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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31화 (33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31화

나는 강진기 프로듀서에게 먼저 달려갔다.

강진기가 날 이상한 사람 보듯 힐끔 보고, 신지운에게 말했다.

“지운아, 잘 됐다, 너 와서 애들 랩 좀 잠깐 봐줘라.”

“저 아는 형이 와서 다음…….”

나는 거절하려는 신지운의 말을 끊고 말했다.

“가서 봐주고 와.”

“그럼 형은 뭐하게. 아는 형인데 잠깐 놀러 왔거든요.”

신지운은 아는 형이라고 나를 강진기에게 소개했다. 신지운이 나를 그렇게 소개하는 게, 기분이 엄청 이상했다.

국선아 얘기를 할 수는 없어서, 아마도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겠지만, 엄청 그냥 적당히 아는 사이 같았다. 그 소개를 듣고 나니, 여기의 나는 퍼스트라이트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게 실감이 됐다. 우리가 같은 팀이 아니구나. 그게 엄청 기분이 이상했다.

강진기가 나를 힐끔 보더니 물었다.

“어느 회사예요?”

“저요? 아, 저 박종렬 엔터……에서 로드매니저 하고 있습니다.”

“……로드라고?”

그러더니 진짜 이상하다는 듯이 날 보고 있었다. 나는 혹시 나를 무슨 다른 회사에서 온 산업 스파이로 알 까봐 급하게 말했다.

“저, 작가님 진짜 엄청 팬이에요. 제가 스키퍼라서요, 어릴 때부터 작가님 곡 다 들었거든요.”

“아, 그래요?”

“저 솔로 앨범 진짜 많이 들었어요.”

“내 솔로를 들었어?”

역시, 솔로 얘기가 최고였다. 근데 진짜 명반이긴 해서, 나도 진심으로 주접을 떨 수 있었다. 어릴 때 강진기의 솔로 앨범을 들으면서 내 감수성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신지운을 보내고 강진기는 아예 회사 가운데 있던 소파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나와 솔로 앨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원래 음악 얘기를 좋아하니까, 사양하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라는 곡 있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게 진짜 90년대에 나올 수 있는 감성인가?”

“그랬지, 내가 앞서갔지. 또 좋아하는 곡이 뭐…….”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솔로 앨범에서 당연히 빅 블루의 음악 이야기로 넘어갔다.

강진기는 나와 좋아하는 곡이 겹친다며 기뻐했다. 물론 내가 약간 맞춰준 거긴 한데, 어쨌든 나도 좋아하는 곡들이기는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형들 너무 안 와요.”

이준희가 회의실에서 기다리다가, 강진기를 발견하고 밖으로 나온 거였다. 나는 다시 인사를 했고 그런 나에게 웃어 보인 이준희가 강진기에게 물었다.

“연습생이에요?”

“아니, 신 배우 친구래. 로드매니저라는데?”

“티케 뭐했어요? 이런 친구 안 잡고?”

“내 말이 그 말이다. 진짜로 뭐니, 우리 회사?”

허허. 따듯한 사람들이구만…….

나는 생각했지만 강진기가 슬슬 진짜 회사 신인 개발팀에 연락하려고 해서 급하게 국선아 얘기를 털어놨다.

나도 진짜 많이 덜어내긴 한 것 같다. 국선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그냥 감정이 되게 잔잔했다.

예전에 무서웠던 건, 내가 다시 대중의 미움을 살까 봐. 정말로 나의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비호감 그 자체여서, 그게 나라는 인간이어서 세상 사람들이 욕하는 게 당연한 일일까 봐 걱정했던 건데. 이제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때의 내 생각과 반대로 햇살이들은 내가 뭘 해도 좋아해 주고, 귀여워해 준다. 언젠가 이 사랑이 식을까 봐 두려운 건 언제나 그 순간이 지나치게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 두려움도 나는 이제 수용하게 되었다.

그래도 결국 반짝이던 그런 순간들은 내 인생에, 내 평생의 기억에 남을 테니까. 어린 시절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듯이, 행복은 기억으로 남겨 추억하는 것 같다. 그렇게 기억으로 남길 수 있는 행복들이 이제는 정말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쌓였다. 국선아 때의 기억이 퍼스트라이트에서의 기억으로 파묻힐 만큼.

“아무튼. 그렇게 로드매니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국선아 때의 일을 이 두 사람에게 설명하면서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한 번 펑펑 울고 난 것처럼 갑자기 가슴 속이 확 시원해졌다. 이제 그때의 기억이 더 이상 날 비참하게 만들지 않으리란 자신감이 생기면서.

내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한참 뒤에 이준희가 나에게 물었다.

“피디가 누구라고 했죠?”

“그…… 박경석 PD님이요.”

“아.”

이준희가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표정이 안 좋았다. 역시 따로 데뷔는 못 했어도 후배는 후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준희가 저렇게 화난 표정을 하는 건 드라마에서 밖에 못 봤던지라, 새삼 신기했고 무지하게 잘생겼다. 크, 역시 미니시리즈 파워주인공…….

그나저나 옆에서 강진기가 약간 훌쩍거리는 것 같은데 이거 맞나…….

아무튼 내가 후련한 건 후련한 거고, 여기 온 목적은 따로 있었으므로 나는 급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선배…… 선배님이라고 해도 괜찮으세요?”

“맘대로 불러요”

“네, 선배님 티케로 다시……. 이거 여쭤보면 안 되는 거였죠?”

이미 질문 다 하고 수습하는 척했는데, 이준희가 웃었다.

“응, 다시 티케에서 해보려고.”

“준희야, 제발 스포 좀 그만 해…….”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세요. 그리고 확정이잖아요. 저 보고 싶다면서요.”

“그야 당연하지. 너희야말로 진짜 처음부터 내가 키운 애들인데…… 난 너희 음악 만드는 게 솔직히 말하면 그때도 지금도 제일 좋다. 이거 다른 애들한테 절대 말하지 마!”

“알아요. 저희도 오로지 피디님 때문에 돌아오는 거예요. 피디님이랑 계속 음악하고 싶어서.”

그렇구나.

나는 팬의 입장이라 솔직히 잘 몰랐다. 여기 온 덕분에, 나는 데뷔 앨범부터 함께 해 온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끈끈한 관계와 대화. 적어도 음악에 있어서는 서로 모르는 게 없는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아이돌이 성공하는데 있어서, 음악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다른 모든 것들이 중요해도 결국 팬들이 가장 많이 유입할 때는 활동하는 음악이 좋을 때다.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신나게 듣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비하인드를 실컷 들을 수 있는 기회? 놓칠 수 없지.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 후배들을 도와주고 돌아온 신지운이 내 팔을 툭 쳤다.

“뭐하냐?”

“아, 왜 왔냐, 한참 행복했는데.”

“적반하장이네.”

그렇게 황당해하는 신지운에게 강진기가 말했다.

“나는 쟤 배우하는 것도 솔직히 너무 아까워. 음색 진짜 좋거든.”

그 말에 신지운이 멈칫하고,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걸 본 이준희가 바로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배우도 목소리 좋아야지.”

“그건 아는데…… 그냥 아깝다. 쟤 배우 시키려고 데려온 거 아닌데.”

강진기의 아쉬운 표정을 보니까 기분이 묘했다.

나는 티케에서 오로지 배우로 푸쉬하고 싶은 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나름 이 회사에도 내부 정치싸움이 있는 것 같았다. 애초에 신지운이 소년들 이후에 데뷔가 무산되고, 국선아의 이미지가 너무 안 좋아져 한동안 이도저도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퍼스트라이트가 생기고…….

뭐 티케 안에 일이 복잡하다는 건 확실하게 알겠다. 그리고 신지운의 전속계약을 완전히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알겠고.

사실 처음부터 각자 개인 소속사가 있었던 우리 팀이 한 번은 겪을 일이었다. 그냥 올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황에 대해서 다 듣고 나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후에 인사를 하고, 나는 신지운이 생일주를 사준다고 해서 한잔 하러 회사를 나왔다. 신지운이 말했다.

“근데 진짜 뭐냐. 6년 동안 연락 한번 없더니 회사까지 와서는.”

“그냥. 너도 볼 겸.”

“뭘 나를 볼 겸이야. 회사를 볼 겸 날 보러 온 거지.”

“그거나 그거나.”

“아니지, 주체가 다른데? 형이 말한 건 내가 섭섭하지?”

“아, 그래, 너 보러 왔다. 형이 설마 남의 회사 구경하러 왔겠냐.”

그렇게 얘기하면서 회사 근처 술집으로 걸어가는데 신지운이 전화를 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형.”

“어.”

“형 신인 개발팀에 잠깐 좀 올 수 있냐는데. 아니면 그쪽에서 나오신데.”

“……나?”

“어.”

“나 04년생인데?”

그렇게 얘기하면서 나는 의아해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깼다. 남의 회사 구경을 하고 왔더니, 시간은 아침인데 더 피곤해졌다.

어쨌든 나는 바로 할 일이 있었다.

만약에 빅 블루가 정말로 티케로 돌아간다면 티케 입장에서 정말 큰 사건이 될 것이다.

이야기를 해보니 정말 좋은 계약이기는 했다. 빅 블루는 따로 레이블을 내주면서 들어가게 될 거고, 강진기와 함께 음악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자유와 원하는 음악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계약이 되는 셈이다.

팬인 내가 제일 기쁘다. 히히.

* * *

매해 VMC 뮤직어워드, 그러니까 브엠뮤의 MC는 고정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빅 블루의 이준희였고, 이준희는 어떤 바쁜 촬영 스케줄이 있더라도 브엠뮤의 MC만큼은 매해 반드시 출석하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대본을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있을 때, 밖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돌들이 목 푸는 소리, 자기들끼리 게임하는 소리, 좀 자자고 소리치는 누군가의 목소리.

“…….”

이준희는 다시 대본을 보려다가 그걸 뒤집어 놓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었다.

[멤버들 보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생전 안 하던 말을 썼다가는 우리 막내가 이런 말도 하게 됐냐고 최정민이 두 시간 정도 떠드는 걸 들어줘야 할 게 뻔해 다시 지웠다.

그렇게 좀 심심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노크를 하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준희 형.”

“어, 해원아.”

평소에도 반가운 후배지만 오늘따라 심심했기 때문에 특별히 더 반가웠다. 이준희가 문까지 나가자 정해원은 평소처럼 얼굴을 보자마자 시끌시끌 이야기를 떠들었다.

이준희는 내성적인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말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그리고 남의 말을 듣거나,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조용한 상태로 정해원이 떠드는 걸 듣다가 이준희가 물었다.

“너 뭐 할 말 있어?”

“엇.”

있구나?

평소와 달리 뭔가 목적이 느껴져서 물어봤더니 속을 들킨 정해원이 엄청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무지하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저…… 진짜 진짜 어려운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말해 봐. 부탁 들어줄게.”

“……들어준다고요? 뭔 줄 알고요? 돈 빌려 달라고 하면 어떡하려고요?”

“돈이야?”

“아뇨.”

“그럴 것 같아서. 그리고 네가 한 번 우리 팀 크게 도와줬잖아. 나도 도와주려고 했어. 그런 일 있으면.”

이준희의 말에 정해원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래서 진짜 어려운 부탁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정작 정해원의 입에서 나온 부탁은 조금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다만 놀라웠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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