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17화 (31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17화

VMC 대표는 정해원이 가지고 온 음성 파일이, 아들 문제가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며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평소였다면, 그리고 VMC가 잘 나가는 상황이었다면 그냥 여론이 악화하거나 말거나 그냥 밀고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VMC는 아주 안 좋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클라루스를 놓쳤다기 때문이었다.

단 한 명의 멤버도 잡지 못했다는 게 컸다. 회사의 매출을 떠나서, 간판을 잃어버린 셈이었으니까. 이렇게 최악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상황에서 차기 오너의 리스크 문제는 그냥 덮고 넘어가자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정해원은 가진 패를 다 깐 게 아닌 것이 보였다. 누가 봐도, 간을 보고 있는 얼굴이었다. 애새끼가 뭘 아냐고 호통치며 쫓아낼 생각은 없었다. 정해원은 ‘뭘 모르는 스물세 살’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알았다, 내 아들이 잘못했다, 이렇게 곧바로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VMC 대표 입장에서도 간을 봤다.

원하는 것을 말해 보라는 말은 잘못을 바로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가져온 자문비 건을 무시하고 넘어가지도 않겠다는 의미였다.

정해원은 그런 VMC 대표의 말에 대답 대신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원하는 걸 다 계획해서 왔을 텐데, 고민하는 척하는 것이 아주 영악하다고 VMC 대표는 생각하고 있었다.

대답이 없으니 초조해진 VMC 대표가 말했다.

“말해보라니까? 일단 뭘 원하는지 서로 알아야 거래라는 게 되지.”

그러자 정해원이 대꾸했다.

“그럼 그냥 확실하게 말할게요.”

“그러세요.”

“대표님이 이춘형 부대표님, 확실하게 손절 하셨으면 좋겠어요.”

“…….”

정해원이 들이박자 VMC 대표가 자기가 들은 게 맞나 멈칫하다가 허 웃었다.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말을 막 하네. 아들을 어떻게 손절 해?”

“손절이 원래 대 이을 자손이 끊어지는 거잖아요. 그럼 아들을 손절하지, 뭘 손절하겠어요?”

“이 새…….”

욕이 나오려는 것을 VMC 대표는 용케 참았다. 부모로서는,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발언을 들었지만 문제는 그 말을 한 상대가 그 아들에게 된통 당한 적이 있는 놈이라는 사실이었다.

VMC 대표가 더 말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한 후에,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물론 제가 말한 손절은 주가 얘기였지만요.”

“…….”

“저는 주식을 안 해서 잘 모르는데…… 꼭 사람들이 바닥 밑에 지하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떨어질 수가 있나 봐요.”

VMC 대표는 한숨을 쉬었다. 선뜻 대답하지 않았지만, 욕도 이어가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해 태도를 결정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자신의 아버지, VMC 고문과의 연이라도 탄탄해서 힘을 받을 수 있었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언론이며 정계며 정해원을 매장할 방법이 분명히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힘이 없었다. 사실 힘은 있는데, 거기다 쓸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정해원이 아이돌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리스크가 컸다.

그것도 정해원이 최근 클라루스의 완전체 계약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알려지며, 전세계 어디에나 있다는 룩스들에게 인지도가 뻗어나갔다. 모든 룩스가 정해원을 알고 있다. 그건 정말 엄청난 마케팅이었다. VVV엔터에서 그렇게 죽어라 제 2의 클라루스를 만들려고 인력과 자본과 시간을 갈아 넣었는데도 못한 걸, 정해원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금 인지도가 최대치로 높아진 정해원을 잘못 건드렸다가 역풍이 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들 하나 구하려다가 온 집안이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가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아들을 포기하면?

이춘형에게 가야 했던 것들이 모조리 다 외조카인 강효준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그 꼴을 봐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으니까, 정해원이 말했다.

“고민되시죠. 고민하실 줄 알았어요. 당연한 거죠.”

애새끼가 어디서 이해하는 척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 공적인 자리라고 생각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효준이 옆에서 정해원을 힐끔 봤다. 그리고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질린 표정으로 핸드폰으로 뭔가를 지시했다.

정해원이 말했다.

“고민하실 때 도움이 되실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쎄했다.

정해원이 ‘인상이 쎄해서’ 원래 들을 욕보다 더 많이 욕을 먹었다고 들었다. 실물을 봤다면 욕을 못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말하는 그 내용과 말투가 쎄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급하게 수행비서가 달려왔다. 그리고 핸드폰을 보여줬는데 눈앞이 확 어두워졌다.

기사였다.

[현역 아이돌 습격시도한 전 재벌 수행비서……. ‘이춘형 지시 맞다’]

그리고 그 기사를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보고 있으니 문이 벌컥 열렸다. 이춘형이 사색이 되어 달려 올라와 문을 연 참이었다.

“대표님!”

이럴 때면 대표님이란다. 자식새끼 키워놓은 게 이렇게 보람이 없을 줄 몰랐다. 살면서 처음으로, 아들을 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과격하게 드는 건 분명 처음이었다.

VMC 대표는 일단 이 상황부터 수습하기 위해 잠시 전화를 돌렸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이춘형이 VMC 대표에게 말했다.

“저 진짜 모르는 일이에요, 대표님. 저 새끼가 음해하는 거예요!”

아버지에게 변명을 하던 이춘형이 순간 정해원에게 달려들어 멱살부터 움켜잡았다.

강효준 대표가 급하게 정해원 쪽을 보니 무심코라도 정당방위를 넘어서는 행동을 안 하려고 바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

차라리 맞고 말겠다는 태도에 강효준은 기가 찼다. 저럴 때 보면 뼛속까지 아이돌. 뭐 하나 도덕성에 흠집 나는 게 싫어서 신중해지는 아이돌 그 자체였다. 그런데 멤버가 걸린 문제는 또 별개였던 모양이었다. 그냥 다 터뜨려버리자고 얘기한 걸 보니. 이춘형이 퍼스트라이트 멤버들, 특히 동생들을 건드리려고만 안 했다면 이렇게까지 안 했을 것이다. 분명히. 그냥 넘어가자고 했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 * *

며칠 전. 박중운 팀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정해원을 공격하려 한 이춘형의 전 수행비서가 의외로 충성심이 있어서 입을 안 연다고 강효준이 말했더니, 바로 그 수행비서의 약점을 찾아온 거였다.

솔직히 가족이 얽힌 거라, 그걸로 협박하는 게 비열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먼저 공격한 건 저쪽이므로 크게 죄책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행히 함께 간 학창 시절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의 인상과 몸집에 힘입어 몸싸움까지는 이어지지 않았고, 대화 몇 마디로 이춘형이 지시했다는 것과 지시한 녹음 파일까지 전부 받아낼 수 있었다. 몸싸움으로 연결되지 않고 수월하게 해결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녹음 파일을 얻어 가지고 오자마자, 정해원이 말했다.

“그냥 다 터뜨려 버려요. 브엠 대표가 아들 손절할 때까지.”

“안 돼.”

“왜요?”

“너 멘탈 나가.”

당연한 걸 굳이 말로 하게 만들고 앉았다.

정해원이 대꾸했다.

“안 나가요. 왜 나가요 오히려 신나지.”

“…….”

신나긴 뭐가 신나냐고, 생각하며 눈을 봤는데 진짜 좀 신이 나 있었다. 멤버들 사진으로 협박을 듣고 나서, 약간 돌아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는 듯했다.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형, 부모가 자식 포기하게 하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게 터져야 해요.”

“…….”

“당연한 거잖아요?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

강효준은 정해원이 설득을 잘하는 건지, 클라루스 때부터 유구하게 이어진 자신의 아티스트 우선주의 때문에 호구처럼 넘어가주고 있는 건지를 고민해야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답은 이미 나온 셈이었다.

강효준은 기사를 보냈다.

그리고 유튜브에 영상 예약 설정을 걸어 놓았다.

* * *

멱살을 잡고 있는 걸 말리려고 강효준이 일어났을 때,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이춘형이 테이블 위에 있던 커피잔을 드는 게 보였다.

급하게 달려가서 팔을 붙잡으며 커피가 강효준의 손과 이춘형의 얼굴 쪽으로 쏟아졌다. 커피는 마시기 좋은 정도로 식어 있었지만, 피부에 붓기에는 뜨거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화상 입을 정도도 아닌데 이춘형이 엄살을 떨며 발광이었다.

“으아아악! 얼음물 가져와, 얼음물!”

“그 정도 아니야. 안 쪽팔리냐?”

강효준이 얼굴을 감싸는 이춘형을 보며 한심해하는 사이에 급하게 수행비서가 얼음을 가져왔다.

아마 이춘형이 대표실로 달려올 때, 슬그머니 따라온 박중운 팀장이 이 장면을 조용히 찍고 있었다. 강효준이 카메라를 멈추라고 손짓했다. 박중운 팀장은 대충 알아듣고 카메라를 껐고, 강효준은 얼음물로 세수를 하고 난 이춘형에게 말했다.

“자문비 45억?”

“사업을 네가 뭘 알아, 이 X발 새끼야.”

“형이 모르는 거지, X발 어디서 X소 굴리던 짓을 해.”

VMC 대표가 그 꼴을 보면서 다 버리고 어디 산사에라도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다시 수행비서가 달려왔다. 이어서 기사가 또다시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캔캔 스튜디오는 이춘형 개인 회사? 1분기 만에 영화 자문으로 45억 지급]

[VMC에 주주서한……. ‘이춘형 리스크 해결 원해’]

[이춘형 리스크에 앓는 VMC……. 오늘 중에 답변 내놓을까?]

기사가 터져 나오자마자, 같은 시간에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던 모든 케이팝 팬들이 그것을 확인했다.

[X발 뭐야? 뭐임? 왜 갑자기 기사가 다 터져?]

[이춘형 리스크 돌았냐 브엠 X발 영혼까지 털리고 멸망하겠네]

[미친 새끼 아니냐 진짜 정해원 칼빵 사주함???]

[↳X나 심각하네;;]

[브엠 정해원 묻으려고 별짓을 다 했구나]

[↳근데 왜 말을 안 해 해원아…….]

[소속사 이제 X소X소 하지마라ㅎㅎ 브엠도 저러는데ㅎㅎ 그냥 소속사 전반의 문제야]

[브엠은 범죄자 수준도 아니고 그냥 범죄자네]

[보이드 꼭 소송 걸어서 업계문화 고쳐줬으면 좋겠다]

[↳이미 보이드 소송 중임 여기 고사 X나 잘해]

[↳↳맞아 정해원 악플러들 요즘 몸 사리고 교묘해진 게 보이드 엔터가 고소 잘해서임]

[↳↳↳진짜야? 보고 있는 룩스 심장 떨린다]

[↳↳↳↳진짜야 룩스도 이제 고소 공지 자주 보게 될걸?]

[↳↳↳↳↳설렌다ㅠㅠ]

[↳↳↳↳↳해원아 다시 한번 고마워…….]

VMC의 대표와 부대표가 동시에 핸드폰을 보고 있는 정해원을 돌아보았다. 정해원이 그 눈빛에 핸드폰에서 고개를 들더니, VMC 대표 쪽을 보며 말했다.

“자문비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셔서요. 아들 손절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셔서. 그럼 이건 협상 건수가 안 되는 걸로 알게요.”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 건수로 넘어가시죠.”

VMC 대표는 이제야 정해원이 협상을 하러 온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협상이 아니라 그냥, 이춘형을 손절하겠다고 할 때까지.

그게 VMC 대표의 입에서 나올 때까지, 가진 패를 전부 터뜨릴 생각이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