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21화
“새부기 진짜 운전했어?”
“했다고.”
“뭘 그렇게까지 와. 한가하냐.”
다시 생각해 봐도 세상은 황새벽에게 너무 빠르다. 좀만 느렸으면 귀도 안 다쳤을 것 같다. 물론 자세히 봐야 될 정도로 약간 찢어지긴 했는데, 그것도 안 다치면 더 좋지 않나? 분명히 햇살이들이 상처를 발견하고 엄청 걱정할 텐데. 콘서트도 하고 연말 시상식도 가야 되는데.
“햇살이들한테 뭐라고 하냐.”
“이어커프해야지.”
“……예영이 누나한테 말해야겠다.”
이어커프 생각해 보니 괜찮은 대안 같다. 나는 바로 황새벽의 상처 사진을 찍어서 이예영 스타일리스트에게 보냈다.
[예영이 누나 : 으악!!!!!!!!!!!!!이게뭐야!!!!!!!!]
“너 이제 누나한테 죽었다.”
“아, 누나가 때리면 진짜로 아픈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 병원에 도착했다.
조금 다쳤다고 본인은 말하지만 상처가 좀 길었다. 치료하는 사이에 나는 대기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황새벽을 데려다주고 온 박중운 팀장이 차로 돌아오더니 나에게 말했다.
“해원아, CCTV 가지고 있을래?”
“CCTV?”
“혹시 몰라서 버리지는 않고 가져왔어. 그거밖에 없어.”
박중운 팀장이 말하면서 나에게 USB 하나를 줬다. VMC 사내에서 나눠준 USB라, 회사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USB를 받아 잘 챙겼다.
“고마워.”
“증거는 그거밖에 없으니까 괜찮을 거야.”
“이춘형이 가만히 안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중얼거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VMC에서 나오니까 이제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경찰에 신고했으면 어떡하지.
이춘형은 이미 잃을 대로 잃어서 선빵을 날렸어도 같이 주먹질을 한 내 쪽이 훨씬 타격이 클 것이다.
내가 왜 그랬지. 순간 미쳤었나……. 아니, 애초에 저 거북이가 좀 빨리, 어? 피했으면 됐잖아. 왜 귀는 다쳐가지고…… X발, 생각해 보니까 열 받네. 아이돌 귀를 쳐? 고막이라도 다쳤으면 활동 어떻게 하라고? 아니, 운 나쁘게 얼굴에 상처라도 났으면?
나는 화가 났다가 불안했다가 또 화가 났다가를 반복했다.
박중운 팀장은 나에게 USB만 주고 떠났고, 황새벽과 함께 돌아왔다.
잠시 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회의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뭐 이제부터 도움이 될 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좀 쉴 겸 숙소로 왔는데 우리 숙소가 있는 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뒤로 넘어갈 뻔했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 동생 셋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늘 귀엽다고 생각하던 놈들인데, 저러고 모여서 후드 뒤집어쓰고 있으니까 좀 돈 뺏을 것 같다.
“여기서 뭐 해?”
“나 잔다.”
황새벽이 날 버리고 가려고 해서 나는 곧바로 황새벽의 옷을 붙잡았다. 민지호가 일어나더니 한효석과 박선재에게 말했다.
“가자.”
그러더니 다들 가버리려 했다. 차라리 뭐라고 하는 게 낫지, 이러고 외면하는 게 제일 치명적이라는 걸 너무 잘 아는 놈들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동생들에게 말했다.
“새부기 이춘형한테 맞았어!”
“……피했어.”
나는 황새벽을 팔아먹었고 우리의 말에 셋이 다 멈춰 섰다. 그리고 박선재는 바쁘게 닫힘 버튼을 누르고 한효석은 민지호를 붙잡았다. 모두의 예상대로 곧바로 뛰어가려던 민지호에게 내가 말했다.
“내가 이미 쳤어.”
“세게 때렸어?”
“세게 쳤……나?”
사실 기억이 거의 안 난다.
나는 USB를 꺼내며 말했다.
“보여줘?”
다행히 멤버들은 내가 든 USB를 먹이를 든 인간을 발견한 갈매기들처럼 목을 쭉 빼고 보고 있었다. 스파이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CCTV를 준 건 아니겠지만 큰 도움을 받았으니 밥이라도 사야겠다.
그사이에 핸드폰으로 뭘 열심히 보내던 박선재가 말했다.
“주원이 형이 기다리래. 자기 온 다음에 보라고.”
“언제 와!”
민지호가 말하자 박선재가 말했다.
“27분.”
“어, 과일 가져다줄게. 가 있어.”
황새벽이 말하며 동생들을 우리 쪽 숙소로 죄다 밀어 넣었다. 그러고 문을 닫아서, 나는 맞은편 자기네 숙소로 가는 황새벽을 따라가며 물었다.
“웬일로 내 편을 들어주냐, 안 도망가고?”
그러니까 황새벽이 자기 귀를 가리켰다.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한테 외박하면서 연락 안 했다고 한바탕 화를 내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디서 맞고 들어오냐고 표적이 옮겨져서 난리가 났을 테니까. 동생들에게 잔소리 들을 체력이 없는 황새벽은 애초에 나에게서 잔소리가 끊기도록 도와준 모양이었다.
황새벽이 나는 옆에 있어도 방해만 된다고 해서, 주방에서 쫓겨나 맞은편 숙소로 들어갔다. 동생 셋이 나를 발견하기 전에 잽싸게 지나쳐서 신지운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두드리니까 신지운이 문을 열었다.
표정이 약간 좋지 않았다.
“너 요즘 왜 이렇게 축 처졌냐?”
“어쩌라고. 나가, CCTV 보게.”
하, 얜 요즘 또 왜 이래. 사춘기가 다시 오는 건 아니겠지…….
이상하게 VMC에 있을 때보다 더 쭈글쭈글해져서 나는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치이고 다녔다. 그나마 CCTV라도 없었으면 진짜 시원하게 욕 한번 먹을 뻔했다. 욕먹으면 또 내가 상처받지……. 허허.
황새벽은 집에서 보내주신 과일을 종류별로 꺼내서 씻어 왔다. 나는 그래도 또 나름 과수원에서 일해봤다고 과일에 아는 척을 했다.
그러는 사이, 27분 걸린다던 안주원이 22분에 집에 도착했다. 원래 안주원은 걸리는 예상 시간보다 4~5분 정도 넉넉잡고 말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쯤 도착할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과일을 쌓아놓고 CCTV 영상을 내 노트북으로 확인했다.
“은근 떨리네.”
신지운이 중얼거리는 사이 영상이 시작되었다.
황새벽이 먼저 부사장실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춘형이 골프채를 꺼내 들고 걸어가는 게 보였다.
“아, 못 보겠다.”
나는 쫄아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옆에 앉아 있던 한효석의 등 뒤로 고개를 숨겼다.
“오!”
“새부기!”
“빨라, 빨라.”
거의 동시에 멤버들이 좋아하는 소리가 들려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왜. 앞으로 해봐.”
“한 번에 좀 봐.”
“나도 못 봤어. 다시 보자.”
우리 막냉이도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어서 못 봤다고 했다. 그랬더니 한 번에 보라고 나한테는 뭐라고 하던 신지운이 앞으로 돌려줬다.
“너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냐?”
내가 억울해하니까 신지운이 대꾸했다.
“막냉이는 연락 없이 외박을 안 하거든.”
“어, 미아냉.”
나는 바로 수긍하고 영상을 봤다.
“야이씨, 이게 좋아할 일이냐…….”
이춘형은 바로 부사장실 창문을 깨려고 했는데, 그 타이밍에 황새벽이 문을 열었다.
“어.”
나는 이춘형이 부사장실만 깨려고 온 건 줄 알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맞았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문이 열리고 황새벽을 발견한 이춘형이 골프채를 휘둘렀다. 실수가 아니었다. 분명히 황새벽을 본 후에 휘두른 거였으니까.
황새벽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걸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황새벽은 다시 골프채로 칠 거라고 생각해 손으로 바로 채를 붙잡았다. 그리고 힘으로 뺏어서 던져뒀다. 황새벽이 보이는 것보다 운동신경도 좋고, 악력은 특히 더 좋았으니 이 정도에서 끝났지, 진짜 큰 문제가 생길 뻔했다.
그걸 보고 있으니 몸에 힘이 들어갔다. 뒷일 생각하지 않고 두들겨 팼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방금 전 생각을 취소했다.
한발 늦게 도착한 나는 황새벽을 봤고, 이춘형에게 주먹을 날렸다. 황새벽이 피하고 막을 때도 신나 하던 멤버들이 조용해졌다.
순간 이성을 잃어버린 내가 생각보다 세게 이춘형을 쳤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강효준의 사촌이라 체격이 좋은 이춘형이 휘청거리며 벽에 충돌한 걸 내가 멱살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치고 있었다. 그리고 밟으려는 걸 황새벽이 먼저 붙잡아 당기고, 강효준이 나타나 뗐다.
저기서 진짜 밟았으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는 걸 지금 CCTV를 보고 알았다.
그걸 보자마자 신지운이 안주원에게 물었다.
“지워야 하는 거 아니냐?”
“지울까?”
“혹시 모르니까 가지고 있는 게 낫지 않아요?”
“그것도 그래.”
그렇게 멤버들과 상의하던 신지운이 나에게 물었다.
“형 이거 아무도 안 가지고 있어?”
“어, 아무도 안 가지고 있어.”
“형이 챙긴 거야?”
“아니, 중운이 형.”
“아, 그 새끼를 어떻게 믿어. 영상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푸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 형은 진짜 믿어도 돼. 그 형이 이게 다라고 하면, 이게 다야.”
내가 말해봤지만 멤버들은 믿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저 형이 은근 사람 잘 믿는다니까.”
“맞아! 언뜻 똑똑해 보이는데 잘 보면 바보야!”
민지호의 말에 다들 공감했다. 아니, 왜 공감해, 이놈들아.
병 주고 약 준다고 민지호가 금방 싱글벙글해서 내 등을 퍽퍽 치며 말했다.
“그래도 잘했어!”
“그건 당연하지.”
신지운도 동의하고, 박선재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멤버 피를 보게 했는데 당연히 주먹 나가지.”
“……맞아, 안 그랬으면 나 좀 삐진다.”
황새벽 역시 중얼거리고, 스트레스받은 표정으로 빈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안주원이 그런 황새벽의 등을 두들겼다.
“스트레스받지 마. 괜찮아.”
“생각해 보면 정해원이 이춘형 팰 거 너무 당연한데, 저걸 못 막았네. 나 진짜 느리냐…….”
“아냐, 아냐. 적당해.”
안주원이 옆에서 아무 말로 달랬다. 황새벽은 아마 먼저 못 막은 게 후회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들 내가 이춘형을 친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멤버가 먼저 맞은 거니까. 그게 은근 위로가 됐다.
민지호가 바로 강효준에게 전화했다가, 안 받으니까 부대표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보였다.
“부대표님! 해원이 형 감옥 가요?”
“아, 민조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진짜 가는 거 아니야, 나? 햇살이들 전과자 아이돌 괜찮아……? 나 사랑해 줄 거야……?
끌려가기 전에 미리 X버스에 물어봐야 하나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우렁찬 부대표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렸다.
-아휴, 안 가지! 혹시 가면 내가 감옥 뿌수고 데리고 나올 테니까 걱정 마라!
“어, 저도! 저도 뿌수러 갈래요!”
-그으래, 우리 민조 가고 싶은데 다 가야지. 아무튼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잠깐 민지호에게 핸드폰을 빌려서 부대표에게 물었다.
“기사는 어떡해요? 이춘형이 기사 뿌리고 난리 날 텐데…….”
-기사? 안 나지!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게 신기하다. 내가 걱정하니까 한효석이 옆에서 말했다.
“형, 전과가 생겨도 퍼스트라이트는 하나예요.”
“뭐라는 거야.”
각자 개소리들을 하는데, 그 개소리들이 이상하게 엄청 안심이 된다. 이놈들이 날 너무 잘 알아서 그런가 보다.
* * *
그러고 나서, 나는 숙소에서 긴 숙면에 들어갔다. 평소에도 몰아서 자는 편이고, 회피하고 싶은 게 있을 땐 더 미친 듯이 자는 편이라 이번에는 더 정신없이 잤던 것 같다. 콘서트 편곡도 이번에는 양이형에게 대부분 맡겨놓고 안주원의 영화 시사회 전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그리고 영화 시사회 당일. 나는 멤버들과 함께 시사회 장소로 이동했다. 기자들이 무지하게 와 있었다. 내가 VMC 들쑤시고 여기로 와서 저절로 홍보가 된다고 장선영 대표가 좋아했다는데, 그게 진짜로 좋아할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멤버들과 함께 기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