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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11화 (31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11화

컴백 전날 새벽. 사전녹화를 위해 대기 중이던 나는 스파이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어, 형.”

-지금 사녹 중이야?

“어어, 이제 들어가려고.”

-해원아, 이거 네가 녹음한 이춘형 통화내역들. 이거 금광이다. 계속 뭐가 나와.

“……그래?”

내가 들었을 땐 뭐 아무 것도 없었는데……? 뭐가 있어 거기……?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너무 멋모르는 사람 보일 것 같아서 약간 아는 척을 했다.

“어, 그렇지. 아, 내가 바쁘지만 않았으면 내가 확인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네.”

-내가 하면 되지.

“든든하다, 든든해. 진짜 형 밖에 없다.”

주기적으로 이렇게 말해주지 않으면 다른 스파이가 있다고 오해……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일단 잘 들리는 것부터 들어봐. 배경에 들리는 건 내가 확실하게 분석해서 보낼게.

“배경에 뭐가 들렸어?”

아는 척하려다가 약간 실패했다. 뭐가 들렸는데. 나는 그냥 이춘형이 말하는 것도 뭐라고 지껄이는지 잘 안 들리던데…….

-응. 내가 아는 목소리가 분명한데. 그래도 정확한 게 좋으니까, 그 사람 목소리 녹음해서, 분석한 다음에 알려줄게. 이 부분은.

“……어어, 와. 오. 기대돼, 기대돼.”

이 형 뭐하는 사람인데. 지금 뭐 하는 건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데?

머릿속도 마음속도 복잡해졌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한테 피해올 건 전혀 없다. 오히려 이득이었다. 그냥 사람이 좀 섬뜩해서 그렇지…….

그런 생각들을 숨기고 일단 공치사하고 나니까 박중운 팀장이 이춘형이 전화로 한 말을 들려줬다.

-해원 씨는 아직 어려서 모르는데, 원래 사업이라는 게 그런 거야. 리스크를 줄여야지.

이런 말을 했었다고?

딴짓하면서 흘려들었나 보다. 허허.

-클라루스 여섯 명 다 모였을 때 개인 여섯 명이 합친 것보다 큰가를 봐야지. 근데 아니더라고? 게다가 본인들도 딱히 안 원하잖아. 어차피 클라루스 멤버 여섯 명 다 못 잡을 거면, 확실한 쪽에 투자해야지. 내가 해원 씨한테 솔로 제안한 것처럼. 그래서 내가 지시했어. 확실하게 남을 멤버한테만 제대로 제안하라고. 우리 회사에 남을 생각 없는 놈들까지 잡을 필요는 없잖아? 클라루스 없다고 망할 회사도 아니고.

와, X발.

그니까, 내가 이걸 흘려들었구나?

지금 전달해준 내용에 의하면 이춘형 팀장은 애초부터 클라루스 멤버 전원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 애초부터 멤버들에게 확연히 차이 나는 조건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대답을 하긴 했었다. 무의식중에 했나 보다. 저런 대답을 한 기억이 없는 걸 보니…….

-그래도 클라루스 완전체로 계약 조건도 물어보긴 하신 거죠?

-내가 왜? 지들이 싫다는데.

이 새끼. 그 와중에 자존심을 세웠던 모양이다. 니들이 싫으면 안 잡는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싶었던 건가.

어찌 되었든 지금 녹음된 이춘형의 말에 의하면, VVV엔터가 클라루스를 잡지 못한 원흉은 이춘형 본인이었다.

지금 VVV엔터는 이 회사가 클라루스를 잡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미 클라루스가 말도 안 되는 몸값을 요구했다든지, 갑질을 했다든지 하는 언플을 쏟아붓기 시작하려고 밑밥을 깔고 있는 게 보였다. 원래 VMC 하면 언플, 언플 하면 VMC였기 때문에, 여기에 대응하려고 보이드 엔터도 미리부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원흉이 이춘형이라 제목에 딱 박아버릴 증거를, 내가 흘려 넘길 뻔했던 것이다.

“……내가 이걸 제대로 안 들었네.”

-그래서 녹음을 하는 거지.

“잘했지?”

-너는 늘 잘하지.

내가 공치사를 열심히 해주니까 스파이도 해준다.

그렇게 듣고 나서, 나는 한숨을 돌렸다. 아마 최근 계속되던 이춘형의 협박에 은근히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협박들도 전부 정리해서 스파이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본인 연락처는 아니었고, 전부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전부 차단을 할까 하다가, 반대로 그 번호를 전부 저장했다. 그리고 협박이 올 때마다 그냥 핸드폰에 잘 쌓아놨다.

죽여버리겠다든지, 뭐 얼굴을 갈아버린다느니 하는 게 모르는 번호로 오는 건 솔직히 괜찮았다. 물론 안 무서운 건 아닌데, 이미 이춘형 그놈의 전 수행비서라는 작자가 내 얼굴을 그으려 한 전적이 있었다. 그냥 협박 수준이 거기까지구나, 싶어서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도 없잖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파이에게 음성 분석인지 뭔지 모르는 것을 잘 부탁한다고 전했다. 그 후에 사전녹화를 하려고 대기실로 돌아가려는 찰나였다.

나는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를 보았다.

순간 나는 사전녹화에 대한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멍한 상태가 되었다.

계속해서 욕설이 날아오던 연락처로 사진이 왔다. 대기실 안에 있는 민지호와 박선재의 사진이었다. 그것도 지금.

나는 급하게 대기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는데 우리 멤버들밖에 없었다.

“형? 왜?”

박선재가 바로 일어나서 나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내 멘탈 상태에 대한 걱정이 많은 멤버들이다 보니, 하나둘, 심지어는 옷이 주르륵 걸린 헹어로 가려놓고 구석에 쓰러져 있던 황새벽까지 일어나서 내 쪽을 봤다. 나는 멤버들에게 물었다.

“누구 여기 안 왔었어? VVV엔터 직원이나? VMC 직원?”

“많이 왔지. 계속 들락거리지, 뭐. 우리 이제 컴백하는데.”

박선재가 내 말에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이 대답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내 얼굴이 점점 질렸는지 인상을 썼다.

“형 안 괜찮지? 얼굴 하얀데?”

“어…… 어. 괜찮아. 진짜 괜찮아. 갑자기 긴장이 확 되네.”

내가 말하니까 신지운이 핀잔했다.

“형 또 빡센 컨셉하니까 신경 쓰인 거 아냐? 저러다가 또 햇살이들이 좋아해주면, 금방 괜찮아질 거잖아.”

“그치…… 아, 좋아해 주겠지? 왜 연차가 쌓여도 덜 불안하지가 않냐. 오히려 더 해, 매번.”

“저도요. 그래서 오늘도 소화제 먹었어요.”

“나눠주더라…… 고맙다…….”

한효석의 말에 황새벽이 말하고 다시 쓰러졌다. 자식, 그래도 내 표정 안 좋단 말에 잠깐 일어나는 뭐서 고맙다, 친구야…….

아무튼 나는 곧 무대에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소파 한 구석에 앉아서 손을 꽉꽉 주물렀다. 한동안 안 이랬는데, 멤버 사진 몇 장 보낸 걸로 이렇게 확 긴장이 될 수가 없다. 나도 진짜 한심한 멘탈이었다.

얼굴을 다치는 걸, 내가 엄청 무서워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다치는 건 그냥, 괴롭긴 해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알아서 회복하고, 그런 노력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만약에 멤버가 다치면.

나는 생각만으로 훅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어서, 손을 점점 더 강하게 주물렀다. 안 되지. 절대 안 되지. 그렇게는 둘 수 없었다.

내가 거기 앉아서 손을 주무르고 있으니까, 신지운이 옆에 와서 말했다.

“형. 그만해.”

“…….”

“정해원, 그만하라고.”

“어. 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손을 보니까 너무 세게 눌렀는지 벌겋다 못해 퍼레져 있었다.

“어휴, 나 뭐 하냐.”

정신 차려야지.

나는 일부러 눈을 부릅뜨고 뺨도 두 손으로 짝짝 때려본 후에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넋이 나간 것 같았는데, 다행히 사전녹화를 위해 무대에 올라갔더니 정신이 팍 들었다.

햇살이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환호해줬고, 그 소리는 언제나처럼 나의 모든 불안과 걱정,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스트레스를 0으로 만들었다.

나는 무대 앞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햇살이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하고 손을 흔들었다. 아, 그리고 살짝 자랑했다.

“햇살이들, 나 며칠 전에, ‘말랑버터’라고 검색해 봤어요.”

내 말에 햇살이들이 멈칫했다. 이상하게 우리 팬들은 우리가 뭘 검색하는 걸 참 싫어하는 것 같다. 나는 좀 웃으면서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말했다.

“나 엄청 귀여워하던데?”

“귀엽잖아.”

햇살이들이 거의 동시에 말해서 나는 흐흐 웃었다.

“햇살이들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그 말 들으려고 물어봤지이.”

스물세 살 먹어서, 이렇게 귀엽다는 말 좋아하는 사람도 흔치 않겠다, 싶다. 물론 우리 팀에서는 절대 다수다. 허허.

나는 햇살이들과 그렇게 이야기하며 긴장을 풀었다. 그러고 있는데 신지운이 내 쪽으로 오더니 나한테 자기가 끼고 있던 반장갑을 줬다.

“형, 이거 껴. 방송에 나오겠다.”

“어, 고마워, 고마워.”

나는 신지운이 준 반장갑을 바로 받아서 내가 눌러댄 손에 끼웠다. 내가 눌러댄 손에 조금씩 멍이 들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사전녹화 무대를 세 번 연달아 하며, 그 스트레스를 완전히 풀어냈다. 세상에, 그리고 내 인생에 무대가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다. 햇살이들이 있고, 날 걱정해줄 멤버들이 있어서 좋았다. 그러니 내 인생 속에서, 그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건 분명히 내 몫이었다.

* * *

스파이는 빨랐다.

그 음성 분석이라는 걸, 내가 사전녹화하는 사이에 전부 마쳐서 핸드폰으로 보내뒀으니까. 그 파일을 보냈을 때가 새벽 네 시였다. 보통의 직장인은 이 시간에 자고 있지 않나? 하지만 박중운 팀장은 엔터 회사의 직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보통의 직장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사람이니까.

나는 파일을 받아서 들어보았다. 이번에는 이춘형과 전화할 때처럼 대충대충 날려서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 파일 내용을 문서로 적었다. 원래 이건 프레젠테이션의 기본이니까.

사전녹화 후에 멤버들은 숙소로 돌아갔지만, 나는 VMC 빌딩에 남았다. 강효준 대표는 우리 사전녹화를 보고, 바로 VVV엔터 4본부에 가있었다. 카일룸이 모처럼 우리와 컴백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이 형이야말로 잠을 자긴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스파이가 보내준 음성 파일과 내가 작성한 문서를 가지고 VVV엔터 부사장실에 있는 강효준 대표를 찾아갔다.

“형.”

“어. 너 아까 상태 안 좋았다며.”

이야, 우리 회사 참 비밀 없다.

나는 거기에 대한 대답 대신, 내가 할 말을 했다.

“이춘형이 저 협박해요.”

“…….”

“죽인데요, 사람 써서.”

“……언제부터?”

“클라루스 재계약한 날부터.”

“참 일찍 말하네?”

아니, 지금이 빡칠 타이밍이 아니고요, 이 사람아.

나는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했는데. 그 새끼가 대기실에 있는 멤버들 사진을 보내는 거예요. X발, 무섭게.”

“…….”

“형. 저요. 만나고 싶은 사람 있는데, 데려가 주면 안 돼요?”

“우리 외할아버지면 지금 당장 가자. 만나러.”

“아뇨. 형네 외삼촌이요. VMC 대표. 이춘형네 아버지.”

“……외삼촌?”

내 말에 강효준 대표가 의아한 표정으로 날 봤다. 나는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네.”

“만나서 뭐하게. 너 미치게 싫어할 텐데.”

“아들 손절 하라고 하게요.”

“…….”

“그렇게 설득할 수 있어요, 제가.”

아들이 딱 하나 있는 집도 아닌데. 그 새끼 살리려고, 온 가족을 말아먹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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