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10화 (31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10화

이춘형이 클라루스 완전체 계약에, 정해원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클라루스의 라방이 끝나고 하루 뒤였다.

-이게 설명하자면 진짜 긴데, 해원이가 프로듀서로서 방향을 잡아줬고, 연재 형 말처럼 송다가 총대를 멨어.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최악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

이춘형은 클라루스가 완전체 계약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 일부라도 확실히 붙잡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한 명도 잡지 못했다. 입이 딱 벌어지게 좋은 제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후 VMC 고문, 할아버지에게 머리채까지 잡히며 현란한 욕설을 듣고 나서 이춘형은 적어도 정해원을 이용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의지할 곳이 하나는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클라루스가 보이드 엔터와 계약한 이유 중에, 정해원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속이 뒤집혔다. 살면서 이 정도로 화가 나 본 것은 처음인 정도였다.

“이 새끼, 내가 사람을 써서라도 죽인다, 이 X발…….”

이춘형은 이를 으득으득 갈며 중얼거렸다.

도무지 이 분노를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 어떠한 결정이 나기 전에, 이춘형은 지금 당장 미국 지사로 이동하기 위해 부대표실을 비우고 있었다. 그건 아버지의 뜻이었다. VMC의 대표조차 감당할 수 없는 건이었던 것이다.

언젠가 정해원에게 이 치욕을 갚아주지 않으면 미쳐 죽을 것 같았다.

다양한 방법을 생각했다. 첫 번째로 악편을 생각해 봤는데, 그건 수월할 것 같지 않았다. 이미 정해원이 악편의 피해자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굴을 훼손하는 건? 이미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지금 그것 때문에 조사받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짓을 또 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차라리 사람 써서 죽이고 말지. 자신까지 엮인다고 해봤자 집행유예로 나올 수 있을 테니까.

여러 가지 고민을 해봤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해원이 의외로 회복력이 좋다는 것이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지피지기의 정신으로 정해원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이춘형은 보이드 엔터로 모여드는 주주들을 피해, 곧바로 미국으로 도망치며 정해원 관련 영상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부하직원들에게 시켰겠지만, 이제는 그 무능한 놈들도 믿을 수 없었다.

정해원의 솔로곡, 퍼스트라이트 앨범의 작업 과정,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라방…….

정해원은 말 그대로 외로울 때마다 라방을 켜는 사람이었고, 문제는 외로움을 워낙 많이 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팬들이 이걸 다 감당할 시간이 있나 싶을 정도로 방송이 쌓여 있었다.

“하, 이 시간이 남아도는 새끼.”

그렇게 욕을 하며 정해원에 대하여 분석하다 보니, 약점이 하나 보였다.

정해원이 작업실에서 라방 중일 때 동생들, 박선재와 민지호가 놀러 온 영상이었다.

-햇살이들 안녕! 안녕! 아녀어엉!

-햇살이들 귀 아프겠어.

-안녀어엉…….

박선재의 지적에 민지호가 소리를 죽여 소곤소곤 인사하자 옆에서 정해원이 큰 소리로 웃었다. 동생들의 별것 아닌 대화가 귀엽고, 그저 마냥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웃고 나서, 정해원은 두 명의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작곡을 설명해 주는 것이었는데, 이야기하는 내내 쉼 없이 웃음이 터졌다.

[해원이 진짜 동생들 얘기는 무슨 말만 해도 터져ㅋㅋㅋㅋ]

[효석이도 해원이랑 얘기하면 자기 웃긴 사람 된 기분이라잖아 리액션이 워낙 좋아서ㅋㅋㅋㅋ]

[↳형 같은 동생도 귀여워하는데 지운이는…….]

[↳↳지운이는 해원이가 귀여워해 주지 않아도 그냥 귀여우니까><]

[↳↳↳이게 맞다]

[↳↳↳맞아 지운이는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냥 귀여우니까><]

[↳↳↳근데 또 지운이도 해원이가 나름 귀여워하는 방식이 있어]

[↳↳↳↳맞아 오래 보니까 이거 느껴져ㅋㅋㅋㅋ]

동생들.

이건 분명한 약점이었다. 정해원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절대적인 약점. 정해원은 본인이 얼굴에 칼을 맞을 뻔했을 때보다, 동생들이 자신 때문에 다치는 것에 더 크게 멘탈이 흔들릴 사람이라는 것을. 이춘형은 알아가고 있었다.

* * *

[와 X발 퍼라 리패키지 X나 힘줬네]

[말 나온 김에 퍼라 컨포 봐주라 꼭 봐]

[ㅅㅂ퍼라 역대 컨포중에 제일 좋음]

[퍼라 뮤비 티저 반응 해외에서 완전 터졌네]

[↳그럴만]

[↳리패키지 서늘한 느낌 진짜 잘 뽑았더라]

[이번에 퍼라 리패키지 몇 곡이야?]

[↳3곡!]

[퍼라 이번 타이틀 들었니 X나 춥고 X나 좋다]

안주원은 리패키지 타이틀 반응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정규 앨범보다도 해외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안주원은 그런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번 리패키지 앨범은 2종. 겨울의 서늘함을 담은 컨셉 포토들이 들어 있었다.

리패키지 앨범은 정규 앨범 컨셉에서 이어지는 Mythology, 신화로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중심으로 했다.

원래 퍼스트라이트의 메인 프로듀서인 정해원은 멤버들이 뭘 해달라고 다짜고짜 가지고 오면, 최대한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민지호가 가지고 온 ‘섹시미’를 만들어주기 위해, A&R들과 이런저런 회의를 이어갔다. 그리고 몇 번 함께 작업하며 꽤 친해진 모양인 OIN 스튜디오 홍 감독과도 많은 상의를 했다. 무엇보다 최우선은 멤버들의 의견이었고…….

그리고 그러한 두 사람의 회의 끝에, 정해원은 작업실에 틀어박혔다.

안주원은 정해원이 작업실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날은 한참 작업중이던 정해원이 가사가 안 나온다면서 안주원을 불러, 회사에 간 김에 작업실에 들렀다. 정해원은 일부러 더 가사를 쓸 때 안주원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었다. 진짜로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가사에는 안주원이 참여한다’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던 듯했다.

“어, 왔어?”

“얼마나 됐어?”

“많이 됐는데 가사가 잘 안 나와.”

평소에 정해원은 아예 곡 작업과 가사 작업을 동시에 할 때가 많았다. 곡을 만들고 있는 중간에 가사도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 때가 안주원의 눈에는 정해원이 정말로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먼저 떠올라 만들 때 덜 재능있어 보이는 건 또 아니었다. 안주원은 정해원의 음악을 좋아했고, 심지어는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좋아했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이라는 것이, 작업하는 과정도 상당 부분을 촬영해 보여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과정 역시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 아이돌이라고 안주원은 생각하고 있었다.

안주원이 자리에 앉았다.

“들려줘 봐.”

“이건데. 아직 제목도 없긴 해.”

정해원은 안주원에게 음악을 들려주었다.

확실히, 지금까지 활동한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퍼스트라이트의 활동은 격렬한 안무를 동반한 강렬한 댄스 음악이거나, 혹은 팬들이 ‘처연한 청량’이라고 말하는 퍼스트라이트 특유의 청량이 있었다. 아무래도 퍼스트라이트의 음악들이 사랑에 자신만만하게 나서는 느낌은 아니어서 처연한 청량이라는 말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건 그 두쪽이 다 아니었다.

말하자면, 굳이굳이 나누자면 정해원의 솔로곡이었던 프루티에 가까웠는데 완전히 그런 느낌은 또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더 서늘하고, 강렬한 느낌이었다.

뭐라고 말해야하는지 안주원은 머리를 정리했다.

음악은 좋았다. 지금까지 시도해본 적 없는 스타일이어서 더더욱 어떤 무대를 만들게 될지 궁금했다.

다만 궁금함에서 끝날 뿐,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해원이 만들고 싶은 무대가 어떤 건지.

안주원이 음악이 끝나도 말이 없으니, 정해원이 물었다.

“어때?”

“솔직히…… 어떤 가사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 너는 무슨 생각을 했는데?”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일단은 우리 앨범 컨셉 ‘신화’에서 연결되는 거니까……. 신에 관한 노래라고 생각하며 만들기는 했어.”

“신자 입장이야?”

“당연히 우리가 신…… 그러고 보니까 마태오는 약간 신자 입장이긴 했네.”

“완전히 신자 입장이지.”

안주원의 대답에 정해원이 웃더니 다시 음악을 반복했다.

“그럼 신의 입장이라고 생각해 봐. 뭐가 생각나?”

정해원이 다시 플레이해 준 음악을 안주원은 신중하게 고민하며 들었다. 늘 정해원이 혼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작업하고 있기 때문에, 가사에 있어서 이렇게 의지하는 게 고맙기까지 했다. 그래서 무언가 답을 만들고 싶었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상태로 정해원이 틀어준 음악을 듣는데, 소리 중간중간에 음악들이 마치 목소리처럼 들렸다.

신이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안주원이 말했다.

“속이는 것처럼 들리는데.”

“속여?”

“신이 자기를 믿으면 다 해결될 거라고 속이는 것처럼 들려.”

“…….”

“…….”

“…….”

“……별로야?”

안주원이 묻자 정해원이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씩 웃었다.

“좋다. 그걸로 가자.”

“뭘 그걸로 가, 고민 좀 해.”

“쭈어나, 내가 언제 아닌데 맞는다고 하는 거 봤니.”

“너 지난번에 지호가 끓인 라면 맛있다고 했잖아.”

“에이, 그건 그거지…….”

정해원이 말하면서 흐흐 웃었다. 그리고 시퀀서 화면을 보며 말했다.

“근데 진짜야. 나는 내 음악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그냥 내 취향이고 좋아해. 내 음악이 세상에서 제일 내 취향일 수밖에 없잖아.”

“음.”

“그러니까 아니면 아니라고 해. 그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

“알았어.”

“그리고 네 가사는 늘 내가 못 쓰는 것에 대해서 말해주잖아. 나는 그게 좋더라.”

안주원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해원과 함께 가사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신이 속이는 목소리와 상처. 안주원은 정해원과 거의 단숨에 가사를 적어 내려갔다. 평소 안주원이 가사에 참여할 때는 대부분, 수줍음 많은 안주원이 몰래 가사를 쓰면 정해원이 불쑥 나타나서 뺏어다가 곡을 붙이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과정이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수월했다.

이상하게 이번에는 뭔가, 정해원이 만든 리패키지 앨범이 타이틀이 안주원에게 가사를 한 줄씩 불러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들린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작업실에서 이틀을 쪽잠을 자고 처박혀서 곡과 가사를 완성했다.

안주원이 러프하게 가이드를 흥얼거려 녹음한 걸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함께 들어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만족해서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좋다.”

소파에 누운 정해원의 말에 안주원이 대꾸했다.

“가사를 잘 썼네.”

평소 잘 안 하던 안주원의 말에 정해원은 터져서 낄낄거리고 웃고, 안주원 역시 웃음이 터졌다.

빨리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이었다.

* * *

VVV엔터 4본부 매니지먼트 팀 팀장이자 정해원의 스파이, 박중운 팀장은 카일룸의 스케줄을 기다리는 사이에 정해원이 보내준 음성 파일들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외부로 새어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자료들이라, 박중운 팀장은 직접 소리를 분석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요즘 생긴 좋은 취미 생활이었다.

그렇게 분석씩이나 하지 않아도, 박중운 팀장은 원래부터 귀가 좋은 편이라 직접 찬찬히 음성 파일을 들어보았다.

이춘형은 알게 모르게 정해원에 대한 증오 섞인 동경이 있는 듯했다. 음성 파일 양만 봐도 그랬다. 정해원에게 전화를 한 기록이 상당히 많았다.

그렇게 음성 파일을 듣던 박중운 팀장은 어떤 구간에서 음성 파일을 멈췄다. 그리고 그 구간을 반복해서 들어보았다. 몇 번, 그렇게 반복해서 듣고 난 박중운 팀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정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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