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23화
나는 긴장한 상태로 영화를 봤다. 추천한 음악, 박유미의 문라이즈가 들릴 때를 은근히 기다리면서.
문라이즈가 처음으로 들린 건 안주원이 퇴학을 당해 모든 짐을 쑤셔 넣은 가방을 메고 집으로 향하는 장면에서였다.
바닷가와 밤하늘, 울음을 참는 표정으로 걷는 어린 시절의 주인공, 윤재한의 이어폰에서 문라이즈가 흘러나왔다.
문라이즈는 신스팝 장르의 음악으로 박유미가 작곡과 작사 모두에 참여했으며, 특히 가사에 있어서는 자기 내면에 있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썼다고 말했다.
따로 떼놓고 들으면 약간 올드한 느낌이 드는 린드럼의 사운드는 오히려 지금 다시 한번 레트로한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내 안의 나는 나보다 달빛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더 닮았어]
자기 안의 우울감은 그림자에 비교되었고, 그것을 작사를 통해 해소했던 것 같다.
나는 원래도 이 노래를 정말로 좋아했고, 만약에 내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면 한번 멋들어지게 커버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던 곡이기도 했다.
가사는 우울함에 대한 이야기지만, 음악은 밝고 경쾌하게 느껴지는 사운드를 가지고 있었다.
아날로그 악기들을 사용한 사운드에 근원 모를 향수를 느끼게 하는 박유미의 목소리가 녹아들며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무작정 그리워하게 되었다.
나는 이미 영화를 봤다. 그런데 내가 본 영화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이 바뀌어 있었다.
물론 나는 그 바뀐 모든 부불이 취향이었지만, 남들은 어땠을지 걱정이 됐다.
이전에 본 영화에서도 저렇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아역이 퇴학당한 후 길을 걷는 장면이 나왔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훨씬 설득력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학교 쪽을 잠깐 돌아볼 때 스크린에 가득 찬 안주원의 얼굴은 순간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와…….’하고 탄성하게 했다.
그 이후에도 문라이즈는 반복적으로 영화에 등장했는데, 나올 때마다 뭉클했다.
처음에 임 감독이 선택했던 유명한 팝도 분명 좋은 곡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특히 윤재한의 성인과 아역 배우 얼굴에는 문라이즈가 어울렸다.
그렇게 영화가 끝났고, 나는 꼼짝을 못 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영화에 바뀐 부분들이, 나에게는 딱 맞는 조각을 찾아 맞춰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속에서부터 만족감이 훅 올라왔다.
편집증까지는 아니지만 원래 정리 정돈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마지막 퍼즐을 맞춘 그 느낌이 강렬한 쾌감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영화의 여운에 빠져 있던 나는 한발 늦게, 박수 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영화관의 VIP 관람객들이 기립하여 손뼉을 치고 있었다. 눈치 없게 앉아 있던 나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좋은 영화였다.
원래도 흥행했던 영화인데, 내 생각에 내가 좀 뭘 바꿨다고 해서 그 흥행에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선택은 임 감독이 한 거니까 내 책임이라고는 볼 수 없다……! 히히.
그때 임 감독이 돌아보고 날 찾아서 눈을 마주쳤다. 내가 꾸벅 인사했더니, 임 감독이 일어나서 내 쪽으로 왔다. 그러더니 손을 꽉 잡아 악수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저요? 제가 뭘…….”
“장 대표님이랑 한 번 들어봤거든요. 내가 원래 주장하던 곡을 그 장면에 깔아서. 그런데 완전히 달라. 그게 얼마나 중요한 장면인데, 그 음악으로는 완성이 아니었어.”
놀랍게도 임 감독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맞는 자리에 조각을 찾아 넣은 쾌감을, 임 감독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어떻게 내 영화를 미리 알았는지, 어떻게 감독인 나도 모르는…… 이 영화에 맞는 음악을 알아다 줬는지는 자세히 묻지 않을게요.”
“아…….”
와, 생각해 보니까 그랬다.
나는 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임 감독에게 문라이즈를 들어보라고 던졌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때 내가 진짜 막 던졌구나, 생각하며 섬뜩해 하는데 임 감독이 말을 이었다.
“오히려 나로서도 자세히 듣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냥 해원 씨가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제가요?”
“네, 그런 상상이 이 영화에 많은 영감을 줬어요.”
그렇게 말하더니 손 인사를 하고 떠났다.
왠지 나는 임 감독에 있어서는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나를 정말 시간여행자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안주원도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어땠어?”
“민지호 울어요.”
한효석의 말에 훌쩍거리던 민지호가 바로 옆에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신지운의 팔을 잡아떼며 말했다.
“아자몽도 울어!”
“새벽이 형도 울거든?”
심지어는 황새벽도 눈가가 벌게져 있었다. 황새벽이 코를 훌쩍거리더니 중얼거렸다.
“영화는 안 슬퍼. 그냥 보니까 안주원 고생한 게 생각이 나 가지고.”
“재미있었지?”
“어, 나 또 보려고. 가족들이랑.”
그렇게 말하자 박선재가 말했다.
“지우니 형, 해원이 형. 우리 같은 숙소끼리 또 영화관 가자.”
“어, 가야지. 우리 막냉이 데리고.”
신지운이 그렇게 대답하고 있는 사이에, 안주원은 부모님 쪽으로 향했다. 나는 안주원의 부모님을 좋아하기 때문에 같이 쫄래쫄래 따라갔다.
“어우, 오늘도 잘생기셨네요.”
“으응, 우리 해원이 왔니.”
나와 안주원의 아버지는 이 대화가 핸드쉐이크 같은 게 됐다.
안주원의 아버지는 조각이라는 말에 늘 민망해 했지만, 살면서 워낙 잘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그냥 허허 웃고 끝이었다. 안주원의 어머니만 옆에서 건방져지니까 그만 잘생겼다고 하라고 매번 잔소리하시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해원이 요즘에도 밥 잘 안 챙겨 먹는다며. 맨날 아아만 먹고.”
“아, 저 이제 추워져서 드디어 미지근하게 먹어요.”
“그래? 잘하고 있네.”
“그쵸, 맛을 포기하고 건강을 얻으려고요.”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후에, 같이 가족끼리 여운을 느낄 수 있게 안주원의 등을 툭툭 두들기고 우리 자리로 돌아왔다.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안주원은 너무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로 말고, 아이돌로 유명해져야 하니까.
하지만 내 바람은 절반만 이루어졌다.
영화는 잘됐다. 하지만 안주원도 유명해졌다.
* * *
[미쳤나 가장 외로운 시간 500만ㄷㄷㄷ]
[속도 뭐여 크리스마스 특수 노리고 개봉한 영환데 크리스마스 시즌도 되기 전에 500만이 나왔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제작 거의 강효준 대표가 다 댔다며ㅋㅋㅋㅋㅋㅋㅋ]
[↳될놈될…….]
[↳돈이 돈을 버는 거지]
[제작사에 영화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게 가외시ㅋㅋㅋㅋㅋㅋ]
[가외시 어제 북미도 개봉했는데 사람 꽉 찼더라]
[↳북미 반응 X나 좋음]
[↳딱 북미에서 좋아할 스타일이긴 해ㅋㅋㅋ 가족 얘기 나오고 적당히 판타지고ㅋㅋㅋㅋ]
[↳↳가족 얘기 나오는 적당한 판타지 안 좋아하는 국가도 있냐]
[재미있어? 주변에서 나만 안 봤어]
[↳크리스마스 되기 전에 꼭 봐ㅠㅠ]
[↳존잼]
[↳취향 안 타는 재미야ㅋㅋㅋ]
[가외시 눈뽕 오지더라 그냥 영화관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해]
[↳무조건 아이맥스로 봐야 돼]
[↳영화 너무 예뻐서 영화관 나오면 뭔가 우울해…….]
[↳↳이거 알지ㅠㅠ]
[↳↳괜히 좀 우울하더라 진짜로]
[근데 안주원 장면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진짜 스포 듣고 갔는데도 너무 잘 생겨서 입 틀어막았어ㅋㅋㅋㅋㅋㅋㅋㅋ]
[↳눈뽕의 절정…….]
[↳X나 청순하게 잘생겼더라 욕나오게 잘생김]
[↳↳첫사랑의 의인화 그 자체임]
[↳↳우리 학교에 안주원 있었으면 나 한 번 스쳐 지나간 것도 평생 기억했을 듯]
[나 이번에 가외시 보고 윤재한 아역본체에 꽂혔는데 성격 어떠니ㅠㅠ 피폐해지기 전 윤재한이랑 성격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좋겠어ㅠㅠ]
[↳비슷한데 좀 더 다정다감해]
[↳↳맞아 비슷한데 안 능구렁이야ㅋㅋㅋㅋ]
[↳↳↳비슷하다고??? 심지어 다정다감해???]
[임 감독이 퍼라 해원이 문라이즈 추천했다고 썰 푸는 거 봤냐 X나 신기함]
[↳지금 보고 왔는데 진짜 말이 안 된다 그냥 갑자기 추천해줬대ㅋㅋㅋㅋㅋㅋ]
[미쳤나 지금 문라이즈 X포티파이 글로벌 순위 떴어ㅋㅋㅋㅋㅋㅋㅋㅋ]
[↳몇 위임?]
[↳↳21위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았네 진짜 북미 흥했다더니ㄷㄷㄷ그냥 전세계 흥이구나?]
그리고 영화의 흥행과 함께, 관심은 제작자, 배우, 그리고 정해원에게로 이동했다.
[그래서 이춘형은 어떻게 되는 거야?]
[↳뭘 어떻게 돼 그냥 VMC에서 대중들이 잊어버릴 때까지 몸 사리고 있을 듯ㅎㅎ]
[↳↳근데 그러기엔 너무 터지지 않았냐]
[↳↳그렇게 되면 정해원 멘탈 나갈 것 같은데]
[아까 기사 봤는데 캔캔 스튜디오 압수수색 들어간다는데?]
[↳어?????]
[↳와ㅋㅋㅋㅋㅋㅋㅋ웬일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춘형 브엠에서 팽했네 백퍼 그러니까 압수수색 들어가지]
[X나 믿기지가 않네 이거 그럼 브엠 승계구도 완전 바꾸겠다는 시그널 아님?]
[↳X나 시그널이지]
[↳이번에 가외시 흥하면서 강효준이 회사에 다시 가져다 준 돈 생각하면 X나 업고 다녀야 돼]
[이번에 터진 거 퍼라 해원이 이춘형 탈탈 털려고 작정해서라는데]
[↳엥 그냥 승계 구도에서 밀린 거 아니냐]
[↳↳진짜야 기사 있음 (링크)]
[↳↳↳허얼]
[브엠은 이미 클라루스 놓쳐서 간판 뜯겼을 때부터 처맞고 있었음]
[살다 보니까 아이돌이 회사를 박살 내는 날이 오는구나]
* * *
내가 기억하는 속도와 완전히 다른 흥행 추세였다.
내 기억 속에서도 어마어마한 흥행이었는데, 지금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를 개봉하자마자 안주원은 전국에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유명해졌다.
물론 이름보다는 ‘잘생긴 아역 걔’로 더 알려져 있었지만 그걸 온전히 ‘안주원’의 인지도로 만드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안주원에게 대본이 말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다. 온 사방에서 가장 외로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안주원은 콘서트 준비와 더불어 넋이 나갈 정도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개봉 직후에 콘서트가 있기는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아역인 안주원은 시사회 스케줄에 나갈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번에 크게 주목을 받다 보니 영화사 쪽에서 간절하게 부탁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우리 팬들끼리 콘서트를 즐기면 되지, 라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외적으로 너무 많은 폭풍이 흔들고 있어서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콘서트 직전, 나는 엄청나게 든든한 지원군들을 얻었다.
[채채 형 : 해원아 클라루스 막콘 여섯 명 다 갈게^^ 우리 후배들 지원해야지]
[희영이 누나 ; 철순아 정태랑 우리 식구들 다 갈 거야 자리 만들어라]
[주니 형 : 클라루스 막콘 가면 우리는 중콘 물어 볼게]
[주니 형 : 멤버들이 바쁜 척 하느라 스케줄 조정을 못하네 막콘 때 보자 좀 정신없겠네]
[빅 블루 대장님 : 해원아 형 좀 누워도 되니 밤샘하고 가야 돼서ㅎㅎ]
[배우 문재 형 : 매번 이렇게 초대해 줘서 고마워. 아이돌 친구 참 좋다.]
거기에 폴 존스도 오로지 우리 공연을 보려고 서울로 오고 있었다. 절친이다. 허허.
같은 소속사 선배가 된 클라루스는 물론, 빅 블루 멤버들도 X스타에 우리 콘서트 포스터를 올려줬다.
신지운은 내게 온 연락을 보며 말했다.
“인맥만으로도 연예계에선 형한테 함부로 덤빌 사람이 없겠다.”
“그런가?”
뭐, 어쨌든 관심 받는 걸 좋아하는 나는 시간을 내서 콘서트를 보러 온다는 선후배 친구 가족들의 연락에 선물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