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00화 (30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00화

송다온이 방금 자신에게 한 말이 믿기지 않아, 강효준이 되물었다.

“네가 보이드랑 계약한다고?”

“어, 한다고.”

강효준은 묘한 얼굴로 송다온을 보다가, 바로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바로 전속계약서를 건넸다.

“자. 시간 오래 걸려도 되니까 읽어봐.”

강효준은 ‘미쳤냐’라는 말은 물론이고 농담도 사족도 붙이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전속계약서를 내놓자 송다온이 물었다.

“내가 계약한다고 할 거 알고 들고 왔냐?”

“아니, 상상도 못 했는데. 그래도 들고 와야지.”

그렇게 송다온이 계약서를 읽고 있는 사이, 강효준은 핸드폰으로 연락을 받았다.

4본부 직원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그러니까, 정해원이 이춘형과 비교적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목격했다는 이야기였다. 강효준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이 새끼는.”

정해원 본인은 본인이 어느 정도로 이춘형을 싫어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매니징하는 입장에서 관찰하기에 정해원은 이춘형과 연관되면 엄청나게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렇다고 본인이 작곡과 영화 보는 것 말고 딱히 하는 게 없으니, 스트레스를 전부 잠으로 푸는 것 같았다.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담배도 끊고. 거의 웬만한 종교인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저렇게 화려한 탈색 머리를 한 종교인은 본 적이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계약서를 정확히 확인해 줄 사람들과 전화하고 서류를 주고 받던 송다온이 강효준 쪽으로 돌아와 말했다.

“다 읽었어.”

“어, 그럼 확정되면 여기 서명…….”

그렇게 말하며 계약서를 든 강효준이 멈칫했다.

이미 서명이 되어 있었다.

강효준이 송다온 쪽을 다시 보자, 송다온이 멋쩍게 대꾸했다.

“나 마음 굳혔다고 했잖아.”

“…….”

“대신 최대한, 클라루스 잡아 보자.”

송다온이 보이드 엔터와 계약한 건 오로지 그 이유였다. 클라루스의 영원.

* * *

[미친 퍼라 초동 179만 7천 장ㄷㄷㄷ]

[퍼라팬들 뭐하냐!!!!!!!! 빨리 앨범 갈기라고!!!!!!!!!!!!!!]

[X발 팬도 아닌데 내가 여기서 멈출까봐 쫄린다]

[나 햇살이도 아닌데 180만 보고 싶어서 퇴근하다가 퍼라 앨범 갈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JC X나 스트레스 받겠다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나 스트레스 안 받아 안 넘을 수도 있지 중요한 건 숫자 자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돈 싫다는 사람이 돈 제일 좋아하는 거랬음]

[↳↳↳그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

[↳↳↳SJC 퍼라 본인들보다 더 180만 장 넘고 싶어할듯ㅋㅋㅋㅋㅋㅋ]

[나 매장 왔는데 물량 없대ㅠㅠㅠㅠㅠㅠㅠ]

[↳아니 X발???]

[↳물량이 왜 없어 끌어다 놨어야지…….]

[↳↳여기 물량 많아!!!!]

“우리도 사자.”

안주원의 결론은 그거였다.

맞는 말 같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중간에 내려, 음반을 사러 들어갔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버전으로 각각 한 개씩 골라서 일곱 개를 샀다.

나는 두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말했다.

“야, 너무 속물 같아 보이지 않겠냐. 179만이나 180만이나…….”

내 말에 신지운이 내 팔에서 앨범 한 세트를 빼며 말했다.

“한 세트 말고 한 개 사라고, 한 개. 이 속물아.”

“나 약간 강박 있어서 살 거면 세트로 사야 돼.”

“하나 골라.”

“내가 한 세트 안 사서 179만 9만 9천 9백 8장으로 초동 끝나면 어떡하냐?”

“말이 되는 소리 좀 해라.”

신지운이 말하면서 내 등을 떠밀어놓고, 아이씨, 하면서 결국 세트를 집어 들었다. 결국 앨범 여섯 개에 한 세트까지 총 아홉 개의 앨범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라방을 켤까 상의하다가 괜히 안 좋은 소리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냥 우리끼리 앨범깡을 하기로 했다. 나중에 사진을 올리자고 해서, 안주원이 사진을 남겼다.

우리는 이미 앨범이 있었지만 추가로 산 앨범을 뜯고, 포카를 쭉 모아놨다. 한효석이 정규 앨범 속에 들어 있는 부속품들의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폴 존스였다.

“하, 영어로 얘기해야 돼서 부담스러운데…….”

약간 영어가 익숙해지긴 했는데, 전화는 또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이상하게 전화를 하면 특히 더 못 알아듣겠고, 나도 말이 안 나오고 그랬다.

그렇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더니 폴 존스가 신이 나서 말했다.

-해원! 들려?

“뭐가 들려?”

-라디오!

나는 폴 존스의 목소리 뒤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다.

“미국 라디오에서 Youth가 나와!”

내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멤버들이 전부 나를 돌아봤다. 폴 존스가 말을 이었다.

-지금 드라이브 중인데, Youth가 나와서 바로 전화했어.

우와.

와.

나는 너무 신기해서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그냥 감탄사만 연달아 나왔다.

우리 신곡이, 발매 후 일주일째 되는 날, 지구 반대편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말 그대로 그냥 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요청한 것도 아니고, 뭘 계약한 것도 아닌데 그냥. 정말로 그냥. 그것도 대부분이 한국어 가사인 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게.

나는 잠깐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아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폴 존스에게서 영상이 도착했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본인 노래를 부르다가, Youth가 나와서 소리를 지르는 영상이었다.

우리는 그 영상을 보고, 끝나자마자 민지호가 말없이 영상을 반복해서 다시 한번 봤다. 그 다음에는 안주원이 또 반복해서 또 한번 봤다.

민지호가 중얼거렸다.

“신기하다.”

지금 느끼는 감정 중 제일 큰 건 역시 신기함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영상을 보고 있는데, 회사에서 단체 연락이 왔다. 부대표였다.

[부대표님 : 퍼스트라이트 초동 180만 장 축하한다 내 싸랑하는 아들들~♥]

그리고 같이 첨부된 사진은 퍼라 멤버 일곱 명의 포토 카드를 예절샷처럼 음식 앞에 쭉 늘어놓고 찍은 사진이었다. 어린애 손이 하나 보였는데 공룡 인형을 내밀고 있었다. 부대표의 딸과 같이 예절샷을 찍은 것 같다. 어쨌든 최애니까 논리적으로 맞긴 하지…….

초동은 180만 2282만 장으로 종료됐다. 우리가 앨범을 추가로 산 게 큰 의미는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의미도 없는 건 아니었다. 박선재가 말했다.

“초동 180만 2282장 중에서 아홉 장은 우리가 샀네?”

그 말에 신지운이 말했다.

“거기다가 멤버 가족들이 산 것까지 합치면 한 30장은 우리가 샀겠다. 우리 부모님은 절대 안 샀겠지만.”

진짜로 안 샀을지도 몰라서 별로 위로할 말은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자기 부모님이 자기 앨범을 샀으면 신지운은 그쪽을 더 싫어했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폴 존스가 우리에게 보여줬던 영상을 본인 SNS에 업로드했다. 같이 협업 음악을 냈다고 이렇게 우리 앨범 라디오에 나오는 걸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고, 홍보까지 해주는 폴 존스가 고마웠다. 엄청 의리 있는 녀석이었다. 국적이 달라도 이제 정말 친구처럼 느끼고 있기는 한데, 전화는 안 해줬으면 좋겠다. 최소한 영상통화를 하든지…… 영어 무서우니깐…….

* * *

다음 날 새벽에 가까운 아침에 우리는 사녹이 있었다.

일주일 내내 거의 쪽잠을 자는 것외에는 제대로 누워서 잠을 못 잤는데, 멤버들은 그리 피곤함을 못 느끼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멤버들도 그렇고, 엄청 대범한 편은 아니라서 이렇게 앨범이 많이 팔리는 것에 마음에 준비를 전혀 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음원은 일간 차트 20위 안에 발을 걸쳤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 손을 모으고 구호를 하기 전 황새벽이 말했다.

“우리 활동 한주 남았다. 남은 한주,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무대 햇살이들한테 보여주자.”

그리고 우리는 구호를 외치고 무대에 올라갔다.

햇살이들 표정이 엄청 밝았다.

“새벽이라서 피곤하죠?”

내가 걱정돼서 물어보니까 다들 안 피곤하다고 했다. 안 피곤할 리가 있나. 이 시간에 우리를 보러 와주는 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다. 내가 손으로 밥 먹는 시늉을 하고 밥 먹었냐고 물어보니까 다들 안 먹었다고 했다.

“왜 안 먹어. 밥 먹고 와야지…… 사녹 끝나고 꼭 밥 먹어요. 약속.”

내가 약속을 받아내고 있으니까 황새벽이 물었다.

“식사 안 하셨대?”

“어, 다 안 먹었대.”

“큰일 나려고. 그러다 쓰러져.”

황새벽까지 와서 굶으면 안 된다고 주절주절 잔소리를 했다. 황새벽이 제일 말이 많아질 때가, 팬들에게 밥 먹으라고 잔소리할 때인 것 같다. 그렇게 한참 잔소리하고, 메뉴 추천으로 덥지만 이열치열로 오히려 뜨끈하게 국밥을 먹으라고 말한 후, 우리는 Youth의 사전녹화에 들어갔다.

확실히, 초동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인 것 같다. 초동 숫자가 높아진다고 해서 뭐가 갑자기 변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전과 똑같이 무대를 즐겼고, 햇살이들에게 인사를 한 후 사녹을 끝냈다.

“안녕!”

“햇살이들 사랑해!”

“진짜로 국밥 먹어. 깍두기 꼭 먹어.”

그렇게 이야기하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팬들에게는 밥 꼭 먹으라고 잔소리했지만, 정작 우리는 너무 피곤해서 아무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번에 햇살이들이 ‘지겨워 할 때까지 우리를 보여주겠다’는 멤버들의 각오로 컴백 전 몇 주 전부터 매일 연습과 많은 스케줄을 병행했던 것이다. 무대 위에서는 남은 체력을 전부 쏟아부어 불사르고, 내려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 늘어졌다. 매니저가 차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다줬지만, 일단 차에 타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이 들었다.

나도 깜빡 잠이 들었는데,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너무 졸려서 무시할까, 했는데 사람이 뭔가 그런 육감 같은 게 갑자기 발휘될 때가 있는 것 같다.

‘어, 이거 받아야 되는 전환데…….’

나는 이름도 확인하기 전에 그런 생각이 들어, 무거운 눈을 억지로 뜨고 손에 있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민혁이 형]

민혁이 형이 세 명이라 나는 잠깐 생각했다. 내가 아는 세 명의 민혁이 형 중에서 제일 전화를 할 가능성이 높은 건 댄서 민혁이 형이라, 그 형인가 생각하다가 순간 잠이 깼다.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민혁이 형?”

그 세 명의 민혁이 형 중에서 제일 늦게 알게 된 사람은 클라루스의 빛나는 리더, 서민혁이었다. 다른 형들은 다 애칭이나, 사족이 이름에 붙어 있었는데 딱 서민혁만 그냥 민혁이 형이라고 저장해 놨다.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민혁이기는 하니까.

내가 전화를 받자 서민혁이 말했다.

-해원아, 바쁜 거 아는데 혹시 잠깐은 시간 있니?

“있어요.”

뭔지 몰라도 있다고 했다. 내 즉답에 서민혁이 말을 이었다.

-일단은 너희 회사로 가는 중인데.

“형이 오시게요? 보이드에요?”

-활동 중인데 네가 움직이겠냐, 내가 가야지. 회사 괜찮아?

“제일 좋죠. 저도 지금 회사로 갈 건데.”

-회사에서 보자.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나를 만나는 것과 상관없이, 계약 문제로 세상의 이목이 쏠려 있는 지금, 서민혁이 직접 보이드 엔터로 오겠다고 했다.

잠이 확 달아났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