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25화 (325/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25화

퍼스트라이트 콘서트 당일 아침.

최근 아이돌 챌린지 영상을 몇 번 X튜브에 업로드 한, 내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보통의 학생이자 미래에 정해원이 만든 그룹에 들어가게 될 신비은은 친구이자 미래에 같은 그룹에서 활동하게 될 명소은과 함께 고척돔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미래이자 과거를 전혀 알지 못했고, 각자 춤과 노래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직 그 방향으로 나가겠다, 진로를 정확히 정한 것은 아니었다.

오디션을 한 번 보기라도 할까, 하고 서로 이야기는 매일 나누고 있었지만, 실제로 오디션을 보러 가는 건 왠지 부끄럽고 당연히 떨어질 것 같아서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신비은이 최근 챌린지를 하면서 반 정도 입덕하게 된 퍼스트라이트의 콘서트에 가자고 나서며, 비슷한 시기에 입덕한 명소은도 함께 고척돔에 따라 나오게 되었다.

보통 아이돌이 되는 사람들은 연습생이 되기 전부터 명함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두 사람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연습생이 되기까지는 어떤 시그널 같은 게 있었을 거라고.

연습생에게 데뷔의 벽이 높아 보이는 것처럼, 오디션을 준비할 때는 그 연습생이 되는 벽이 하늘 같이 높아 보였다.

지하철에서부터 유선이어폰을 나눠 끼우고, 같이 퍼스트라이트의 응원법을 연습하면서 온 명소은이 이어폰 줄을 감으며 말했다.

“엄마가 대기업 못 갈 거면 시작도 하지 말래.”

“하긴, 너희 어머님 티케 1세대 아이돌부터 파셨잖아.”

“응, 그니까.”

덕질은 유전이라고, 명소은의 어머니는 티케 1세대 아이돌의 팬이었고, 딸이 티케 연습생이었던 신지운이 소속된 퍼스트라이트 콘서트에 간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갈 때는 둘이서 왔지만 집에 갈 때는 명소은의 어머니가 공연장으로 데리러 오기도 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덕질에는 지원을 해주지만,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딸의 꿈에는 영 밍숭맹숭한 태도였다.

명소은이 말을 이었다.

“아이돌은 기획력 차이가 크다고…… 대기업이 아니면 하늘의 별따기래.”

“사실 그렇긴 해……. 아, 근데 오디션 본다고 무조건 연습생 시켜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한 번 보기나 하자니까?”

“너 좀 혼자 보라니까?”

“나 혼자 아무 것도 못하잖아. 같이 가줘야지.”

“같이는 가주지, 당연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오디션도 같이 보자아. 응?”

“아, 몰라.”

그렇게 이야기하며 고척돔에 들어선 두 사람은 잠깐 호흡이 멈추는 기분을 느꼈다.

티켓팅 역시 명소은의 어머니가 구했는데, 오랜 덕질의 역사를 가진 사람답게 티켓팅에 참여하는 마음가짐부터 남달랐다. 두 딸들은 물론 양쪽 부모님 넷이 모두 티켓팅에 참여했는데, 유일하게 명소은의 어머니만이 표를 구했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태어나서 이렇게 단기간에 진이 빠진 건 처음이라는 얼굴로 늘어져 있었고, 티켓팅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믿지 못했다.

어쨌든 그렇게 힘겹게 얻은 표였다.

두 사람은 1층 좌석에 앉아서 고척돔을 돌아보았다.

“크다…… 그리고 퍼라는 전혀 안 보이겠다.”

“엄마가 여기 토롯코 돌면 잘 보인데.”

“나 연예인 실제로 한 번도 못 봤어.”

“왜 봤잖아, 대학로 곱창집에서 술 먹고 있던 연극배우 아저씨.”

“아, 맞다. 화면이랑 똑같더라.”

“좀 더 술톤이고.”

“그건 그냥 취해서 그런 거 아냐?”

두 사람은 별것 아닌 에피소드에 까르륵까르륵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

잠시 후 불이 꺼지기 시작하자,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와…… 나 진짜 심장 터질 거 같아.”

신비은이 중얼거리자 명소은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어두워서 안 보일까봐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소리치는 순간, 대형스크린에 VCR이 들어왔다.

평소 강렬한 느낌이 들던 콘서트 VCR과 달리 무성영화 같은 컨셉의 꽁트 영상이 흘러나왔다.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스케줄에 미성년자 멤버들이 부모님 동의서를 받는 장면이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박선재가 부모님 동의서를 가지고 오는 장면에서 바로 지금, VCR이 멤버들이 있는 장소로 연결되었다. 연결된 카메라에 박선재의 얼굴이 등장하자 순간 고척돔에 함성이 꽉 들어찼다.

멤버들은 의상 스포를 피하기 위해 가운을 입고 있었다. 박선재가 말했다.

-이제 부모님 동의서 없이 10시 넘어서까지 할 수 있으니까요, 끝나는 시간이 10시가 넘을 가능성이 있어요. 마음의 준비를 해주세요, 햇살이들.

-미성년자 햇살이들은 일찍 가도 되고, 늦으면 꼭 부모님한테 연락드리세요!

-먼저 가는 햇살이들 아쉽겠다…….

-얘들아, 구호하자.

황새벽이 말하고 카메라 쪽을 보며 말했다.

-햇살이들, 우리는 원팀이니까 같이 구호하면서 시작해요. 할 수 있죠?

그리고 카메라가 모여있는 일곱 개의 손을 향했다. 황새벽이 말했다.

-서드, 세컨.

동시에 스크린 속 멤버들과 공연장의 모든 팬들이 ‘퍼스트’를 외쳤다.

명소은은 리더인 황새벽의 선창으로 이 고척돔을 매진시킨 팬들이 동시에 한 단어를 외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TV로 보는 음악방송이나 예능과는 완전히 달랐다. 현장, 그것도 콘서트에서 체감하는 것은.

퍼스트라이트는 언제나 아이돌의 궁극적인 목표는 콘서트라고 말했었는데, 희미하게나마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자 신지운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빈 무대에서, 퍼스트라이트 정규 3집의 첫 번째 트랙이자 서곡의 역할을 하는 ‘Eternity’의 랩을 하는 저음이 깔렸다.

‘잘한다.’

명소은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했다. 저 넓은 무대를 혼자서 채우는 신지운의 끼가 놀라웠고, 전광판에 잡히는 얼굴도 놀라웠다. TV로 보는 얼굴과 전광판에 잡히는 얼굴이 또 달랐다.

그렇게 멍하니 얼굴을 보고 있을 때, 박선재의 맑은 보컬이 들렸다.

[이제는 영원을 영원을 영원을, 말해]

멤버들이 하나씩 와이어에 의지해 무대로 내려왔고, 자기 파트를 부를 때마다 전광판으로 각 멤버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연출팀의 얼굴 자랑, 정해원의 보컬 자랑이 응집된 등장이었다.

명소은은 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멤버들의 얼굴이 전광판에 비추는 것을 넋이 나간 얼굴로 보고 있었다.

얼굴, 보컬, 사운드. 거기에 함께 온 친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꿈이, 미래의 과거보다 좀 더 빨리 만들어진 계기이기도 했다.

* * *

‘햇살이들과 같이 구호를 하자’라는 민지호의 계획은 받아들여졌다. 연출팀에서 기술적 문제를 해결했고, 다행히 무사히 우리는 햇살이들과 함께 구호를 외칠 수 있었다.

햇살이들이 함께 구호를 해주는 순간, 연출팀 스태프들이 일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들렸다. 성공해서 다행이었고, 무엇보다 그 구호가 시작부터 분위기를 뜨겁게 만든 게 좋았다.

멤버들은 민지호가 ‘빡센 퍼포!!!!!!!’의 느낌으로 기획안을 짜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첫 곡으로 Eternity와 Youth를 선택했다.

원팀으로서 구호를 한 이유도 정규 3집 타이틀, Youth와 연결하기 위함이었다. 민지호는 햇살이들과 구호를 한 직후에 ‘영원을, 영원을’이라는 부분을 불러주고 싶다고 했다.

콘서트 시작을 여는 곡이었기 때문에, Youth만큼은 내가 콘서트 버전으로 편곡을 해놨다. 아련하고 청량한 분위기가 음악방송에는 맞았지만, 콘서트의 첫 곡으로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후반이나, 앵콜곡으로 어울리는 곡이었다.

민지호가 원하는 걸 맞춰주고 싶었기 때문에 나도 편곡에 한참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다음 곡과 극적인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와이어의 속도에 맞게 곡의 속도를 느리게 하고, 보컬을 극대화했다.

[끝이 없는 것처럼 영원을 말해 영원히 살 것처럼]

[영원히 춤추고 영원히 노래할 것처럼]

[Just like the world is ours]

[우리의 순간은 영원한 슬픔까지도 반짝이게 해서]

[이제는 영원을 영원을 영원을 말해]

[이제는 영원을 영원을 영원을 말해]

하나, 하나 강렬하게 살린 보컬이 함성과 뒤섞일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하나같이 보컬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다. 전광판에 보이는 얼굴들도 이제 드디어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나는 공연자이면서, 동시에 관객이기도 했다. 행복한 일이다.

* * *

첫 번째 무대가 끝나고, 퍼스트라이트는 무대에 남아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후 간단한 잡담이 이어지다가,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정해원이 말했다.

“아, 이건 진짜 TMI인데……. 효식이 내년 목표가 차차 저한테 말 놓는 거래요.”

그 말에 고척돔 안에 순간 충격과 당혹감이 퍼지는 것을 명소은은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퍼스트라이트와 햇살이들 사이에 있는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팬들보다 더 당황한 건 멤버들이었다. 멤버들이 수군거리다가 한효석을 보며 ‘진짜? 진짜야?’하고 물었다.

한효석이 중대한 발표를 하는 것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제가 이제…… 요즘 지호가 형들한테 맞먹다 못해서 이름을 부르더라고요. 특히 지운이 형이랑 해원이 형.”

“둘 다 말을 안 듣잖아!”

민지호가 옆에서 말하자 정해원과 신지운을 제외한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신지운이 억울해하며 말했다.

“아니, 여러분. 내가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민조보다 안 들어?”

“지호는 말을 안 듣는 것보다 시끄러운 게 크지.”

황새벽의 말에 안주원이 동조하며 신지운에게 말했다.

“너는 사춘기가 길었잖아.”

“아, 또 할 말 없게 하네.”

그렇게 투덜거린 신지운이 한효석에게 물었다.

“근데 왜 해원이 형부터 시작해? 만만하지?”

“뭐가 만만해.”

정해원이 말하며 신지운을 밀치고 한효석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제일 좋아하는 형이니까 그치?”

“그건 아니고요.”

“아, 고민 좀 하고 말해.”

“고민할 게 뭐 있어요. 우리 멤버들 다 똑같이 좋아하는데. 저는 형처럼 편애 안 해요.”

“아니…… 나도 똑같이 좋아하는데, 이제 편애가 좀 있지.”

“형, 편애를 한다는 건 똑같이 좋아하는 게 아닌 건데.”

“……아무튼.”

“아니, 우리 형들이 진짜 이상한 게. 원래 예의가 바른 동생을 더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형들은 이상하게 자기한테 막 대하는 동생을 더 예뻐해요.”

한효석이 데뷔 이후 거의 팬들에게 보여주지 않던 표정과 말투로 쫑알쫑알 불만을 토로하자 팬들보다 먼저 형들이 귀여워하며 무대 위에 쓰러져 웃었다.

“그래서 일단 저 형한테 말을 놓아보려고요.”

그러자 정해원이 냉큼 말했다.

“지금 해봐, 지금.”

“내년부터 할래요.”

“지금 해줘. 해원아, 해봐.”

“아니, 그게 아니잖아요. 형은 붙여야지…….”

한효석이 회피하려다가 자기를 둘러싸고, 눈을 반짝반짝거리며 보고 있는 네 명의 형들에게 말문이 막혀 뒤로 물러섰다. 팬들은 웃음이 터지고 한효석이 부담스러워하면서 말했다.

“그럼 내년부터 차차…… 말을 놓을게, 형들.”

“우와…….”

“뭔가 감동이다.”

“그래, 내 동생.”

감동한 형들 넷이 동시에 끌어안자 한효석의 귀가 순식간에 새빨개지고, 민지호와 박선재도 달려가서 그 무리에 합류했다. 일곱 명이 공처럼 뭉쳐서 서로를 사랑하던 멤버들이 다시 멘트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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