 떡밥 많이 준다 연말 시상식도 거의 다 나가던데]
[↳보이드 가고 떡밥 모자라서 불만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듯]
[↳현생은 없는데 행복하다ㅠㅠ]
햇살이들이 다들 즐거워 보여, 나도 신나서 히히거리다가 컴백쇼를 위해 일어났다. 그리고 컴백쇼 촬영을 위해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하려고 부사장실을 나가려는데 문이 덜컥 열리고 회사 분위기를 무시하고, 자기 아버지 등에 업혀 장선영 부대표를 내보낸 후, 승진한 이춘형 VMC 부대표가 들어왔다. 나는 돌아보며 말했다.
“어, 효준이 형 나갔는데.”
그리고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전할 거 있으면 제가 전할게요. 어차피 컴백쇼 할 때 다시 볼 거라서요.”
“그 새끼가 날 고소했더라고?”
오?
“뭐로 고소를 해요?”
내가 나름 인상을 쓰면서 물어보니까 이춘형 부대표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해원 씨 위협한 사람이 내 전 수행비서인 건 사실인데, 그만둔 지가 언젠데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고소를 해?”
“……그러게요?”
“몰랐어?”
나야 당연히 몰랐다. 허허, 강 대표 일하네.
내가 대꾸했다.
“전혀 몰랐죠. 하, 난 그냥 넘어가고 싶은데 왜 일을 크게 만들지.”
“해원 씨가 시킨 거 아니라고?”
“내가 그걸 어떻게 시켜요. 저 대표님이랑 대화해 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네…….”
내가 투덜투덜거리면서 짐을 챙기고 일어나니까 이춘형 부대표가 인상을 쓰고 날 의심스럽게 봤다. 내가 말했다.
“아, 부대표 승진 축하드려요.”
뭐, 이렇게 친한 척한다고 얼마나 친해지겠냐마는 나는 알고 싶기는 했다.
[스파이 : 일단 작게는 불륜부터 시작해 보는 게 좋겠다]
하, 작게는 불륜…….
나는 나오는 욕을 속으로만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