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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12화 (312/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12화

외할아버지면 당장 만나러 가자던 강효준 대표가, 외삼촌을 만나러 가자는 말에는 반응이 느렸다.

한참이 지나서 강효준 대표가 물었다.

“너 우리 외삼촌 만난 적 있어?”

“어, 국선아 때 언뜻 본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는 거네.”

“전혀 모르죠. 근데.”

나는 강효준에게 내 핸드폰에 도착한, 대기실에 있던 민지호와 박선재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춘형이 저한테 사진 보내서 협박했어요.”

“…….”

“이건 진짜 그냥 놔두면 안 되는 거잖아요.”

강효준 대표가 말이 없어서, 나는 바로 스파이가 보낸 자료를 넘겼다.

강효준은 눈으로는 나를 보며 손으로 자료를 받았다. 그리고 자료를 넘겨보더니 말했다.

“너 회사를 전혀 안 믿는구나.”

“아니, 믿긴 믿는데…….”

“믿긴 뭘 믿어. 이런 거 하라고 회사 있는 건데, 네가 이러고 다니는 거. 회사 입장에서 엄청 큰 리스크야.”

“…….”

할 말이 없다. 회사에서는 어떻게든 내가 이춘형과 만날 일이 없게 하려고 하고, 경비라든지 프레스라든지 여느 아이돌들보다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내가 알아서 나대고 있는 게 좀. 아니, 솔직히 많이 리스크라는 게 과장은 아닐 거다.

나는 대답했다.

“마지막이에요. 이춘형네 부자 관계만 딱 끊기면, 진짜 이럴 일 다시는 없어요.”

“아, 피곤하네, 진짜.”

강효준은 중얼거리면서도 자료를 마저 읽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물었다.

“너 이거, 공개되면 진짜 VMC 난리 나는 거 알지?”

“네. 아들을 손절할 정도죠. 형이랑 외할아버지 지분 합쳐도 VVV엔터 먹기에는 모자라잖아요. 이춘형 쫓아내고, 외삼촌한테도 딜 걸어요. 형이 외삼촌이든 주주들이든 의결권 위임받아서 VVV엔터 먹어요. 그럴만한 건이잖아요?”

“…….”

강효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외삼촌, VMC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자기 외삼촌한테 ‘대표님’이라고 하는 걸 보니 별로 안 친한 모양이다. 강효준은 예상대로 평소 눈치 안 보는 성격 그대로 말했다.

“얘기 좀 하시죠? 할 얘기 많은데.”

나한테 치면 그러니까 노을이 뻘이다.

우리 노을이가 나한테 저렇게 말한다고 생각하면…… 그냥 내가 뭔가 잘못했구나, 싶을 것 같다.

하지만 나와 달리 조카를 치명적인 경쟁자로 여기는 VMC 대표는 그렇게 쉽게 대응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묻고 나서야 꼭 필요한 자리겠구나, 싶었는지 최대한 빠른 날짜로 약속을 잡았다. 두 주 후, 퍼스트라이트 리패키지 활동 종료일 밤이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친 후, 나는 대표실을 나가기 전, 한 번 더 말했다.

“형, 민조랑 막냉이 진짜 다치면 안 돼요.”

“나한테도 안 돼, 애들 다치면. 넌 좀 가서 자라. 누가 데뷔 전날 그러고 돌아다녀?”

나는 결국 한 소리 더 듣고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일단 약속 전까지 두 주 동안, 활동에 집중해야겠다.

* * *

리패키지 앨범 공개 2시간 전.

퍼스트라이트 멤버 신지운은 긴장하는 멤버들을 돌아보고, 다시 핸드폰에 있는 리패키지 앨범 타이틀곡을 들었다.

이번 컨셉은 여러모로 본인에게 집중이 되는 경향이 있었다. 정해원은 매 앨범을 구상할 때마다, 특히 그 앨범에 어울리는 멤버를 나름으로 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게 신지운이었다.

마태오 때에 이어서, 정해원은 신지운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에 굉장히 이상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한창 리패키지 타이틀 작업 중이던 때, 정해원은 신지운과 같이 숙소 거실에서 야구를 봐주다가, 광고가 시작되자 도중에 물었다.

“나 궁금한 게 있어.”

“뭐.”

야구를 보던 신지운이 건성으로 대꾸하자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너는 성당 다니잖아.”

“어.”

“되게 바빠도 웬만하면 일요일에 가잖아.”

“응.”

“그 정도로 독실하면, 행복할 때도 기도를 해?”

“……뭔 질문이야, 그게?”

정해원의 말에 신지운이 돌아봤다. 그러자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보통, 엄청 괴로울 때 기도하잖아. 나는 종교가 없어서 그런지, 힘들 때만 일시적으로 세상 모든 종교에 의지했거든. 내가 이름 아는 신이란 신은 다 찾아서 기도하고. 그래서, 독실한 사람들은 행복할 때 기도하는지가 궁금해.”

“…….”

신지운은 정해원이 기묘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다. 평소 작곡할 때 빼고는 진지한 일이 없는 정해원이었기 때문에 더 왜 저런 질문을 하는지 궁금했다.

“갑자기 왜?”

“어, 가사. 안쭈랑 고민하다가 우리끼린 답이 안 나와서?”

역시나 그냥 작곡 때문에 진지해진 거였다.

신지운이 대꾸했다.

“나는 안 해. 근데 신부님들은 독실하니까 행복할 때도 기도하지 않을까. 근데 그게 중요해?”

“아까 가사 회의하는데, 안쭈가 물어보더라고. 만약에 종교가 있는 사람이, 계속 불행하기만 하면 신이 싫어질까? 속은 기분이 들까? 근데 우리 둘은 무교라 모르겠더라고.”

“그거 욥기네.”

“아, 성경? 읽어볼까. 어쨌든 베스트셀러잖아. 대중음악 작곡가가 잘 팔리는 건 다 읽어봐야지.”

그러더니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마워. 아, 나 가서 다시 일해야겠다. 야구장에 사람이 많네?”

“어, 코시거든.”

“코시가 뭐야.”

“한국시리즈.”

“그게 가을야구지?”

“형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저걸 1시간을 보고 있었냐.”

“난 저 초록초록한 게 좋다고. 녹색을 이렇게 많이 볼 일 없잖아……. 근데 올해도 안주원네 팀은 가을야구를 안 하는 거지?”

“어.”

“좀 돌아가면서 시켜주지. 너무하네.”

“가을야구를 돌아가면서 시켜주라고?”

“어.”

“진짜 새로운 관점이다. 태어나서 저런 말 처음 들어.”

“10년씩 가을야구 못 하고 그러는 거 너무 야박하잖아. 안주원 야구를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렇게 투덜거리더니 작업을 하러 떠났다.

신지운은 정해원이 떠나고도 야구를 보다가, 다시 광고가 나올 때 곧바로 카메라를 꺼냈다.

“오.”

안주원이 출연하는 영화 광고였다. 아직 개봉이 한참 남았는데 벌써 이렇게 광고를 때리는 걸 보니, 홍보비를 어마어마하게 쓴 모양이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안주원에게 보내주고 나서, 신지운은 며칠 전 본가에 다녀온 일을 떠올렸다.

정말 오랜만에 집이었다. 부모님이 간만에 밥이나 먹자고 해서, 모였다.

“가족끼리 모여서 밥 한번 먹기 참 힘드네.”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가 대꾸했다.

“그럼 자기가 시간을 내든지.”

“내가 시간이 어디 있어.”

“나도 없어.”

그러더니 조용했다. 말하면 싸우니까 그냥 말을 말자는 것 같다. 그럼 아예 밥도 같이 안 먹으면 좋겠는데, 굳이 한 번씩 모여서 밥을 먹는다.

그렇게 식사를 하는데 드디어 두 사람이 안 싸울 수 있는 주제를 찾아냈다.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신지운은 연차가 이만큼이나 찬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건 아버지가 먼저 한 질문이었지만, 어머니도 같은 것을 궁금해하고 있는, 그런 말이었다.

“너는 그건 언제까지 할 거니?”

“그거요?”

신지운이 대꾸하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그거.”

“그게 뭔데요.”

“아이돌.”

“저 돈 잘 벌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있잖아.”

“무슨 체면이요? 아버지 저 뭐 하는지는 알아요?”

신지운이 공격적으로 묻자 아버지가 말했다.

“아이돌이 뭐 하는지 알지, 그럼. 연예인 하지 말라는 거 아니다. 근데 연예인도 급이 있잖아.”

“…….”

“연기는 그래도 고급 예술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

아버지한테 욕하면, 아버지한테 욕한 게 더 나쁠까, 대형 로펌 변호사한테 욕한 게 더 나쁠까. 아버지는 아들한테 소송을 걸까, 안 걸까.

신지운은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시하고 밥을 먹었다. 어머니가 핀잔했다.

“나중에 하겠지. 애 재촉하지 마.”

“나중에 언제. 어차피 할 거면 미리 하면 좋잖아.”

갑자기 이 이야기가 왜 나왔나, 생각하던 신지운은 혀를 찼다.

이제 티케 엔터, 그러니까 개인 활동을 계약한 소속사와의 계약이 얼마 남지 않았다. 원래도 티케 엔터 사장은 대형 로펌에 소속된 신지운의 아버지와 꽤 친했다. 밥도 같이 먹고, 골프도 치러 다녔다.

티케 엔터는 VVV엔터 바로 다음가는 규모의 엔터였다. 무엇보다 워낙 오래된 엔터라 그 영향력이 막강했다.

아티스트 케어를 잘 해주는 걸로 유명해서, 소속 연예인들의 이적도 많지 않았다. 신지운도 지금까지 티케 엔터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티케 엔터 소속의 연예인들이 그렇듯, 자신도 어느 정도 소속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티케 엔터 입장에서, 신지운의 개인 활동을 전담하는 계약을 연장하는 게 꽤 중요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아버지 입을 통해서 듣게 하는 걸 보니.

그런데 접근이 잘못된 거 아닌가. 아들이 하는 직업을 ‘급이 낮다’라고 표현하는 건? 원래 변호사라는 게 말 잘할 변(辯) 자를 쓰는 걸로 아는데…….

신지운이 못 들은 척 하고 계속 밥을 먹으니까,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주원이, 영화 나온다며.”

“아들 뭐 하는지도 모르면서 남의 아들 뭐를 하는지는 어떻게 아세요?”

“걔가 똑똑한 거지. 영화부터 시작하는 거.”

“……아, 나는 드라마부터 시작해서 멍청하고요?”

“아버지가 말하잖아, 영화를 쳐주지. 드라마는 급이 낮잖아. 너 이미 드라마로 시작해서, 영화판에 최대한 빨리 얼굴 비춰놔야 한다더라. 그래야 영화인으로 분류가 되지.”

“아, 피곤해.”

신지운은 짜증을 내며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밥 먹다가 말고 왜 일어나?”

“아버지가 일어나게 만들었잖아요. 급? 끄읍? 우리 멤버들 들었으면 뒤집어졌어요, 비웃느라. 30년 동안 비웃을걸요?”

“밥 다 먹고 일어나라.”

“티케 사장이 뭐라고 해요? 같이 골프 치면서 뭐 형님, 아우 하는 거예요? 거기서 저 배우 시키래요?”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급 운운하고 있으니까 하는 말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고 그냥 집을 나와버렸다.

멤버인 안주원의 영화가 잘 되는 건 신지운이 보기에 확정이었다. 광고만으로 이미 반응이 엄청 좋았다. 크리스마스, 연말 특수를 잡을 기회에 개봉하는 것도 시기적으로 완벽해 보였다.

티케 엔터 입장에서는 늘 배우 영역을 넓히고 싶어 했고, 신지운을 배우로 성공시킬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러니 반드시 개인 활동에 있어서의 재계약을 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신지운이 퍼스트라이트에 올인하려는 게 보이니, 아버지부터 설득했던 것이다.

“……아, 골치 아프네.”

이제 본인도 성인이니까,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스물둘. 아직 세상 물정은 잘 모르고, 부모님은 물정도 법도 지나치게 잘 알았다.

어린 아이돌 멤버의 부모들이 계약 시즌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드문 일도 아니었다. 특히 법조계의 부모라면 더더욱…….

타이틀곡 공개를 기다리며 신지운은 힐끔 정해원의 손을 확인했다. 무슨 스트레스였는지는 말을 안 해줬지만, 새벽 사전녹화 중에 자학하듯 누르던 손에 멍이 들어 있었다.

개인 계약은 최대한 조용히 해결하고 싶었다. 적어도 정해원은 모르게 하는 게 팀을 위해 좋아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후 6시. 날씨가 쌀쌀한 가을. 리패키지 앨범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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