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02화
송다온의 집에서 서민혁까지 셋이 밤새 술을 마신 강효준은 새벽녘에 회사로 복귀했다.
모처럼 그렇게 동갑내기 셋이 모이니까 저절로 고생하던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원래 클라루스 멤버 둘은 그렇게까지 취하게 술을 마시는 편이 아니었지만, 추억 이야기를 하다 보니 웃고 떠들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져 셋 다 과하게 마시게 됐다.
제일 먼저 잠든 송다온과 그다음으로 만취한 서민혁을 방에다가 하나씩 던져 놓고, 강효준은 소파에서 자다가 알람이 울려 잠에서 깼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왔는데 복도 끝 정해원의 작업실 불이 켜져 있었다. 활동기라 작업을 하고 있지도 않을 텐데 뭔가 싶어 봤더니, 정해원이 불을 켜놓고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너 왜 여기서 자?”
강효준이 흔들어 깨우자 후드를 뒤집어쓰고 자던 정해원이 ‘어?’ 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소파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렸다.
“아, 기 빨려.”
“서민혁이 기가 세지.”
강효준이 알아차리고 말하니까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민혁은 정해원이 대담하다고 놀라던데, 정작 본인은 기가 쭉 빨려서 불 끄는 것도 잊어버리고 기절한 듯이 자고 있었다.
정해원이 잠이 덜 깨서 물었다.
“뭐…… 결론 났어요?”
“아니, 서민혁 그렇게 빨리 결정 안 해. 나머지 멤버들 다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할 거야.”
“아…….”
그래도 술자리에서, 혹시 클라루스로 계약하게 된다면 이것저것 해달라는 게 많았던 걸 보면 서민혁도 보이드로 올 생각이 어느 정도 생긴듯했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다며.”
“그랬나…….”
“고맙다더라. 그렇게 말해줘서.”
“아하.”
정해원은 누가 봐도 너무 피곤해서 모든 말을 흘려듣는 상태였다. 다행히 오늘은 오전 스케줄이 없고, 오후에 팬 사인회만 가면 돼서 좀 더 쉬게 할 수 있었다.
나오라고 손짓하니 정해원이 쿠션을 껴안고 일어났다. 벽에 머리를 박고 조는 사이, 강효준은 소파침대를 펴서 침대로 만들었다.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민지호를 포함해서 멤버들이 하도 툭하면 회사에서 자서, 기껏 멤버들 쓰라고 멤버 숙직실을 만들어줬다. 다른 멤버들은 거길 잘 쓰는데, 정작 회사에 제일 오래 있는 민지호는 연습실에 침낭 펴고 자는 걸 선호하고 정해원은 그냥 숙직실을 싫어했다. 민지호는 ‘연습실이 외로워할까 봐’였고, 정해원은 ‘빈 침대가 보이면 외로워서 싫다’라고 했다. 둘 다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고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튼 결국 작업실 소파를 소파침대로 바꾸는 헛짓거리를 했다. 소파를 침대로 펴주자마자 정해원이 거기 올라가더니 절하는 시늉을 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술은 내가 마셨는데 왜 네가 취했냐. 자.”
그 말에 정해원이 히히 웃더니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이 더운 날 굳이, 담요를 귀까지 끌어올려 덮었다. 강효준이 불을 끄자 정해원이 말했다.
“형, 근데.”
“뭐.”
“다온이 형 들어오고, 회사 커져도, 나 신경 써줘요. 클라루스 형들만 신경 써주지 말고.”
해체에 대한 마음이 가장 강하던 서민혁의 마음을, 멤버들과 전 세계 온갖 대단한 엔터사들도 못 돌린 그 마음을 3분의 2쯤 돌려놨다. 정해원이 마음을 알아줬기 때문인데, 그 말을 후배기도 하지만, ‘언젠가 도움받을 수 있는 능력 있는 프로듀서’가 해서 더 와닿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도 땅을 팔 수 있다니, 저것도 재능이다.
강효준이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헛소리하지 말고 자.”
“진짜로.”
“보이드 엔터는 무조건 퍼라가 1순위라니까. 네가 0순위고.”
“엇, 저 0순위예요?”
“너 사업가 아니고 아이돌 후배로서 서민혁한테 얘기했다며.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사업가이기 이전에 A&R이야. 네가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가게 하는 일이 나한테 제일 중요해.”
“…….”
“이 회사 너 잡으려고 만든 회사야. 주객전도가 말이 되냐. 내가 돈에 미쳐서 의리고 뭐고 다 팔아치울 새끼로 보여?”
그 말에 정해원이 다시 몸을 일으키더니 강효준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형 안 하던 말을 하네? 취했죠?”
“……조금?”
“형, 방금 한 말 다시 해봐요. 녹음했다가 나중에 혹시 형이 잊어버리면 다시 들려주게.”
“그 정도로 취하진 않았어.”
“원래 취한 사람들은 지가 안 취했다고 우기고 멀쩡하다고 그런다니까요?”
“자라, 좀. 아, 이거 자다 깨니까 더 진상이 되네.”
강효준은 녹음하자고 핸드폰을 들이미는 정해원에게서 핸드폰을 뺏어 멀리 던져 놓고 작업실을 나왔다.
좀 전에 술을 마시며 서민혁이 했던 말이 자꾸 생각이 나서, 본인도 너무 지나치게 감상적이 됐다.
‘해원이, 아이돌 못하게 되면 죽겠더라. 걔는. 그냥 인생에 그게 전부인가 봐. 신기하지 않냐? 우리는 연습생 때만 그런 생각을 했잖아. 여기서 데뷔 실패하면, 내 인생 진짜 끝나는 거 아닌가. 근데 그거, 지금 성공해서 돌아보니까 추억이지, 사실 끔찍했잖아. 그런데 해원이는 계속 그 끔찍함 속에서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본인이 즐겁다면 다행인데. 나였으면 너무 힘들 것 같다.’
정해원 본인이 즐겁다는 건 장담할 수 있었다. 다만 여기서 실패하면 인생이 끝날지 모른다는, 연습생 시절의 끔찍함도 병행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A&R은 곡을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철저히 기획할 수 있고, 작곡가가 좋은 곡을 뽑아낼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다. 퍼스트라이트가, 정해원이 자기 발로 이 회사를 떠날 때까지. 강효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줄 생각이었다. 그것은 강효준이 A&R을 진로로 정할 때 그렸던 미래 그 자체였다.
* * *
술을 덜 마신 송다온은 아침 해가 강하게 쏟아질 시간 잠에서 깼다. 그리고 현관의 신발을 확인한 후 서민혁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침 해를 피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든 서민혁의 옆에 풀썩 누웠다.
“미녁아.”
“아, 뒤지겠다…….”
“그러니까 뭔 술을 그렇게 많이 먹어.”
“어제는 그냥 끝장을 봐야 하는 날이었잖냐.”
“무슨 끝장을 봐, 계약서 사인도 안 하더만.”
“우리 멤버들 다 보이드랑 계약하면 그때 봐서 해야지. 안 그러면 그냥 보이드에 처박히는 거잖아.”
“야, 나는? 나 계약했잖아, 벌써.”
“멤버들 다 안 하면 이제 넌 혼자 거기 가는 거지.”
“와, 의리가 넘치네. 너 친구 혼자 남겨 놓고 큰 회사 가면 좋냐? 행복해?”
“어, 그 쪼끄만 회사에 발목 잡힌 널 보면서, X 될 뻔했네, 라고 생각…….”
“아, 진짜.”
송다온이 옆에 베개로 등을 퍽 치자 서민혁이 괴로워하며 말했다.
“야, 등 치지 마. 죽을 것 같애, 진짜.”
“짬뽕 시켰어. 일어나.”
“오면 깨워.”
“알아서 일어나, 의리 없는 새끼야.”
그렇게 누워서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다가, 서민혁이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서 다른 멤버들은 뭐래.”
“뭐, 미쳤냐고 그러고…… 윤태는 보이드 엔터 믿어도 되냐고 이것저것 물어보더라.”
“너는 인마, 무슨 생각으로 먼저 계약을 해버렸냐.”
“뭐, 그야. 우리 멤버들이 설마 나 혼자 두진 않을 거잖아.”
송다온이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거 믿고 질렀지, 그냥.”
그 말에 서민혁이 한숨을 쉬었다. 송다온의 말대로였다. 동생들도 걱정할 정도로 순한 송다온이 클라루스라는 이름을 지켜보겠다고 나서서 이 불확실한 회사와 계약한 이상, 멤버들이 모른 척하는 건 불가능했다.
* * *
정규 활동이 끝나고 나니 9월. 우리는 곧바로 리패키지 준비에 들어갔다.
10월 중순에 리패키지를 내고, 11월, 12월에 걸쳐 연말 시상식과 콘서트까지 빡빡한 일정이었다.
클라루스 송다온이 보이드 엔터와 계약했다는 건 엄청 큰 기사일 텐데, 신기할 정도로 완벽하게 숨겨져 어디에서도 기사가 나지 않았다. 회사에서 보안에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다.
계약 종료는 다가오는데, 재계약 관련 소식은 어디에도 없으니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클라루스의 행보에 집중되어 있었다.
[클라루스 계약 종료 코앞까지 다가와……. ‘완전체’ 다시 볼 수 있을까?]
[↳아직도 재계약했다는 얘기 안 나온 거면 전원 재계약은 확실히 틀린 듯]
[요즘 나만 맨날 우니 나 그냥 누우면 이유 없이 눈물 나…….]
[↳너무 우울해ㅠㅠ]
[↳나도…… 그래도 우리 멤버들 고생했고, 어떤 결정을 하든 다 존중해 주려고…….]
[↳↳근데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ㅠㅠ]
[↳↳↳나도 그래…….]
[클라루스 재계약 불발되면 브엠 주가 여기서 더 떨어질까요?]
[↳선반영이요]
[↳이미 반영된 듯]
[↳클라루스 전원 재계약 가능성은 아예 없다는 게 정설이죠]
[근데 클라루스 재계약 왜 안 해요? 그냥 1년에 한 번씩 투어만 해도 돈 X나 쓸어모으는 건데]
[↳나라도 돈 클라루스만큼 벌면 일 안 함ㅎㅎ]
[↳솔직히 세계 어디서나 알아주는 데 이쯤 되면 솔로가 편하죠 팀으로 활동하면 개인활동 제약도 많고]
[서민혁이 보이드 엔터 방문했다는 찌라시 있던데 이거 의미 있나요?]
[↳아뇨ㅎㅎ]
[↳있을 리가ㅎㅎ]
[보이드 대표가 클라루스 신인 때부터 쭉 같이한 A&R인데 의미 있죠 심지어 재벌 3세라 서민혁 한 명 계약금은 충분히 내줄 수 있고]
[↳컨택은 해보는 모양이네요]
[↳이런 거면 오히려 더더욱 지인 사이에 한잔하고 온 정도 같은데요 눈여겨볼 일이 아닌 듯ㅎㅎ]
송다온이 계약한 건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민혁이 보이드 엔터에 방문했던 건 여기저기 알려졌다고, 안주원이 알려줬다.
서민혁 본인도 시선이 집중된 상태에서 보이드 엔터에 방문하면 온갖 추측이 쏟아질 거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알면서도 한 거였다.
계약에 뛰어든 회사가 더 있다는 걸 다른 경쟁사들에 알려주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게 시끌시끌한 상태에서, 우리는 리패키지 앨범 컨셉포토 촬영에 들어갔다. 지난번 앨범보다 훨씬 더 컨셉적인 부분이 강했기 때문에 세트장 분위기도 특이했다. 멤버들 모두 컬러렌즈를 착용하고, 컨셉포토 촬영에 집중했다.
나는 개인 촬영 중에 쉬는 시간이 있어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커피를 거의 약 마시듯 쭉쭉 빨아들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VMC 비서실이었다. 전화를 받아보니 의외의 질문이 날아왔다.
-이춘형 부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연결해 드릴까요?
“……예? 뭐, 그러세요.”
아니, 왜?
내가 생각하는데 이춘형 부대표가 연결되었다. 이춘형 부대표가 다짜고짜 말했다.
-해원 씨, 조만간 식사 한번 하죠.
아니…… 내가 이번 활동 동안 친한척한 게 진짜로 먹혔나……?
아니면 불러내서 날 어디 묻으려는 거는…… 아니겠지,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그것도 아니면 설마, 설마 스카우트는 아니겠지? 그동안 이 새끼가 나한테 한 짓이 있는데……. 아 근데 또 워낙 소시오패스 같은 놈이라 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