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40화
운 좋으면 이번 송캠프에서 내가 원하는 곡들을 모두 뽑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나는 처음부터 송캠프에게 부탁한 발라드곡.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미 결정된 우리의 타이틀곡.
무조건 멋졌으면 좋겠다. 이미 만들어진 내 곡을 여러 작곡가가 참여해서 수정할 때 어떤 곡으로 빌드업될지 궁금했다. 이건 랩캠프에서 주로 담당해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까지 나는 날티나는 컨셉을 좀 피해왔었다. 내가 그런 곡의 작업을 제대로 못했다.
우리 멤버에게 그게 잘 어울린다는 걸 아는데, 내가 쎄해 보이는 게 싫어서 못 했으니 퍼스트라이트의 메인 프로듀서로서 그건 분명 태업이었다.
여전히 내가 만든 곡은 힘이 약한 기분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이 송캠프는 반드시 필요했다.
나는 랩캠프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제 곡의 원안이 사라져도 상관없어요. 그냥 다 조각조각 내거나, 그대로 다 버려도 돼요. 저는 우리 팀이 반드시 내가 만든 곡으로 활동해야한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했지만요.”
예전에는 했다.
많이 했다. 나는 솔직하게 그 마음을 털어놨다.
“왜냐하면 그때는 내가 이 팀에 있을 수 있는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프로듀싱이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나는 우리 팬들이 내가 더 이상 작곡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이 팀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걸 알거든요. 퍼스트라이트는 이제 누구에게나 일곱 명이에요.”
그런 단단한 우정에 대한 곡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다행히 랩캠프가 진행될수록, 이쪽도 집중력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완성품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 *
랩캠프에 소속된 프로듀서 유병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집중력이 더욱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신기한 건 처음에는 그렇게 와서 치대는 바람에 ‘귀찮게 됐다’라고 생각하게 만들던 정해원이 더 이상 방해하러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방해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밤을 새고 작업을 하는 사이에 정해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본이 워커홀릭인 유병국은 그 사실에 안도하며 작업을 하다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무언가를 깨닫고 번쩍 고개를 들었다.
“……어? 생각해보니까 나 왜 이렇게 열심히 해?”
그러자 옆에서 잠깐 졸고 있던, 랩캠프의 프로듀서 이태은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왜, 왜. 또 해원이 왔어?”
“안 왔어.”
“어우, X발. X나 쫄려……. 나 살면서 이렇게 등에 총 들이민 기분으로 일한 거 처음이야.”
“잘만 졸더만 뭔 소리야.”
“아니, 진짜 딱 죽을 것 같았는데 해원이가 30분 자래. 아, 진짜 꿀잠잤다.”
“형이 뭐 노예야? 그냥 자고 싶으면 자.”
“아니, 그러기엔 무서워.”
“뭐가 무서워.”
“해원이 그, 약간 그 눈빛 있잖아. 사이비 교주 같은…….”
사이비 교주라는 말을 듣고 보니 약간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태은이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더니 말했다.
“이게 작업이 안 풀리면 어떻게 개겨보겠는데, 작업이 너무 잘 풀려.”
“…….”
……그렇긴 해?
안 그래도 최근에 이태은은 슬럼프가 와서 한동안 술을 무지하게 마셔댔다. 아주 위에 구멍 뚫릴 때까지 마셔댈 것처럼 마셨는데, 그렇게 많은 밤을 취해 있어도 그게 작업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태은은 처음 유병국이 ‘존경스러운 형’이라는 마음을 가지던 때의 그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이태은이 말을 이었다.
“송캠프…… 2회도 있겠지?”
“형이 이걸 또 한다고?
“성과가 나오잖아.”
이해가 안 가면서, 갔다.
이태은은 슬럼프에 빠져 있는 동안, 진심으로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이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도 팔 수 있다고 했었다. 저러다가 다른 인생 잡친 형들처럼 약에도 손을 댈까 봐 옆에서 좀 신경이 쓰였었는데.
그 영혼을 다른 악마 쪽에다가 팔아치우려는 듯했다. 중독성 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분명하고 다행인 건 이쪽은 불법은 아니라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유병국이 긍정적으로 말했다.
“2회 당연히 있겠지. 형이 하겠다고 하면.”
“야, 나만 한다고 하면 안 될 수도 있어. 너도 해.”
“싫어.”
내가 미쳤나, 내 작업하기도 바쁜데.
여기 오면 본인 작업이 아니라 퍼스트라이트 작업만 해야 할 것 아닌가. 시간 아까웠다.
라고 생각하다가, 유병국은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을 느꼈다.
……1박 2일 밖에 안 되니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아깝지도 않은가?
무엇보다 정해원의 음악으로 작업을 하는 건 재미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샘플링이 힙합의 중요한 작업 방식 중 하나여서일지 몰랐다.
정해원은 뛰어난 프로듀서였다. 탑라인도 트랙도 다 재능이 넘쳤다.
무엇보다 악기에 대한 이해. 유병국은 살면서 악기에 대한 이해가 저 정도로 좋은 사람은 처음으로 봤다. 그건 절대음감과는 다른, 어떤 소리에 대한 이해였다. 아니, 어찌보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재미있긴 해.”
그렇게 무심코 말했다가 유병국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어디서 들었는데. 한국식 사랑의 시작은 ‘재미있네’, ‘이상한 사람이네’ 따위로 시작한다고. 갑자기 그걸 떠올리니까 소름이 쫙 끼쳐왔다.
역시 이건 약빨이다. 이 몽롱하고, 반드시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전부 약빨일 거다.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제일 먼저 약물 검사부터 해야지…….
그리고 그 약물…….
어디서 구하는지 물어봐야 하나…….
부작용 없는 거면 좋겠다.
특히 합법이면 좋겠다…….
유병국은 처음 송캠프를 시작할 때와는 약간 달라진 스스로의 마인드에 놀라 두 손으로 뺨을 짝짝 때렸다. 옆에서 쿠션을 껴안고 그걸 구경하던 이태은이 낄낄거리며 뒤로 넘어가게 웃었다.
“병국이 밤새다가 돌아버렸네.”
“말 시키지 마.”
“어이, 알았다.”
이태은이 말하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유병국이 힐끔 확인해보니 퍼스트라이트의 곡 작업이 아니었다.
“……지꺼 만드네, 이 형?”
“어. 하루가 너무 길어. 퍼스트라이트 걸 계속 작업했는데, 시간이 남는다? 오늘 하루가 끝나질 않아. 그것도 또 무섭네.”
“우리 거 만들어도 돼? 퍼라 송캠프잖아.”
“돼요.”
“어우, X발.”
평소 욕을 잘 하지 않는 유병국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욕을 뱉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정해원이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는 얼굴로 서있었다.
하, 이 시간에 봐도 X나 잘생겼네…….
평소에 이태은을 아는 형 중에 제일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뒤에 서 있는 저 아이돌은 존재가, 아니, 종족이 확실히 다른 것 같았다.
이태은이 돌아보며 말했다.
“시간이 남더라고. 네가 하도 쪼니까.”
“오. 잘 됐다.”
그러더니 두 사람 앞에 커피를 한 잔씩 놔줬다.
“하고 싶은 거 해요.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빨라서 안 급해요.”
그 말이 전혀 너그럽게 들리지 않았다. 다른 쪽 작가들을 충분히 쥐어짰다는 걸로 들려서……
정해원은 바로 나갈 생각이 없는지 뒤에서 어슬렁어슬렁하다가 이태은에게 말했다.
“형, 근데 그거 형 쓸 거예요?”
“아, 또 강탈하려고 하네. 내 거야, 이거.”
“내가 언제 달래요? 그냥 형 쓸 거냐고 물어본 거지…… 형 여기 화성 악기 아예 안 썼어요?”
“어. 그게 간지지.”
“아, 이게 간지야? 또 배우네, 내가.”
원래 모르는 사이였다고 들었는데, 정해원은 한 4, 5년 본 사이처럼 이태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교적인 사람들은 원래 저러나? 정말 성격 안 맞는다.
정해원은 정말로 이번에는 음악을 강탈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신 이태은의 시퀀서에서 본인이 느끼기에 새로운 부분을 전부 잡아내며 노하우를 하나씩 빨아들였다. 정해원은 프로였고, 그 클라루스, 빅 블루와 작업해 본 프로듀서였다.
그런데도 옆에서 이태은에게 힙합적인 요소들을 하나, 하나 습득할 때는 갓 데뷔한 신인 같아보였다.
“아직 배울 게 많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그게 사는 걸 다채롭게 만드는 것 같아서.”
정해원이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유병국도 그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병국이 평소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송캠프 2회.
어쩌면 참가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 *
그렇게 랩캠프를 한 바퀴 돌고 나니까 새벽 4시였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로비 소파에 앉았다.
밖에 나가서 야식을 사 들고 들어오던 강효준이 말했다.
“너 어떻게 멀쩡하냐?”
“안 멀쩡해요. 아, 피곤해.”
[A급 체력 상승 포션을 사용합니다]
[현재 상태의 피로가 100% 줄어듭니다.]
나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배우고, 만들어가려니 체력 소모가 심했다.
물론 나는 낯선 사람들 만나는 것을 무지하게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더 행복한 건 사실이다.
그것도 이 송캠프에서는 그냥 아는 사람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개개인의 성향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했다. 그래야 충분히 뽑아 먹…… 아니, 작곡가들이 좋은 환경에서 퍼스트라이트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해줄 테니까. 엇, 순화해도 별로 예쁜 말은 아니네?
아무튼 내가 말했다.
“근데 지금 야식을 먹겠어요? 난 아무것도 안 먹고 싶은데.”
“혹시 먹을 사람 있을까 봐.”
먹을 것 하나는 정말 열정적으로 가져다준다. 밥을 안 줘서 탈주하는 사람은 없겠다. 허허. 강효준이 말했다.
“너나 작업할 때 밥 먹는 거 귀찮아하지, 보통 사람들은 굶으면 일 못 해.”
“그런가…….”
강효준은 일단 각 방마다 가져온 야식을 배달해다 줬다. A&R이기 이전에 엔터계 1강 회사의 대표가 돌아다니니까 약간 졸던 사람들도 번쩍 깼다.
대표가 돌아다니는 야근. 내가 직장인들의 마음은 잘 모르지만 끔찍할 것 같다. 미안하게 됐다…… 사람들이 다음 송캠프에 참여하지 않을까 걱정되니, 이 부분은 다음번에 약간 조율해야겠다.
그렇게 송캠프가 이어지던 새벽.
나는 하루 사이에 받아낸 발라드 데모를 들으며 송캠프에 참여한 유일한 작사가, 신여진을 찾아갔다.
신여진은 방에서는 더 이상 작업이 안 되는지, 글램핑 텐트에 놓은 책상 앞에 앉아서 작업 중이었다.
나는 혹시 작업을 방해할까 봐 밖에서 기다리다가 기지개를 켜는 타이밍을 맞춰 신여진을 불렀다.
“누나.”
“아, 해원 씨.”
신여진은 나와 열네 살 차이가 나다 보니 오히려 말 놓기를 어려워했다. 너무 어려서 말 놓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신여진이 말했다.
“때마침 끝났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퍼스트라이트의 발라드 가사를 두 손으로 소중하게 받아 들었다. 내가 따로 종이에 적은 악보에다가 손글씨로 한 번 더 적은 가사였다.
가사를 보며, 나는 큰 소리로 웃고 싶은 걸 참았다.
내 계획을 다 실패하고, 신여진의 이 가사만 건졌다고 해도 이 송캠프는 성공이라 부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