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33화
오늘 티케의 하루는 유독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티케 엔터는 규모에 비해 직원 수가 적었기 때문에 특히 더 그 복잡함이 가중되었다.
“이야, 난리가 났네.”
부대표가 회의실 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강효준 대표 역시 밖을 힐끔 봤다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너 무슨 짓 한 거 아니지?]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정해원에게 그렇게 보내놨는데 아직 답이 없었다.
원래 정해원이 핸드폰을 아주 빨리 보는 편은 아니어서, 대답을 피하거나 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그렇게 어수선한 가운데서 기다리고 있을 때, 핸드폰을 확인한 부대표가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 와중에 보이드에는 지운이 아버지가 오셨다네.”
“지금요?”
“네, 지금 회사래요. 할 수 없이 먼저 좀 가야겠네.”
“아, 혼자 있으면 무서운데.”
“뭘 무서워요, 사람들이 대표님을 무서워할까 봐 걱정이지. 해원이 닮아가요?”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해요.”
그렇게 투덜투덜 이야기하다가, 부대표가 다시 핸드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지운이 아버님이 화가 엄청 나셨나 보네.”
“상황 봐서 연락 주세요.”
그렇게 이야기하며 부대표가 먼저 보이드 엔터로 급히 돌아갔다.
그 후 회의실에 혼자 남게 돼, 밖에서 북적거리는 걸 구경하고 있던 강효준 대표는 작업실 밖으로 나온 빅 블루의 이준희를 발견하고 잠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보니 이준희가 힐끔 강효준의 얼굴을 확인하고 벽에 포스터를 가리켰다.
“예전에는 이런 거 없었는데. 티케도 많이 바뀌었네.”
“네가 여길, 하필 오늘 왔다고?”
“그렇게 됐어.”
“너 재계약 많이 남았잖아.”
“많이까지는 아니고. 일찌감치 얘기해 두면 좋지.”
“근데 하필, 티케에 오늘, 우리가 방문한 날 온 건 우연히 겹친 건 아닐 거 아니야.”
이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게 우연은 아니지.”
“지운이 문제 해결해 주려고 오늘 온 거냐?”
“응. 해원이가 말 안 했어?”
“그렇지, 정해원이지. 그럴 줄 알았다.”
강효준이 혀를 찼다.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는 진짜 회사와 회사가 알아서 해결하게 둘 것 같이 말해서, 혹시나 했다.
이준희가 듣는 사람이 없나 주변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해원이가 어차피 빅 블루가 티케로 돌아갈 거면, 도와달라고 해서. 내 입장에선 갚아야 하는 빚이 있었으니 그러겠다고 했지. 지운이 얘기, 한마디 더 하는 거야 어렵지도 않고.”
“……정해원은 또 빅 블루가 티케로 돌아가려는 걸 어떻게 알았는데?”
“몰라. 안 물어봤어.”
“아주 쿨한 게 너답긴 한데, 좀 물어봐라, 그런 건. 의심스럽지도 않냐.”
강효준의 핀잔에 이준희가 평소 성격대로 눈을 똑바로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갚을 게 있었고, 해원이는 부탁을 들어달라고 했고. 그게 다야. 나머지는 상관이 없고, 알 필요도 없어.”
“……그러시겠지.”
이준희는 원래 사람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하는 성격이 있었다. 아마 살아가는 내내 평생 잘생긴 이준희는 그렇게 사람을 쳐다보면, 누구나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세상에서 살아왔던 것 같다. 원래도 알고 있었던 버릇인데, 강효준은 오늘따라 퍼스트라이트 멤버들 생각이 났다. 걔네도 저렇게 좀 자기 얼굴 믿고 뻔뻔하게 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제 진짜로 그 팀 멤버들에게 애정이 커졌구나, 싶었다.
강효준이 오늘 가져온 대책에는 신지운이 활동할 때, 일정 시간 동안, 어느 정도 티케에 로열티 형식으로 돈을 내는 최후의 수단도 있었다. 회사에 손해를 감수하고 신지운과 티케의 계약을 마무리하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물론 티케에는 좋은 방법이지만, 사업적으로는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다고, 그 순간에는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퍼스트라이트의 활동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강효준이 이준희에게 말했다.
“아무튼 고맙다.”
“그래.”
이준희가 확실한 아군이라는 걸 확인하자 긴장이 풀렸다. 강효준이 벽에 기대서며 말했다.
“그나저나 티케는 노났네. 빅 블루가 가는 거면.”
“노났지.”
“왜 돌아오는 거야? 폼다피가 개인 활동은 잘 지원해 주잖아.”
“그건 그런데. 그래도 우린 기본적으로 아이돌이잖아.”
“…….”
“아이돌에 대한 기획력은, 티케만한 곳이 없더라.”
“하긴.”
강효준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퍼스트라이트의 콘서트가 끝나고, 클라루스와 빅 블루가 모여서 술을 마실 때 찾아갔는데, 빅 블루의 대장인 최정민이 불만을 토로했다. 아이돌 후배들이 자길 아이돌 선배로 안 보는 게 아쉽다고.
워낙 잘나가는 진행자인데도, 아직도 무대가 그리운 게 신기했다. 생각해 보면, 최정민은 데뷔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팬들에게 소홀한 적이 없었다. 지금도 스키퍼들이 ‘우리 대장은 말이 많긴 많다’라는 걸 한탄 겸 자랑으로 할 정도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여전히 사진을 올릴 때는 보여 줄 상대가 ‘스키퍼들’이라고 서두에 밝힌다.
그건 배우 생활 중인 이준희도 마찬가지였다.
강효준이 말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나도 도움받았네.”
그렇게 훈훈하게 이야기하고, 다른 티케 직원이 오자 두 사람은 모른 척 각자의 구역으로 이동했다.
회의실로 돌아와 보니 정해원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정해원 프로듀서님 : 무슨 짓 안 했어요 누가 보면 내가 맨날 사고 치는 줄 알겠네]
[정해원 프로듀서님 : 그보다 형 티케 간 김에 강진기 프로듀서님한테 신지운 변성기 오기 전에 녹음한 거 있음 받아다 주세요 햇살이들이랑 놀리게]
뻔뻔한 대답을 보며 한숨을 한번 쉰 강효준은 티케 엔터 직원들이 정신이 없을 때를 틈타, 계약의 마무리를 반은 부탁, 반은 종용했다. 거물의 이동으로 출렁이던 티케 엔터는 거기에 강력히 대응할 인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 * *
하필 대표도 부대표도 없을 때.
보이드 엔터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멤버들의 부모님 모두와 친하게 지내는 편이고, 신지운의 부모님과도 다른 멤버들보다는 연락을 하고 지내는 편이었다. 명절이 되면 꼬박꼬박 연락드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공유했다.
그래서 다른 멤버들의 부모님은 다 나를 엄청 예뻐하신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신지운의 부모님은 딱히 그러지 않아 늘 마주치는 게 좀 껄끄러운 데가 있었다.
워낙 바쁜 사람들이니까 그러려니 하려고 해도 인간 마음이 그랬다. 나도 뭘 바라고 연락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열에 한 번 정도는 답장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신지운의 아버지는 딱히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주변으로 고압적이고 싸늘한 분위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일단은 직원들이 돌아가며 응대하고 있었는데, 신지운의 아버지는 영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거기서 내가 기웃기웃하고 있으니 연락받은 신지운이 회의실이 있는 층 복도에 도착했다. 신지운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X발.”
욕하는 마음은 이해해서, 이번에는 나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무작정 아버지가 있는 회의실로 뛰어 들어가려는 신지운을 막아섰다.
“지운아, 진정하고 무슨 말 할지 생각하고 들어가.”
“무슨 생각을 해. 말이 되냐? 몇 년 동안 관심 한번 없다가 이제 와서 무슨 참견을 하려고 여기를 와!”
“알았어, 알았어. 일단 조금만 진정하자.”
신지운의 마음도 안다.
처음 내가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한 해는 신지운이 열아홉 살이었는데, 그때 나와 황새벽을 제외하면 전부 미성년자이다 보니 부모님 동의서가 필요한 일이 많았다.
신지운은 한 번도 동의서를 못 받아 왔다. 그래도 성인이 될 날이 머지않았으니까, 라고 멤버들이 달래줬지만, 동생들도 허락을 받았는데, 자기는 못 받은 것에 대해서 늘 섭섭해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 터지기 직전이었다. 신지운은 뭔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나는 일단 몸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다행히 나한테 늘 개기기는 해도 필요할 때 말을 안 듣는 놈은 아니라서 조금은 진정을 했다.
밖에서 소란이 들렸는지 신지운의 아버지가 회의실을 나왔다. 그리고 신지운에게 말했다.
“너는 큰 회사 놔두고 왜 이런 작은 회사에 잡혀 있어.”
하여튼 말 예쁘게 못 하는 건 유전인가 보다. 나는 뭐라 말하려는 신지운 대신 선수 쳐서 말했다.
“이제 보이드 엔터에 클라루스 선배님들 계시니까, 금방 쑥쑥 클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퍼스트라이트가 있잖아요.”
라고 말했는데 씹혔다. 하. 상처받아.
신지운의 아버지가 내 말은 무시하고, 신지운 쪽을 보며 말했다.
“티케랑 재계약을 안 하겠다는 건, 배우 쪽은 일 안 하겠다는 거 아니냐? 배우 놔두고 왜 아이돌을 하려고 들어.”
“아, X나 참견하네.”
야이씨, 사춘기냐…….
“너…… 뭐라고 했냐?”
신지운의 아버지는 신지운의 사춘기를 같은 집에서 겪었을 텐데, 얘가 이렇게 말하는 걸 처음 본 것 같았다. 나는 급하게 신지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신지운은 그냥 막 할 말을 뱉었다.
“배우 아들 필요하면 하나 더 낳아서 키우세요. 여자친구 있는 거 아니에요, 아버지? 전 상관없으니까 가족 잘 꾸려서 예쁘게 사시라고요, 제 앞길 막지 말고.”
여자친구 부분은 좀 움찔하긴 했지만 신지운의 아버지는 그 부분은 무시하기로 한 듯했다.
“누가 앞길을 막아. 세상에 부모만큼 자식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을 것 같냐?”
“와, 너어무 많아요. 아버지가 해원이 형 반의반만 저를 생각해 줬어도 아버지가 해달라는 거 해줬어요.”
아니, 나는 왜. 내가 여기 왜 끼냐…….
신지운은 오늘 아주 작정했는지 언성을 높이고 말을 이었다.
“아버지 저 국선아 끝나고, 소년들 데뷔 무산돼서 힘들어할 때 뭐라고 하셨어요? 네 마음대로 살더니 그렇게 된 거라고 하셨잖아요? 내 선택이니까 아버지는 아무것도 못 도와준다고.”
아들이 더 이상 연예계 생활을 안 할 줄 알고 했던 말을 다시 듣는 건 민망한지, 신지운의 아버지가 멈칫했다.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그때 이후로도 저는 쭉 제 마음대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저 아버지 아버지라고 생각 안 한 지 오래됐어요.”
“……뭐?”
“그러니까 아버지도 저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세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아무래도 마지막 말의 임팩트가 앞에 한 어떤 말보다도 강했던 것 같다. 신지운의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나도 순간 얼어서 멍 때리고 있었다.
원래대로면 신지운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한소리 해야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참견할 수가 없었다. 가족의 일만큼 오래 감정이 쌓이는 일이 없고, 복잡한 일도 없는 것 같다.
신지운은 차라리 부모님과 절연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서 발목 잡히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신지운의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고, 신지운도 말이 없고, 나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한동안 고요했다.
그때 부대표가 도착해서 양쪽을 다 달래며 신지운의 아버지와 신지운이 모두 회의실로 들어갔다.
나도 얼떨떨한 상태로 작업실로 돌아왔을 때, 강효준 대표에게 문자가 왔다.
[강 대표 : 지운이 일 해결됐다]
“……와씨,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