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06화
서민혁이 클라루스 계약 마지막 날짜로 정한 10월 12일.
보이드 엔터에 가장 먼저 도착한 송다온은 내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거 우리 주면 안 돼?”
“아, 혀엉.”
“야, 저것도 안 된다며.”
“아니, 형.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작곡가들이 형한테 곡 주고 싶어서 줄 서 있어요.”
“해원아. 지금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작곡가 중에 제일 어린 게 너다.”
“에이.”
“뭐가 에이야, 널 꼬셔 놓으면 우리 할아버지 될 때까지 클라루스 음악은 문제 없…….”
그렇게 무심코 말하던 송다온은 약속한 10월 12일 오후 3시까지, 멤버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나 곧 아이돌답게 활짝 웃었다.
“야, 그거보다 문제는 너 이렇게 일하다가 열 살 많은 나보다 빨리 죽으면 계획에 차질이 생겨.”
“제가 형보다 무조건 오래 살죠.”
“이래서 어른들이 가는 데 순서 없다고 하시는구나.”
송다온과는 두 번 작업을 하며 많이 친해졌다. 채연재와도 친해진 것 같은데, 그 형은 묘하게 엄청 어른 같은 느낌이 있다. 같은 팀이어도 이상하게 맏형들은 더 빨리 어른이 되고, 동생들은 더 천천히 어른이 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아무튼 그렇게 송다온과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팔을 스쳤는데 엄청 얼어 있었다.
“형 손 왜 이렇게 차가워요?”
10월 12일. 정말 딱 좋은 계절, 환상적인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그런데 송다온의 손이 엄청 얼어 있었다.
송다온이 하 한숨 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가 뗐다.
“긴장이 안 풀려. 왜 아무도 안 와.”
“형이 클라루스 형들 다 늦게 일어난다고 했잖아요.”
“어제 그 인간들이 잠이 왔겠어? 다 밤새웠을 텐데 왜 안 오냐고.”
그러고 걱정하더니, 나한테 물었다.
“형 혼자 여기 떨어지면 잘 챙겨줘라.”
“형. 저 아니어도 온 회사가 형 챙겨요.”
“그래서 안 챙겨준다고?”
“그중에서 제가 제일 열심히 챙기겠단 말이죠.”
내 말에 송다온이 흐흐 웃었다. 그래도 너무 긴장해서 어깨가 결려 손으로 자기 어깨를 꽉꽉 주무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눈물이 고인 것처럼 늘 반짝반짝해서 사람들이 우냐고 물어보게 만드는 송다온의 눈이 오늘따라 더 촉촉했다.
그렇게 긴장하고 있을 때, 작업실 문을 누가 똑똑 두들겼다. 돌아보니 클라루스 막내 홍여름이었다.
송다온이 벌떡 일어서고, 홍여름은 작성이 끝난 계약서를 작업실 창문에 붙이더니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아, 역시 봄여름가을겨울 중에 최고는 홍여름이지.”
홍여름의 팬들이 캐치프레이즈처럼 사용하는 말을 쏟아내며 송다온이 달려 나갔다. 문을 열고 홍여름을 와락 끌어안자, 홍여름이 유쾌하게 웃었다.
“뭐야아, 나 온다고 했자나.”
“그래도 혹시 안 올까 봐 형이 무서워가지고, 막 열 살 어린 동생한테 나 챙겨주라고 그러고 있었다고.”
“어이구, 그랬어, 우리 형.”
그 모습을 보니까 괜히 코가 시큰시큰했다.
우리도, 10년 뒤에도 저렇게 반가워하고,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둘 다 아직 보이드는 낯설고, 직원들도 모르니까 돌아다니기가 좀 그런 것 같아 내 작업실에 있자고 했다.
그리고 5시.
클라루스 맏형 채연재, 그리고 둘째 최효원이 도착했다. 채연재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퇴근 시간 전에 계약하려고, 최효원 끌고 왔지, 내가.”
그러자 최효원이 중얼거렸다.
“진짜로 끌려왔어.”
“어차피 결정했는데 또 재고하고 있었잖아.”
“형, 재고 중이라는 건 결정한 게 아닌 거야.”
“아, 뭐래. 야, 이제부터 네 인생은 그냥 내가 다 결정하게 맡겨 놔.”
평소 앙숙즈로 불리는 둘은 역시나 만나자마자 티격태격 싸웠다. 둘이 싸우는 분위기가 딱 나와 황새벽 싸울 때 같았다. 최효원이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안 맡겨도 이미 형이 다 결정하고 있잖아.”
“얼마나 고맙니, 이런 형이 있다는 게 네 인생의 행운이지?”
그러더니 채연재가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날리고, 최효원은 익숙하게 반을 갈라 하트를 찢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와 클라루스 두 동생들은 낄낄거리고 웃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짜기라도 한 것처럼 네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최효원이 침묵을 깨고 중얼거렸다.
“다 미친 거 아니냐. 네 명이 모였네, 벌써.”
그 말에 홍여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 좀 제정신이 아니긴 해…….”
동생들의 말에 채연재가 시크하게 대꾸했다.
“그거 맞지. 우리 지금 그 큰 회사, 좋은 조건 다 거절하고 여기 와있는 거잖아.”
그러더니 송다온을 가리켰다.
“송다가 섣불리 계약하는 바람에.”
“섣불리라니, 나도 많이 고민한 거야.”
송다온이 억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형도 진짜 싫으면 안 왔을 거면서.”
“그건 그렇지. 잘했어, 송다.”
“응, 알아.”
그렇게 네 명.
그리고 다음 사람들은 우리가 저녁을 시켜 먹고, 정리하고, 송다온의 말처럼 밤을 지새운 멤버들이 커피를 두 잔씩 들이켤 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멤버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숙소에서 멤버들이 나간 뒤 실제로 빈둥지 증후군이 생길 정도로, 멤버들 한정으로 조건 없는 사랑을 하는 채연재가 웃으며 말했다.
“단 거 먹자. 그럴 시간이야. 그래야 버티지.”
“연재 형, 회사 앞에 엄청 맛있는 케이크 가게 있어요. 지금 늦어서 인기 있는 메뉴는 다 나갔을 것 같긴 한데.”
내가 말하며 바로 배달 어플을 켰다. 채연재가 말했다.
“일곱 명이니까 각자? 많나……. 그래도 일곱 개 시키자.”
나와 클라루스 여섯 명까지 일곱 개. 아마 아직 안 온 멤버 몫을 그냥 남겨 놓고 싶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채연재는 디저트가 올 때까지 조잘조잘 이야기를 떠들었다. 그리고 클라루스 멤버 넷과 내 몫의 케이크를 하나씩 상자와 비닐까지 제거해서 회사에 늘 구비해 두는, 패턴이 그려진 종이 접시에 올려놓았다.
내가 물었다.
“형은 항상 이렇게 다 챙겨주시네요.”
“으응, 우리 연습생 땐 얘네 다 애기잖아. 그때 뭔가, 이렇게 말하면 이상한데 진짜로, 평생 갈 내 새끼들이라고 각인이 되더라.”
“언제부터요?”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진짜 어느 날 갑자기. 애들이 연습 너무 지나치게 열심히 해서, 씻지도 못하고 거실에서 무슨 애벌레들 뭉쳐 있는 것처럼 기절잠 자는 거 볼 때부터.”
나도 아이돌이지만, 정말로 아이돌이란 멤버들과 이상한 관계를 유지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가족도 아닌데 같이 살고, 가족보다 더 많이 보고, 친구인데 직장 동료고, 서로 자기가 선택한 건 아닌데, 영원했으면 좋겠기도, 이 계약이 끝나면 다신 안 보고 싶기도 한 관계들.
채연재의 경우처럼, 가족도 아닌데 조건 없이 주고 싶은 존재라는 게 세상에 그렇게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케이크를 막 먹으려 할 때.
엘리베이터 소리에 문 쪽에 있던 홍여름이 곧바로 작업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더니 소리쳤다.
“서민혁 지각!”
“아, 여름아, 형한테……. 하긴, 지각은 맞지.”
밖에서 서민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머지 멤버들도 다 달려 나가고, 한참 떠들던 채연재만 천천히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울컥한 것 같았다. 나는 할 바를 몰라서 휴지를 꺼내 앞에 놓는 것밖에 못 했다.
서민혁을 반가워하던 멤버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아직 한 명이 오지 않았다. 그것도 가장 크게 상처받은 사람이.
그렇게 조용한 상태로 11시가 가까웠을 때, 송다온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누가 봐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당연한 척하려고 애쓰는 투로 말했다.
“어, 윤태가 누구 왔냐는데?”
“형, 나 빼고 아무도 안 왔다고 해.”
이미 울어서 눈가가 벌게진 홍여름이 순식간에 장난기가 도는 눈으로 말했다. 송다온이 히히 웃더니 홍여름의 말대로 답을 보냈다.
나는 나보다 10살이 많은 형들이 동생 놀리려고 단합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우리들 놀 때랑 다를 바가 없다는 면이 좋았다.
* * *
송다온은 박윤태까지 오기로 한 걸 확인한 후, 헤드셋을 쓰고 일을 하기 시작한 정해원의 뒷모습을 보며 들리지 않게 멤버들에게 소곤소곤 말했다.
“와, 쟤는 우리가 이렇게 방해하는데도 일에 집중을 하네.”
그 말에 채연재가 대꾸했다.
“오늘부터 쟤도 내 새꾸야.”
“원래 이미 새꾸였잖아.”
옆에서 서민혁이 동조했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근데 착한 걸 넘어서 오지랖 진짜 넓다. 삶이 더럽게 피곤하겠어.”
그 말에 송다온이 동조했다.
“실제로 피곤하잖아.”
그렇게 형들이 말하는 걸 듣던 홍여름이 말했다.
“형들 우리 해원이 데려가서 키우자.”
“그럼 막냉이가 산책 꼬박꼬박 시켜줘야 돼.”
채연재가 나긋나긋 홍여름의 농담을 받아줬다.
그리고 박윤태의 차가 보이드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멤버들은 모두 강효준의 대표실에 몸을 숨겼다. 강효준이 한심해하며 말했다.
“이 나이에 그러고 싶냐. 특히 연재 형.”
“야, 우리가 뭐. 한참 어려.”
“그러시겠지.”
“너만 늙은 거야.”
“그건 또 억울하네.”
강효준이 투덜거리는 사이, 멤버들이 모두 꼼꼼하게 숨었다.
그리고 11시 40분.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다.
홍여름이 송다온에게 눈짓으로 운 것 같냐고 확인받은 후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 박윤태에게 다가갔다.
“형, 다른 형들 안 와…….”
홍여름은 말과 동시에 눈물을 떨궜다.
연기라기보다, 그냥 마지막으로 도착한 박윤태의 얼굴을 보니까 난 울음이었지만 연기하는 데 활용했다.
박윤태가 잠깐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괜찮아. 끝 아니야. 우리 기회 있어. 다른 소속사에서도 뭉쳐서 앨범 내고 그러잖아.”
“응…….”
그렇게 이야기하고 두 사람은 작업실로 들어왔다. 송다온이 앉아 있다가 일어나 박윤태를 꽉 안았다가 다시 앉았다. 강효준이 박윤태에게 물었다.
“내용 다 봤지?”
“그럼, 전문인력들이랑 봤지.”
“와줘서 고맙다.”
“진짜 이상하다. 그 막내 A&R 형이 대표인 회사랑 계약하는 게.”
“클라루스 멤버랑 계약하는 내가 더 신기하지, 네가 신기하냐?”
‘클라루스’가 아니라 ‘클라루스 멤버’라고 표현하는 디테일에 송다온과 홍여름이 만족하고 박윤태의 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계약을 마무리하며, 박윤태가 말했다.
“라이선스 같은 건 형이 다 해결하는 거야, 진짜로?”
“형이 의외로 VVV엔터에서 힘 좀 있다. 걱정하지 마.”
“응…… 그리고 클라루스 앨범 꼭 내줘. 알겠지? 다른 소속사랑 맞출 때, 클라루스 앨범을 최우선으로 조율해 줘야 해.”
“당연한 거 아니냐.”
“당연한가…….”
박윤태가 중얼거렸다.
애착이 많았던 클라루스라는 이름이 끝났다는 사실에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박윤태가 송다온과 홍여름을 돌아보더니 중얼거렸다.
“아, 근데 다른 형들 없이 어떡하지…….”
“알아서 해라.”
강효준이 남 일처럼 말하며 박윤태의 어깨를 툭툭 치고 집무실을 나갔다.
뒤에 있던 강효준이 나갔는데도 인기척이 느껴져서 다시 돌아본 박윤태는 앞에 보이는 멤버 셋을 발견했다.
뒤에 둘. 앞에 셋.
자신까지 여섯.
여섯.
클라루스 멤버 여섯.
그걸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멤버가 다 와 있다는 게 인식이 안 돼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자 서민혁이 먼저 서류 하나를 내려놨다.
“우리 이거 안 했잖아.”
[Everlasting Ⅱ]
[룩스를 위한 클라루스]
팬과 자신의 팀을 위하여, 수많은 밤을 새우며 기획한.
1본부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계류하던 박윤태의 기획안이었다.
서민혁은 이제야 멤버가 모두 모인 걸 인식하고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박윤태를 안아주며 말했다.
“이게 우리가 재계약하고 첫 번째로 만들 앨범이다, 윤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