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41화
나는 가사를 받자마자 바로 야외로 나갔다.
보컬이 꽤 늘었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특히 음정에 예민한 작곡가들에게 들려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가이드를 녹음했다.
그렇게 먼저 가녹음을 한 후에, 제대로 가이드 작업을 해줄 보컬을 부르러 송캠프 중인 숙소로 되돌아갔다.
나는 송캠프 숙소에서 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방의 주인은 완전히 작업에 몰두해있어 건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창문 밖에는 여전히 밤이 남아 있었고, 창가 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안주원에게 쏟아지는 건 하나 틀어 놓은 플로어 조명 하나뿐이었다. 송캠프를 촬영 중이라 그런지, 편한 옷 대신 꽤 신경 써서 고른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이런 장면은 반드시 햇살이들에게 남겨 줘야 한다고 생각해 핸드폰을 들고 작업 중인 모습을 촬영했다.
뭔가 핸드폰으로만 찍기엔 이 분위기가 다 담기지 않는 것 같았는데, 다행히 안주원의 카메라 가방에 컴팩트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가 있었다. 언제나 멤버들 사진을 찍고 보정 해주는 걸 즐거워하는 멤버가 안주원이라 늘 카메라를 챙겨 들고 다녔다.
나는 안주원이 설정해놓은 것들을 건들지 않고 그대로 양쪽 카메라를 모두 써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플래시가 터져 안주원이 내 쪽을 봤을 때도 한 장을 더 찍었고, 안주원이 모니터링용 줄 이어폰을 빼는 장면도 찍었다.
“이야, 잘생겼다.”
나는 말하며 잘 찍었는지 물어보려고 카메라를 건넸다. 안주원은 카메라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잘 찍었네.”
“진짜? 나 사진도 잘 찍어? 어떡하냐.”
새벽 6시. 안주원은 내 이른 헛소리에 그냥 웃고 카메라를 밀어 놓았다. 나는 안주원에게 가사를 건네며 말했다.
“녹음해 줘.”
“선재랑 새벽이 없으니까 드디어 나한테 부탁하네?”
“야, 너도 노래 잘해.”
“네가 제일 좋아하는 보컬은 아니잖아.”
“얼굴이 최애라니까? 아, 욕심이 많아, 잘생겼으면 됐지.”
나는 투덜투덜하며 아까 녹음한 가이드를 건네줬다.
평소에도 나는 첫 번째 가이드는 내가 녹음을 했다.
작곡을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보컬에 자신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가이드를 내가 녹음하게 된 건 양이형이 그렇게 가르쳐 줬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떻게 말로 상세하게, 시간을 들여 설명해도, 결국 내 보컬로 직접 불러서 설명하는 것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체감했다.
나는 안주원이 사람들 방해하기 싫다고 마찬가지로 나가서 녹음을 하러 간 사이에, 양이형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굳이 의자와 침대 놔두고 바닥에 앉아서 작업 중이던 양이형은 내가 옆에 앉으니까 짜증부터 냈다.
“아, 일하고 있다고.”
“감시하러 온 거 아니야.”
나는 말하고 슬쩍 양이형의 옆에 들러붙어 누웠다. 예상대로 양이형이 발로 밀어내서 저 멀리 밀려났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들러붙었다. 이 짓을 세 번 정도 하니까 양이형이 포기했다.
나는 옆에 누워서 말했다.
“오늘 동시에 다른 작곡가들 많이 보니까 알게 된 게 있어.”
“안 궁금해, 꺼져.”
“내가 가진 작곡 습관 중에서 형이 초기에 잡아준 것들이 많더라고.”
“…….”
양이형은 내 말이 민망한지 그건 못 들은 척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좋은 것만 알려줬더라. 욕쟁이가.”
“그걸 이제 알았냐?”
“아니, 알았는데. 생각해보니까.”
나는 천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 신지운이 나한테 효도한다고 하더라고. 사춘기 때 자기랑 싸워준 게 고맙다고…… 나한테는 형이 그래.”
“이 새끼 오늘 왜 이러지?”
양이형이 엄청 어이없어하면서 날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때 나는 그냥 당연히 널 도와줬어야 했어. 국선아 때 방관했던 사람 중에 하나잖아, 나도.”
“형은 다르지.”
“다 똑같지. 방관한 것도 가해한 거야.”
양이형이 잠시 말을 멈춰서, 말이 끝난 건 줄 알았는데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네가 먼저 안 찾아왔으면, 그걸로 끝이었어.”
“음.”
나는 흐흐 웃었다.
“어쨌든, 형이 아무것도 안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형이 작업실 내주고, 작곡 다 털어서 알려준 덕에 사람답게 살고 있잖아.”
“그리고 네 덕에 집을 샀지, 나는.”
“그치, 나 얹혀살게 해줄 집 샀잖아.”
“아니라고 미친 새끼야.”
“아, 나 데리고 살라고.”
“돌았냐, 내가? 널 집에서도 보라고?”
“그럼 나 어디 살아?”
“내가 어떻게 알아.”
양이형은 강경하게 나를 안 데리고 살려고 했다. 하, X발 그럼 나 어디 살지. 최대한 여러 사람 찔러 가면서 날 얹혀살게 해줄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양이형은 내가 고맙다고 한 걸 무지하게 민망해하며 나를 쫓아냈다.
안주원의 방으로 돌아가 보니 가이드 녹음을 해놓은 후였다. 내가 그걸 듣는 사이에 안주원은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긴장하니까 더 칭찬해주기 싫어지네.”
“너무하네.”
“봐봐. 칭찬을 안 해주니까 점점 더 잘하잖아.”
“잘했단 뜻이야?”
“아니. 영상을 찍었어야지. 바다 소리 들어가고, 얼굴 나왔으면 햇살이들이 좋아했을 텐데 왜 노래만 녹음하냐고.”
“별걸 다 트집 잡네.”
“노래는 잘했어. 잘한다, 너.”
“본론 듣기 어렵다, 해원아.”
결론은 잘했다고, 나는 몇 번 더 칭찬해줬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쭈어나, 내가 칭찬해줬으니까 나중에 나 얹혀살게 해주라. 양이형이형은 내 방 안 준대.”
“우리 부모님은 네 방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 돌리지 마.”
“대안을 제시한 거지.”
“대안이 왜 필요하냐?”
“우리 현재에 집중하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아, 왜 다 나 귀찮아해.”
나는 징징거리다가 안주원이 작업한 가사를 확인했다.
확실히 안주원의 가사는 안주원의 감성이 들어 있었다. 나는 안주원과 작업하면서, 먼저 만들어진 가사에 곡을 쓰는 방식들에 적응해갔다.
나는 내 장비를 안주원의 방으로 가져와서, 바로 그 곡에 관하여 작업하기 시작했다. 아홉 시에 올 마지막 회의 전까지 나도 내 일을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물론 계속해서 송캠프의 사람들을 감시하고 싶지만, 이제 슬슬 관리자가 아닌 참가자가 되고 싶었다.
* * *
마지막 회의 직전.
그것도 몇 번 했다고 4시간 간격으로 하는 회의에 익숙해진 송캠프 참가자 서희성은 9시 마지막 회의를 위해서 방을 나왔다.
그렇게 나와서 회의실로 가다 보니 중간부터 정해원이 돌아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서희성이 양이형에게 물었다.
“형, 해원이 자? 감시 안 하네.”
“걔가 그렇게 지독하게 감시하고 다녔냐?”
양이형이 어이없어하더니 말을 이었다.
“이제 다들 알아서 일하니까 자기 일 하겠지.”
“……자기 일? 아.”
그렇게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정해원도 자기 일이 있겠구나, 싶었다.
무박 2일 동안 본 정해원은 지독한 일중독자였고, 정말로 머릿속에 음악밖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
좀 더 생각해보면 정해원은 굳이 퍼스트라이트의 음악이 아니더라도, 송캠프의 참가자들이 무슨 음악이든 만들고 있다면 더 이상 참견하지 않았다.
본인의 시간 쪼개서 웰컴드링크-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수상한-를 나눠주고, 모든 작곡가의 작업 상황을 확인하던 것이, 어느 정도는 호의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캠프가 끝나갈 때가 되어서야 생각해보니. 사실 그 전에는 생각이란 걸 할 여유가 없이 갈렸으니…….
아홉 시 회의에 가보니 A&R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회의에 처음으로 강효준 대표가 들어왔다.
서희성은 누가 봐도 멀쩡한 얼굴로 회의 자리에 와서 앉는 정해원을 발견하고, 양이형에게 물었다.
“……어떻게 안 피곤해 해, 쟤는?”
피로가 회복된 정해원은 누가 봐도 컨디션이 완벽하게 회복된 얼굴로 앉아서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양이형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어, 오늘 작가들 신나게 쥐어짜면서 활력을 얻었나 보다.”
……악마야?
서희성은 황당했지만, 정해원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양이형이니 달리 부정할 말이 없었다.
* * *
9시.
마지막 회의.
20시간째 작업 중이던 작곡가들은 마지막 회의 전 인터뷰를 진행했다.
-2회요? 어…… 내일 물어보실래요? 지금 대답하는 게 내 발로 지옥에 들어가는 짓 같아서…….
-……이 송캠프의 진짜 끔찍한 점이 뭔지 알아요? 다들 뒤질 것 같아 하면서도 2회가 열리면 참가할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거예요…….
-죽을 것 같은데 결과는 좋아요. 정해원이 악마 같은 송캠프를 만든 거죠…….
-살……려…… 주세…….
[지금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지옥의 송캠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곡가들이 지옥에서 갈리고 있는 장면을 X나 아련한 감성캠프처럼 포장해놨네]
[무박 2일에서 작곡가들이 작업만 하는 컨텐츠에서 20분 분량 3편을 뽑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창조경제가 아닐 수 없다]
[근데 짬있는 사람들 꽤 있어서 X나 프리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빡셌냐ㄷㄷㄷ]
[↳작업환경을 잘 만들어줬잖아]
[↳솔직히 나도 참여하고 싶다 밥 주고 감시해 주고…….]
[송캠프 알고리즘 탔나 1, 2편 조회수 개잘나오네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작곡가들 갈리는 걸 왜 시간 들여서 보는 거냐]
송캠프 2회에 대한 질문이 한결같은 만큼, 이어지는 말도 같았다.
-퍼라 미니 7집은 확실히 잘 뽑힐 거예요.
마지막 회의는 송캠프와 랩캠프, A&R들이 전부 참여해서 작업 상황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강효준 대표는 오늘 있었던 작업량을 보기 쉽게 정리했다. 아니, 보기 쉬운 이상이었다. 머리보다 마음에 와닿을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해줬다.
송캠프에 참여한 작곡가들 중 대다수가 팀을 이루어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 보이는 작업량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이 캠프가 끝나면 이틀은 자야 할 것 같고, 그 후유증이 일주일은 갈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송캠프에서 자신들이 24시간을 몰아 집중하며 뽑아낸 퀄리티의 음악은, 혼자 힘으로는 뽑아낼 수 없다. 감금과 당근, 채찍질이 만들어낸 성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아, 해원이가 창작자한테 너무 자유를 주면 안 된대요? 솔직히…… 맞는 말이긴 하네요.
송캠프 참가자가 인터뷰했다.
그리고 여기 이 마지막 9시 회의 장면에서, 의도적으로 퍼스트라이트의 미니 7집 타이틀의 비트를 짧게 흘려 내보냈다.
[퍼라 신곡 홍보 신기하게 하네ㅋㅋㅋ]
[여기 모니터에 뜬 거 퍼라 미니 7집 앨범 같지?]
[↳이걸 어떻게 캡쳐했냐 대단하다]
[↳퍼라는 항상 커버를 잘 뽑더라]
[↳↳주원이가 직접해서 그런듯]
[퍼라 타이틀 킥 돌았네 저거 어떻게 한 거냐 도대체]
[↳그니까 X나 까리하네]
[↳프로듀서들 X나 갈았자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작가들 갈면 나오는 거였냐고]
[↳↳↳정해원이 유병국이랑 이태은을 갈면 나오지 널 갈면 안 나오고]
[↳↳↳↳왜 시비야 X발아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