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27화 (32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27화

3일간의 콘서트는 벅찼다.

언제나 그렇듯이, 힘든데 끝내기 싫었다. 이상한 감정이다.

나는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에 온 빅 블루, 클라루스 형들과 인사를 했다. 우리 멤버들은 여전히 낯을 많이 가렸지만 또 그새 몇 살 더 먹었다고 드디어 그 낯가림을 좀 감출 줄 알게 됐다.

“선배님, 저 형이라고 해도…….”

“응, 형이라고 불러주면 내가 고맙지. 우리 띠동갑보다 더 차이 날 텐데.”

“정민이 형, 저희 찾아가는 일꾼 또 불러주실 거예요?”

“야, 새부기야. 컴백만 해, 바로 부르지. 너희가 아이돌 게스트 일순위야.”

우리 멤버들, 미래의 외향성까지 다 끌어다가 쓰고 있는 걸 보니까 집에 가면 콘서트보다 이게 힘들어서 뻗게 생겼다.

평소에는 이렇게 막콘이 끝나면 스태프들이 여기다가 매트를 깔아줘서 거기서 잠깐 누워서 이야기도 하고, 숨도 돌리는데 오늘은 그럴 수 없게 됐다.

뭐가 어찌 됐든 우리 멤버들의 사교성 훈련을 거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특히 오늘 선배들에게 인기 있는 건 안주원이었다. 채연재가 말했다.

“주원아, 나 가외시 두 번 봤어. 또 보려고.”

“와, 진짜 두 번 보셨어요? 감사합니다.”

“VOD 언제 풀려?”

“지금 제가 바로 여쭤볼게요.”

“응, 진짜 물어봐 줘. 나 진지해.”

“채채, 세 번째 볼 거면 나 불러줘! 나 아직 못 봤어.”

빅 블루의 맏형 라인인 다니엘이 말하자 채연재가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나머지 회식할 동안 나랑 보러 가, 형.”

“지금? 가자. 나 정민이가 주최하는 회식에 끼고 싶지 않아.”

그렇게 대기실은 우리와도 친해지는 시간이었지만, 자기들끼리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그때 빅 블루 이준희가 벽에 기대서서 흐뭇하게 그 모습을 보던 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흐뭇한 표정이야?”

“우리 비하인드 영상 조회 수 겁나 잘 나오겠다, 싶어서요. 꺄아.”

두 손을 흔드는 내 잔망에 이준희가 웃었다. 그 웃는 소리에 나머지 형들에게 또 스키퍼가 최애 찾아갔다고 놀림을 당했지만 비하인드 영상의 조회 수를 생각하며 그냥 허허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전설들이 빛나는 대기실에서 흐뭇해하고 있는데, 회식을 위해 나가기 전, 이준희가 나에게 말했다.

“해원아, 내년에는 우리 앨범도 내고 콘서트도 할 거야.”

“완전체로요?”

“응.”

“서울에서요?”

“응, 서울에서.”

와.

심장 떨린다.

이준희가 말했다.

“꼭 와. 초대권 보낼게.”

“형, 저 스키퍼예요. 제가 표를 구해서 가죠.”

“초대권으로 와. 티켓팅하지 마. 나 한 번 티켓팅 시도 했다가 스키퍼들한테 엄청 혼났어, 자기 표 건드리지 말라고.”

“진짜요? 와, 절대 안 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형들을 배웅했다.

그렇게 감사 인사도 하고, 서로 번호도 받으며 콘서트 마지막 날이 완전히 끝났다. 예상대로 멤버들은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하나같이 거실 바닥에 쓰러져 누웠다.

나는 언젠가 채연재가, 어느 날 갑자기 멤버들이 애벌레들 뭉쳐있는 것처럼 기절잠 자는 걸 보니까, 클라루스 멤버들이 자기 새끼 같이 느껴지더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아마 지금 저기 패딩도 못 벗고 뭉쳐 있는 모습과 비슷했을 것이다.

나는 멤버들을 보며 물었다.

“콘서트가 힘든 거야, 형들이랑 사회인답게 얘기해서 힘든 거야.”

“2번!”

“2번이요…….”

“2번이지, 아무래도…….”

황새벽도 대답은 못 하지만 나름으로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의사 표현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멤버들을 깨우려고, 그나마 제일 체력 좋은 한효석을 흔들었다.

“효식이, 씻어.”

“30분만요…….”

“그러다 잘 거잖아.”

“아니…….”

한효석이 이 정도면 나머지는 아예 못 일으키겠는데, 싶었다. 나는 어떻게 얘네 흥미를 끌까,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 자컨 소재 생각났어.”

내 말을 다들 무시했지만 의도한 건 아닐 테니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신지운 VS 민지호 어때. 팀 나눠서 둘이 딱 여기서 승패 가르고 한 달간 형이라고 하기.”

내 말에 멤버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지운이 자리에 앉더니 물었다.

“아니, 내가 형인데 나 손해 아냐?”

그러니까 민지호가 대꾸했다.

“아니지. 아자몽 내가 형이라고 마지막으로 한 거 언제야?”

“맞네, 딱히 손해 아니네.”

“꺄아, 쟤한테 형이라고 하기 시렁.”

“야, 그래도 쟤는…… 아, 뭐 맘대로 해라.”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늘 맏형의 건강을 걱정하는 박선재가 물었다.

“새벽이 형은 어떡할래?”

“나 깍두기.”

“심판 안 해?”

내가 물어보니까 황새벽이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안 해, 힘들어.”

“알았어, 새부기 깍두기 가자.”

다행히 자컨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멤버들은 하나씩 깨서 씻고 나왔다.

그러고는 바로 잤다. 멤버들이 외향성을 끄집어내지만 않았어도 맥주 한 잔씩은 했을 텐데, 오늘은 다들 씻고 나와서 기절해 잠들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소파에 앉아서 정말 오랜만에 노트북 대신 오선지 종이 노트를 무릎에 두고 펜을 손에 쥐었다.

가끔은 이런 아날로그가 나에게 어떤 영감을 가져다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게 오늘이었다.

나는 혼자 있으면 무지하게 외로움을 타기 때문에, TV로 영화를 켜놓고 무음으로 한 상태로 오선지를 적었다. 영화는 노팅힐이었다. 특히 좋아하는 영화라 이미 수도 없이 봤기 때문에 켜놓아도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민지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주목받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보라고 했었지…….

솔직히 나는 내가 뭘 했을 때 팬들의 호응이 제일 좋은지 안다.

“은발이지…….”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햇살이들은 야아아악간 양아치 같은 컨셉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 우리 햇살이들 나쁜 남자 좋아하면 안 되는데. 꼭 무조건 반드시 좋은 사람 만나야 하는데…….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아예 안 만났으면 좋겠기는 한데…… 어휴 이런 생각하지 말아야지. 이기적이니까.

아무튼 나는 이번 콘서트 세트리스트에서 제일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과 근접한 무대의 반응을 찾아보기로 했다.

정규 3집 수록곡, Lunatic will be king에서 리패키지의 타이틀인 크로노스로 연결되는 무대였다. 민지호가 퍼스트라이트의 섹시함을 콘서트에서 보여주고야 말겠다고 이를 갈고 만든 무대였다.

솔직히 하면서 엄청 걱정했다. 우리 멤버들이 내 눈엔 아직 철부지 애새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안주원이 검색에 재능이 없는 나에게 X위터 아이디를 만들고, 내가 봐도 될 것 같은 글이 올라오는 계정들을 팔로우해 놨다.

그래서 타임라인을 읽다가 좀 놀랐다.

“……햇살이들이 이런 말 해?”

안주원은 안주원이 생각하는 ‘사무적인 말투를 사용하는’, 혹은 정보 외의 사담이 거의 없는 짤계, 또는 영어 계정들을 팔로우해줬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번 무대가 햇살이들에게 좀 많이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X발 X나 사랑한다 정해원]

[죄송해요 저 딱 오늘 욕 좀 할게요]

[오바야 개X잘생겼다]

[X간지네]

[하 X나 X나 섹시하다 사람이냐 저게]

[콘서트 정해원은 전설이네요 나 왜 안 올콘 X발]

지극히 사무적인 글만 올라오던 타임라인에 욕이 즐비했다. 다른 무대 때는 눈물 표시가 많았는데, 저기서는 욕이 글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햇살이들의 새로운 면에 조금 놀랐지만 다 좋은 의미라는 걸 아니까 은근 신났다. 그보다 햇살이들이 내가 무대에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게 훨씬 놀라웠다.

“……저게? 햇살이들 이거 진짜야? 놀리는 건가?”

나도 내가 저런 표정을 했는지 몰랐다. 무의식중에 나온 것 같다.

루나틱에서 나는 뒤로 쓰러질 것처럼 넘어지는 안무가 있었다.

[흔들흔들 거리며 번쩍번쩍 빛나며]

햇살이들이 이 부분을 흔거번빛이라고 줄여 불렀다. 한 파트를 줄여 불러준다는 건, 그 파트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라고 안주원이 그랬다.

뒤로 넘어지는 건 위험해서, 퍼포먼스 영상에서만 한 번 하고 그 이후로는 안 했다. 대신 그 파트는 내가 가사 그대로 취한 사람처럼 흔들거리고, 빛나는 장식을 자랑하는 안무 동작을 매번 바꾸면 멤버들이 그걸 순발력 있게 따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안무가 3일 다 달랐고, 의상은 전부 기본적으로 정장을 베이스로 장신구를 엄청 무겁고 화려하게 달았다.

내가 보기엔 능구렁이 같아서 기분 나쁜데, 그걸 햇살이들이 엄청 좋아해 줬다.

“……음.”

햇살이들이 좋아한다면, 생각한 대로 한번 진행해 볼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깨어있는 걸 알기라도 한 듯 이 새벽 시간에 문자가 왔다.

확인해 보니 스파이였다.

[스파이 : 해원아 콘서트 끝나고 피곤할 시간이라 미안한데…… 지운 씨 개인 계약 건, 티케에서 발목 잡을 수도 있다는 건 들었지?]

[스파이 : 당연히 대화했겠지만 혹시나 해서]

처음에는 ‘지운 씨’가 누구인가, 했다. ‘씨’를 붙이니까 무지하게 어색하다. 그다음에는 티케에서 왜 발목을 잡는다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것도 곧 답이 나왔다.

신지운은 티케에서 아끼고 아낀 연습생이었다.

“…….”

[아니 몰랐는데]

[심각해?]

[스파이 : 아무래도 지운 씨가 개인 활동을 거의 안 한 건 사실이잖아 드라마가 그렇게 잘 됐는데 후속 활동 전혀 없었고]

[스파이 : 그걸 좀 문제 삼으려는 것 같더라]

나는 바로 일어나서 신지운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잠귀가 밝은 편인 신지운이 문 열리는 소리와 쏟아지는 빛에 상체를 일으켰다.

“미쳤냐…….”

잠에서 깨서 형이고 뭐고 안 보이는 신지운에게 내가 물었다.

“너 티케랑 문제 있어?”

“…….”

어른이 되자.

저놈도 X나 속 썩고 있었을 텐데 이런 걸로 갈구지 말자. 그니까 여기에서 ‘이런 걸로’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와 같다.

나는 치미는 걸 삼키고 말을 이었다.

“괜찮아, 너희 부모님이 설마 이건 도와주시겠지.”

“안 도와줘.”

“야, 아무리 그래도 하나뿐인 자식인데. 법정소송 휘말리는 걸 놔두겠어?”

“이미 말했어. 부모님이 나 배우 했으면 좋겠대.”

“…….”

“그 사람들 눈엔 그게 괜찮은 직업인가 봐.”

어우. 골치 아파.

내가 이런 소리 들으려고 이 시간까지 깨 있었구나, 싶었다. 몸에 열이 많은 신지운은 던져놨던 티셔츠를 집어 입으며 나에게 말했다.

“콘서트 끝나면 얘기하려고 했어. 근데 너무 피곤해가지고 내일 얘기하려고 했더니.”

“…….”

“최악의 경우에 위약금 내지 뭐. 나 돈 있어.”

척을 져도, 티케랑은 지는 게 아닌데.

VMC가 규모는 훨씬 클지 몰라도, 역사와 전통은 티케에게 있다. 거의 모든 공중파 방송국이 VMC와 티케가 충돌하면 티케 편을 들었다. 규모 차이는 있지만, 짬이라는 게 무시 못 하는 모양이다.

지금 빅 블루, 클라루스 같은 전설적인 아이돌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에 티케 엔터의 공로를 뺄 수는 없다.

나는 문틀에 머리를 기대고 서서 생각했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마음으로 정했다.

웬만하면, 싸우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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