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16화
정해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난 후, 안주원은 맞은 편 숙소로 들어가 신지운의 방문을 두들겼다. 음악을 듣고 있는지 대답이 없어서 좀 더 세게 두들기며 신지운을 불렀다.
“야. 잠깐만.”
그렇게 불렀더니 신지운이 문을 열고 나왔다. 예상대로 헤드셋을 목에 걸치고 있었다. 신지운이 손을 까딱거려 술 들이켜는 시늉을 하고 물었다.
“술?”
뭐 그러려던 건 아니었지만 술이 필요한 대화이기는 한 것 같았다.
“마시자. 티케 얘기도 좀 하고.”
“아, 나 안 마셔.”
신지운이 인상을 쓰며 헤드셋을 쓰고 돌아서려 해서 안주원이 말했다.
“알았어, 그럼 해원이 오면 다시 얘기하자.”
“……지금 하자, 지금 해.”
신지운이 투덜거리며 헤드셋을 침대에 던져놓고 밖으로 나왔다.
이쪽 숙소에 사는 박선재는 웬만하면 안 나가려 하는 집돌이 중의 집돌이 황새벽에게 지금 아니면 내년까지 여유 없다며 등을 떠밀어 미술관에 갔다. 팬들에게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일부러 촬영 가능한 곳을 골라서 가자는 거라, 그 황새벽도 그럭저럭 수용하며 끌려 나갔다. 신지운이 냉장고를 열며 말했다.
“맥주밖에 없는데.”
“맥주면 되지.”
“너 뭐 없냐?”
“텐커레이?”
“그거 먹자.”
“가져올게, 잠깐만.”
안주원은 자기 숙소로 건너가서 술을 꺼내왔다. 황새벽과 한효석이 나름으로 술을 즐기기 때문에, 그래도 그쪽에는 주종이 제법 다양했다. 안주원은 텐커레이 진과 토닉워터, 라임을 챙겨 돌아왔다. 그리고 거의 결벽적으로 깨끗한 주방에서 진 토닉을 섞으며 말했다.
“너희 주방 진짜 깨끗하다. 너희 뭐 해먹긴 해?”
“해 먹고 깨끗하게 치우지. 안 치우면 정해원이 뭐라고 해.”
“좋다, 깨끗해서.”
“나랑 바꿀래? 난 더럽게 살고 싶어. 너무 힘들어.”
신지운이 투덜투덜거리더니 진을 들이 붓는 안주원에게 말했다.
“야, 이게 진 토닉이야? 그냥 진이지?”
“빨리 취하게.”
“아, 줘봐.”
서로 맨정신에 할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지운은 소주잔 두 개를 꺼내서 텐커레이 두 잔을 따랐다. 두 사람은 각자 진을 들이켠 후에, 진 토닉을 한 모금씩 마셨다. 안주원이 말했다.
“뭐 이래. 이 맛도 저 맛도 아니네.”
“괜히 정량이 있는 게 아니라고. 다시 만들어.”
“그냥 먹자. 귀찮은데.”
“아, 깊은 대화 하자며. 대화할 맛 안 나게 하네.”
신지운이 투덜거리더니 이번엔 아예 믹싱볼을 꺼내다가 진 토닉을 전부 붓고 거기 진과 토닉워터를 콸콸 부었다. 그리고 국자로 떠서 주니까 안주원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우리 이거 다 마시면 죽겠는데?”
“오늘 안 죽으면 내년까지 못 죽어. 지금 죽자.”
“너랑 술 마시면 왜 결론이 항상 죽는 걸로 끝나냐.”
“같이 죽어줄 사람 있으면 좋잖아.”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
두 사람은 이야기하며 소파에 앉았다. TV로는 서로 물어볼 것도 없이 메이저리그 주간 하이라이트를 틀어놓고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신지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재계약 안 하면 티케에서 소송 걸지도 몰라.”
“어떻게? 왜?”
“개인 활동 열심히 안 했다고.”
“충분히 했잖아. 드라마도 찍고.”
“그러니까 재계약이 안 되면, 트집을 잡겠지.”
“……X같네.”
평소 가장 욕과 거리가 먼 멤버이던 안주원의 말에 신지운이 정색하고 돌아봤다. 그러나 곧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신지운이 중얼거렸다.
“솔직히 거기서 활동 제대로 안 했으니까 돈 달라고 하면, 주면 되는데. 소송 걸리고 뭐 하고 이러면 우리 해투에 문제 생기잖아.”
“…….”
“아, 왜 하필 지금이야.”
퍼스트라이트의 인기는 물론, 멤버 개개인의 인지도도 상승하고 있는 지금. 티케 엔터 입장에서는 신경써서 투자한 신지운을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근데 난 티케는 그래도 이해해. 그동안 진짜 잘해주긴 했어. 근데.”
“근데?”
“아버지가 연기하래.”
“…….”
“티케 편을 들어.”
그냥 부모가 소속사 편을 들어도 혼란스러운데, 심지어 대형 로펌에 소속된 아버지였다. 안주원은 빈 소주잔에 다시 진을 부어 내밀고, 두 사람은 그것을 동시에 들이켰다. 안주원이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우리 만취한 다음에, 회사 가서 말하자.”
“말한다고 뭐 바뀌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말은 해놔야지.”
“……진짜 만취하고 가자. 야, 무조건 같이 가줘야 돼. 알지?”
“알았어.”
* * *
나는 조수석에 앉으며, 운전석에 앉은 강효준에게 물었다.
“부대표님은 같이 안 왔어요?”
“유치원에서 뭐 해야 한대. 동화 체험인가.”
“아쉽다. 부대표님 있으면 무서울 게 없는데.”
“그 얘기 부대표님한테 좀 해줘라. 자꾸 나 때문에 사람들이 피하는 거라잖아.”
“형, 둘이 같이 있어서 시너지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부대표도 같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딸의 사회생활이 본인의 사회생활보다 중요할 테니 이번엔 포기해야겠다. 그때 강효준 대표의 핸드폰에 부대표가 보낸 톡이 떠서 내가 말했다.
“형 부대표님이 뭐 사진 보냈는데?”
“어, 좀 봐봐.”
나는 핸드폰을 들어 잠깐 차가 섰을 때 들이밀어 페이스 아이디 잠금을 해체한 후 톡을 확인했다. 동화 체험이라는 게 아마 동화 속에 나오는 내용을 실제로 따라 하는 건가 보다. 동화 속 등장인물 분장을 한 본인 셀카였다.
[아 쌔삥 카메라 좋네~^^]
“셀카네.”
“어, 핸드폰 사줬거든. 스트리밍용 필요하다고 해서.”
“형 혹시 살면서 절약이라는 걸 해본 적 있어요?”
“있지.”
“일반인 기준에서.”
“없지.”
“음, 그치그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자꾸 보니까 나름 귀엽네, 부대표님. 셀카 더 보내라고 해야겠다.”
“나한테 좀 후해봐라, 인마.”
“형도 셀카 보내요. 칭찬해줄게요.”
나도 강효준도 약간 긴장했기 때문에, 계속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VMC 빌딩으로 향했다. 그나마 부대표가 셀카라도 보내줘서, 화젯거리가 생겨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둘 다 땅땅 얼어서 VMC에 도착했을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VMC에 도착했고, 곧바로 대표실로 향했다. VMC 대표는 우리가 들어오기 전부터 가오를 무지하게 잡고 있었다. 나는 힐끔 강효준 대표를 봤다. 음, 우리 대표가 가오로는 안 꿀리는 것 같다. 허허.
“안녕하셨어요, 대표님.”
“아. 그래. 효준아.”
외삼촌과 외조카 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먹서먹했다. 평소에도 서먹한지, 회사의 사활이 걸린 오늘만 서먹한지는 잘 모를 일이지만.
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우리는 VMC 대표와 마주 보고 앉았다. 수행비서가 보안을 위해 대표실 근처에도 사람들이 못 오게 막아두는 사이에 나는 스파이가 만들어준 음성을 꺼냈다.
“말씀드린 음성이요. 이건데. 저랑 이춘형 부대표님이 전화할 때 녹음된 거예요.”
“부대표는, 도대체 해원 씨한테 왜 전화를 했어요? 술 먹고.”
“아, 제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해서요. 약간, 부자 형?”
“…….”
“먼저 막 아는 척하고 그랬거든요.”
내 말이 무지하게 뻔뻔하게 들렸나 보다. 내가 너무 기분 상하실까 봐 히히 웃기까지 했는데 이마를 부여잡았다.
나는 음성을 틀었다.
이춘형과 내가 이야기하는 사이에 저 멀리서 사람들이 떠든 건데, 음악 소리와 섞인 이걸 어떻게 발견했는지, 어떻게 추출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박중운 팀장이 타고난 스파이라고밖에…….
음성은 술자리에서 들리는 이야기였고, 이춘형의 불륜 상대로 보이는 여자의 목소리도 들어있었지만 그건 둘째 문제였다.
중요한 것,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우리의 제안을 VMC 대표가 받아들이게 만든 것은 이 부분이었다.
-이게 다 영화 자문이야. 우리가 뭐 속여? 여기서 내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자문해 주고 있잖아. 안 그래?
-당연히 자문이죠.
-이건 조사해도 할 말이 없다니까? 야, 영화란 말이야…….
장선영 부대표를 쫓아낸 이후에, VMC의 계열사 중 하나인 캔캔 스튜디오의 지분은 이춘형이 100% 가져가게 됐다.
그 직후부터 VMC는 캔캔 스튜디오에 엄청난 돈을 지급하고 있는데, 이춘형이 데려온 캔캔 스튜디오의 새 대표가 술자리에서 ‘자문비’를 거론한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제가 찾아보니까.”
물론 스파이가 찾았다.
“캔캔 스튜디오에 ‘영화 자문’ 명목으로 지급된 게 올해만 45억이더라고요. 물론 이것 외에도 지급이 많이 됐죠. 장선영 전 부대표님 나가신 이후부터요.”
내 말에 VMC 대표가 입을 다물었다. 원래 알고 있었는지, 몰랐는지 모르겠다. 뭐, 아마 상관없는 쪽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엔터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공정하다고는 볼 수 없는, 사실상 이춘형 개인 회사로의 지급.
나는 말을 이었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술 마시는 게 영화 자문이라고 우기면…… 뭐, 그럴 수 있죠. 그래서 솔직히 이걸로 구속까지는 모르겠지만요, 대표님. VMC가 관심을 많이 받게 되기는 하실 거예요. 안 그래도 클라루스 형들 계약 건으로 주주들의 관심이 클 텐데요.”
VMC 대표가 혀를 차며 뒤로 기댔다.
“이거 관심받으면, 해원 씨도 엮여요. 둘이 전화한 거잖아.”
“네. 그래서 더 커질 거예요. 제가 더 크게 만들 거고.”
“…….”
“세상이 저한테 관심이 많거든요.”
일단 질렀다. 뭐, 내가 뭘 하는지 세상이 그 정도까지 관심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약간은 있는 게 사실이니까. 그리고 원래 거래를 할 때는 내 상황을 뻥튀기하고 그러는 거 아닌가?
나의 말을 마지막으로, VMC 대표는 입을 다물어 대화가 중단되었다. 나름 회사에서는 담배를 안 피우는지,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던 VMC 대표가 일어나며 말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서 얘기합시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VMC 대표가 나갔다. 안에 수행비서가 들어와 문 앞에 서있었다. 나는 쫄리던 게 약간 풀려서 한숨이라도 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수행비서가 듣지 않게 강효준 대표에게 톡을 보냈다.
[형 무서워여ㅜㅜ]
그리고 핸드폰 보라고 눈짓했더니, 내 톡을 확인하고 한심한 진상 보듯이 날 봤다.
“진짠데?”
내가 말하니까 강효준이 톡을 보냈다.
[강 대표 : 세상이 자기한테 관심 많다고 막 지르던 놈이?]
[강 대표 : 엄살 부리지 마]
엄살? 내가 이렇게 무서운데 엄살이라니?
나는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안 쫄리는 척을 잘했다는 뜻이니까 참기로 했다.
담배는 한 대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나갔던 VMC 대표는 1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소파 뒤에 저 멀리 서 있는 수행비서에게 물었다.
“밥 먹고 오면 안 돼요?”
“아, 곧 오실 겁니다.”
“저는 괜찮지만 이 형은 굶으면 흉폭해져요.”
농담 아니다. 이 도심 한복판에 흉폭해진 하마가 난동을 부릴 수도 있단 말이다.
그렇게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는데 드디어 VMC 대표가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VMC 대표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고, 자문비라는 게 어떻게 책정된 건지는 캔캔 스튜디오와 이야기해 봐야 하겠어요. 하지만 영화 자문이라는 게 필수적인 거고, 다양한 방식이 있는 거니까. 더더욱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거짓말이다. 지금 확인하고 왔을 거다. 사실인지.
애초에, 대표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VMC 대표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혹여라도 불필요하게 시끄러워지는 건 피차 손해니까.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해서 묻는 건데.”
“네.”
“원하는 게 뭐예요?”
절반은 왔다.
나는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걸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