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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30화 (33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30화

시상식 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멤버들이 자는 걸 확인하고, 내 방으로 와서 방문을 닫고 침대에 앉았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과거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빅 블루]

어우, 쫄려.

과거의 미래를 볼 때마다 쫄린다. 이게 다 안주원 때문이었다. 그놈이…… 아무튼.

나는 더 생각하기도 싫었지만, 빅 블루의 재계약 시기는 내가 ‘가장 외로운 시간’을 확인하던 때. 그러니까 내가 스물네 살이 되는 내년 1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기를 보여줄 것 같아 마음은 좀 놓였다.

[‘빅 블루’에 대한 기억을 확인합니다]

[확인 중…….]

* * *

“……오, X발.”

한 가지를 간과했다. 내가 이 시간으로 오면 숙취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다는걸.

나는 내 자취방에 누워 있었고, 장기를 한 번 꺼내서 세척하고 싶을 정도의 숙취가 몰아졌다.

아니, 난 술도 안 마셨는데 왜 이렇게 숙취에 시달려야하는 거냐. 억울하다…….

뭘 어떻게 마셨는지 두통이 심하게 온 머리통을 두 손으로 잡아 일으킨 후에 핸드폰을 집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믿음직한, 내 연예인 부정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정태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냐…….

“저 집에 오긴 왔는데요, 형.”

-너느은 진짜 귀소본능이 있다.

“뭔 소리에요, 형이 저 데려다줬잖아요.”

-어? 내가? 내가 연예인인데?

“생일선물이라고.”

-그랬냐? 왜 기억이 안 나냐…….

“사실 저도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가물가물해요.”

내가 계속 매니저를 했으면, 과로사를 하지 않았어도 술병으로 오래는 못 살았을 것 같다. 이렇게 술을 마셔댔다니.

아무튼 부정태와 이야기해보니 나는 오늘 휴일이었고, 지금은 25살 겨울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1년 뒤. 12월 28일.

어제 생일주를 12월 28일, 내 생일로 넘어간 다음까지 신나게 술을 마셨던 것 같다. 그리고 술과 의리 빼면 시체인 박종렬 엔터의 생일자답게 나는 한 번 뻗었다가 해 뜬다고 옆에서 깨워서 일어나 한 잔 더 마시고 집에 왔다.

“스템아, 나 그냥 집에 갈래…….”

숙취 때문에 꼼짝도 못 하겠어서 내가 누워서 징징거렸더니 상태창이 떴다.

[A급 체력 상승 포션X5]

[현재 상태의 피로가 100% 줄어듭니다.]

“와, 진심 사랑해.”

나는 말하고 바로 포션을 썼다. 그리고 나머지 포션 4개는 잘 챙겨놨다. 100% 회복이라니, 알차게 일하고 뒤지기 직전에 써야지. 히히.

이렇게 포션을 챙겨주니까 약간 게임 세계로 들어온 것 같다. 역시 인간이 얻는 게 확실해야 의욕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컨디션을 회복하고 몸을 일으켰다. 아침까지 술을 마시던 내가 멀쩡히 걸어 다니다가 박종렬 엔터 직원이 발견하면 잡아다가 술을 먹일 테니, 최대한 피하기로 했다.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일단은 티케를 가보기로 했다. 폼다피는 아는 사람이 없지만, 티케는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는 신지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신지운이 전화를 받았다.

-……이 형 진짜 왜 이러지?

“뭐가.”

이 시기에 전화 안 받을 줄 알았는데 받은 것도 신기하고, 심지어 목소리가 특별히 사납지 않은 것도 신기했다.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형이 안주원한테 전화해서 그랬다며, 삼십 대에. 더 늦으면 사십 대에 같이 활동하자고.

“아.”

어, 신기하네.

지난번에 가외시를 확인하러 왔을 때 안주원에게 전화했던 게, 여기 이 시간선에서 그대로 적용이 된 것 같다.

“그냥…… 안주원 요즘 힘든 것 같아서.”

-내가 그렇게 술을 마셔줘도 표정이 어둡더니, 그 얘기하면서 기분 풀렸더라.

“순둥이잖아.”

-단순한 거지.

“야, 안주원처럼 착한 친구 더 있냐?”

-그건 없지.

그치, 나도 없다.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내가 말했다.

“아, 나 전화한 김에 티케 구경 시켜주면 안 돼?”

-갑자기 왜?

“어, 나 엔터 회사 차리는 게 꿈이거든. 나중에.”

-오, 스파이.

“그렇지. 산업스파이지.”

신기하다.

안주원에게 전화 한 통 한 걸로 신지운은 어제도 본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와 대화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정말 기꺼이.

이상하게 자꾸 울컥했다.

이놈들은. 퍼스트라이트의 내 멤버들은 정말로 내가 손을 뻗기만 하면 언제라도 잡아주려고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서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자꾸 울컥했다.

-알았어. 지금 와.

“어, 갈게. 야, 나 오늘 생일이니까 밥은 네가 사.”

-생일 아니어도 내가 사.

“지운이 형.”

-징그럽게 하지 마.

지금의 나라면 신지운이 밥 사준다고 형이라고 절대 안 할 텐데 여기선 된다. 뭔가 감정이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아마 덜 친해서 그런 것 같다.

전화를 끊고, 남의 소속사를 갈 거니까, 나는 나름으로 신경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뭔 옷장에 옷이…….

“……뭐 똑같은 옷을 뭐 하러 사니, 해원아? 이거랑 이게 다른 옷이야? 이걸 왜 두 개 가지고 있어?”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하기 전에, 매니저 생활할 때 나는 옷에 관심이 없기는 했다.

“이거 딱 봐도 정태 형이 줬네.”

나에 비해서 사이즈가 좀 커보이는 옷이다. 아마 부정태가 안 맞아서 준 모양이었다. 과거의 미래에서 늘 느끼는데, 부정태가 진짜 날 엄청 챙겨줬다. 생활 전반에 내 연예인의 흔적이 있었으니까.

“아, 형. 진짜…… 만수무강하세요.”

나는 울컥해서 중얼거리며 부정태가 준 옷을 입고, 현관에 구겨져 있는 쇼핑백에서 생일 선물로 받은 향수도 꺼내 뿌렸다.

나름으로 소속사 갈 준비를 마치고 나서 나는 집을 나왔다. 티케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괜히 울렁거렸다.

처음부터 티케에서 오디션을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봤다. 물론 안 뽑아줬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생각하며 회사 앞에 서서, 일단 저 회사에 소속된 신지운에게 전화해보려고 핸드폰을 꺼내는데 누가 날 찍는 소리가 들렸다.

“야, 티케 연습생이다.”

“누구야? 처음 보는데.”

심장이 철렁했다.

생각해보니까 여기서는 다들 날 싫어하잖아?

요즘 너무 예쁨만 받고 살아서 약간 잊어버렸다. 기억하기 싫으니까, 더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모자를 좀 더 눌러쓰고, 마스크를 했다. 하긴, 국선아에서 6년이나 지났는데 날 기억을 하겠냐, 싶다.

티케는 원래 연습생부터 사생이 붙는 걸로 유명했다. 공개되거나, 공개되지 않은 연습생들도 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워달라고 할까? 난 어차피 일반인이잖아?

나는 생각하다가 그냥 포기하고 신지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 티케 앞에 왔…….”

그렇게 말하는데 이제는 아예 셔터가 계속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치겠네, 진짜? 아니, 내가 그냥 스물넷도 아니고 술독에서 반신욕하면서 4년째 살고 있는데 연습생이겠냐, 진짜…….

-형, 문 열어줄게, 바로 들어와.

나는 빨리 문으로 갔고, 얼굴 인식으로 열리는 문이 앞에서 바로 열렸다.

티케 엔터에 들어서니까 기분이 엄청, 많이 이상했다.

내 첫 소속사 퍼펙트 엔터에서 연습생 생활을 할 때, 어쩌다가 티케 연습생들을 본 적이 있었다. 뭔가 자기들끼리도 엄청 자부심이 강해 보여서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다 하나 같이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특히 나중에 국선아에서 신지운을 보고 깨달았다. 저게 티케의 비쥬얼이구나.

신지운이 인사도 없이 오라고 손짓했다. 밥 사준다니까 나는 일단 부르는 대로 갔다.

과거의 미래 속 신지운은 볼 때마다 느끼지만, 아이돌보다 배우에 훨씬 가까워진 얼굴이었다. 이 무렵이면 이미 퍼스트라이트는 사실상 활동하지 않은지 오래라서, 연기에 몰빵했을 시기일 것이다.

신지운이 날 힐끔 보더니 신기해하며 말했다.

“형 향수 뿌렸어?”

“어, 선물 받았어.”

“뭐야, 잘하고 다니네.”

“뭐 어떻게 하고 다닐 줄 알았는데.”

“아이돌처럼 하고 다닐 줄 몰랐지.”

“…….”

그 말에 내가 신지운을 보니까, 신지운이 특유의 싸가지 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비꼬는 거 아니야, 나도 퍼라 망했는데 뭐.”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해라, 이 새끼…….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대꾸했다.

“아니, 비꼰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아이돌처럼 하고 다닌다’의 기준이 너무 낮은 거 아니냐?”

“전혀.”

그렇게 이야기하며 우리는 티케 엔터 구경을 했다.

여기 와서 보니까 보이드는 진짜, 진짜 작은 회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고, 부서도 많았다. 특히 회의실들도 무지하게 크고 좋았다.

“우리 회사는 진짜 작구나…….”

“박종렬 엔터?”

“아니, 보이드.”

“보이드가 뭔데?”

“야, 어떻게 그걸 모르냐. 섭섭하다.”

“그게 뭔데?”

나는 아무 말이나 하면서 따라서 걷다가, 중간에 멈춰서 유리 벽으로 된 회의실 하나를 보았다. 그 안에 빅 블루 멤버들이 있었다.

“……어?”

내가 보고 멈춰서니까 신지운이 급하게 몸으로 내 앞을 가렸다.

“어, 이거 대외비일 텐데…….”

“우리 사이에 무슨.”

“우리 사이 좋아하네, 6년 만에 만나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신지운을 치우고 나는 회의실 쪽을 봤다. 거기서 멤버 셋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아마 나머지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빅 블루 선배님들, 티케 돌아와?”

내가 묻자 신지운이 대꾸했다.

“나도 정확히 몰라. 얘기 중이라는 것만 알지.”

“왜? 왜 돌아오셔?”

“노래가 하고 싶대. 앨범도 주기적으로 내고. 원래 소속사는 그런 걸 아예 케어를 안 해주잖아.”

“신기하다.”

“뭐가.”

“그냥. 나는 빅 블루 선배님들 보면서 아이돌이 되려고 한 거잖아. 그러니까 사실…… 크게 보면 티케의 음악을 좋아한 거거든.”

“음.”

“티케로 돌아가면. 진짜 좋긴 하겠다, 내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웃다가, 유리벽 너머로 내 쪽을 보는 이준희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진심으로 쫄아서 급하게 모자를 벗고 거의 머리가 땅에 닿게 인사를 했다. 옆에서 신지운은 몸만 좀 숙여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역시 싸가지 없다.

그렇게 인사를 열심히 해서인지, 이준희는 언제나처럼 근사하게 웃고 같이 고개를 조금 숙여서 인사를 받아줬다. 크, 멋있다, 우리 형.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서, 빅 블루에게 어떻게 말 걸 기회를 찾아볼까 고민하는데 뒤에서 누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 지운아.”

그래서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당연히 예상했어야 하는데 정작 만나니까 좀 놀라운 사람을 마주쳤다.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강진기. 티케 엔터테인먼트에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며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해온 강진기 프로듀서였다.

그리고 나는 강진기가 나를 별로 안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불을 켜와 RUSH 내정 프로듀서 건 때문에…….

다행히 지금은 그런 과거가 없고, 나는 세상 웬만한 사람보다 강진기의 음악을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나는 남의 마음을 잘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왠지 강진기에게는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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