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19화
회의실이 준비되는 사이, 나는 밥이라도 먹고 오려고 대표실을 나왔다.
원래 끼니를 거르더라도 내가 밥을 안 먹었다는 걸 기억을 못 해서 옆에서 말해주지 않으면 거른 걸 모를 정도였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대표실에서 나오자마자 배가 심각할 정도로 고팠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가 고프다기보다 허했다.
“효준이 형.”
복도로 나가서 불러봤는데 답이 없었다.
“형.”
아니, 지금 이 험하고 무서운 남의 회사 한가운데다가 날 혼자 남겨 놓은 거야?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사회성 취약한 아이돌을?
내가 황당해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쪽에서 강효준이 나타났다.
“아, 형. 소속사 아이돌 막 팽개치고 다니면 어떡해요. 나부터 챙겨야지……. 형, 손 왜?”
“물렸어.”
“……어? 설마요.”
나는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인 손을 보며 인상을 썼다.
“물렸다고? 이춘형한테요?”
“어. 힘이 안 되니까 물던데?”
“와. 남 일인데 너무 쪽팔려. 수치스럽다.”
왜 내 얼굴이 화끈거리냐…….
나는 진짜로 뺨이 뜨끈한 기분이 들었다. 강효준이 중얼거렸다.
“나도 남 일인데 쪽팔려서 반창고로 가리고 왔잖아.”
“형은 남 일 아니죠. 사촌인데.”
“……하, X발.”
이건 욕해도 인정한다. 가오가 있지, 그냥 처맞고 말지…….
강효준이 말했다.
“근데 그걸 박중운 팀장이 찍고 있더라. 걔는 아무래도 벽을 통과하는 능력이 있나 봐.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르겠어.”
“모르는 게 약이에요.”
아무튼 나는 아는 사람 얼굴까지 보고 나니 온몸에 힘이 풀려서 벽으로 기대서 앉았다.
“아. 힘들어. 형, 나 업어줘요.”
“일어나, 엄살 부리지 마.”
“부대표님 보고 싶다. 내가 안 물어봐도 업어주는데.”
“문제는 싫다고 해도 업잖아.”
“……그건 맞네.”
나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빨리 밥 먹어요. 형네 외삼촌이 회의하재요.”
“네가 무슨 회의를 해. 너 이제 집에 가. 작업실이나.”
“끝은 봐야죠.”
“너 이러다가 며칠 뒤에 갑자기 과호흡 오고 또 난리 날 거잖아.”
“안 그래요.”
“뭘 안 그래. 네가 어떻게 알아.”
“아, 진짜 혹시 그렇더라도 상관없어요. 인간적으로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니잖아요.”
“…….”
“지금 너무 화가 나서, 나중에 후유증이 생겨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적어도 내 동생들은 안전하잖아요.”
내 멘탈이 센 편이 아닌 건 맞다. 그런데 그래서 더더욱 절박했다.
지금 이춘형을 확실하게 밟지 못해서, 내 동생들, 우리 멤버들이 다친다면 그때의 나는 정말로 회복이 어려울 거란 걸 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건 온전히 날 위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대부분의 일들도 그랬다.
그냥 내가 오래 살아남아서, 오래 무대에 서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해서. 그 길 위에 있는 장애물들을 치우려 애쓰는 것뿐이다.
내 말을 듣고 잠시 말이 없던 강효준이 시계를 보더니 말을 돌렸다.
“뭐 먹을래.”
다행인 건 내가 있는 회사의 소속사가 그걸 이해해 주고, 뒤에서 받쳐준다는 것이다. 내가 말했다.
“오늘 약간 피잔데.”
“좋네.”
그렇게 이야기하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우리는 바로 포기하고 되돌아왔다. 주차장이 연예부 기자로 꽉 차 있었다. 밥에 눈이 멀었던 우리는 우리가 터뜨린 폭탄에 대해서 잠시 잊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피자는 배달해서 먹었다.
* * *
“해원이 연락 없어?”
나갈 준비를 마친 안주원이 묻자 소파에 누워 있던 황새벽이 쿠션 아래 끼워져 있던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했다.
“없어. 미쳤나 봐, 이 새끼. 뭐해?”
처음부터 멤버들을 모아놓고 말은 했었다. 이번에 아예 VMC를 갈아엎고 오겠다고. 그런데 그 ‘갈아엎겠다’가 이렇게 미친 행보일 줄은 멤버들도 예상을 못 했다. 멤버들이 아는 모든 지인들로부터 이 상황에 대해 묻는 연락이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다섯 시간 전.
유튜브에는 VMC 이춘형 부대표가 클라루스 컴백으로 최윤솔의 라방을 덮으려 하던 통화 녹음이 올라왔다.
-내일 한 시. 알겠지? 무조건 올려. 퀄 좋게. 주가 회복시키라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조건 올려’라는 이춘형 부대표의 발언과 함께, 1본부 본부장이 지금까지 쌓였던 문제들을 폭로하자 과장 없이 전 세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클라루스가 VMC와 재계약할 수 없었던 이유(스압)]
[↳가지가지했네 진짜]
[↳범죄자 새끼 한 명이 대기업도 말아먹을 수 있구나ㅎㅎ]
[↳아니 근데 여기서도 해원이가 수습하고 있네…….]
[↳↳그러게ㅠㅠㅠㅠ]
[↳↳↳왜왜? 해원이 여기 왜 있어?]
[↳↳↳↳이때 준비한 앨범이 VIVID인데 이거 준비할 때 해원이 있었어]
[↳↳↳↳정해원이 작곡 참여함]
[비비드 때 프로듀서가 박수원인데 그때 타이틀이 약간 약해서 보류 중이었던 거 해원이가 가지고 있던 곡이랑 섞어서 만들었다고 했어 이게 그린레이임->라방에서 멤버들이 말해준 거]
[↳와 X발 그린레이 개명곡인데ㄷㄷㄷㄷㄷㄷㄷ]
[↳이거 해원 후배님이 진짜 찐천재구나 싶었던 게 A&R팀에서 뭐뭐가 부족하다고 했다는 걸 듣자마자 자기 가지고 있던 곡 들려주고 이런 식으로 하시라고 조언해줬다고 함 이거 듣자마자 채채가 바로 진행하자고 했고]
[↳↳아니 해원이 퍼라 거 다 만들지 않아? 어떻게 남는 곡이 있어?]
[↳↳↳햇살인데 우리도 몰라 근데 민조가 그러는데 해원이 안 쓴 곡 엄청 많대ㅋㅋㅋㅋㅋㅋ]
[↳↳↳↳일중독이라고 듣긴 했는데 진짜 심하다…….]
[근데 이거 브엠 주주들 칼부림 나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내가 브엠 주주면 이춘형 X나 죽이고 싶을 거 같은데]
[↳내가 지금 그래]
[↳근데 룩스 입장에서는 이렇게 완전히 단념시켜줘서 고마워ㅎㅎ]
[↳↳맞아ㅎㅎ 만나서 X같았고 다신 보지 말자~^^]
[퍼라팬 입장에서 그냥 이춘형 죽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아니 햇살이들 다 그럴걸]
[↳해원이 엔터계에서 제일 큰 회사 후계자가 저 지랄하는 거 계속 겪고 있었던 거잖아……. X발 눈물나ㅠㅠ]
[↳나 스키퍼인데 브엠에 X나 항의 넣고 있어]
[↳룩스도]
[↳희영차!도]
[↳↳고마워ㅠㅠ 우리 해원이 외로움 많이 타는데 이렇게 챙겨주는 거 알면 좋아하겠다ㅠㅠ]
[↳↳↳ㅠㅠㅠㅠ]
[↳↳↳그러게ㅠㅠ]
[근데 진짜 생각할수록 이춘형 개빡치네]
[↳그니까 X나 충격적임]
[↳ㅅㅂ]
[이춘형은 국선아 때부터 원흉임 솔직히 조작으로 난리 났을 때도 피디보다 이춘형이 받아먹었을 거라고 생각함]
[↳이게 맞지]
[↳역겨워ㅅㅂ]
[↳근데 브엠 X나 꼬리 자르고 피디만 실형 나왔잖아]
[국선아 때문에 멘탈 터진 애들이 몇인데…….]
[↳심지어 제일 큰 피해자를 그 뒤에도 이춘형이 X나 괴롭힌 거잖아]
[↳↳이게 사람 새끼냐?]
[나 브엠에서 이춘형 안 잘라내면 죽을 때까지 불매할 거야]
[↳나도ㅎㅎ]
[↳나 룩스인데 이제 보이드에서 내는 것만 사려고]
[카일룸도 제발 브삼 나왔으면 좋겠다ㅠㅠ]
[↳제발ㅠㅠㅠㅠ]
[↳우리 애들도 저기서 회사 문제 덮을 때마다 이용당할 거 생각하면 억장 무너져]
관련 내용이 실시간 트렌드, 커뮤니티, 개인과 개인의 대화로 번져갔다.
안주원은 기사를 확인하다가 깊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정해원에게 전화해 보다가 짜증 내며 다시 일어나는 황새벽에게 물었다.
“새벽아, 어디 가?”
“브엠 가봐야지. 전화 안 받는데.”
“어. 그래.”
“먼저 나가. 내가 브엠 가 보고 연락할게.”
생전 불필요하게 움직이는 법이 없던 황새벽은 전화가 안 되는 게 심각하게 걱정스러웠는지 바로 나갈 준비를 하러 들어갔다.
안주원은 인사를 하고 바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샵에 들렀다가 바로 스케줄 장소로 이동했다. 영화 홍보를 위한 예능 출연이었다.
안주원은 주인공 아역이다 보니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강효준이 영화에 어마어마하게 투자하기도 했고, 그래도 ‘요즘 예능 나가는데 젊은 애가 있어야 한다’라는 내부 의견도 반영이 되었다.
캔캔 스튜디오에서 제작비 부족에 시달리며, 전 VMC 부대표 장선영을 중심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스튜디오 장은 이번 영화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가장 외로운 시간’의 임 감독과 장선영 스튜디오 장 대표는 예능 출연은 하지 않지만, 성공 여부가 걱정스러워 거의 모든 스케줄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예능 촬영장 분위기에 어색해하던 임 감독이 안주원을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주원 씨 일찍 왔네.”
“안녕하십니까.”
안주원이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바로 MC와도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두 사람 쪽으로 걸어왔다. 장선영 대표가 물었다.
“주원아, 너는 여기 몇 번 왔었다며?”
“네, 저희 퍼스트라이트 컴백 때 출연한 예능이어서요. 두 번 왔었어요.”
“어우, 살았다. 우리 배우들 봐라. 얼었어. 주원아, 좀 어떻게 해줄 수 있니?”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평소 말수가 적어서 멤버들과 예능을 나가면 다른 멤버들 이야기에 팬들이 ‘애쓰는 게 가여울 정도다’라고 말할 정도로 리액션하던 안주원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 예능 경험이 거의 없는 배우들을 이끌고 예능 출연을 하게 되니, 자기가 생각해도 믿을 건 본인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받은 대본을 다시 확인하는데, 긴장한 상태의 장선영 부대표가 말을 이었다.
“그보다 해원 씨 난리 났더라. 괜찮아?”
“모르겠어요. 지금 브엠에 가서 얘기 중인가 본데…… 어제 나갔는데 아직도 안 들어왔어요.”
“아, 그거는 회의 중이라서 그래.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그래요? 몰랐어요.”
“걱정되면 내가 직원들한테 상황 물어봐서 알려줄게. 주원이는 예능…… 진짜 잘 부탁해.”
예능은 부담이지만, VMC 내부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장선영 대표의 말에 안주원은 크게 의지가 됐다. 장선영 대표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너네도 진짜 걱정이 많겠다. 해원 씨 그렇게 안 봤는데, 한 번 화나면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스타일인가 봐?”
“네? 아. 네……. 무슨 일 있었어요?”
“VMC 지금 난리도 아니래. 스물세 살짜리 애가 회사를 완전히 뒤엎고 있어서.”
……정해원 지금 VMC에서 뭘 하는 거야?
안주원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썼고, 장선영 대표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해원 씨 덕에 우리 영화 홍보도 저절로 되고 있어.”
그건 퍼스트라이트 내 서치왕인 안주원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캔캔 스튜디오랑 장선영 부대표 불쌍하다 그동안 해준 게 얼만데 팽하냐 그것도 오로지 지가 많이 해먹으려고]
[↳이춘형이 진짜 안 될 놈인 거임 주변 인재고 뭐고 근시안으로 자기편 안 들면 다 쫓아내고 단기수익 낼 방법만 생각하는 거]
[이춘형이 캔캔 스튜디오 개인 회사로 쓰려고 장선영 부대표 쫓아내면서 가장 외로운 시간도 제작 중간에 엎어질 뻔했대 보이드 대표가 투자해서 겨우 살린 거라고 함]
[↳가외시 많이 보러 가자ㅠㅠ]
[↳↳그래도 영화 보는 건 관객인데 강요는 하지 말자]
[↳이런 이유 아니어도 그냥 재미있어 보여]
[↳맞아 잘 될 것 같음]
[나는 가외시 잘 됐으면 좋겠는게 이거야말로 이춘형이 팽한 거 강효준이 살린 거잖아 브엠 내부에서 개인 능력 판가름할 중요한 잣대라고 봐서]
[↳이거 맞음 지금 브엠 내부에서 가외시 성공 주시하고 있대]
[↳솔직히 이거 망하면 이춘형 살아나는 거 아니냐 망할 영화 잘 팽했다고…….]
[↳↳이건 아님]
많은 부담감을 등에 지고, ‘가장 외로운 시간’팀은 비장한 표정으로 예능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