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28화
신지운은 한동안 티케와의 계약 문제로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사회에 나와 있는 시간은 가장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멤버들 중에는 가장 이런 문제에 밝을 정해원에게 말하지 못했던 건 충격이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대처를 잘하는 것과 멘탈이 튼튼한 건 별개의 문제였다. 정해원은 여전히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보기에 가장 염려스러운 멘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또 그렇지도 않았다.
정해원은 생각보다 계약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잘 받아들였다. 미리 말 안 했다고 빡쳐서 이 새벽에 방에 들이닥치기는 했지만, 화가 난 거지, 우울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신지운이 말했다.
“나도 형만큼, 퍼스트라이트가 무조건 최우선이야.”
그렇게 말하니까 문틀에 머리를 기대고 팔짱을 낀 상태로 고민 중이던 정해원이 대꾸했다.
“알아. 그러니까 이렇게 됐지.”
“그러니까 말이야.”
정해원에게 중요한 건, 퍼스트라이트가 문제없이 꾸준히 앨범을 내고, 다른 어떤 스케줄도 콘서트를 방해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투어를 하다 보면 일곱 명의 멤버가 모두 항상 건강할 수는 없으니까, 한두 명은 당일 공연에서 빠지는 날도 올 거다. 그런 얘기가 아니었다.
다른 걸 우선하지 않으면 된다. 인생에서 퍼스트라이트가 가장 중요한 날이, 최대한 길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방금 콘서트를 마치고,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일곱 명 모두가 공유한 생각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정해원이 말했다.
“일단 네가 회사에 가서 잘 달래봐. 말 좀 이쁘게 하고.”
“……나 그런 거 못하잖아.”
“왜 못 해. 하면 다 해.”
정해원은 이럴 때 특히, 무지하게 형 같았다. 꼰대 기질이랑은 아주 거리가 먼데,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누구누구 알아.”
“안주원이랑 새벽이 형.”
“딱 말할 사람들한테만 말했네.”
“그치. 기껏 형 빼놨더니 어떻게 알았냐.”
“형은 듣는 귀가 많잖냐.”
이제 저건 신기한 일도 아니다. 정해원은 진짜로 듣는 귀가 많았다.
스파이, 박중운 팀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았는데, 스파이를 제외해도 일단 인맥이 어마어마하게 좋았다. 워낙 나오는 케이팝을 죄다 한 번씩은 들어보는 사람이라, 음악방송에서 처음 보는 후배가 인사하러 와도 다 아는 체를 했다. 그럴 수 있었다. 실제로 다 아는 후배였으니까. 정해원이 얼굴을 볼 때마다 어, 누구누구 후배님, 뭐뭐가 좋던데요, 뭐가 킬링파트던데, 이렇게 말하고 있으면 후배들이 무슨 사이비 교주 보듯이 정해원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물론 좀 더 친해진 후배들은 그냥 평범한 케이팝 덕후라고 생각하고 익숙해지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정해원은 말 그대로 인망이 좋았다. 본인은 적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적들이 맥을 못 추게 만드는 것은 인망일 것이다.
정해원이 물었다.
“회사에는?”
“아직…….”
“황새벽 뭐해, 바로 말해야지.”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어. 나도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알았어.”
정해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일단 부모님하고 좀 더 얘기해 봐. 티케보다 그게 급하다.”
“회사보다?”
“회사 일은 회사한테 맡겨야지.”
정해원이 선뜻 대답하자 신지운이 멈칫하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 그럼 내가 회사 가서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부모님한테 말할게. 형이 그렇게 회사를 믿는 날이 오네.”
“뭘 믿어. 나름으로 경계하고 있어.”
말은 그렇게 해도, 회사 일은 회사에게 맡기자는 말이 TRV까지 가지 않아도, 올해 초의 정해원에게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신지운이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히, 난 아직도 형 멘탈 엄청 걱정했는데.”
“어, 잘하고 있어. 계속 걱정해.”
“이제 안 해도 되겠는데.”
“아니, 그래도 하라고. 관심 주라고.”
정해원은 평소처럼 진상짓으로 대화를 마무리하며 자기 방으로 휙 가버렸다.
안 그래도 정해원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여러 스트레스 중 하나였던 신지운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져 잠이 들었다.
* * *
친구와 함께 퍼스트라이트 콘서트에 다녀온 명소은은 아침부터 멍한 상태였다. 아직도 고첨돔에 있는 기분이었다.
엄마 말이 맞았다. 고척돔 1층에 잡아준 자리는 명당이었다. 바로 앞으로 이동차가 지나가서 멤버들 얼굴을 코앞에서 봤다.
아이돌이 저런 거구나, 새삼 느꼈다. TV로 볼 때도 개개인이 가진 끼가 느껴지지만 현장에서 볼 때는 차원이 달랐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정말 초단위로 표정을 바꾸고, 온갖 종류의 하트도 그 표정이 바뀔 때마다 해보였다.
저게 아이돌이 직업인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앞으로 정해원이 지나갔는데, 끊임없이 애교를 부리던 정해원이 명소은, 그리고 함께 간 신비은을 발견하고 움찔하며 멈춰섰다.
한 1, 2초 정도.
짧은 시간인 것 같지만 그렇게 수시로 표정을 바꾸던 아이돌에게는 어마어마하게 긴 멈춤이었다.
그러더니 금방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으며 양손으로 반쪽 하트를 만들더니 팔을 교차해서 두 친구 모두에게 하트를 보냈다. 그러고는 바로 몸을 돌려 맞은편의 팬들과 눈을 마주쳤다.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이동차가 지나갔는데도 잔상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알았다. 자기가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는걸.
깨작깨작 밥을 먹는 동안 옆에서 그 고척돔의 명당자리를 예약해준 엄마가 걱정하며 딸을 살피다가 드디어 물었다.
“너 콘서트에서 무슨 일 있었어?”
평소 같으면 콘서트에 갔다 와서, 밤을 새고 엄마에게 후기를 늘어놨을 딸이었다. 그런데 멍해져서 씻고, 멍해져서 자고 일어나서 멍한 상태로 밥을 먹고 있는 거였다.
그렇게 멍해 보이는 시간 내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명소은이 비장하게 말했다.
“엄마.”
“응.”
“나 오디션 볼래.”
“티케?”
“티케 나 안 뽑아줄 거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 딸 이쁘지, 거기다가 보컬이 좋잖아. 메인보컬은 원래 지옥에서라도 데려오는 거야.”
“역시 딸에게 후하구만.”
명소은이 말하고 히히 웃었다. 그런 딸에게 엄마가 말했다.
“대형 아니면 안 돼. 알지?”
“대형 기준까지 어디까지야?”
“브엠, 퍼스트라이트 멤버들 개인 소속사였던 곳들, 그리고.”
“그리고?”
“보이드까지.”
“보이드…….”
명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드 엔터 캐스팅 정보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신지운은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곧바로 강효준에게 티케의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부모가 배우 일을 원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강효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다, 미리 말해줘서.”
“해원이 형이 말하래요. 회사끼리 일이니까 회사가 해결할 거라고?”
“웬일이냐, 걔가.”
“제 말이요.”
신지운이 동의하더니, 말을 이었다.
“해원이 형 또 티케 들이박으면 어떡해요?”
“몰라, 정해원은 나도 예측이 안 돼.”
강효준도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라, 신지운은 안심했다.
정해원은 VMC를 반파시키고 나왔다. 지금 VMC는 수습을 하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보였다.
신지운이 물었다.
“이춘형 진짜 실형 살까요?”
“살아야지. 횡령이랑 폭행 사주만 해도.”
“집에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응. 감방에선 사고는 못 칠 거 아니야.”
재벌을 감방에 보내게 생겼다. 웬만한 판검사도 어려울 일이었다.
그렇게 좀 더 이야기하고 난 신지운이 나갔다.
강효준은 의자 뒤로 기댔다.
“티케…… 아, 하필 티케네.”
다른 소속사는 다 해결할 수 있는데, 티케는 확실히 어려웠다.
신지운은 본인의 부모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계약에 있어서 부모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난장판이 나기 쉬웠다. 부모가 언론을 이용하면 회사를 악역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케와 싸우는 일에 앞서, 거기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보다도 중요한 것을 하기 위해 강효준은 전화를 걸었다.
-같은 층에 있는데 왜 전화해요? 형 요만큼은 좀 걷고 그래요.
“너 작업실이야? 지금?”
-어제 새벽에 작업하던 거 좀 더 하려고요.
전날 3일 콘서트를 한 놈이 새벽에 작업하고, 다음날 아침부터 작업실에서 작업 중이었다. 강효준이 전화를 끊고 작업실로 가서 의자에 앉아 빙 뒤로 도는 정해원에게 말했다.
“이 시간에 작업실에 있는 게 말이 되냐?”
“어차피 오후에 연습 있으니까 일찌감치 왔어요.”
콘서트 다음 날은 웬만하면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시상식 연습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늦게 시작하게 하려고 오후 5시부터 시작으로 잡았더니, 오전부터 작업실에서 작업중이었다.
강효준은 황당했지만 일단 하려던 말을 했다.
“너.”
“넴.”
“티케랑 싸우지 마라.”
“……저요?”
정해원은 세상에 그런 황당한 말은 처음 들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강효준을 보고 있었다.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너 또 멤버들 때문에 빡쳐서 덤빌 거잖아.”
“아니, 이 연약한 제가 어딜 덤빈다고 그래요.”
저게 농담인지, 진짜 스스로를 연약하다고 생각하는지 이제 분간이 안 간다. 어쩌다가 저렇게 이상한 놈을 데려오는 바람에 얼떨결에 퍼스트라이트도 잘 되고 클라루스도 데려오고 VMC도 승계하게 되었는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정해원이 말했다.
“형, 그것보다 이거 들어봐요.”
“어.”
강효준은 일단은 음악을 우선했기 때문에, 정해원이 들려주는 것을 들어보았다.
강효준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날티 나는데?”
“우정에 관한 노래를 만들어보려고요.”
우정에 대한 노래가 이렇게 날티나게 들리면…….
“안 좋은 우정 같아 보이는데.”
지금까지 컨셉 포토는 날티나게 찍었어도, 타이틀 자체가 그런 적은 없었다. 정해원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온기를 베이스로 했기 때문이었다. 정해원이 흐흐 웃으며 다시 시퀀서를 보더니 말했다.
“어휴, 완벽하게 이해해 주네. 형은 A&R이 천직이긴 해요, 진짜로.”
“칭찬하지 마, 그러고 사고 칠 거잖아.”
“아니, 무슨 사고를 쳐요, 내가.”
“뻔뻔하네?”
“당당한 거지, 사고를 안 쳤으니까.”
“너에게 맞게 표로 정리해서 줄게.”
“형, 진짜 그런데다가 시간 쓰기에는 이 세상에 너무 아름답고 할 일이 많아요.”
그렇게 잔망을 떨더니 곡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표정을 했다.
티케 일 때문에 멘탈이 나가있을까봐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안 그래도 신지운이 강효준에게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정해원이라는 인간 자체가 단단해진 것 같다고. 강효준도 거기에 동의했다. 지금도 본인이 괴로워하던 컨셉을 직접 잡고 있으니.
혹은 한 번 회사를 박살 내봐서 티케 정도에는 안 쪼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런 부분은 일단 외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