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35화
올해의 첫 시상식은 1월 첫째주에 있었다.
우리는 어느새 연차가 차고 하다 보니까 시상식 무대에 올라가는 순서가 점점 더 늦어지고 있었다. 물론 클라루스와 빅 블루가 시상식에 오면 다르겠지만, 두 팀이 없는 이상은 올해는 우리 뒤에 두 팀밖에 없었다.
그중 우리와 연차가 별로 차이 나지 않는 팀이 배드원. 황새벽과 박선재가 연습생 생활을 한 소속사의 팀이 있었다.
배드원은 데뷔 초부터 우리와는 노선이 약간 달랐다. 우리 팀 멤버들은 친근하고, 유쾌한 사람들이 못 되는데, 배드원 멤버들은 하나같이 시끌시끌하고, 사람들도 좋았다. ‘친근함’이 그 팀의 주 무기였다. 물론 인기와 상관없이 우리끼리는 늘 잘 지냈다.
그 직후에 곧바로 다음 앨범과 투어 준비에 들어갔다.
어떤 앨범이든 안 중요한 게 있었겠냐만은, 이번 앨범은 특히 투어 세트리스트에 들어갈 음원들이 중요해서,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의 퀄리티를 확실하게 올리기 위해, 회사에 송캠프를 제안했다.
이틀을 내서, 첫 날은 우정여행을, 다음날은 송캠프를 하고 돌아오면 좋겠다고 했는데 회사에서 받아줬다. 물론 우리 회사는 내가 원하는 걸 거의 대부분 들어주기는 한다. 안 들어주는 건 내가 안 쉬고 싶다고 할 때뿐이다. 내가 일하는 기계가 되고 싶다는데 회사에서 그것만은 안 받아준다……. 너무 인간적인 회사라 좀 안 맞는 것 같다. 허허.
어차피 나에게는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포션이 하나 있기 때문에, 송캠프 후에도 체력을 확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 포션을 알차게 쓰고 싶었다.
안 그래도 그동안 계속 ‘우정여행’ 자컨을 하나 만들자, 만들자 그렇게 얘기했는데 이제야 시간이 났다.
무조건 바다로 가겠다고 해서, 우리는 바다로 캠프를 갈 준비를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송캠프를 위해 엄청 큰 장소를 빌렸다.
평소에 이런 자컨을 찍으면 멤버들이 일하지 말라고 귀찮게 구는데, 오늘은 아예 작정하고 송캠프로 연결되기도 하고, 멤버들과 밤새 실컷 다음 앨범 이야기를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장비를 충분히 챙겼다.
여행 일정은 언제나 그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05 둘이 짰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일정 짜는 걸 완전히 맡겨놓을 수는 없어서 옆에서 기웃기웃했다. 예상대로 일정이 약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 밤에 스케줄이 왜 이렇게 없어.”
저녁 스케줄이 쭉 비어 있어서 물어보니까 신지운이 말했다.
“고기 굽고 밥 먹으면 대충 이쯤부터 반주하고, 잘 때까지 먹는 거지.”
“야이씨…… 아니.”
“아, 형이 너무 일정을 빡빡하게 짜는 거야. 여행 일정을 무슨 분 단위로 짜잖아. 이동 시간은 말도 안 되게 길게 잡고.”
“교통 상황이 예상이 안 되니까…… 뭐 먹을지도 안 정해 간다고?”
“가서 대충 마트 털자고.”
“마트에 없는 거 있으면 어떡해.”
“마트에 없는 게 왜 있어. 형이 상상하는 건 다 있다고.”
아침에 출발해서 피곤할 때쯤 휴게소 한 번 가고, 도착해서 좀 쉬다가 고기 구워 먹고 잔다고 일정이 적혀 있었다.
나는 성격적으로 일정이 명확해야 해서, 참견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지만 신지운이 가만히 좀 있으라고 했다. 그래도 참견하려고 하니까 안주원이 말했다.
“해원아. 가. 좀.”
안주원이 저렇게 말한다는 건 내가 진짜 귀찮게 굴었다는 뜻이니까, 나는 섭섭했지만 빠져있기로 했다.
05 둘이 일정을 짜는 동안, 나는 참견을 안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일정이 느슨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나는 작업을 하려고 다시 시퀀서 앞에 앉았다. 멤버들이 작업실에 와서 일정을 짜고 있어서 엄청 신경이 쓰였지만, 그렇다고 또 멤버들이 나가면 외로워할 나를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작업하던 다음 미니 앨범 파일들을 쭉 보았다.
뽑아야 하는 곡은 6곡. 다음 미니 앨범에 들어갈 수록곡들인데, 아직은 타이틀곡만 작업을 마무리했다. 타이틀은 빨리 작업을 해놔야 하니까, 거기 먼저 시간을 투자해서 먼저 끝냈다.
혹시 이것보다 더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온다면 타이틀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타이틀을 중심으로 다음 앨범을 빌드업하고 있었다.
일정을 짜던 신지운이 나에게 말했다.
“형, 타이틀 틀어줘.”
“스포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일정 짜는 장면부터 촬영 중이었기 때문에 백그라운드에 곡이 깔려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물어보니까 자컨 촬영팀에서 괜찮다고 했다.
나는 타이틀을 틀었고, 안주원이 말했다.
“……이게 우정에 관한 곡이라고?”
“어.”
“우정이 좀 흔들렸어?”
“아니, 견고해.”
“그럼 너무 나쁜 우정 아니야?”
“어, 나쁜 우정에 관한 곡이야.”
[bad bad bad my goodfellas]
타이틀 제목은 Fellas,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 따온 제목이다.
곡은 전체적으로 나쁜 행동을 함께 저지른 뒤에 서로의 행동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감춰준다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건 사실, 신지운의 아버지의 시점에서 본 우리들의 행동에 관한 이야기였다.
신지운의 부모님은 처음부터 아들이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것에 정말로 불만이 많았다. 사실 그 경우는 오히려 자식에게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관심이 많았다면 격렬하게 반대했을 테니까.
국선아 때 신지운이 부모님이 빡쳐 하라고 그 서바이벌에 나왔다고 말했었는데, 나는 나중이 되어서 그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
신지운의 부모님은 신지운이 알아서 잘 커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본인들처럼 법조인이 된다면 베스트, 어찌 되었든 전문직이나 대기업을 들어가거나, 어디 가서 말해도 괜찮을 직업을 선택하기를 바랐다.
아이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직업이었던 듯했다. 신지운은 부모님과 겪은 일들을 우리에게 다 말하지 않았다. 아니, 다 말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모님이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화제로 꺼내지도 않았다. 신지운이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는 어릴 때 추억이 없다는 이야기나,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 정도였을 뿐이다. 실제로 겪은 구체적인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게 연차가 쌓일수록 정말 이상한 일이구나, 싶었다. 워낙 함께한 시간이 길다 보니, 멤버들이 부모님과 있었던 에피소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는데. 신지운에게는 그런 말 할만한 에피소드가 없었던 거니까.
그래서 나는 이번 곡을 만들었다.
어떤 어른이 보기에는 나쁜 짓. 이상한 일.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인생이었던 일들에 관한 곡.
신지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신지운을 포함한 모든 멤버들이 그런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한 것 같았다. 신지운도 타이틀을 종종 듣고 싶어하는 걸 보면, 그게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신지운이 말했다.
“내가 이번에 송캠프 가서 랩 써올게.”
“어, 술 작작 먹고.”
“알았어, 알았어.”
이번 송캠프는 멤버들만 가는 게 아니라, 회사 A&R, 그리고 지금까지 퍼스트라이트와 협업했던 작곡가들, 세션, 심지어는 우리와 늘 함께하는 안무팀 UO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해본 방식의 작업이었다.
지금까지는 나와 A&R팀이 초안을 만들고, 거기서 빌드업을 해나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송캠프는 타이틀을 제외한 수록곡들에 있어서, 그냥 모두가 각자 작업물을 만든 후에 다 함께 모여서 회의하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방식으로 해나갈 생각이었다.
한 번도 안 해본 방식이라 우리 모두 나름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송캠프를 자컨 팀에서 최대한 컨텐츠를 뽑아서 공개를 해볼 생각이기 때문에, 참가자 모두가 긴장 상태였다.
* * *
송캠프 출발 당일, 보이드 엔터 A&R팀 팀장, 박선혜가 대표실에 들어와 강효준 대표에게 말했다.
“지금 A&R들 하나같이 긴장해서 배탈나고 체하고 난리났어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네, 정말…….”
“약 있어요? 제가 가서 약 사오게. 저도 체할 것 같아서.”
“대표님도 체해요?”
“아뇨, 살면서 체해본 적 없는데 체할 것 같아서요.”
하마처럼 식사하며 살아온 강효준은 지금까지 ‘체한다’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 오늘은 워낙 긴장 상태라 이 상태가 이어지면 약간은 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특히 이번 송캠프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할, 자기 의견을 내세울 작곡가들의 아이디어를 조합해야할 A&R들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본인의 본업이 A&R이라고 여기는 강효준 역시 긴장한 건 마찬가지였다.
박선혜 팀장이 말했다.
“송캠프를 한다니까……. 우리 회사가 진짜 커지긴 커졌네, 싶더라고요. 다들 예전에도 얘기했었거든요, 나중에 우리 회사도 커지면 송캠프 같은 거 해보면 좋겠다고……. 근데 해원 씨가 기획했다니까, 무섭네.”
정해원이 기획해서 무섭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강효준은 얼마 전 정해원이 송캠프를 제안하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은 강효준이 정해원의 작업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햄버거를 여섯 세트 사와서 먹고 있으니까 정해원도 한 개를 집어 갔다. 정해원은 식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잘 잊어버려서 그렇지, 옆에서 누가 밥을 먹고 있으면 나름으로 와서 챙겨 먹기는 했다. 애도 아니고 끼니 챙기는 걸 수시로 잊어버리는 게 강효준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으나, 밥 시간에 작업실 와서 밥 먹고 있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하니 이렇게 방문해서 밥을 먹을 때가 많았다.
정해원이 햄버거를 한 입 먹더니 말했다.
“형, 송캠프 해요, 우리도.”
“송캠프? 뭐 작가들 다 모여서 숙식하는 거?”
“네, 24시간 동안 안 자고, 안 먹고 일만 하는 거예요.”
“해커톤처럼.”
“해커톤처럼요.”
어차피 퍼스트라이트의 메인 프로듀서이며 보이드 엔터의 기둥이 정해원이니, 정해원이 해달라는 건 다 해줄 건데, 그래도 본인 입장에서는 혹시 안 들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정해원이 덧붙였다.
“혹시 이 방식이 잘 먹히면, 클라루스 형들도 이런 방식으로 작업해볼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쪽은 해외 작곡가가 많아서 비행기표도 줘야겠지만.”
“그 정도는 내야죠. 퀄리티를 위해서.”
마라톤을 하듯이 함께 작업물을 완성하는 해커톤 형식의 송캠프.
“그나저나 안 자고, 안 먹는다는 말을 네가 하니까 무섭게 들린다.”
강효준이 솔직하게 말했다.
정해원이 가진 ‘안 자고 안 먹고’의 기준은 상당히 높았다. 진짜로 안 자고, 진짜로 안 먹고 일을 하는 인간이었으니까. 강효준이 말했다.
“네 기준으로 하면 다들 보이드랑 일 안 하고 도망칠 것 같으니까, 밥은 먹자.”
“밥 먹으면 졸린데.”
“한국인은 누구 굶기고 그러는 거 아니다.”
“형 기준 아니에요?”
“식사 꼬박꼬박 챙겨도 된다고 하면, 한 번 추진해보자.”
“좋아요.”
그렇게 성사됐다.
2027년을 시작으로 줄곧 이 엔터 업계에 ‘지옥의 송캠프’라고 불리게 될 보이드 엔터의 송캠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