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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04화 (30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04화

어쩐지, 어쨌든 VMC 부대표와 밥 먹으러 간다는데 강효준이 신경도 안 쓰더라니. 이런 들을 가치도 없는 소리를 할 걸 알았기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웃으니까 뭔가 잘못됐나 싶었는지 이춘형이 말했다.

“왜 웃어? 뭐가 웃겨서.”

“아뇨, 생각을 안 해봤던 거라.”

나는 너무 속이 보이게 웃었다고 생각해서, 천천히 수습했다.

“좋네요, 솔로. 근데 제가 솔로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까요?”

“못 할 거 없지. VMC가 밀어주면.”

단서를 단다. ‘VMC가 밀어주면’이라고.

* * *

나는 이춘형의 말을 들으며, 리패키지 앨범 회의를 하던 날을 떠올렸다.

민지호는 그날,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왔다. 자기 차례가 오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프로듀서인 나에게 말했다.

“해원이 형, 때가 왔어.”

“무슨 때.”

“퍼라의 섹시미를 보여줄 때.”

나는 민지호가 만든 프레젠테이션을 힐끔 봤다가 다시 민지호를 확인하고 말했다.

“안 왔네.”

“아, 왔어어!”

그렇게 징징거리는데 그 프레젠테이션을 같이 준비해, 같이 일어난 한효석이 나에게 말했다.

“형, 때가 왔어요.”

그래서 나는 다시 두 놈을 돌아봤다.

“무슨 때.”

“퍼라의 섹시미를 보여줄 때요.”

한효석을 훑어보니까 확실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 것 같다.”

내 말에 민지호가 울상이 돼서 황새벽을 찾았다.

“새부기 형아! 해원이 형이랑 효식이가 나 괴롭혀!”

그러니까 지쳐 있던 황새벽이 우리 둘에게 말했다.

“얘들아, 지호 괴롭히지 마라.”

“안 괴롭혔어, 집중해.”

“조건반사야.”

“그래 보이더라.”

황새벽이 피곤해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민지호는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민지호 혼자 섹시미를 보여줄 때라고 프레젠테이션 했으면 납득이 안 갔을 것 같은데, 다행히 본인도 그걸 미리 알고 한효석을 꼬드겨 같이 컨셉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건 성공적이었다.

민지호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걸 가지고 오면, 그때부터 보이드 엔터 직원들은 바빠졌다.

강효준 대표가 퍼스트라이트에게 가지는 스탠스는 보이드 엔터가 만들어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다.

너희는 달려, 뒤는 우리가 맡을게.

언제나 그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특히 타고나길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민지호 같은 멤버들이 마음껏 활개 칠 수 있었다. 본인들이 원하는 걸 얼마든지 내뱉을 수 있다. 회사에서 자고 싶다고 하면 숙직실을 만들어주고, 숙직실이 외롭다고 하면 소파를 바꿔준다.

이제 모두 성인이 된 퍼스트라이트가 성숙한 모습을 앨범에 담고 싶다고 하면, 그때부터 직원들이 바빠졌다.

어떤 팀에게는 이런 작업 방식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아티스트는 모든 부수적인 것은 회사에서 해결해 주고, 본인은 오로지 공연에 집중하고 싶은 경우도 있고, 반대로 우리처럼 모든 것에 우리 손이 닿아야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냥 보이드 엔터와 퍼스트라이트의 합이 잘 맞는 경우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게 클라루스와도 잘 맞는 방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클라루스 역시도 무엇이든 자기 손이 닿아야 만족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확고하게 클라루스에게 보이드 엔터로 오라는 영입을 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나는 곧 현실로 돌아왔다.

여전히 앞에는 꼴보기 싫은 얼굴이, 이춘형이 앉아 있었다.

물론 저놈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다. 그냥 쓰레기지. 세상에 아티스트를 위협하는데도 좋은 엔터는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이춘형과 마주 앉았을 때부터, 얼굴이 칼로 베인 것처럼 화끈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안 마시던 술을 마시고, 바의 조명이 어두워서 모든 게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다.

빨리 집에 가서 멤버들이랑 한 잔 더 하고 싶다. 그러면 이 모든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데 이춘형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언뜻 보니 X스타그램이었다. VVV엔터의 소속 가수 팬들과 소통 중인가 보다.

진짜 미친 새끼네, 이거. 허허…….

아무튼 평소에 치장에 관심이 엄청 많은 건 분명해 보였다. 매번 내가 뭘 입고 왔는지 위아래로 훑어보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 본인도 엄청 많은 돈을 들이고 있었다. 물론 퍼스널쇼퍼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만들어주는 거겠지만…….

이춘형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물었다.

“그래서, 어때요.”

“좋죠. 제 가능성을 높게 봐주는 건데.”

나는 마티니 잔을 비우고 물었다.

“근데 위약금 다 내시게요?”

“안 내면?”

“저야 그런 사업적인 면은 모르지만…… 강 대표한테 돈 주기 아깝잖아요.”

내 말에 이춘형이 허허 웃었다. 이춘형은 시간을 확인한 후 물었다.

“옮겨서 한 잔 더 하지?”

“저 뮤직비디오 찍어야 해서요. 다음번에 불러주세요.”

나는 말했고, 인사한 후에 이춘형과 일당들이 떠났다. 나는 이춘형이 멀리 나갈 때까지 인사하다가, 떠나자마자 테이블에 드러누웠다.

“우와, 질린다.”

나는 중얼거렸다. 진짜로 질렸다. 클라루스 서민혁과는 다른 의미의 진빠짐이었다. 서민혁은 상대가 워낙 대단하고 타고난 기도 무지하게 세서, 내가 뭐 하나 실수할까 봐 긴장하게 되는 진 빠짐이라면 이춘형은 그냥 날 계속 짜증 나게 하는 것을 참아야 하는 진 빠짐이었다.

어찌 됐든 나에게 스카우트를 하는 걸 보니 두 가지는 확실해졌다. 하나는 이춘형이 나에게 슬슬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고, 두 번째는 저 새끼가 소시오패스라는 거다. 지금 보니까, 죄책감 비슷한 것도 없다. 놀라웠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허허.

나는 고개를 들어 멤버들에게 연락을 했다.

[멤버들아아]

[보고시퍼어]

[오늘 한 잔 할까?]

[새부기 : ㅇ]

[거대자몽 : 웬일이야]

[안쭈 : 안 돼 전두엽 지켜야지]

[거대자몽 : 맞네 그럼 술은 내가 마실게 해원이 형은 구경해]

[안쭈 : 맞아]

[민조♥ : 나는 삼겹살!!!!!!!!!!!!!!!]

[효식♥ : 아니 술 마시자고]

[새부기 : 일단 굽는다 옆방 넘어와]

[막내♥ : 나는 오렌지주스 마실래]

[알았어 내가 집 갈 때 사갈게 막냉아]

[막내♥ : 집에 오렌지주스 있어 그냥 빨리 오기나 해]

[막내♥ : 05즈 벌써 술자리 폈어…… 빠르다 빨라…….]

멤버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단톡방 너머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걸 보니까 빠져나가던 기운이 되돌아왔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온 형들과 나가려고 가보니까 강효준 대표가 와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어슬렁어슬렁 나온 내가 반가워서 물었다.

“어, 형, 저 데리러 왔어요?”

“어.”

“와, 진짜?”

“그 새끼가 뭐래?”

강효준이 물어보며 같이 온 시큐리티와 매니저에게 자기 카드를 주고 바를 턱짓했다. 술집에서 술 한 잔 못 마시던 세 사람이 카드를 받자마자 세상 행복하게 웃으며 되돌아갔다. 참 술이 저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가 없다. 저런 걸 보면 내가 재미를 놓치고 사나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러다가도 또 금방 내가 술을 마시지 않기 시작한 건 내가 더 오래 일하기 위한 생존전략이었다는 걸 떠올리게 됐다.

나는 조수석에 앉으며 대답했다.

“솔로 낼 생각 있냐던데요? 세계 최고로 만들어주겠다고.”

내가 말하니까 강효준도 웃었다. 평소에 많이 안 웃는 형인데, 이건 웃겼나 보다. 나도 같이 낄낄거렸다.

그놈은 평생이 가도 우리가 왜 웃는지 절대 이해 못 할 거다.

숙소로 돌아갔는데, 문을 열기 전부터 삼겹살 냄새가 났다. 나는 우리 숙소 맞은편, 멤버 넷이 사는 숙소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거실에 북적북적하게 모여 있었다.

나는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민지호가 말했다.

“형 내가 구워줄게!”

“어? 왜. 새부기나 05가 해주면 안 돼?”

“아, 어차피 형 맛도 모르잖아.”

“내가 무슨 맛을 몰라. 너무하네.”

앉자마자 투덜투덜했고, 민지호는 삼겹살을 올려놓자마자 익었나? 익었어? 하고 뒤집어봤기 때문에 거의 바로 황새벽에게 집게를 뺏겼다. 고마웠다.

내가 내 잔에 소주를 따르려다가 소주잔을 들고 말했다.

“이거 뭐야?”

“햇살이들이 만들어준 건데. 팬싸 때.”

소주잔에 자몽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서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신지운이 대답했다.

“아, 어쩐지 예쁘더라. 꺄.”

나는 대답하고 소주잔들을 봤다. 자몽이 그려진 똑같은 잔이 일곱 개 있었다. 나는 그걸 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엔 찐 웃음이었다.

신지운이 따라 웃으며 말했다.

“형 또 나 자몽 타령한다고 갈구려고 했지?”

“솔직히 어.”

우리 대화에 멤버들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내가 다시 내 소주잔을 채우려니까 안주원이 내 잔에 손을 댔다가 뗐다. 나는 안주원의 빈 잔에도 술을 따라주고 나머지 빈 잔도 확인해서 채웠다.

그리고 잔을 들며 말했다.

“나 왔으니까 건배.”

“뭘 또 지 왔으니까야.”

황새벽이 투덜거리면서 제일 먼저 잔을 들어줬다.

민지호가 벌떡 일어섰다.

“그럼 내가 건배사…… 아니야, 오늘은 막냉이가 해바.”

“어? 나?”

“어, 얘가 건배사 하는 거 못 들어봤네.”

한효석도 부추기니까 박선재가 멈칫하더니, 멤버들이 다 호응하자 민망한지 귀가 빨개져서 일어났다.

“음…… 일단, 주원이 형 영화 대박 나고.”

“고마워.”

“그리고…… 우리 리패키지. 해원이 형 고생 또 많았고, 앞으로도 많이 부탁하고. 그리고.”

“야, 길다.”

신지운이 껴드니까 황새벽이 조용히 하라고 입에 삼겹살을 여러 개 쑤셔 넣었다. 신지운은 맛있게 먹고, 박선재가 말을 이었다.

“우리 이번에도 독기 있게, 목숨 걸고 연말 보내자. 리패키기, 콘서트, 시상식…….”

“길긴 길다, 야.”

한효석이 옆에서 말하니까 박선재가 손으로 떠밀어 쓰러지는 시늉을 해줬다. 예전엔 절대 안 저랬는데, 요즘에는 한효석도 많이 유연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박선재가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스케줄 빡빡한데, 우리 멤버들 다치지 말고, 잘 챙겨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지쳐도 대충하는 일은 절대 없게 하자. 어, 그리고…… 사랑해, 멤버들.”

“사랑한다!”

“내가 진짜 너네 사랑해.”

긴 건배사가 끝나고 우리는 건배를 했다. 몇몇 멤버는 원샷을 하고, 나와 박선재는 거의 입만 댔다가 내려왔다. 그래도 우리 팀 회식에서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다들 자기거 먹기 바쁘지…….

아무튼 우리는 리패키지 활동 전, 마지막 만찬 겸 술자리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이춘형이 나에게 준 스트레스를 완전히 해소했다.

* * *

퍼스트라이트 리패키지 컨셉포토 공개 전날은 우리에게만 중요한 날이 아니었다. 그날이 클라루스와 VVV엔터 1본부의 계약 마지막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날의 인터넷은 정말로 시끌시끌했다. 우리 컨셉포토가 공개되는 12시 전까지, 클라루스에서 VVV엔터와 재계약하게 되는 멤버들의 명단도 발표될 가능성이 높았다.

리패키지 무대 연습을 하던 우리는 12시가 가까워지자 핸드폰을 들고 각자 벽에 기대앉거나, 바닥에 드러누웠다.

다들 클라루스의 행방을 궁금해하고 있는데, 민지호의 핸드폰을 보니 그 녀석만 침낭 위에 엎드려서, 클라루스에게 아무 관심 없이 X버스에서 햇살이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나는 민지호의 등을 툭툭쳤다.

“왜?”

민지호가 돌아봐서 내가 대꾸했다.

“아니, 그냥. 네가 우리 팀이라 좋아서.”

“에잉, 당연한 걸.”

민지호가 말하며 히히 웃고 다시 핸드폰을 봤다.

그리고 드디어, 양쪽 다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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