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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29화 (32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29화

나는 그렇게 어제 새벽부터 작업하던 곡을 들려준 후에, 강효준에게 물었다.

“티케랑은 어떻게 대화해요?”

내 질문에 강효준이 소파에 앉으며 대꾸했다.

“일단은 돈 문제가 있으니까. 그것부터 해결해야지.”

“진짜로 위약금 줘요?”

“아니, 내 생각에는 그런 것보다.”

강효준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거는 회사가 알아서 할 수 있어. 비율이 문제지. 아무튼 돈 문제는 회사에서 알아서 할게.”

“일단이면, 돈 문제 말고도 뭐가 있어요?”

내가 그렇게 물어보니까 강효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사실 티케 입장에서 지운이 개인 활동으로 붙잡고 있는 것도, 체력 나가는 일 같은데. 재계약 얘기로 시비 걸어봤자, 사실 그쪽도 손해지. 시간 들고, 욕먹고.”

그건 그랬다. 티케 입장에서 시간을 투자해서 개인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고소씩이나 하는 게, 회사에 크게 이득도 아닐 것 같았다.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돈도 있지만, 자존심 문제도 있는 거 아닌가, 싶네.”

“자존심 문제요?”

하긴. 신지운이 그래도 그 회사에서 엄청 아끼던 애고, 플랜도 있었을 텐데 국선아 이후에 이래저래 상황이 복잡해졌다. 원래대로라면 퍼스트라이트 대신, ‘소년들’의 활동만 종료된 후에 티케로 돌아갔어야 했다.

어쩌다 보니 그 서바이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시기가 안 맞게 되면서 많은 플랜이 꼬인 셈이었다.

자존심.

생각해보면 티케는 이 아이돌 산업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자기 회사 아티스트에 대한 애착도 어마어마하게 강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강진기. 티케 엔터테인먼트에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며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해온 그 작곡가를 포함해서 탄탄한 프로듀서진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돈과 자존심.

나는 일단은 그 두 단어를 머릿속에 담아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효준은 내 작업실에서 커피를 찾아서 마시고 나도 한 잔 준 후에 나서며 말했다.

“두 번 말하게 돼서 좀 그런데, 티케랑 싸우지 마라.”

“알겠다니까…… 형, 애초에 내가 티케랑 왜 싸워요?”

“전적이 있잖아, 전적이. TRV에 VMC에.”

“형. 잘 봐요. TRV도 VMC도, 내가 어떻게 덤볐겠어요. 비빌 언덕이 있으니까 그렇지. 호가호위라니까요.”

“내가 호랑이가 아닌데 무슨 호가호위야.”

엇, 그건 약간 그렇지…… 좌천된 4본부 A&R? 솔직히 호랑이까진 아니었다. 나는 멈칫했지만 바로 수습했다.

“형은 인상이 호랑이잖아요.”

“하마라며.”

“먹는 게 하마. 저도 일하는 게 송아지.”

“그냥 소 아니냐.”

“뭐 어떻게 해요, 햇살이들이 송아지라는데.”

나는 이야기하고 히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저는 티케한테 한참 약하죠, 저 빅 블루 팬이잖아요. 어릴 때부터 티케의 음악이 귀에 있다니까요.”

“하긴.”

그건 진심이었다.

빅 블루는 몇 가지 완벽히는 알려지지 않은 사정으로 티케에서 나왔다. 추측되는 상황은 우선 빅 블루 멤버인 ‘다니엘 서’가 해외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하면서, 개인 매니지먼트를 해외로 옮기기를 원했던 것 같다. 티케에서 이 부분을 양해해주기를 원했지만, 뭔가 대화가 잘 풀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각자 배우 생활, MC등을 하느라 바쁘지만, 대화가 안 풀려서 그렇지 나쁘게 나간 것까진 아닌지 티케와 계속해서 괜찮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빅 블루의 리더이자 차기 국민 MC감으로 거론되는 최정민의 방송에 티케의 아이돌들이 대거 출연하기도 했고, 일본에서 매년 가장 잘생긴 한국 아이돌 순위에 밥 먹듯이 1위를 차지하는 박민하가 콘서트에 티케의 아이돌 후배들을 초대하는 장면도 여러 번 잡혔다.

그러니까 아마 나의 케이팝 생활은 티케에서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다가, 중간에 강효준은 VMC에 일이 있다고 떠나고 나는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에 가보니 멤버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있었다. 바닥에 시상식을 위해 바뀐 동선에 형광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원래 늘 연습실에서 살고, 연습은 항상 한두 시간 먼저 도착하는 민지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안무를 숙지하고 있었다.

멤버 중에 안무를 가장 먼저 숙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로 큰 장점이다. 그 멤버가 다른 멤버에게 지속적으로 안무를 알려줄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박자에 다 꾸겨 넣기는 무리인 안무다, 싶으면 그 멤버가 빼는 걸 상의하기도 한다.

오늘도 민지호가 그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뒤에서 같이 안무 영상을 보던 안주원에게 말했다.

“형, 이거 해봐.”

민지호가 말하며 박자를 쪼갠 안무를 해보이자, 안주원이 러프하게 그 동작을 따라해 보았다. 민지호의 예상대로 한 번에 되지 않았다. 민지호가 안무팀 UO의 장지영 팀장에게 물었다.

“누나, 이거 이 박자 여기 다 안 들어갈 거 같아요. 주원이 형이 노래를 하면서 이 동작을 하면서 여기까지 못 와요.”

“그럼 여기서 세 걸음을 뒤로 가잖아.”

장지영 팀장이 방금 안무를 해 보였다. 그리고 민지호와 안주원에게 물었다.

“이걸 두 걸음으로 줄여 봐.”

“형, 저 음악 좀 틀어주세요.”

“어이.”

안무팀 댄서가 음악을 틀어주자 민지호와 안주원이 같은 동작을 다시 시도했다. 물러나는 걸음을 둘로 줄이자 확실히 보기가 좋아졌다.

그렇게 안무를 확인한 후에, 우리는 바로 연습에 들어갔다.

멤버가 둘, 둘, 둘, 하나가 나와서 하는 안무였다. 이렇게 나는 신지운과 페어 안무여서, 같이 연습을 했다.

신지운이 나에게 거의 귓속말로 말했다.

“효준이 형한테 말해놨어.”

“어, 너한테 들었다고 하더라. 내 멘탈 걱정돼서 보러 왔더라고.”

“음.”

신지운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꾸했다.

“내가 보기에 이제 형 진짜 멘탈 걱정 덜 해도 되겠던데.”

“내가 말했지, 관심을 거두지 말라고. 계속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걱정해주란 말이야.”

나는 말하면서 안무 연습을 이어갔다. 그래도 저 말이 칭찬이란 걸 알았고, 솔직히 마음에 들었다.

안무는 멋졌다. 햇살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 * *

시상식은 일부 사녹, 일부 본방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페어 안무 부분은 본방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것 말고도 이번 시상식에는 개인적으로 연습할 것들이 많았다. 나는 다른 몇몇 동료 아이돌들과 함께 04년생 특집 같은 걸 하기로 했다. 덕분에 또래들이랑 만나니까 신이 나서, 시상식이 만나게 해준 인연으로 단톡도 팠다. 물론 대부분 이미 아는 애들이었다. 히히. 친구 좋다.

그렇게 정규 3집 타이틀곡 사전 녹화까지 끝내고, 시상식 당일.

12월에 들어서면서 세상은 무지하게 추웠고, 추운 것보다 더운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나는 영하로 떨어지기도 전에 롱패딩을 꺼내 입었다.

그렇게 시상식 장소로 향했다. 이번 시상식은 고척돔에서 이루어졌다. 바로 직전에 콘서트를 한 장소에 다시 오니까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 ‘아는 장소’라는 영역에 확실하게 들어온 기분이다.

그렇게 고척돔에 도착해서 무한 대기에 들어갔다. 우리는 중간중간에도 공연이 있고, 거의 마지막, 정확히 하면 뒤에서 세 번째 순서기도 해서 굉장히 긴 시간의 대기가 필요했다.

물론 어차피 마지막 무대에 다 같이 올라가야 하니까 우리만 대기를 하는 건 아니다. 햇살이들의 대기가 길어져서 그렇지.

그렇게 대기를 하고 있는데, 콘서트, 시상식 스케줄이 연달아 이어져서인지 멤버들이 다들 골골거리고 있었다. 매니저들이 잠깐 자고 일어나라고 했는데, 다들 얼굴이 붓게 나오는 건 싫어서 아무도 잠들지 않았다. 심지어 황새벽도 안 자는데 내가 잘 수는 없다.

애초에 잠이 딱히 오지도 않았다.

티케 엔터의 일을 보이드 엔터에서 알아서 할 거긴 한데,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소란스러워지는 건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소란스러워도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데…….

그렇게 회사에서 대신해줄 걱정을 하면서, 깨서 대기를 하고 있을 때, 모처럼 상태창이 떴다.

[단일 콘서트 6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오.

뭔가 나에게 보여줄 게 있는 모양이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과거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태창은 보통 내가 고민하는 부분들이 있을 때 떴다. 나는 이번에도 상태창이 나에게 보여줄 게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크, 역시 우리 스템이. 세상에서 제일 착한 시스템 같다……. 물론 내가 다른 시스템을 본 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본 적 없으니까 내 마음의 일등이라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어. 히히.

다만 과거의 미래가 그렇게까지 막 보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이렇게 보여줄 땐, 보긴 해야할 테니까 뜨는 거라는 스템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상태창이 이어졌다.

[빅 블루]

“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 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서 옆에 있던 박선재가 덥썩 내 이마를 손으로 감쌌다.

“이 형 또 헛소리한다.”

“헛소리? 내가 언제 헛소리했어.”

“형 가끔씩 신들린 것처럼 헛소리할 때 있다구. 그럴 때 무섭다니까…….”

그랬구만. 허허.

나는 생각하며 다시 상태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빅 블루.

내가 지금 고민 중인 것과 아예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솔직히 아주 연관이 없지도 않은 것 같다.

나는 과거의 미래를 보기 시작하면 옆에서 깨워도 전혀 듣지 못하는, 매우 주변 사람을 무섭게 하는 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그것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시상식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간 후에 확인을 해봐야겠다.

아, 근데 궁금해서 진짜 견딜 수가 없다.

빅 블루와 티케 사이에 무슨 일이 있나? 그 일이 신지운의 개인 계약에 쓸만한 무언가를 줄 수 있나?

나는 궁금한 것에 참을성 있는 사람은 아니라서, 왠지 안절부절 못하며 시상식을 이어갔다.

그리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시상식이 끝날 때쯤에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빅 블루가 이제 슬슬, X다피, 그러니까 일 더럽게 못하는 그 소속사 폼다피와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바야흐로 빅 블루의 재계약 철이었다. 아마 빅 블루도 멤버 개인개인이 계약이 끝나는 시기가 다른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빅 블루의 팬들, 스키퍼들은 이제 그 재계약을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 함께 이동할 거라고, 빅 블루가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제일 힘든 시기를 넘어가며, 빅 블루는 빅 블루라는 이름을 포기해야 하는 시기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빅 블루의 재계약.

……어?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다음 주에 있을 시상식 MC인 이준희에게 이걸 질문해볼까, 잠깐 생각했다.

너무 나 좋을 대로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혹시, 혹시나 티케로 되돌아갈 생각이 있는 건 아니냐고.

정말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된다면…….

……그 티케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공로를 약간 우리 쪽으로 돌려줄 수 있냐고 묻고 싶은데 너무 염치없나?

일단 그런 염치없는 소리를 하려면, 과거의 미래를 한번 정확히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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