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24화 (32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24화

콘서트 전날.

보이드 엔터 강효준 대표는 4본부 A&R팀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효준은 주머니에 손을 빼 시계를 확인했다.

“리허설 가야 되는데.”

콘서트 이야기가 나오자, 음악에 관심 많은 A&R들이 말했다.

“퍼라 콘서트 편곡이 진짠데.”

“이번에 편곡 양 작가님이 주로 했다면서요?”

“예, 뭐. 상황상.”

“어차피 편곡은 둘 중에 누가 하나 똑같지 않아요? 둘이 거의 뇌를 공유하는 중이잖아요.”

다들 A&R이다 보니 정해원과 양이형의 작업 과정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 보였다. 임수환 A&R팀장이 힐끔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슬슬 이사 끝났을 것 같은데요?”

“벌써요?”

강효준이 대꾸하며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보니 때마침 대표실 이사가 끝나, 이삿짐센터 직원이 내려오고 있었다. 강효준은 VVV엔터 대표실로 향했다.

강효준이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천장이 너무 낮은데.”

“대표님이 큰 거예요. 그리고 대신 넓잖아요. 뷰도 좋고.”

뒤따라온 임수환 팀장의 말에 강효준이 고개를 적당히 끄덕이며 창가로 향했다.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걸, 하마터면 건설업으로 성공할 뻔했네.”

강효준이 중얼거리는 말에 임수환 팀장이 흐흐 웃었다.

“아, 그 해원 씨가 말한 거?”

“네. 이러다가 건설업으로 성공한다고 헛소리할 때는 얘가 뭔 소린가 했는데 지금 여기 와서 보니까…… 진짜 큰일 날 뻔했네요.”

“이야, 혜안이 있네.”

“늘 정해원이 우길 때는 이해가 안 되는데, 좀 지나고 나면 다 맞는 말이라니까요. 한 번만 좀 걔가 틀렸으면 좋겠어.”

강효준이 억울한 표정으로 투덜거리자 임수환 티장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런 고민해 보고 싶다. A&R로 실패하면 건설업에서 성공하는 거라고요?”

“원래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그런데 놀랍게도 이춘형이는 한 방에 쫓겨나네요.”

VMC에서 이춘형에 대한 권고사직이 있었다.

동시에 강효준은 VVV엔터 대표직을 맡으며 VMC의 대규모 조직개편이 시작되었다.

VMC 대표는 아버지인 VMC 고문에게 고개를 숙이며 되돌아갔다. 그러면서 회사에 남아 있던 모든 고질적인 문제들을 이춘형에게 떠넘기게 되었는데, 이춘형은 처음에는 자살시도 소동을 일으키며 소란을 피웠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

아마도 조용히 해야 할 위협이 있었을 거라고 강효준은 생각하고 있었다. VMC 대표와 이춘형 본인은 회사에서 나가는 정도로 무마하고 싶어 하는 듯하지만 그렇게 만들 수는 없었다.

다른 층의 VMC는 완전히 뒤집혔지만, VVV엔터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내부에서는 VVV엔터가 보이드 엔터로 팔려 갈 거라는, 올해 초까지도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었다는 식의 괴담이었을 이야기가 살이 붙어 퍼져 나가고 있었다.

강효준은 VVV엔터 임직원들에게 인사와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히 전달한 후, 최대한 빨리 회사를 나섰다.

* * *

이번 콘서트는 민지호에게 특히 의미가 크다.

민지호는 이번 콘서트에 처음으로, 시작과 끝까지 연출에 전부 참여했다. 민지호가 기획한 첫 번째 콘서트인 셈이었다.

이번 콘서트를 시안으로, 반응에 따라서 내년 초에 있을 투어의 첫 번째 콘서트가 될 서울 콘서트를 맡을지, 말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민지호는 내가 쉬는 동안에 멤버 전원의 안무를 짜면서 콘서트 기획에 대한 야심을 키우기 시작했다.

명실상부 퍼스트라이트의 메댄이자,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아낄 줄 모르는 민지호가 기획을 하면 멤버 모두 고척돔 바닥에 쓰러지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멤버들은 그런 불만과 걱정을 입 밖으로 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누구보다 협조적으로 민지호의 수많은 질문에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해주는 것도 멤버들이었다.

“우리 이제 죽었다.”

고척돔에 도착한 황새벽이 중얼거렸다. 옆자리에 앉은 나도 동의했다.

고척돔 3일.

우리는 콘서트에 오고 싶은데 못 오는 햇살이들이 있는 게 속상했다. 그래서 항상 회사에서 하자는 것보다 큰 규모의 공연장, 더 많은 날짜를 원했고 이번에도 우리가 이겼다. 회사에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지만 이번에도 우리가 우긴 고척돔 3일이 통과되었다.

사회면에서나 연예면에서나 첫 장을 장식할 큼지막한 사건을 터트리는 바람에 콘서트에 피해가 갈까 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클라루스와 빅 블루 멤버들이 콘서트 홍보를 해주면서 우리 쪽으로 관심이 쏠렸다. 클라루스 멤버들의 영향력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각자의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빅 블루 멤버들의 홍보가 국내에서 굉장한 파급력을 보였다.

리허설을 위해 고척돔 무대에 선 우리들은 모두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진짜 크다.”

우리 중 고척돔을 안 와본 사람도, 무대에 안 서본 사람도 없는데 다들 처음 온 것처럼 그저 ‘크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끼리만 서본 건 처음이니까.

리허설을 마치고 박선재가 우리를 불렀다.

“여기서 동영상 찍자.”

“동영상?”

막냉이가 부르자마자 내가 달려가며 물었더니 박선재가 말했다.

“빙 한 바퀴 돌고, 그다음에 햇살이들 들어온 영상 이어 붙이게.”

“오, 천재네.”

좋은 의견이 있으면 덥썩 무는 우리 멤버들이 우르르 몰려와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 일곱 명 모두가 보이게 적당히 서고, 팔이 긴 신지운이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자 우리 팀 최단신인 민지호가 말했다.

“팔 올리지 마!”

“안 돼, 난 이 각도로 찍어야 예뻐.”

“아닌데? 똑같이 못생겼는데?”

“하, 참내. 난 내가 너무 잘생긴 거 알아서 그런 말로 상처받지 않아.”

신지운은 안 해줄 것처럼 굴더니 결국 보폭을 넓혀서 키를 줄였다. 안 그래도 신지운이 영상을 촬영하거나 하면 시야가 너무 높이 있었다. 다행히 팬들은 백구십의 시야를 경험할 수 있다면서 재미있어했다.

신지운이 허리 나갈 것 같은 자세로 몸을 기울여서 내가 뒤에서 말했다.

“야, 멍충아, 허리 나가.”

“또 잔소리하네.”

“걱정해 주는 걸 잔소리라고 하냐.”

“내가 알아서 할게.”

“너 요새 사춘기야?”

“싸우지 마, 얘들아. 내가 잡아줄게.”

화해의 아이콘인 안주원이 뒤에서 허리를 받쳐줬다. 그걸 보더니 한효석이 말했다.

“저 형들도 은근 말리는 사람 없으면 안 싸워요. 주원이 형, 형이 안 말려야 돼요.”

“그래?”

“네, 말리는 사람 없으면 좀 싸우다마는데, 말리는 사람들 있으면 끝까지 싸운다니까요.”

“효식아, 너는 내 편 들어야지.”

내가 투덜거리니까 한효석이 말했다.

“형 편이긴 한데, 형이 먼저 멍충이라고 했잖아요.”

“멍충이가 욕이야?”

“멍충이가 뭐예요, 형이 유치원생이에요? 차라리 욕을 해요.”

“그럴까? 욕을 할까?”

“아, 뭔 욕을 해.”

신지운은 억울해했지만, 아무튼, 아이돌이 제일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허리라는 건 변함이 없다. 디스크라도 터지면 일, 이 년은 무조건 쉬어야 하고, 그나마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계속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연차가 차니까 슬슬 멤버들의 건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특히 키가 커서 늘 멤버들에게 맞추려고 더 많이 숙이는 안무를 해야 하는 신지운의 허리나, 어릴 때부터 쭉 몸이 약했던 황새벽의 건강, 스케줄이 바빠진 안주원의 건강 등등…….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도, 영상을 찍을 때는 다들 신이 나서 히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박선재가 말했다.

“다들 자기 어디서 찍었는지 기억하고 있어, 이따가 같은 자리에서 찍어서 연결하게.”

대장감인 막내의 말을 잘 따라주면서, 우리는 리허설 준비를 마쳤다.

그러고 나서 다른 멤버들은 모두 무대를 내려갔고, 나는 무대 한가운데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민지호의 옆에 앉았다.

“민조 뭐 해?”

“좋아서.”

“오구, 우리 민조 좋아아?”

민지호는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본인이 직접 기획한 콘서트. 그것도 고척돔에서 3일 동안 진행되는 콘서트였다.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인 녀석에게는 엄청 큰 부담일 것이다.

그런데도 태연하고, 평소보다도 담담해 보이는 대범함이 신기해서 내가 물었다.

“안 부담스러워?”

“부담스러워서 좋아!”

“부담스러워서 좋구나, 으응.”

뭔 소린지 모르겠다. 그냥 민지호는 민지호만의 세계가 있으니까 그냥 그렇구나 받아들일 뿐이지. 민지호가 말을 이었다.

“형, 이번 앨범에는 콘서트에서 부를 곡을 만들어줘서 좋아. 투어에서 부를 때 딱 집중되는 음악들이 있잖아.”

“특히 레터스 투. 진짜 좋지.”

“응, 너무 좋지. 오늘 그거 부를 때 너무 기대돼. 근데 형.”

“응?”

“형이 우리 팀 프로듀서라서 진짜 좋아.”

“왜 이래, 감동하게.”

내가 투덜거리는 사이, 민지호가 말을 이었다.

“형이 프로듀서라서, 우리가 원하는 노래 만들 수 있잖아. 형이 항상 우리 의견들 다 넣어서 만들어주니까. A&R 형 누나들도 다 우리 의견 서포트해 주고.”

“그렇지.”

그런데 왜 ‘근데’로 이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내가 생각하는데, 역시나 이제 본론이 나왔다.

“그러니까 형. 다음번에는, 형이 하고 싶은 거 해.”

“……내가 하고 싶은 거?”

“형이 돋보이는 거. 그거 하면, 우리가 다 거기에 대해서 의견 낼게.”

“…….”

내가 돋보이는 거.

“음. 갑자기?”

“형 있잖아, 계속해서 다른 멤버들 중심으로만 만들었어. 알아?”

“뭔 소리야. 내가 만든 건데, 나 중심이지.”

“아니이, 왜 말을 못 알아들어?”

“너도 사춘기야? 형 상처받는다? 막 가슴 아파한다, 나?”

솔직히 이쯤 하니까 내가 동생인지, 민지호가 동생인지 모르겠긴 한데……. 그래도 민지호는 어른스럽게 말을 이었다.

“형 항상 앨범 나올 때마다 다른 멤버들 주목받게 만들어주잖아. 한 번도 형 중심인 적이 없었어.”

“프루티 있잖아.”

“그거 솔로곡이잖아, 뭔 소릴 하는 거야! 이러니까 형 잘 보면 하나도 안 똑똑하다니까?”

“아니…… 그랬나?”

나는 모든 곡이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쓴다. 모든 창작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나를 완전히 배제한 창작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무대에서 돋보이는 건 다른 문제인 모양이다.

쪼그려 앉아 있던 나는 예상외로 심각한 이야기에 편하게 바닥에 앉았다.

나와 민지호는 심각하게 다음 앨범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민지호가 말했다.

“이번에도 멤버들 모여서 회의했는데…….”

“나 빼고?”

내가 욱하려 하니까 민지호가 말했다.

“아, 형이 연락 없이 외박했잖아!”

“……다신 안 할 거야.”

“아무튼. 근데 그런 얘기를 했어. 형이 계속 멤버들 돌아가면서 잘 보이게 해줬는데, 형이 안 보인다고.”

“내가 존재감이 없어서 그래.”

“뭐라는 거야, 바보야.”

“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나는 쓰러지는 시늉을 하고, 바닥에 그대로 누워서 천장을 봤다. 조명이 일부만 켜져 있는데도 눈이 부셔서 팔로 눈을 가렸다.

다른 여섯 명 멤버들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하는데, 나에 대해 생각하려니 아무것도 안 떠올랐다.

늘 거울을 보며 각도도 포즈도 연습을 한다. 그런데 판단이 안 섰다. 자신도 별로 없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나에게는 내가 좀 별로였어서.

생각해 보면 그냥 그런 상태로, 아이돌로서의 매력에 대해 생각하기를 덮어둔 상태로 쭉 활동해왔구나, 싶어서 소름이 끼쳤다. 직무 유기 아닌가? 신중하게 고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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