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13화
조만간 보자는 조카의 전화를 받은 VMC 대표는 아들 이춘형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를 고뇌하고 있었다.
아들이니까, 어쩔 수 없이 편을 들었다. 거기다가 더더욱, 아들의 성공은 자신의 성공이라는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면서까지 이춘형의 편을 들었다.
이것이 자신의 목까지 날아가게 할지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을 위해 그 위험을 감수했다
그런데 이춘형은 이제 아들이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심지어 엔터 회사를 운영한다는 놈이, 자기가 싫어하는 아이돌 활동 못하게 한다고 얼굴에 칼질을 하려 했다는 게 전해져 들리자 심장이 철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물론 그 조치가, 아들을 향한 것이 아닌 외조카 강효준을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니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와버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강효준 대표의 전화를 받기 전에도 VMC 대표는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효준 대표에게 전화까지 받고 나니, 그것도 그 제 아들에게 당할 만큼 당해서 복수심이 하늘만큼 피워 올라도 놀랍지 않은 정해원이 ‘뭔가를 쥐고 있다’는 뉘앙스의 전화를 받고 나니 머릿속이 새카매졌다.
그 와중에 강효준은 여유를 부리며 정해원의 활동이 끝난 뒤로 약속을 잡았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VMC 대표는 의자 뒤로 기대 두 눈을 감았다. 빨리 두 주가 지나가기를 그대로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X트로드 앞 지나가는데 줄에 시카 루아 있다 뭐임 아이돌이 여길 왜 와]
[↳그게 왜?]
[↳평범한 햇살이네]
[]
[↳시카 정산받았나 받은 거였으면 좋겠다]
[↳↳정산 아직일 듯 별로 활동도 못했잖아 아직]
[아니 아이돌이 앨범깡하러 왔다니까? 퍼라팬들 이게 안 이상해?]
[↳루아 햇살이는 그게 컨셉임]
[↳루아 이미 성지순례하다가 최애랑 열애설 난 여돌인데 앨범깡하러 오프 뛰는 게 문제야 지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약하니까 심각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나 루아면 진짜 죽고 싶을 듯...... 멘탈 좋네ㅋㅋㅋㅋㅋㅋ]
[↳↳↳오히려 위기를 덕밍아웃의 기회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본적으로 해원 팬들이 해탈한 사람들이라......]
[↳↳↳↳ㅠㅠㅠㅠㅠㅠ]
[↳↳↳↳그것도 그러네]
[루아 컨셉 진짜 징하게 잡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앨범깡하는 아이돌ㅋㅋㅋㅋㅋㅋ]
[↳근데 컨셉 잘 잡았어 요즘 예능 많이 나오더라ㅋㅋㅋㅋ]
[↳↳웃기잖아ㅋㅋㅋㅋㅋㅋㅋ]
[↳↳가만히 있으면 존예 여신인데 입 열면 걍 내 덕메 같음ㅋㅋㅋㅋㅋㅋㅋ]
[↳↳개호감됨ㅋㅋㅋㅋㅋㅋㅋㅋ]
퍼스트라이트 한효석의 팬이자, 정해원의 팬인 동생 박유나의 언니 박해린은 햇살 브이로그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음반매장으로 향했다.
중학교 3학년, 올해 가을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박유나가 말했다.
“나 이제 연습생인데,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야, 연습생이 뭐. 누가 알아봐.”
“아, 사장님이 연습생들도 다 자기가 아이돌이라고 생각하면서, 쉴 때도 옷 잘 입고 다니라고 했단 말이야.”
“박유나 이거 사춘기 늦게 왔네? 세상에서 제일 순둥이였는데.”
“응, 사춘기야.”
“복송아지 진상 닮아가나 봐.”
“그것도 맞아.”
사춘기라고 하기에는 계속해서 순둥순둥한 동생이었지만, 정해원식 진상이 생겼다.
아무튼 덕메들 다 뿌리치고 연습생 시작한 이후로 돈이 아예 없는 동생을 위해서 오프를 뛰러 나와 줬더니 그래도 사춘기라고 옆에서 꿍얼꿍얼거리고 있었다.
오픈런 줄을 기다리던 박해린이 뒤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햇살이를 돌아보았다. 그 팬과 눈이 마주친 박해린이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걸그룹 CICA의 멤버, 루아였다. 안 그래도 이 줄 어딘가에 루아가 있다는 글을 봐서, 팬들 모두 그러려니 하는 상황이었다.
박유나가 얼른 꾸벅 인사했다. 낯가리는 박유나는 연습생이라고만 하고 언니 뒤에 숨어 있고, 박해린은 루아와 원래 알던 사이처럼 시끌시끌 떠들었다.
“효식이…… 선배님 팬이시구나, 해원이…… 선배님 나오면 교환 하실래요?”
“아, 근데 동생이 해원이 팬이어 가지고. 그래도 구경해도 돼요?”
“저도요.”
알고 보니 저쪽 셋과 박해린의 나이가 비슷했다. 루아를 제외한 둘은 대학생들이었다.
기다리는 도중에 루아는 연습생이라는 박유나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었고, 다행히 최애가 같은 덕에 말이 통할 듯싶었던 찰나 두 사람이 보는 정해원의 장점이 너무 달라서 말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해원이…… 선배님 장점은 귀여운 거잖아. 귀여우면 다야? 귀여우면 다야.”
“잘 모르겠는데…… 작곡이 장점 아니에요?”
“네가 아직 애기여서 뭘 모르는 거야. 하긴 애기보다 더 귀엽긴 어렵지.”
“선배님도 애기예요.”
“아니. 나 내년이면 성인인걸?”
그렇게 잔망을 떠는 루아를 보며, 박유나는 부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본인은 힘들겠지만, ‘데뷔’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었다는 것부터가 기적으로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 그 가장 큰 벽을 막 넘어서 그 뒤를 가로 막는 수천, 수만 개의 크고 작은 벽들을 넘고 있는 루아가 알고 박유나에게 말했다.
“데뷔를 하고 나니까, 생각보다도 더 해원 선배님이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했다는 게 힘이 되더라고. 이 정돈 버티지, 내가. 이런 느낌?”
“오…….”
“잘 버텨 보자, 우리.”
루아의 말에 박유나는 배시시 웃었다.
박유나가 데뷔를 걱정하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어리니까 괜찮다’라든지, ‘다른 길 찾아도 충분한 시기’라고 위로해 줬다.
그것도 좋은 위로라고 생각하지만, 먼저 데뷔한 선배가 버텨 보자고 말해주는 게 진짜로 힘이 됐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렇게 인사하는 중간에 먼저 자리를 잡고 앨범을 뜯던 퍼스트라이트 팬들이 동시에 경악하자 루아가 벌떡 일어나서 달려갔다.
“왜, 왜? 뭔데, 뭔데! 저도 보여주세요!”
그러더니 루아도 같이 비명을 질렀다. 사방에서 그러고 있었다. 일행이 박유나만 남겨놓고 전부 달려갔기 때문에, 박유나는 어른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래도 궁금해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보고 있으니까 루아의 일행 중 한 명이 돌아와 보고 오라고 했다. 친언니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가서 보니 앨범 안에 포함된 폴라로이드였다. 랜덤으로 전 멤버 컨셉 당 1종이 들어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 안주원이 찍었고, 안주원의 사진은 신지운이 찍었다고 했다.
앨범은 2종에 키노 1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 컨셉은 ‘clan’, 그리고 두 번째 컨셉은 ‘coming of age’였다.
“미쳤다…….”
포함되어 있다는 폴라로이드의 모자이크가 워낙 철저해서, 진작부터 팬들은 이게 찐인가 보다 예상하고 있었다. 거기서 루아가 구경 온 박유나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드볼…… 폴라로이드 드볼해야 돼. 이건 무조건 가져야만…….”
박유나도 폴라로이드로 이 소란이 난 걸 이해할 수 있었다.
1종은 교복, 2종은 티셔츠에 정장이었다. 컨셉의 연결성은 명확했다.
‘방황하던 소년들이 어두운 성인이 되었다.’
올해가 멤버 전원이 성인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은 더 교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팬들의 꿈과 희망이 야무지게 이루어졌다.
특히 그중에서도 폴라로이드는 ‘완벽히 조형된 날것’을 표현하는 좋은 매개체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벽에 기대서 있거나, 구석에 앉아 핸드폰을 보는 등, 만들어진 자연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드디어 입장한 박유나의 일행들도 앨범을 사서 나왔다. 언니들이 먼저 앨범을 뜯는 것을 보던 박유나도 자기 앨범을 뜯었다.
포토북도 좋았지만, 제일 궁금한 건 아무래도 음악이었다. 박유나는 처음부터 정해원보다 정해원의 음악을 먼저 알았다.
작곡 공부라는 건, 사실 정해원을 알기 전에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작곡이라니? 언니가 줄곧 아이돌 팬이었고, 동생에게 넌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아이돌 언니가 되고 싶다, 라고 주장하던 때에도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궁금했다. 아이돌이 되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음악이었다.
박유나는 먼저 키노를 뜯어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리패키지 음원들을 들어보았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리패키지 첫 번째 트랙을 듣고 나니, 두 번째 트랙이 타이틀이었다.
박유나는 타이틀을 듣기 전에 앞서, 미리 공개된 언론 인터뷰를 확인했다. 평소 인터뷰는 정해원이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안주원이 인터뷰를 맡았다.
[이번 타이틀 작업을 하면서 해원이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 80%는 딴 데로 샌 것 같은데(웃음) 그래도 해원이는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해야 맞을 타이틀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 해원이가 이런이런 제목의, 이런이런 곡을 만들고 싶다. 라고 설명해 주면서 처음 음악을 들려줬을 때부터 충격이 있었습니다. 이런 음악도 만드는구나, 싶었고. 해원이가 이런 음악도 만들었다는 건, 우리가 이런 음악도 하게 된다는 뜻과 같구나, 싶어서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좋았습니다. 많은 메타포가 들어간 음악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음악이라고 자신합니다.]
안주원은 본인 이야기를 할 때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만, 멤버 자랑을 할 때는 자신감이 넘치는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정해원의 음악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자신만만했다.
안주원이 자랑한 이번 앨범의 타이틀은 ‘Kronos’였다.
크로노스.
올림포스 신들의 아버지이자, 자식을 삼켰으며, 아들 제우스에게 쫓겨난 신.
자식들의 반란, 혹은 자식에 대한 지나친 억압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 크로노스가 이번 타이틀의 제목이었다.
지난 정규 앨범은 영원을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영원, 그러니까 영생을 의미하는 신화가 정규 앨범 컨셉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리패키지 앨범은 성장을 의미하고 있었고, 그 ‘신화’ 컨셉 중 하나를 따와 만든 것이 이 타이틀곡 크로노스였다.
소년기를 벗어나, 어른으로 나아가는 나이에 걸쳐 있는 퍼스트라이트가 이 신화에서 곡을 따왔을 때는 분명히 의미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박유나는 키노 플레이어로 음악을 플레이했다.
무게감 있고, 낮은 트랙을 시작으로 신지운의 저음, 음색이 확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첫 마디부터 바로 가사가 되는 음악이었다. 퍼스트라이트가 자주 하지 않던 방식이었다.
박유나는 휴 한숨을 쉬었다.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는 정해원인데, 절대 이렇게는 못 만들겠구나, 싶었다. 아마 평생 동안 공부해도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잘 만든 음악들이 자신을 발전시킨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해원은 좋은 롤모델이라고, 박유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곧이어, 뮤직비디오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