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43화
청음회가 시작되고, 멤버들은 미니 앨범 수록곡 6개에 집중했다. 보이드 엔터 A&R팀 박선혜 팀장은 믹싱이 끝난 타이틀을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와, 퍼라 다 컸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말하고 헉 하며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멤버들과 A&R들이 보고 있었다. 사회성 좋은 정해원이 마가 뜨기 전에 호응했다.
“우리 멤버들 진짜 다 컸다. 애들이 이제 녹음하면 어떻게 나올지 좀 감을 잡은 것 같지 않아요?”
정확히 박선혜 팀장이 하려던 말이었다.
퍼스트라이트 내부에 메인 프로듀서가 있어서인지, 초반에는 녹음에 있어서 완전히 정해원에게 맡겨놓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연차가 차면서, 계속해서 음악에 대한 대화가 늘어갈수록 레코딩에 대해서도 기준이 생겨갔다.
믹싱을 했다고 해서 최종본은 아니었다. 여기 청음회의 반응에 따라서 최종의 최종의 진짜 최종 믹싱까지 가는 건 당연하고, 나쁠 때는 아예 처음부터 다 뒤집어엎을 때도 있었다.
그만큼, 멤버들뿐만 아니라 A&R, 엔지니어는 물론 많은 앨범의 참여 인원들이 퍼스트라이트의 음악 퀄리티에 진심이었다.
타이틀에 이어서, 가이드만 녹음된 다섯 개의 트랙이 하나씩 흘러나왔다.
안주원이 가이드를 뜬 것 두 개와 박선재 하나, 그리도 나머지는 퍼스트라이트의 보컬 트레이너이자, 정해원이 가장 신뢰하는 보컬인 장석훈이 불렀다.
장석훈이 녹음한 가이드에 황새벽이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노래 겁나 어렵네. 이걸 어떻게 부르냐.”
장석훈은 정해원과 작업을 해오며, 정해원의 음악을 완벽하게 살릴 수 있는 보컬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장석훈이 녹음한 두 곡은 보컬 멤버들이 저절로 한숨을 쉬게 만들 정도로 고음이 포진해있었고, 고음을 빼더라도 맛을 살리기가 극도로 어렵게 느껴지는 곡이었다.
정해원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불러, 못 부르면 내가 새로 만들어야 하잖아.”
“말 참 예쁘게 하네?”
황새벽이 그렇게 말하며 맏형들이 티격태격하자 박선재가 한 소리했다.
“싸우지 마. 좀. 새벽이 형은 해원이 형 음악 얘기할 때 예민한 거 알면서 왜 긁어, 그리고 해원이 형은 좀 덜 예민하게 굴고.”
“……알았어.”
“네에.”
막내의 노릇을 다 한 박선재는 말다툼이 시작되기 전에 상황을 해결한 다음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녹음에 제일 부담이 큰 것은 메인 보컬인 박선재였다. 거의 모든 코러스를 본인이 녹음하고 있는 박선재 입장을 아는 황새벽이 대신 ‘어렵다’는 말을 뱉어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 앨범에서 정해원은 온전히 ‘좋은 음악’, ‘좋은 앨범’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미니 7집 앨범을 위한 첫 회의에서부터 정해원은 명백하게 그 부분을 밝혔다.
‘이번에는 저 하고 싶은 대로 해볼게요.’
민지호가 정해원에게, 형이 돋보일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보라고 했던 것을,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채우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박선재가 말리고 나서도 정해원과 황새벽은 계속해서 티격태격하고 있고, 음악은 마지막 트랙까지 넘어갔다.
그렇게 앨범이 끝난 이후, 박선재가 말했다.
“난 다 좋아. 그러니까 이거 끝나면 바로 연습 좀 하러 갈게…….”
“나 4번 좋아! 4번 너무 좋아!”
“누가 내 최애곡 물어봐 줘봐.”
“관심 없어요, 형.”
“너 요즘 나한테 왜 그러냐.”
요즘 신지운과 밤마다 농구를 하고 있는 한효석의 장난에 신지운이 투덜거리고, 안주원이 옆에서 말했다.
“왜, 너 최애곡 뭔데.”
“나 6번. 심각하게 좋네.”
“어, 전 형 타이틀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나 은근 발라드 좋아해.”
“형 발라드 듣는 거 못 봤는데.”
“내가 너한테 안 들려주니까 그렇지. 너 오늘 나한테 왜 그래?”
“대신 이따가 농구 오래 해줄게요.”
“네가 해주는 것처럼 말하지 마.”
“좀 귀찮을 때도 있는데 놀아주는 거예요.”
“아. 네가 나 따라다니는 거잖아.”
“형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그렇게 이야기하며, 청음회의 마무리를 이어가고 있을 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고 퍼스트라이트의 매니저가 들어왔다.
“해원 씨, 연락왔어요.”
“맷 아스테어한테요?”
정해원보다 먼저 황새벽이 물었다. 오늘 그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던 차였다. 정해원이 황새벽에게 말했다.
“오, 뭐야아. 나한테 관심없는 척 하더니.”
로체스터는 역사상 최고의 첩보 영화 시리즈 중 하나로, 정해원이 음악감독, 맷 아스테어와 OST 작업 중인 영화였다.
이미 음악은 넘겼고, 음악감독 맷 아스테어와 폴 존스가 만나서 그 음악에 대해서 좀 더 탐구하고 답을 주기로 했었다.
그리고 그 답이 왔다.
그래도 청음회 중이라 정해원이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앉아 있으니까 멤버들이 정해원의 등을 떠밀었다.
“송아지 빨리 가!”
“알았어……. 회의 더 하고 있어.”
정해원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최근 자기 음악에 자신감이 붙은 정해원이었지만, 이번 건은 아예 그 부담감의 크기가 다른 듯했다.
영화에 들어갈 사운드트랙을 작업한 것도 처음일뿐더러, 그 첫 영화가 전세계인이 아는 대형 영화였다.
박선혜 A&R 팀장은 방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회의를 하던 정해원이, 이번 사운드트랙이 확정된다면 다시 한번 전세계에서 러브콜이 쏟아지는 프로듀서로 계단을 밟고 달려 올라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정해원을 순수한 마음으로 등을 떠밀어 보내는 듯했다.
하지만 정해원이 회의실에서 나간 후, 퍼스트라이트의 나머지 여섯 명의 멤버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평소에 유치원생인가, 싶을 정도로 체력이 좋은 민지호가 제일 먼저 조용해졌고, 나름으로 침묵을 깨야 한다고 생각한 안주원이 입을 열었다.
“로체스터 재밌지. 와, 이거 진짜 되면 너무 신기하겠다.”
“…….”
그리고 조용해진 것을 보고, 박선혜 A&R 팀장은 정해원이 퍼스트라이트에게 가지는 생각과 다른 멤버들이 가지는 생각에 괴리감이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방금전, 정해원이 클라루스의 송캠프를 거절했다는 강효준 대표의 연락을 받았다. 송다온 역시 예상한 결과였다고 개인 소감을 밝혔다.
정해원은 인생을 퍼스트라이트에게 걸었고, 음악 역시 거기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주목도에 있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정해원의 프로듀싱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 사실이 퍼스트라이트의 멤버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듯했다.
정해원이 퍼스트라이트의 음악을 만들기를 바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게 본인에게 정말로 최선인가, 하는 문제였다.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은 멤버 일곱 명 모두 다르지 않았다. 인간이다 보니 서로에게 질투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없지만, 그래도 다른 누구보다 자기 멤버들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신지운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계속 우리 거 얘기하자.”
그렇게 멤버들은 방금 전의 묘한 침묵을 없었던 일로 하고, 회의를 이어갔다.
* * *
나는 대표실로 향했다. 영화사에서 강효준 대표 쪽으로 연락을 해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대표실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올해의 마지막이 될 나의 외부 음악 활동에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가장 힘들 때, 나를 구해준 건 영화였을 것이다.
국선아 이후에 나는 우울함 외의 거의 모든 감각에 둔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한 일인데, 미각도 약해지고, 후각도 약해지고, 내가 가진 모든 감각 앞에 벽 하나가 생겨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감각보다 더 방해를 받은 건 감정이었다.
우울함은 내가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을 뒤덮었다. 시간이 흐르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아 먼지가 쌓인 방 같았다. 그 형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먼지가 쌓이고, 색은 전부다 사라진 세상.
그런 세상에서 나는 영화로 내가 느끼지 못하던 감정들을 하나씩 되찾았다.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다가 웃음이 터졌던 순간.
사람이 아무리 우울해도 웃기면 웃는구나, 라고 그때 생각했었다. 신기한 게, 그렇게 웃음이 터지고 나니까 나 사실 그렇게까지 우울한 것도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였다.
슬픈 영화를 보면 울고, 공포 영화를 보면 무섭고, 로맨스 영화를 보면 설렜다.
나는 그 순간들이, 색을 잃어가던 내 방의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나는 회복했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영화에 진 빚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있어서인지, 여전히 나에게 영화는 좋은 친구이고, 의지할만한 연장자 같다. 나는 영화를 떠올리면, 회복을 연상하게 되었다.
이번 로체스터 시리즈의 제목은 VESPER, 저녁 기도.
그리고 내가 만든 곡의 제목도 시리즈의 제목과 상동했다.
결과가 나오면 폴 존스가 곧바로 연락해 줄 줄 알았는데 연락이 없으니 좀 혼란스러웠다. 무산돼서 연락을 안 했나? 그런데 폴 존스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럴 사람이 아니다. 무산이 됐다면 가장 먼저 전화해서 위로해줬을 사람이니까. 오히려 성사가 돼서, 장난치려고 연락을 안 하는 쪽이 폴 존스와는 어울린다.
그러니까 나는 연락을 받기 전부터 후자일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강효준 대표는 영화사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여느 재벌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강효준 역시 어려서부터 해외에서 보낸 시간이 워낙 많았다. 덕분에 능숙한 외국어가 꽤 많았고, 그중에서도 영어는 누가 들어도 교육을 기깔 나게 받은 유학파의 전형적인 영어였다.
나는 문에 기대서서 강효준 대표가 나에게 전화를 넘겨주기를 기다렸다. 강효준 대표가 나를 힐끔 보더니 상대방에게 내가 왔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고 나서, 잠깐 기다렸다가 강효준이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가까이 가서 전화를 넘겨받았다. 말 대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게 있다.
이걸 여기다가 쓰게 되네, 싶은 것들.
그중에 내가 특히 잘 써먹고 있다고 생각한 게, ‘더 라이징’ 때 이후로 주구장창 활용 중인 파이프오르간이었다.
나는 더 라이징에서 파이프오르간이 내는 임펙트를 느낀 이후, 이 악기에 대해서 심심할 때마다 파고드는 습관이 생겼다.
더 라이징 이후 만으로 3년을 넘어 4년에 가까워지는 지금은,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작곡가들 중 파이프오르간에 대한 이해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들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 어떤 면이냐 하면, 파이프오르간 연주자 인맥에 관한 거였다.
나는 파이프오르간을 공부하는 동안, 내가 원하는 연주를 해줄 연주자 인맥들을 충분히 가지게 되었다. 물론 나를 진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히히.
저녁 기도에 관한 곡을 만들 때, 파이프오르간을 활용하게 됐던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게 나는 너무 좋았다.
이번에 특히 맷 아스테어가 케이팝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한 건, 이 곡이 관객들에게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를 전부 느낄 수 있게 만들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신성한 분위기와 무신론적인 분위기가 모두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솔직히 머리 터질 뻔했다.
-해원 씨?
“네.”
-아주 좋습니다. 아주, 아주 좋습니다.
그 순간에 내 곡은 로체스터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으로 결정되었고, 전 세계의 극장에서 내 음악이 흘러나오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