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20화
뭐 사실 회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애초에 나는 사업 관련해서는 아는 것도 없으니까, 그 부분의 회의는 대부분 강효준과 강효준 쪽 사람들이 맡았다.
그리고 그 강효준 쪽 사람 중에, VMC 비서실에 이은석 과장이 있었다. 나는 이은석 과장과 인사하자마자 반가워서 강효준에게 말했다.
“어, 형 스파이.”
“……내가 말해줬나, 너한테?”
“아뇨.”
물론 박중운 팀장이 말해줬지…….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강효준은 당연히 그렇겠거니 생각하는듯했다.
고등학교 친구라는 이은석 과장은 강효준의 친구치고는 호리호리했다. 대신 기가 엄청 세보였다. 이은석 과장이 강효준에게 말했다.
“난 평생 네가 회사 일에 관심 안 가질 줄 알았어.”
“어, 그래서 이춘형이랑 잘 지냈고?”
“잘 지내 보이냐? X나 X같았지.”
그리고 이춘형에게 쌓인게 무지하게 많아 보였다. 표정이 아주 밝았다. 너무 밝아서 무서웠다. 이은석 과장이 나에게 말했다.
“해원 씨 덕에 제가 퇴사 안 해도 되겠어요.”
“이춘형한테 쌓인 게 많으신가 봐요.”
“그렇죠. 해원 씨만큼이야 하겠냐만은 저도 비서실에 있다 보니 꽤.”
쌓인 게 많은 사람을 부른 건 아주 좋았다.
나와 스파이가 모은 정보는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게 쉽지 않은 것들이었는데, 이춘형 부자를 바로 옆에서 보고 듣고 수행한 이은석 과장의 정보들은 격이 달랐다.
이은석 과장까지 강효준 패거리였다는 거 알고 VMC 대표는 회의 내내 체념한 표정이었다. 이춘형을 완전히 보내버리는 건 당연하고, 그냥 본인 자리를 지키는 쪽에 모든 것을 치중했다.
나는 회의 내내 못 알아듣는 말들이 태반이었지만 그냥 다 아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있었다.
회의의 방향은 간결했다.
VMC 대표가 어느 정도까지 물러나고, 강효준이 어느 정도까지 진입하는가. 처음부터 이춘형은 배제해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그 회의에 이춘형이 앉아 있었다.
이춘형은 본인의 아버지와 자기 사람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제 편을 들라고 종용했지만, 거기 넘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회사에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전부 이춘형을 추궁했지만,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기분이 정말로 이상했다. 후련하다는 건 잘 모르겠다. 어차피 나는 2년을 잃어버렸고, 이 일로 그걸 되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만 그냥 안심이 됐다. 우리 멤버들은 보이드 엔터의 보호를 받을 거고, 더 나아가서는 이제 VMC의 차기 대표가 될 강효준의 보호를 받을 거다.
더 이상 이춘형이 우리 멤버들을 위협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회의를 이어가는 내내 자신에게 추궁하는 걸 변명하던 이춘형이 결국 못 참고 벌떡 일어났다.
“X발.”
“춘형아. 앉아라.”
VMC 대표가 아들에게 말했지만, 이춘형은 이미 본인을 보호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대로 나가버려서, VMC 대표가 혀를 차고 말했다.
“없어도 되죠?”
그 말에 이은석 과장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예, 뭐. 어차피 부대표님이 어딜 가셔도 경찰들이 곧 찾아다 주실 테니까요.”
진짜로 쌓인 게 많긴 한 모양이다. 어휴, 주변 사람들한테 어지간히 했어야지…….
* * *
“……와, 운전 안 해야지.”
평소 거의 외출이 없는 황새벽은 운전이 늘기는커녕 후퇴 중이었기 때문에, 자기가 운전해서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한동안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휴식을 가졌다.
평소 멤버들이 느리다고 놀리면 니들이 빠른 거잖아? 라고 생각하는데, 운전을 하면 세상이 그냥 다 빨랐다.
VMC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여전히 정해원은 답이 없었다.
바로 올라가면 좋겠지만 한 가지 일을 하면 적당한 휴식을 보내야했기 때문에, 의자 뒤로 기대서 일단 좀 쉬었다. 숨을 좀 돌리고 나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느긋하게 회사에 들어서는데 안주원에게서 톡이 왔다.
[안주원 : 해원이한테 답 왔어?]
[ㄴ]
[안주원 : 걱정되네……. 그래도 장 대표님이 해원이 무슨 회의 같은 거 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 문제는 없을 것 같아. 해원이가 잘하고 있나 봐]
[ㅇ]
황새벽은 연락을 확인한 후에 어디로 가야 하나 한동안 엘리베이터 밖에 있는 층별 안내를 확인했다.
“음……. 어디로 가지?”
고민을 하다가, 일단은 아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VVV엔터 부사장인 강효준의 부사장실.
물론 강효준이 들어가 있으라고 한 건 아니지만, 문 열고 들어가 있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특히 아티스트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아티스트 우선인 사람이었다.
황새벽은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하며 부사장실로 향했다.
부사장실은 상당히 뭐가 없었다. 특히 먹을 게 별로 없었다. 보이드 엔터 대표실은 들어가자마자 먹을 게 보이는데 여긴 먹을 게 없는 걸 보니.
“……여기 안 쓰나?”
황새벽은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부사장실 소파에 앉아서 강효준과 정해원이 연락을 보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밖에서 정해원 이름이 욕설과 섞여서 들렸다.
“정해원 이 X같은 새끼, 내가 X발 그냥 뒤질 것 같애?”
황새벽은 소파에서 일어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고 있던 한 손을 빼서 문을 열었다가 바로 이춘형과 마주쳤다.
“어?”
그리고 뭐가 얼굴로 날아왔다.
* * *
내가 이춘형이 있을 때 긴장을 하긴 하는 모양이다. 우스운 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견딜 수 없는 화가 치미는 것이다.
내가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솔직히 한 대는 쳤을 것 같다. 내가 열 대를 맞아도 상관없다. 그냥 딱 한 대만 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돌이고, 내가 주먹질을 했을 때 우리 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가장 먼저 떠올려야 했다.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그냥 떠올랐다. 단 한 대도 안 되는 건, 팬들에게 내가 욱한다고 해서 주먹질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지금 햇살이들이 엄청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 걱정을 하고 있을 텐데…… 회의가 끝나자마자 가서 X버스에도 글을 올리고, 라방도 켜야겠다. 그래도 얼굴 보고 얘기하면 괜한 걱정은 줄어들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딴 생각이 들 정도로 여유가 생겨서야 나는 문득 멤버들을 떠올렸다.
“어. 맞다.”
멤버들도 걱정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내내 멤버들의 신변 걱정을 하다 보니 반대로 그놈들에게도 내가 걱정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게다가 이래저래 내 멘탈을 위해 핸드폰을 회피하고 있었던 것도 맞고…….
나는 급하게 핸드폰을 확인했다가 멈칫했다.
[민조♥ : 정해원!!!!!!!!!!!]
그게 마지막으로 온 톡이었다.
멤버들이 보낸 온갖 연락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
“망했다.”
나는 중얼거리며 뭐부터 답을 해야 하나 허둥거렸다. 그러다가 뭘 먼저 해야 하는 지 알았다.
[새부기 : 나 효준이 형 부사장실]
황새벽이 VMC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어서 방금 이춘형이 나갔던 걸 떠올렸다.
그럴 리가 없지만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나는 회의 중에 정신없이 회의실을 달려 나갔다.
그리고 4본부 부사장실로 달려갔다.
부사장실 앞에 황새벽이 있고, 이춘형도 있었다. 황새벽은 귀를 감싸고 있었다.
황새벽은 금방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것에 비해 힘이 세서, 다른 한 손으로 이춘형을 붙잡고 있었다.
“야, 뭐야.”
내가 말하는데 황새벽이 내 쪽을 봤다. 손을 타고 피가 흘렀다. 황새벽이 말했다.
“어, 조금. 피했는데.”
그리고 손을 뗐는데 귀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얼마나 상처가 난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피가 나는 게 보여서 눈앞이 핑 돌았다.
“야이, X발.”
그리고 뭔가 머리가 확 돈 것 같다.
나는 이춘형에게 달려갔고, 정신을 차려보니 주먹을 날린 후였다. 이춘형은 원래 엄살을 부리며 난리를 치는 새끼라 사람 죽는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근데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우리 멤버가 다쳤는데. 나는 그래도, 동생들이 다치는 게 아주 조금은 더 무서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똑같다. 똑같이 어지러웠다.
* * *
정해원은 원래 운동신경도 좋지만, 특히 달리기 하나는 선수급이었다. 그런 정해원이 미친 듯이 달려가니, 바로 따라 나온 강효준은 한발 늦게 부사장실 앞에 도착했다.
도착해보니 정해원은 이춘형을 이미 쳤고, 바닥에 누워 나 죽는다고 난리인 이춘형을 발로 밟으려고 들고 있었다.
강효준은 급하게 달려가서 정해원을 붙잡았다.
“왜, 뭐 해 줘, 뭐.”
아무리 이춘형이 빡치게 해도 절대 손이 안 나게 하려고 그렇게 애쓰던 놈이 왜 이러나, 생각했는데. 같이 정해원을 붙잡아 이춘형에게서 떼는 황새벽의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넌 또 왜 이래.”
“전 가만히 있었는데.”
바닥에 뭐가 깨져서 뒹굴고 있는 걸 보니 이춘형이 그냥 안 나가고 부사장실을 깨부수고 나가려 했던 것 같다.
강효준은 황새벽의 귀를 확인했다.
“진짜 약간 스쳤거든요. 얘가 못 들어요.”
황새벽이 억울해하며 말했다. 평소엔 정해원이 나이에 비해 많이 어른스러운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냥 애새끼였다.
그렇게 수습한 후에야 4본부 매니저들이 달려왔다. 강효준이 웬일로 박중운 팀장이 늦어서 수상해하는데, 한 발 늦게 박중운 팀장이 도착해서 귓속말했다.
“CCTV 있는 거 다 치웠습니다.”
“아. 어. 고마워.”
…….하, 소름 끼친다. 정해원은 안 소름 끼치나? 소름 끼치는데 참는 건가?
강효준이 생각하며, 박중운 팀장에게 말했다.
“애들 좀.”
“예. 해원아, 새벽이 치료해야지.”
멤버를 치료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그때서야 황새벽과 강효준이 놔주기만 하면 이춘형에게 다시 덤비려던 정해원이 수긍하고 멈췄다. 황새벽이 정해원을 툭 치며 말했다.
“야, 이거 봐. 상처 보이지도 않아.”
“…….야, 넌 그만큼 다쳤는데 무슨 피가 이렇게 나.”
“어쩌라고. 피 나는 걸 내가 조절하냐?”
“조절하라고. 놀랐잖아.”
정해원은 그렇게 투덜거리다가 뒤늦게 놀란 눈으로 이춘형과 강효준을 번갈아 봤다. 강효준이 말했다.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아요?”
“당연히 괜찮지. 없던 일이야.”
강효준이 어이없어하며 대꾸하고, 멤버들과 매니저들을 등 떠밀어 보냈다. 그리고 이춘형과 부사장실로 들어왔다.
이춘형은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맞아서 기쁜 모양이었다.
“하, X발. 사람을 쳐? 저 새끼 깡패 아니야?”
“…….”
“나 이거 무조건 끝까지 간다. 쟤 그냥 못 넘어가.”
“넘어가.”
“못 넘어간다니까?”
“형. 형이 뭐 못해, 이제.”
강효준의 말에 이춘형이 못 알아듣고 인상을 썼다. 그러자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형이 지금까지 감방 갈 짓을 그렇게 했는데 왜 아직도 사회에 있는지 몰라? 형이 우리 집안 후계자니까 봐준 거잖아. 그래서 내가 그렇게 형 감방 보내려고 애써도 못 보낸 거라고.”
강효준이 얼떨떨하게 듣고 있는 이춘형에게 말을 이었다.
“근데 이제 내가 후계자야. 그럼 우리 집에서, 우리 중에 누굴 보호하고, 누굴 감방에 보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