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46화
나는 디렉팅을 할 때는 엄청 집중하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편인데 이번 녹음을 하는 중에 좀 달랐다. 촬영하는 카메라들이 있었는데 뭔가 나를 명장 촬영하듯이 찍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담스러워서 바로 집중이 안 된다. 낯선 분위기였다.
한국에서 촬영할 때는 내가 어디에서 어떤 행동을 촬영하든지, 내 본분이 아이돌이라는 것을 베이스로 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분위기가 좀 더 심각했다. 철저하게 예술가로 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솔직히 나한테는 좀 안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카메라를 보면 애교를 부리고, 하트 만들고, 햇살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까 뭔가 손이 묶여 있는 기분이 들었다.
녹음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무심코 하트를 했다가 영화사 쪽에서 제지당했다. 하, 속상하다. 미국 햇살이들도 하트 좋아할 거 같은데……. 그리고 정말 조심스럽게 나에게 ‘덜 웃을 수 있나’라고 물었다.
덜 웃어서 잠재적 햇살이들이 내가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나를 잠깐 걱정했지만, 솔직히 영화사 유튜브에서 올리는 주제가 촬영이 그렇게 영향을 미칠까, 싶기도 했다.
다행히 디렉팅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런 것에 대하여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녹음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가 모여서 레코딩된 걸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혹시 수정 녹음을 할 부분이 있으면 양이형과 장석훈이 한 번 더 출장을 하기로 했지만, 최대한 여기서 끝내고 싶었다.
둘 다 나와 뇌를 공유하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인 건 아니니까.
녹음을 다 하고 나서야, 혹시 폴 존스의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왔다면 스템이한테 부탁을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끝나고 들었다는 건, 녹음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렸다는 의미였다.
녹음이 끝나고 나도 폴 존스도 긴장이 풀어졌다. 우리 둘 다 바로 스케줄이 있어서 출발해야 했는데, 만나서 자고, 녹음하고 나서 대화를 거의 못했다.
우린 좀 아쉬워서 차에 타기 전에 밖에 나가서 잠깐이라도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폴 존스가 들고 있는 약통을 보고 말했다.
“무슨 약이야?”
“불면증 약?”
“잠만 잘 자던데 불면증 약을 왜 먹어?”
“나 원래 진짜 못 자는데, 오늘 그렇게 잠이 오는 거야. 근데 넌 안 잤지?”
“요즘 잠 줄이고 있어.”
“왜?”
“……어.”
나는 잠깐 통역사 쪽을 봤고, 통역사는 대충 내가 둘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으려니 한 듯 손을 흔들고 떠났다.
다행히 요즘 보이드 엔터에서 영어 수업을 많이 신경 써서 영어가 꽤 늘었다. 나는 자주 볼 일 없는, 그래도 마음의 거리는 가까운 폴 존스에게 말했다.
“이게…… 내가 요즘 진짜 행복하거든?”
“그랬더니 곡이 안 나와?”
놀라울 정도로 폴 존스는 내 마음을 바로 알아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일 자체는 잘 돼. 물리적으로.”
“퀄리티의 문제인 거지?”
“응, 결과물이 완벽히 와닿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배부른 고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최근 들어 내가 만들었던 곡들이 완전히 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드문드문 있었다.
내 이상이 나의 능력치보다 과도하게 높은 건가?
나는 왠지 모르게 폴 존스에게 그런 고민들을 털어놓았고, 폴 존스는 내 말을 신중하게 들어줬다. 그러다 나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내는 곡들 다 듣고 있는데,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와. 나한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 처음이야.”
나는 왠지 모르게 감동했다. 내 음악을 꾸준히 듣고 있었다는 것도 감동이었지만,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는 부분이 특히 놀라웠다.
폴 존스가 말을 이었다.
“기술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늘었고, 곡도 좋은데 점점 네가 덜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 내 말이 그 말이야. 와, 속 시원해.”
나는 속이 시원해져서 웃었고, 폴 존스도 옆에서 흐흐 웃었다. 폴 존스가 말을 이었다.
“근데 좀 당연한 것 같다.”
“그래?”
“너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그렇다고 약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대한 경험이 너무 적잖아. 그러니까 자기가 가진 복잡한 감정에서 끌어낸 음악을 써온 거라고 해야 하나. 그게 원천이었던 거지.”
“……최악이다, 진짜. 나 안 우울했으면 작곡을 못했을까?”
“아티스트의 숙명인가, 막 행복할 수도 없네.”
“원래 인간은 안 행복해. 내가 요즘 편안하긴 했다.”
“이때 제일 쉬운 방법이 연애인데.”
“와, 절대 안 되는 얘기를.”
“한 번 크게 사랑하고, 크게 차이면 곡이 술술 나올 걸.”
폴 존스의 말에 나는 흐흐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고맙다.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들어줘서.”
내 말에 폴 존스가 내 등을 툭툭 쳤다. 그러고는 뭔가 말하고 싶어 했지만 쑥스러운지 그만 뒀다. 대신 투어를 시작하고 난 어려움은 자신에게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했다. 먼저 투어 중인 선배로서 해줄 말이 많다고.
그리고 차에 타서 다음 스케줄을 하러 가는데, 폴 존스의 인스타에 나와 함께 찍었던 셀카가 올라왔다.
[친구라는 이름의 영감(靈感)]
그렇게 적혀 있었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 * *
[정해원 LA 갔네 목격담 떴다]
[↳목격담 맞아?]
[↳↳그니까ㅎㅎㅎ]
[↳↳출국도 뜨긴 했는데 목격담은 진짜 목격담인지 모르겠다ㅎㅎ]
[↳↳요즘 퍼라 매일 목격담 뜨는데 그게 목격담일 리가]
[LA에서 뭐하는데?]
[↳로체스터 주제가 녹음]
[↳↳이거 진짜 하는구나ㄷㄷㄷ]
[방금 라방에서 다온이랑 윤태가 클라루스 앨범 여름이라고 스포함]
[↳ㅠㅠㅠㅠㅠㅠㅠㅠ]
[↳눈물 나ㅠㅠㅠㅠㅠㅠㅠ]
[↳와 진짜 오는구나 클라루스도]
[퍼라보다 클라루스가 먼저 컴백이야?]
[↳응 퍼라 먼저]
[다온이랑 윤태 얼떨결에 스포 해놓고 둘 다 신났더라ㅋㅋㅋㅋㅋㅋ라방 내내 신난 강아지들 같았어ㅋㅋㅋㅋ]
[↳올해 많이 보자ㅠㅠㅠㅠㅠ]
[↳진짜 신나 보여서 너무 좋다ㅠㅠㅠㅠ]
[다시 한번 클라루스 탈브삼 축하해ㅋㅋㅋㅋㅋ]
[여름 앨범 너무 행복하다…….]
[근데 스포하게 된 경로도 웃겨ㅋㅋㅋㅋㅋ윤태가 해원이가 커피차 보냈다고 어이없어하다가ㅋㅋㅋㅋㅋ]
[↳해원 후배님이 커피차ㅋㅋㅋㅋㅋㅋ윤태 진짜 어이없어하는 반응 웃겼어ㅋㅋㅋㅋㅋㅋ]
[↳↳그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애기가 무슨 커피차……? 왜……? 이 반응ㅋㅋㅋㅋㅋㅋㅋㅋ]
[커피차 얘기하다가 스포 한 거야?]
[↳커피차 얘기 나오자마자 라방 터질 뻔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
[↳룩스들 동시에 무슨 촬영? 뮤비? 뮤비?! 뮤비!!!! 이 상태였어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룩스들 신난 거 귀여웠어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막내보다도 8살 어린 까마득한 후배가 커피차 보낸 거 어이없긴 하다ㅋㅋㅋ 그것도 클라루스한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퍼라팬으로서 말하자면 해원이 원래 그런 거 안 챙기면 못 넘어가는 애라…….]
[정해원 인맥 진짜 무서울 정도 아니냐 클라루스한테 커피차 보낸 시간에 본인은 맷 아스테어랑 폴 존스 협업ㄷㄷㄷ]
[로체스터 언제 개봉해?]
[↳올해 가을!]
[로체스터 어지간히 못 만들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하면 잘 될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국인이 주제가 참여한 거 부모님 세대에서 겁나 뽕차하시더라ㅋㅋㅋㅋㅋㅋ]
[↳그럴만도…….]
[↳어렸을 때 보던 시리즈에 한국인이 작곡가로 참여하면 나 같아도 무조건 보러 감 설레하면서ㅋㅋㅋ]
* * *
녹음과 미국에서의 스케줄이 끝나고 정해원이 돌아오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 시간, 안주원은 영화 스케줄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장 외로운 시간’이 영화제에 초청받게 되어, 스케줄 확인이 필요했다.
그렇게 확인하고 난 후, 신지운, 한효석과 늦은 밤에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서 만났다. 원래 신지운과 둘이 보기로 했는데 한효석이 따라나선 참이라, 안주원이 신기해하며 물었다.
“웬일로 우리랑 같이 왔어? 형은 너무 좋긴 한데.”
그러자 신지운이 대신 설명했다.
“여기 껴서 자기가 막내 하고 싶대.”
“여기선 제가 막내잖아요.”
나머지 멤버들이 귀여움에 집착하면서, 한효석 역시 거기 슬슬 세뇌됐는지 자기도 동생 노릇을 하고 싶어 했다.
신지운이 말했다.
“우리 팀 장신들이네.”
“그러게, 효석이 팝콘 뭐 먹을래.”
“저 영화관 와서 제가 고른 거 거의 처음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
퍼스트라이트라는 팀 자체가 동생이 워낙 이득인 팀이고, 뭘 선택해도 ‘동생 먼저’, ‘막내부터 고르자’가 규칙인 팀이다 보니 동생 라인들이 본인이 동생인 것에 상당히 만족해했다.
한효석이 설레하며 팝콘을 골랐다. 세 사람은 팝콘을 고르고, 영화 ‘삼라만상’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들어섰다.
신지운이 팝콘을 먹으며 말했다.
“해원이 형이 삼라만상 찍는 거 반대했었지?”
“반대 정도가 아니야. 나 해원이가 그러는 거 처음 봤어.”
안주원은 정해원이 삼라만상의 촬영을 직설적으로 반대하던 것을 떠올렸다.
‘네 배역이 마음에 안 들어’
정해원의 본론은 그것이었다.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동시에 영화는 잘 될 거라고 했었다.
안주원은 그때 영화보다는 퍼스트라이트에 집중하고 싶기도 했고, 평소 신기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감이 좋은 정해원이 반대하는 걸 굳이 하고 싶지도 않아 출연을 고사했다.
그 후 아쉽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그 영화 말도 안 되는 대박 행진을 이어간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정해원의 선택은 그냥 그것 자체로 답이었다. 그게 본인은 그게 부담스러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깐은 들었지만, 결론은 ‘어쩔 수 없다’라는 쪽으로 돌아갔다. 본인의 재능과 행동에 있어서,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었다.
아무튼 혹여라도 그렇게 선택한 정해원이 본인의 선택을 미안해할까 봐, 안주원은 처음부터 다소 삐딱한 자세로 영화 ‘삼라만상’을 보고 있었다. 웬만하면 재미있어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영화 중반까지 안주원의 배역은 좋은 사람이었다. 안주원 본인의 성격과 매우 근접한 캐릭터라, 신지운과 한효석이 중간에 한 번씩 자신을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영화 초반부터 안주원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해원이 워낙 영화광이다 보니, 정해원이 숙소에 있을 때, 그리고 중요한 경기가 없을 때는 영화가 틀어져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 정해원의 영향을 받아 안주원도 영화를 많이 봐서인지, 처음부터 자신에게 제안이 들어온 캐릭터와 함께 등장하는 미장센 속 오브제들에 시선이 갔다.
특히 미술을 전공한 안주원은 자신이 등장하는 공간에 함께 등장하는 예술품들의 의미를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중후반부터 그 등장인물의 속내가 드러났다.
“……형.”
영화 도중, 한효석이 안주원을 보았다. 안주원도 말뜻을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끔찍했다.
저 배역을 맡았으면, 한동안 아이돌 생활로 돌아오기 어려웠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