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07화
내 작업실에서 콘서트 편곡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음식 냄새가 났다. 돌아보니까 강효준이 테이블에 콩나물국밥을 내려놓고 있었다.
“형 왜 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해요?”
“뒤질 것 같다, 기 빨려서.”
하긴.
서민혁 한 명만 있어도 기가 쭉쭉 빨리는데, 클라루스 여섯 명이 다 모여 있었다.
뭔가, 그 여섯 명이 모여 있으면 형용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사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개인의 성공과 완전히 분리해서 상대를 볼 수는 없다. 클라루스가 누구인지 너무나 잘 아는, 그것도 같은 업계에서 그 성공이 얼마나 기념비적인지 온몸으로 체감하는 나나 강효준은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압도감은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거기다가 이건 일로 만난 거였으니까. 클라루스 멤버들이 서로 장난치고 낄낄거리고 있어도 ‘업무 모드’가 들어와 있었으니 상대하는 입장에서 기가 쪽쪽 빨렸을 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나 배 안 고픈데.”
“그래도 먹어.”
“아무리 형이어도 이건 좀 심하게 많은 거 아니에요?”
“기 빨린 거 채워야지.”
“아니, 기가 빨렸으면 기를 채워야지.”
나는 투덜거렸지만, 솔직히 나도 하루종일 클라루스 멤버들에게 기가 쪽쪽 빨려서 숙취가 있는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 속이 쓰리다.
강효준이 콩나물국밥 하나를 일단 때려 마신 다음, 컵에 소주를 콸콸 부었다.
“형은 무슨 음주랑 해장을 동시에 해요.”
“효율적이잖아.”
“안 효율적이에요. 형 회사에서 잘 거예요?”
“어, 나 이거 먹고 잘 거야. 집 갈 체력 없어. 클라루스 멤버들도 지금 다 뻗었을걸.”
“형.”
“응.”
“우리 회사, 진짜 클라루스랑 전원 계약했어요?”
내가 무슨 틀린 말이라도 한 것처럼, 국밥 그릇을 들고 마시려던 강효준이 멈췄다.
우리는 그 상태로 잠깐 조용해졌다가, 곧 어처구니가 없어서 허허 웃었다.
보이드 엔터가 클라루스와 계약했다.
이 신생기업이, 클라루스와.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조용히, 이게 현실인지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나 정말로 현실감이 없었다.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아마 역사상 모든 엔터 회사에서 일어난 일 중, 가장 희한한 일로 손꼽힐 것이다.
내가 말했다.
“형. 진짜로 브삼 먹어야 돼요.”
“야, 지금 클라루스랑 계약한 것도 소화가 안 됐는데.”
“그 형들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려면, 브삼 먹어야 돼요.”
“…….”
“꼭이요, 형.”
이건 숙명이다. 이제, 필수적인 일이 됐다.
나는 내 콩나물국밥을 먹기 시작했고, 강효준은 결국 그 어마어마한 양을 다 먹어치웠다.
강효준은 바로 잘 거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나도 알고 본인도 알고 있었다.
클라루스와 계약했다.
아마 지금 전 직원이 회사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이미 클라루스 전담팀을 꾸리는 중이었는데, 그 속도를 더 빠르게 당겨야 했다.
데뷔시, 오후 2시 17분에 올릴 공지를 클라루스 멤버들과 충분히 상의했다고 했다. 가장 먼저 브삼에 가서 클라루스의 각종 계정 관련 문제부터 해결할 거라고 했다.
그 뒤에는 전세계의 연예란이 뒤집힐 것이다. 메이저, 마이너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신문사가 클라루스의 재계약에 대하여 다룰 거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그 달라진 세상에서 혼자 눈 뜨고 싶지 않아서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동안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서야 잠들었다.
* * *
[클라루스 브삼이랑 계약 종료되고 꽤 되지 않았어? 아직 어디로 가는지 소식 없음?]
[↳ㅇㅇ]
[↳어떻게 이렇게까지 기사 한 줄 안나냐]
[완전체 더 이상 못 보는 것까진 받아들였어도 아예 재계약 소식 없는 건 X나 피말릴 듯…….]
[팬들 희망 고문하네]
[↳지금까지 재계약 기사 없는데 희망 가지는 건 좀ㅎㅎ]
[클라루스 컨셉이 영원인데 결국 이렇게 끝나네 활동 내내 계속 볼 것처럼 하더니]
[↳제대하고 분위기 좀 다르긴 했어 팬들도 느낌…….]
[↳아이돌이 그럼 재계약 끝나면 다신 안 볼 사이지만~ 이지랄하는 게 맞냐?]
[↳전원 재계약이 진짜 힘든 거야]
[클라루스팬들 행복회로 돌리다가 멘탈 나가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나을 듯]
[↳우리가 알아서 해]
[↳클라루스 팬들 2, 30대가 대부분임 너보다 잘 알아]
[재계약은 진짜 까알임 그렇다고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도 없어]
[↳브삼 계약 깨지고 너무 오래 조용하니까 그렇지]
[솔직히 이쯤이면 진짜로 최소 한 명 이상 연예계 은퇴썰이 정설일 듯]
[클라루스 애초에 같은 날 브삼이랑 다 계약 끝난 거야? 군대 때문에 다 날짜 다르지 않아?]
[↳애초에 이거 맞추는 조건으로 재계약함 무조건 같이 가려고]
[↳저때 X나 뽕찼었던 거 기억난다…….]
[↳↳아……. 혹시 아직 계약 안 끝난 멤버 기다리는 건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구나ㅠㅠ]
대부분의 클라루스 팬들이 그렇듯이, 건실한 대한민국 직장인이며 룩스이자 채연재의 팬 @checherry_U 역시 혼몽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checherry_U의 타임라인은 일시적으로 얼어붙었다. 드문드문 생일이 다가오는 서민혁의 생일 해시태그에 관한 투표와 생일카페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두 번째 재계약이니까, 이번에는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팬들끼리도 초연한 척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정작 집에 오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회사에서 시달린 피곤한 몸으로, 정신은 잠들지 않아 계속 뒤척였다.
매일 12시, 혹은 2시 17분마다 혹시 뭐라도 뜨지 않을까 긴장하며 보냈다.
너무 잠이 안 와서 결국 일어나 SNS를 열었다.
하도 기사가 안 나오니까, 재계약을 거의 포기한 팬들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 멤버들 정말 많이 고민했다는 거 알아 지금까지 클라루스 지켜줘서 정말 고마웠고 우리 이제 편하게 보자!]
[회사가 달라져도 재결합하는 sbn들 계시니까 그건 걱정 안 해 힘들어도 다시 무대에 설 거라는 말만 해줘ㅠㅠ]
[근데 룩스들 말은 이렇게 해도 공지 뜨면 멘탈 나갈 거 같아……. 룩스들 멘탈 잡자]
[혹시 아직 조율 중이면 희망 있을까?]
[↳솔직히 지금까지 공지 없었던 거면 희망 없다고 보는 게 맞지…….]
[클라루스 계정들 하나씩 닫히는 거 보니까 진짜 실감난다ㅠㅠ]
@checherry_U는 SNS를 한동안 뒤적거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희망을 잡고 있는 게, 정말로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완전체는 없으리라, 받아들이고 나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올리고 나니까 현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던 게 맞았던 모양이었다.
@checherry_U는 가족이 깰까 봐 방 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다음날 출근 걱정은 들지도 않았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X 같은 회사를 다니는데……. 속상하다, 진짜…….”
혼자 중얼중얼거리면서 펑펑 울고 나서 잤더니 예상대로 다음 날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다행히 옆 사람에게 그리 참견하지 않는 분위기라 클라루스의 재계약 때문에 울었다고 설명해야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다. 평소에는 2시 17분에 자동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나서, 전화할 일이 있어 핸드폰을 확인한 @checherry_U는 무언가를 유추했다.
단톡방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checherry_U는 서둘러 단톡방을 확인하려 했다. 그 시점에서도 계속해서 단톡방의 글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미리보기에서 ‘보이드 엔터’라는 글을 보고 나니 철렁했다. 멤버 중 누군가가 보이드 엔터로 간 모양이었다.
@checherry_U는 무슨 정신인지 모르게 업무 전화를 한 후에, 급하게 화장실로 가서 보이드 엔터 계정을 찾았다. 거기에 정확히, 오후 2시 17분에 올린 공지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보이드 엔터입니다. 먼저 클라루스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룩스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어제(10월 12)일, 클라루스(연재, 효원, 민혁, 다온, 윤태, 여름) 멤버 전원이 보이드 엔터와 계약을 체결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클라루스의 모든 멤버들은 팬 여러분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전원 계약에 동의했으며, 당사는 팀 클라루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보이드 엔터와 함께 더 넓은 음악 세계를 만들어갈 클라루스 멤버들의 결정에 지지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멤버 여섯 명의 이름을 봤다. 보고 또 확인했지만, 여섯 명이 맞았다.
@checherry_U는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리더 서민혁을 시작으로 멤버들이 하나둘 SNS에 재계약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민혁 : 룩스들 놀랐지ㅠㅠ 우리가 가장 우리다울 수 있는 곳, 우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곳을 많이 고민하다가 보이드 엔터에서 우리 여섯 명이 모두 함께 하게 됐어. 나의 형제 우리 멤버들과 나의 영원한 사랑 룩스들이 나에게는 전부야.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채채 : 룩스들~ 우리 다 같이 왔어요♥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도 나눌 이야기도 많이 남았죠? 우리 여섯 명이 룩스와 함께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할 날이 새롭게 시작된다는 게 행복하네요. 클라루스와 룩스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자랑 둘이에요. 고마워 내 사랑.]
[효원 :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여름 : 손잡고 가자 내 형제들, 내 사랑 룩스! 세상을 클라루스의 음악으로 뒤덮으러 가자♥]
[송다 : 우리 멤버들이 전부 모이는 게 얼마나 큰 힘인지 재계약을 통해서 알았어요. 세상에 당연한 건 없구나, 룩스의 사랑도 그렇구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좋은 기회였어요. 우리가 클라루스의 팬, 룩스라는 걸 자랑스럽게 만들어줄게요! 사랑해요!]
[윤태 : 안녕하세요 룩스들. 재계약을 하면서 우리 멤버들이 얼마나 끈끈한지, 그리고 우리가 왜 음악을 하는지, 아이돌로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클라루스의 존재 이유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마 우리의 이름이 존재하는 마지막 날까지 룩스를 위함일 거예요. 손을 꽉 잡아주세요. 저 우주 끝까지 달려가도 풀리지 않게요. 클라루스도 그럴 거예요. 고맙다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싶은 날입니다. 정말로 많이 사랑합니다.]
새로운 회사, 보이드 엔터의 공지와 멤버들의 인사까지 뜨고 난 후.
[진짜 너무 안 믿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진짜야?]
[와 미친 룩스 홈마들 한 번에 다 돌아왔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클라루스팬들 X나 축제다 개행복해보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옆자리 직원 룩스인데 아까 화장실에서는 좀 울고 오더니 계속 큭큭큭큭 이러고 웃고 있어 회사에서 일코 중이고(나만 우연히 알게 됐어!) 평소에 절대 안 웃는 직원인데 이해가ㅋㅋㅋㅋㅋㅋㅋㅋ]
[하 오늘 하루만 룩스 하고 싶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 그대로 전 세계가 들썩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