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03화
황당하고, 이유도 모르겠지만 이춘형이 밥을 먹자고 하는 이유가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딱히 뜸 들일 것도 없어 바로 말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번호로 연락드려도 되죠?”
-그렇게 해요.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뭐지, 진짜.”
나는 투덜거리다가 휴식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남은 샌드위치를 빨리 입에 욱여넣고 일어났다. 그리고 커피를 흡입하면서 나가려는데 강효준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 대표 : 이춘형이랑 밥 먹고 싶으면 먹어]
[강 대표 : 범준이랑 영호 데려가고]
“뭐야, 이 형?”
내가 이춘형과 밥을 먹을 거라는 걸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나는 스파이에게 바로 연락했다.
[형이 알려줬어? 방금 이춘형이 연락한 거?]
그랬더니 스파이가 나에게 이춘형이 전화한 정황과 강효준에게서 연락이 온 간격을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그래서 나도 구체적으로 답했더니 스파이가 다시 문자를 했다.
[스파이 : 잠깐만]
그러더니 진짜로 잠깐 뒤에 연락이 왔다.
[스파이 : VMC 비서실에 강효준 부사장님 친구였던]
[스파이 : 이은석 과장이라고 있는데]
[스파이 : 지금은 아예 안 만나는 것 같거든 VMC 비서실로 들어갈 때 강효준 부사장님이 친구가 이춘형 라인 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스파이 : 근데 전화하자마자 바로 연락이 왔으면 이쪽밖에 루트가 없다]
그러니까 이제 강효준도 드디어 VMC 내부에 귀 하나를 달아놨다는 거였다.
캬, 드디어 이 형도 회사 사정에 관심이 생겼구나.
근데 그렇게 알고 나니까 약간, 다소 섭섭해지면서.
[형 나 진짜 딴 회사 부대표랑 밥 먹어요?]
[왜 질투 안 해요 섭섭하게ㅜㅜ]
[강 대표 : 어쩌라고 이 진상아]
[흑 상처받아]
[강 대표 : 너 어디 부러져서 오면 콘서트에서 뺀다]
와씨 소름 끼쳐.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 나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안다면서 픽 죽여 버리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이제 이해가 갔다.
아무튼 조용히 밥 한번 먹고 오려고 했는데 그건 이미 틀린 듯했다.
그래도 확실히 시큐리티 형과 함께 가면 어디 파묻힐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생각하며 다음 촬영을 위해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 보니 신지운이 포토카드용 사진을 찍다가 나에게 물었다.
“형, 이거 봐봐. 나 귀여워?”
“미쳤어?”
“아, 좀 보고 말해.”
신지운의 아이돌 자아는 약간 돌아있는 것 같다.
애초에 저 인상으로 자기가 귀여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다는 부분부터가 범인으로서는 놀랍기만 하다.
신지운이 보여준 사진을 보니 잘 나오기는 했다.
원래 우리 멤버들은 셀카에 다 진심이어서, 누구 한 명이 ‘이거 잘 나왔나?’하고 물어보면 모두 몰려와 진지하게 포토카드를 검수해 줬다.
우리 기준이 워낙 빡빡해서, 보이드 직원들이 본인들 눈엔 괜찮은 것도 걸러내 버린다고 우리한테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돈 들이고 자원 들여 찍는 포토카드, 예쁘게 나오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하는 게 우리 멤버들의 생각이었다.
내가 말했다.
“근데 조명이 빨갛게 나와서 다른 멤버 포카랑 놓으면 튈 듯.”
“그치? 다시 찍어야겠다.”
“야, 잘은 나왔으니까 지우지는 말고 나중에 X버스 올려.”
“이 중에서 잘 나온 거 골라줘.”
“어…… 이거랑 이거 일단 후보.”
“이걸로 해야겠다. 여기 그림자 졌어.”
“어, 그러네.”
그렇게 회의 끝에 X버스 올릴 사진도 고르고, 포토카드로 쓸 사진도 찍었다.
메이크업도 컬러렌즈도 의상도 세니까 컨셉 포토 사진은 괜찮은데, 셀카가 너무 과하게 나오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나와 신지운은 특히 더 인상이 강한 편이라, 이번 촬영장에서 포토카드로 건질 사진을 찍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서로 도와주다 보니 괜찮은 사진을 몇 장 건졌다.
그때 박선재가 소리쳤다.
“형들 와봐! ‘가장 외로운 시간’ 광고 떴어!”
막냉이가 부르는 소리에 멤버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안주원은 화면을 못 보고 긴장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첫 예고를 보기 직전, 나는 순간 스스로에게 놀랐다.
안주원이 이 영화에서 너무 매력적으로 비치지 않기를 순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안주원의 얼굴을 워낙 대단하게 여기다 보니, 스크린에 얼굴이 등장하면 우리 팀에 뭔가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다행히 그런 생각은 금방 지워졌다. 그러나 더 큰 걱정이 나를 덮었다.
원래 있던 영화의 진행에 내가 관여하면서, 흥행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드는 것이다.
만들어질 수 있던 영화가 엎어질 뻔했다가, 강효준이 이 영화에 제작비를 대는 상황이 됐다.
거기에 내 기억에는 주인공 아역의 역할이 많지 않았는데, 안주원이 생각보다 촬영을 길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용적으로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나쁜 쪽으로.
그렇게 각종 걱정을 사서 하며 공개된 예고를 봤다. 그리고 나는 첫 번째 걱정을 좀 더 길게 했어야 했다는 걸 알았다.
“……안주원 개잘생겼네.”
멤버 중에 저런 말을 가장 안 할 사람이 동갑내기이자 소울메이트인 신지운인데, 그 신지운 입에서 저 소리가 나왔다.
예고편 속의 안주원은 우리가 아는 안주원과 다른 사람이었다. 연기니까 당연한데, 그걸 예상하지 못했다. 신지운이 연기를 할 때는 워낙 자기 성격 그대로인 배역만 맡아서 그랬던 것 같다.
영화 속 주인공의 청소년기는 쾌활하고 능글능글한 첫사랑의 집합체였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농구를 하면서 끼를 부리거나, 좋아하는 같은 반 여학생에게 잔망을 떠는 행동과 표정 모두 평소 안주원에게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예상대로 예고편이 나간 이후 반응은 미친 듯이 좋았다.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변할 때, 성인역의 표정 연기도 소름 끼치게 좋았다.
무엇보다, 과연 그 재벌 3세가 휘청할 정도로 제작비를 몰빵한 게 티가 났다.
내가 과거의 미래에서 본 영화에 비하면 월등히 돈이 더 들어간 듯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어떨지는 몰라도, 미학적인 부분에서는 더더욱 대단해졌다는 건 분명했다.
예고만 봐도 느껴졌다. 안주원은 이 영화로 대중에게 각인될 것이다.
나는 거기에 대하여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 * *
송다온이 보이드 엔터와 계약했다는 소식은 이춘형 부대표 쪽으로도 흘러 들어갔다.
클라루스 멤버를 전부 잡는 것은 진작 포기했다. 하지만 송다온은 VVV엔터와 재계약하는 것으로 거의 확정 단계까지 와 있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송다온이 꾸벅꾸벅 고개를 숙여 가며 VVV엔터 1본부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보이드 엔터.
이춘형 부대표는 강효준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심지어는 클라루스 멤버를 뺏겼으니, 이제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만에 하나.
절대 그럴 리 없지만 정말 만에 하나라도 클라루스가 보이드 엔터에서 뭉친다면?
이춘형 부대표는 미국 지사는커녕 이 회사에 남아 있기 힘들 가능성이 높았다. 이사회는 둘째치고, 할아버지가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써서 쫓아낼 테니까.
그런데 진짜 공포는 보이드 엔터의 상황을 전혀 모르겠다는 부분이었다.
직원들도 VVV엔터에서 데려간 게 아니라, TRV에서 데려와 매수가 어려웠다. 한번 직원을 매수하려고 시도했는데, 직원이 배신하면 정해원이 난리가 난다고 거절했다.
보이드 엔터 전체가 정해원에 대한 믿음으로 단단히 뭉쳐 있었다.
그러던 차에 생각이 났다.
정해원이 최근 강효준과 균열이 있다는 듯이 말했던 것을. 게다가 생각보다 반갑게 인사하는 것을 보니, 과거의 앙금들은 슬슬 다 가라앉거나 사라져 버린 모양이었다.
애초에 연예, 문화계의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상태로 태어나서 쭉 자라온 이춘형은 일개 아이돌이 본인에게 앙금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잘 와 닿지 않았었다.
정해원이 먼저 나서서 인사한 것을, 대책 없이 까불고, 자기 일에 일일이 훼방 놓던 정해원이 드디어 굴복했다는 생각 정도로 받아들였다.
식사 한번 하자고 전화하고, 만 하루가 되기 전에 정해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날짜를 잡자는 거였다.
오래 끌 것도 없다고 생각해, 그날 저녁에 바로 한잔하자고 했는데 이 상종 못 할 새끼가 술을 안 마신다고 했다.
뭐 이런 재미없고 피곤한 새끼가 있는지.
어쨌든 본인은 술을 아예 안 마실 거라고 단언했고, 심지어 장소도 무지하게 까다로워서, 결국 번화가에 사람들 많이 들락거리는 유명한 술집으로 결정했다.
술집을 완전히 막아놓고, 느지막이 도착했다. 약속보다 30분을 늦게 도착했는데, 정해원은 예상대로 그것보다도 늦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리에 앉고 2, 3분 내의 간격으로 정해원이 나타났다.
어제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자 더위가 갑자기 꺾이면서, 9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신기할 정도로 쌀쌀했다.
정해원은 핏이 좋은 긴 파카 주머니에 손을 넣고, 흰 티셔츠에 와이드 데님을 입고 있었다. 거기에 메탈 사각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시력과 상관없이 그냥 본인 취향으로 착용하고 온 듯했다.
정해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인사를 하고, 바로 기본 안주로 나오는 야채를 집어 먹었다.
시큐리티 둘에 매니저 한 명을 데리고 왔다. 이만큼을 끌고 왔으니 강효준도 이 자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창가 쪽 같은 테이블에, 나머지 일행은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
이춘형이 물었다.
“한 잔도 안 하려고?”
“그건 좀 그렇죠? 그럼 한 잔 주세요.”
그래도 은근히 말은 통하는 놈 같았다. 정해원이 술을 고른 후에 태연하게 말했다.
“술 혼자 마시면 심심하잖아요. 전 그렇거든요.”
“아주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네.”
“저 먹을 거 시켜도 돼요?”
“설마 내가 밥값을 아까워할까 봐?”
“그렇죠?”
그러더니 신중하게 안주와 진피즈 한 잔을 주문했다.
먼저 나온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정해원이 물었다.
“클라루스 형들 때문에 보자고 한 거죠?”
“아니.”
“아니에요?”
“설마 그 멤버들이 다 그 작은 회사랑 계약하겠어. 송다온이야 사회 물정 모르고 사람이 무르니까 강효준 꼬임에 넘어간 거지. 말이 안 되잖아요, 그 X만한 회사를 가는 게.”
“하긴 그렇죠.”
정해원이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술을 마셨다.
그러다 한 잔만 마시기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트위스트를 넣은 마티니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정작 사달라던 안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지만, 이춘형은 술을 더 주문했다는 것에 호감이 갔다. 아마 거기까지 사람 속을 읽는 것 같았다.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이춘형이 호기롭게 말을 이었다.
“클라루스는 내가 알아서 할 거고, 해원 씨.”
“네.”
“위약금 내줄게. VVV엔터에서 솔로로 활동해 봐요.”
“…….”
“알잖아, 솔로로 활동하면서 정상급 가수들 프로듀싱하면 지금이랑 비교도 안 되게 빨리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거.”
정해원은 눈꼴시지만, 그 능력치는 인정할 만하다. 이춘형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빠르게, 세계 최고로 만들어줄게.”
‘솔로’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정해원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을 참으려는 것 같았으나, 결국 못 참고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