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38화
나는 마음 약한 스템이가 포션에 있어서는 내가 필요해하면 꽤 쏠쏠하게 챙겨준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혹시 송캠프 참가자들을 위한 포션을 좀 얻을 수 있을까 드러누워 진상짓을 했더니 미션을 몇 개 던져줬다.
그 미션을 꼬박꼬박 해나가고 나니, 최종적으로는 두 개의 포션 중 원하는 걸 고를 수 있게 해줬다.
[A급 집중력 상승 포션]
[만 24시간 동안 집중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사용 후 반드시 휴식을 취해주세요]
[A급 체력 상승 포션]
[현재 상태의 피로가 100% 줄어듭니다.]
나는 신중하게 고민했지만, 송캠프에 필요한 건 역시 전자 같았다. 후자는 시간의 문제다. 그러니까 체력을 회복하고 이어서 일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전자는 달랐다. 고도의 집중력은 자신이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창작물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사용 후 반드시 휴식을 취하라고 하니까, 일정 자체는 1박 2일이어도 숙소를 하루 더 빌려 달라고 했다. 기절잠을 자게 될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아늑한 상황을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최대한 준비했으니까 다들 열심히 일한 좋은 기억이 남았으면 좋겠다.
* * *
신인, 예명으로 ‘드문 별’이라는 이름을 쓰는 최근 주목받는 작곡가 서희성은 좋아하는 형인 양이형을 따라서 막 송캠프에 들어서고 있었다.
숙소는 객실이 따로 있고, 글램핑도 함께할 수 있는 장소로, 원하는 곳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상황이 갖춰져 있었다.
12시 30분경, 일찌감치 도착해 있던 서희성은 각양각색의 분위기로 꾸며진 글램핑 텐트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때 누가 뒤에서 스르륵 다가오더니 등을 수줍게 톡톡 건드렸다. 뒤를 돌아본 서희성은 정해원을 발견하고 꾸벅 인사했다.
“어,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정해원은 그 두 배쯤 몸을 숙여 인사하더니 핸드아웃을 건네주며 말했다.
“작가님 저보다 두 살 형이시죠? 스물여섯 살이시라고.”
“어, 네.”
“마운틴듀 드실래요?”
실물로 보면 생각한 것보다 인상이 셀 거라고 들었는데, 싱글싱글 웃으면서 마운틴듀를 내미는 얼굴은 그렇게까지 강한 인상은 아니었다.
그냥 실물이 무자비하게 잘생겼구나, 라고 생각하며 얼떨결에 마운틴듀를 받았다. 평소에 마운틴듀 광인이라고 작곡팀이 부를 정도로 쌓아놓고 마시는 편인 서희성은 우연히 좋아하는 음료수가 준비된 걸 보니 시작이 산뜻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어서 정해원이 핸드아웃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럼 쉬고 계세요. 1시에 봬요, 작가님.”
“네.”
그렇게 정해원이 떠난 후, 서희성은 마운틴듀를 쭉 마시며 마저 구경했다.
그나저나 정해원이 만들어준 스케줄에는 네 시간마다 한 번씩 회의가 잡혀 있었다. 밤에도 있고, 새벽에도 있고, 아침에도 있었다.
1시 5시 9시 다시 1시 5시 9시…… 그리고 1시에 완성된 작업물을 수거해 간다고 했다.
“……안 자?”
약간의 서늘함이 느껴졌지만 밤샘이 일상인 삶을 살고 있다 보니 크게 불만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중간에 적당히 쪽잠을 자면 되겠거니, 했다.
1시.
첫 번째 회의 겸 인사가 있었다.
건물 로비에 빈백이나 테이블, 의자가 놓여 있어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앉았다. 송캠프 시작은 보이드와 VVV엔터의 대표, 강효준이 맡았다.
클라루스가 소속된 보이드와 VMC의 자회사인 VVV엔터, 이 두 회사의 대표라는 것은 현재로서 엔터계에 무서울 게 없다는 의미였다. 절대 밉보이면 안 될 사람이었다.
“저도 오늘 여기 A&R로 참가한 거기 때문에, 부담스러우시겠지만 그 부담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담을 가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빡센 하루를 보내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이 송캠프를 기획한 정해원도 한마디를 하기로 했다. 정해원이 말했다.
“작가님들, A&R님들 모두 들어오실 때 웰컴드링크를 드렸는데요. 제가 거기에 저의 넘치는 사랑을 듬뿍 넣었어요.”
그러면서 손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하트를 만드는 게 아이돌의 직업병 그 자체였다. 정해원은 사람들이 호응하거나 말거나 말을 이었다.
“동시에 여러분의 집중력이 쑥쑥 올라가기를 바라는 저의 작은 기도도 함께 넣어봤습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멘트가 왜 이렇게 사이비틱하지…….
라고 생각하며 서희성이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정해원은 인상보다 뻔뻔한 사람이었고, 사람들이 술렁거리거나 말거나 말을 이었다.
“제가 직접 제조…… 하지는 않았지만 작가님들 취향에 맞게 하나하나 골라온 웰컴드링크의 효능으로 오늘 좋은 작업물 하나씩 저희 퍼스트라이트에게 넘겨주셔서 이 송캠프가 2회, 3회, 100회까지도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여러분, 2027년 제1회 송캠프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인사를 끝으로 바로 첫 번째 회의가 시작되었다.
작곡가들과 A&R들은 두 팀으로 나뉘었다.
힙합 장르의 곡을 뽑아낼 랩캠프, 그리고 퍼스트라이트 앨범에 들어갈 발라드를 뽑아내는 것이 최종 목표인 송캠프.
우선은 랩캠프와 송캠프가 각각 작곡가들이 A&R들과 함께 작업하고, 추후에 서로 교류도 하기로 했다.
서희성은 송캠프에 합류했다. 그리고 힐끔 랩캠프를 보며 저쪽은 제어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랩캠프 쪽에는 유명한 힙합 뮤지션이자 프로듀서, 유병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애초에 유병국이 퍼스트라이트 송캠프에 참여한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아이돌 음악과는 상극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서희성은 저쪽에 도움받을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송캠프로 향했다.
정해원은 송캠프의 멤버들에게 퍼스트라이트가 원하는 발라드를 매우 구체적으로 적어주었고, 송캠프의 회의실에는 관련된 레퍼런스들을 프린트해 벽에 가득 붙여두었다. 이상하게, 집중력이 확 올라오기는 했다. 마운틴듀 덕은 아니겠지만.
서희성만 그런 건 아닌지, 송캠프에 참여한 일행 모두가 약간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머리가 너무 맑은데…….”
“이형아, 해원 씨 뭐…… 아니지?”
너무 지나치게 맑아진 머리에 작곡가 하나가 양이형에게 슬쩍 주사 놓는 시늉을 했다. 매일 정해원을 욕하기는 해도, 남이 욕하는 건 못 받아들이는 양이형이 정색하며 말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정해원 술도 안 마시는 놈이야. 아이돌 한다고 담배도 바로 끊은 새끼가 뭘 해.”
그렇게 양이형이 인상 쓰는 사이에 송캠프로 정해원이 들어왔다. 양이형은 편든 적 없는 척 딴청 피우고, 정해원이 입을 열었다.
“레퍼런스 보여드린 것처럼, 저는 이제 퍼스트라이트가 하는 발라드가 이런 거다, 라는 느낌이 만들어져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늘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님들 모셔놓고 이렇게 회의를 하게 돼서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인사로 북돋더니 바로 회의를 주도했다.
콘서트에서 응원봉의 불빛을 조명으로 하여 부를 수 있는 곡. 듣는 사람들이 ‘설렘’을 느끼게 만들 곡.
“저는 이 설렘이라는 게, 반드시 첫사랑 같은 풋풋함에서만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좀 더 무게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익숙한 사랑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오는 설렘이요.”
그렇게 설명을 듣고 나서 레퍼런스로 늘어놓은 드라마와 영화들을 보니, 원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명확해졌다.
무게감 있는, 깊은 감정에서 오는 사랑 노래.
지금까지 퍼스트라이트가 불러온 풋풋하거나, 상처받은 사랑 노래들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성숙한 분위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정해원은 원하는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그 분위기가 떠오를 정도의 명확함이었다.
회의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송캠프에 참여한 모든 작곡가들이 정해원이 원하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회의를 나눴기 때문이었다. 정해원은 전원이 자기가 원하는 바를 숙지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각자의 방으로 돌려보냈다. 모두의 머릿속에 원하는 음악의 색감, 향기까지도 전해졌다.
서희성은 이상할 정도로 깨어난 머리로 장비 앞에 앉았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뭔가 될 것 같았다. 평소에는 이 정도 집중력을 얻으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커피를 들이 부어보고, 에너지드링크를 털고, 명상도 해보고, 달리기도 해봤는데 이 정도로 머릿속이 깨끗한 상태를 얻는 건 어려웠다.
혹시 진짜 웰컴드링크에 약이라도 탔나……?
서희성은 진지하게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일단은 작업에 들어갔다.
어느 정도 작업에 집중하고 있을 때, 작업실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진행 상황을 확인하던 정해원이 들어왔다.
정해원은 서희성의 작업물을 들어보더니 물었다.
“형, 가지고 있는 거 더 없어요?”
“……깡패니?”
어?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형이라고 불렀지? 처음엔 작가님이었는데…… 어? 난 언제부터 말을 놨지?
서희성이 작업에 집중하느라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정해원은 이미 서희성의 맥북을 뒤지고 있었다.
“뭐 좋은 거 있으면 우리 줘요.”
“아니, 진짜 깡패네, 이거.”
“어, 이거 제목이 마음에 든다.”
“뭐가? 20260708이?”
“네. 제가 딱 좋아하는 날짜예요.”
서희성은 제목을 마지막에 짓는 편이라, 대부분 파일 제목이 그 작업을 시작한 날짜로 되어 있었다.
정해원은 20260708을 플레이해 보고 말했다.
“와, 형 이거 너무 좋은데.”
“좋긴, 작업 하나도 안 됐는데.”
“형형, 여기 베이스 하나 더 추가해보면 어때요?”
“베이스를 두 개로 가? 오?”
……괜찮은데?
서희성은 생각하며 정해원과 상의해 베이스를 하나 더 추가했다.
“오우, 세다, 이거.”
“형, 여기서 이거랑…… 이 부분 합쳐서……. 재은이 누나 거 진짜 좋은데. 잠깐만요, 다시 듣고 올게요.”
“어?”
얼떨결에 곡을 뺏긴 것 같았다.
그런데 뺏겼다기에는 정해원이 추가하고 간 소스들이 너무 좋아서, 말하자면 못 쓰는 옷을 수선해 놓고 간 기분이었다.
서희성은 잠깐 일에서 벗어나 방문 밖을 보았다. 정해원은 잘생긴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작곡가들의 음악을 뒤지고, 강탈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잘생김이고, 애교도 많고, 칭찬도 잘해주다 보니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하나…… 애초에 정해원이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는 것들의 명중률이 100%라 정해원이 하자는 대로 안 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1시간 회의 후, 3시간 작업 후 첫 번째 회의.
3시간 만에 일주일 치는 집중해서 뽑아낸 작곡가들이 이미 좀비 같은 상태로 비척비척 모였다. 3시간 전과 달리 어느 정도 각자 진행된 내용이 있어, 언성을 높이는 일까지 생기며 회의를 하다가 다시 흩어졌다.
서희성은 시계를 보며 섬뜩함을 느꼈다.
이제 저녁 여섯 시.
“……이제 다섯 시간 지났어?”
송캠프를 시작하고 다섯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소름이 끼쳤다. 일한 양으로 봐서는 일주일 치가 넘었는데…….
정말로 약이라도 빨게 한 게 아닌가, 서희성이 잠깐 딴생각을 하고 있으니 정해원이 또 일하는 걸 확인하러 들어왔다.
정해원이 물었다.
“형, 배고파요? 딴짓하네? 밥 줄까요?”
웃으면서 말하는데 등골이 서늘했다.
질문 세 개 중에 중간에 본론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그게 본론이었다.
저게 그니까, 북돋아 주려고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감시하는 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