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47화
영화 ‘삼라만상’이 끝난 후에도 퍼스트라이트 멤버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영화 자체는 훌륭했다. 흥미로웠고, 재미도 있었다.
안주원에게 왔던 배역은 그동안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다고 인터뷰한 바 있는 다섯 살 위의 남자배우에게 돌아갔다. 본인이 원했던 만큼, 연기력도 뛰어났다.
다만 배우에게는 그것이 커리어적인 플러스였을지 몰라도 아이돌 생활을 지속할 생각이 있는 이들에게는 아니었다.
한동안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세 사람을 조용히 핸드폰을 들고 찍는 것이 느껴졌다. 익숙한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오래 있을 수도 없어 몸을 일으켰다.
영화관을 나와서, 신지운이 운전석에 앉고 세 사람은 숙소로 이동했다. 영화가 끝나고도 말이 없다가, 한효석이 입을 열었다.
“해원이 형 진짜로…… 어떻게 된 거지.”
창밖을 보고 있는 걸 보니 허공에 던지는 말이었다. 차 안의 아무 형이나 듣고 대답하라고.
특히 여기서 대답해 주어야 하는 건 당사자인 본인임을 알아차린 안주원이 입을 열었다.
“영화 보고 느꼈는데. 나 저거 찍었으면 좀 많이 힘들었을 거야.”
“아, 감독 X같은 새끼.”
신지운이 운전하다가 욱해서 욕을 하자 한효석이 뒤에서 입을 틀어막았다.
“형 욕 안 돼요.”
그러자 신지운이 한효석의 팔을 떼며 말했다.
“욕이 안 나오게 생겼냐? 아니, 그래. 영화 좋더라고, 근데 섭외할 때 저런 리스크가 있었으면 당연히 얘기했어야지.”
“지운아, 내가 진짜 소름 끼치는 게 뭔지 알아?”
“뭔데.”
신지운이 되묻자 안주원이 대꾸했다.
“내가 TRV에 개인 활동 계약 계속 잡혀 있었으면, 이 영화 무조건 했어야 했을 거라는 거야.”
“……와, X발 그러네.”
퍼스트라이트가 보이드로 왔고, TRV를 탈출하며 정해원이 무리해가면서 안주원의 개인 활동 계약까지 안고 나왔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 이후에 아이돌 생활이 있었을까?
안주원은 섬뜩함에 몸이 식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이것 말고도 퍼스트라이트의 앞길에는 중간중간 피하기 어려운 구덩이들이 있었다.
정해원은 그런 구덩이를 발견할 때마다 멤버들을 돌아보며 이곳을 피해가자고 했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알았는데.
‘그 구덩이들이 무저갱일 줄은 몰랐지…….’
안주원은 생각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삼라만상과 가장 외로운 시간. 생각해 보면 후자에 합류하게 된 것도 결국 정해원이 유도했기 때문이었다.
있었던 일에 대해서 복기하며, 세 사람 모두가 섬찟한 기분으로 회사에 돌아갔다. 세 사람이 돌아오자마자 강효준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물었다.
“삼라만상 보고 왔다며.”
“…….”
멤버 셋이 바로 말을 못 하고 서로 눈짓만 주고받았다. 강효준이 기가 차서 중얼거렸다.
“반응만 봐도 알겠다.”
회사에도 이 영화에 대한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강효준이 안주원이 바짝 긴장했을 것을 알고 등을 툭툭 쳤다.
“지나간 일이야. 긴장 풀고.”
“……네.”
“그나저나 정해원 진짜로 시간 여행이라도 하나. 뭐지?”
“그러니까요.”
안주원은 어느 날 정해원이 자다 말고 자기 방에 들렀던 것을 떠올렸다.
‘주원아. 너 행복해?’
새벽 네 시에 갑자기 자기 방에 와서는 행복하냐고 질문했다.
아무리 성질 좋은 안주원이어도 새벽 네 시에 친구이며 직장 동료가 흔들어 깨워서 하등 쓸모없는 질문을 할 때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정해원의 얼굴이 하도 사색이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짜증을 누르고 꽤 행복하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났다.
어쩌면 그날 밤에, 정해원이 악몽이라도 꿨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퍼스트라이트 합류 직후에는 좀 심각할 정도로 수면의 질이 안 좋던 게 정해원이니까.
안주원은 만약 자신이 삼라만상의 합류를 피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를 생각해 보았다. 아니, 그 이전에 정해원이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하지 못했다면?
자신은 퍼스트라이트라는 울타리조차 없이 그 영화를 촬영했을 것이고, 약자만 골라서 폭력을 휘두르는, 야비하기 짝이 없는 배역의 촬영을 사전 고지 없이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안주원은 자신에게 들어왔던 배역이 촬영한 장면들에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연기여도, 자신이 그렇게 극도로 자극적인 장면을 찍을 수 있었을까?
물론 찍을 수야 있었겠지. 그게 문제다. 자신은 거절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직후에 자신이 오래 후유증을 겪으리라는 것도 분명했다.
정해원이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하지 않았다면, 안주원은 자신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어쩌면 자신이 정말로 국선아에서 순위를 조작한, 조작해서 소년들에 합류한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정해원 덕에 그 조작이 반대의 경우였다는 것을 알고 자존감을 회복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심지어 그런 상태에서 삼라만상을 촬영했다면. 그래서 다시는 아이돌 생활을 할 수 없었다면 자신의 멘탈이 버틸 수 있었을까?
없었다.
안주원은 스스로를 알았다.
국선아 이후에 정해원만큼은 아니어도 나머지 퍼스트라이트 멤버 모두, 거기에 최윤솔 역시도 심리적인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곳곳에 구덩이가 생겨난 건, 지반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멤버 모두가 그랬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돌아올 수 없는 위험한 길이었다.
한효석과 신지운은 어른을 만나자마자 삼라만상에 관한 내용을 강효준에게 시끌시끌하게 일러바쳤다. 일러바쳤다는 말이 맞았다. 둘 다 황당하고 억울하고 열 받아서 미치겠다는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그 둘이 워낙 화가 나 있어, 그렇게 아무도 복도에서 못 벗어나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거기서 캐리어를 끌고 트랙탑을 입을 정해원이 나타났다.
“뭐야, 돈 뺏길 거 같으니까 모여 있지 좀 마.”
긴 비행으로 얼굴에 피로감이 있는 정해원이 흩어지라고 손짓했다. 신지운이 핀잔했다.
“형한테 들을 말은 아니야.”
“뭐, 나 요즘에 인상 겁나 좋아.”
정해원이 툴툴거리고 하품을 하더니 물었다.
“근데 왜 모여 있어, 진짜로? 무섭게.”
“삼라만상 보고 왔어요…… 왔어.”
한효석의 힘겨운 사투를 이제 나머지 형들은 받아들이고, 강효준만 황당해하며 미간을 좁혔다.
“너희 또 내가 모르는 무슨 유행이 생겼냐?”
“효식이가 말 놓기로 했잖아요, 올해.”
“이게 놓은 거야?”
“노력하는 사람한테 지적하지 마요.”
정해원이 핀잔하더니 잘하고 있다고 한효석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어차피 우리랑 상관없는 영화 됐는데 뭐. 괜히 사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다들 집에 갑시다, 집.”
정해원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 작업실로 쓱 들어가 버렸다.
남은 네 사람은 그런 정해원을 보다가, 입을 연 한효석을 돌아봤다.
“‘괜히 사서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건, 저 형 이미 삼라만상이 스트레스 줄 거 알고 있었다는 얘긴 거죠?”
“……어우, 소름 끼쳐. 나 당분간 저 형이랑 거리두기 해야겠다.”
신지운이 팔을 문지르며 말하더니 작업을 하겠다며 컨트롤룸으로 사라졌다. 한효석은 안주원에게 ‘무서우니까 숙소로 가는 동안 자기랑 대화해 달라’고 해서, 두 사람은 함께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돌아가 안주원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삼라만상 X나 재밌다ㅋㅋㅋㅋㅋㅋㅋ올해 한국 영화 잘 뽑네]
[이기윤 연기 미쳤더라]
[↳그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당분간 미니에서 못 볼 듯…….]
[↳나 이기윤 신인 때 나온 영화 ‘너에게’ 좋아하는데 어제 재탕하니까 계속 이기윤이 여주 뒤통수 칠 것같아서 집중이 안 되더라…….]
[중반부에 이기윤 캐릭터 눈동자 돌 때 팝콘 쏟을 뻔]
[X나 예상 못했다 진짜ㅋㅋㅋㅋㅋ]
[기사에 이기윤이 맡은 캐릭터 퍼라 안주원한테 먼저 갔었다고 함]
[↳와 안주원한테 배역 간 거 진심 알 것 같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사한 이유도 X나 X나 알겠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배역 맡았으면 퍼라하기 힘들었겠는데…….]
[↳↳이거 맡았으면 그냥 아이돌 그만하고 배우 전향해야지]
[애초에 가외시 들어왔는데 삼라만상 들어갈 이유가 없긴 해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 다들 자기 자리 찾아간 느낌]
[↳가외시에서 안주원 진짜 사랑했다…….]
[↳↳기억 조작 첫사랑…….]
[↳↳VOD 언제 나와ㅠㅠㅠㅠㅠㅠ]
[↳↳제발 VOD 좀 빨리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번에 삼라만상이 개봉하며, 그 배역이 들어왔던 안주원까지 같이 거론이 되고 있었다.
‘가장 외로운 시간’ 속 안주원의 배역에 대한 반응은 정말로 좋았다. 폭발적으로 좋았다. 안주원의 부모님은 평소에 우리 아들이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의 멤버인데~ 라고 자랑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가외시’에서 봤다고 먼저 인사를 한다고 했다.
어떤 기로에서, 인생이 한순간에 바뀔 뻔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많이 이상했다. 안주원은 정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
“일해?”
-해야지? 나갔다 오느라 못 했는데.
“일하러 갔다가 온 거잖아. 비행기를 그렇게 오래 타고 또 일이 되냐.”
-해야지…… 아, 근데 효준이 형이랑 밥 먹고 왔더니 좀 졸리다. 그 형은 혼자 밥을 못 먹어.
그렇게 이야기하는 말투에는 ‘삼라만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조금도 없었다. 정말로 지나간 일은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안주원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원아, 고마워. 나 삼라만상 찍지 말라고 해줘서.”
-그게 뭐가 고마워. 그럼 뭐, 밥 사. 비싼 거.
“나 원래 밥 잘 사잖아.”
-알지, 그래도 또 사.
“알았어.”
그렇게 이야기하고 웃는데, 정해원이 물었다.
-야.
“응?”
-꽤 행복하지?
새벽 네 시에 사색이 되어서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한번 들었다. 대신 이번에는 질문이라기보다, 어떤 확신이었다. 꽤 행복한 사람에게 행복하냐고 묻는.
안주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응, 덕분에.”
-그으래, 다 이 형 덕이야. 알고 있으면 됐다.
“어, 다 네 덕이다.”
-이제 자, 귀찮게 하지 말고.
그 말에 안주원이 다시 웃는 사이에 정해원은 전화를 끊었다.
‘덕분에’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뿐 아니고, 퍼스트라이트의 멤버, 그리고 그 멤버의 가족들까지도 정해원에게 같은 고마움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충분히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퍼스트라이트 미니 7집은 이미 송캠프 자컨이 충분히 티저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컴백이 3주 남은 시점까지는 더 이상 프로모션이 없었다.
그리고 정확히 3주가 남은 날. 본격적인 프로모션이 시작됐다.
정해원의 팬이자 CICA의 멤버, 루아는 빨리 7집 프로모션을 확인해보라는 덕메의 말에 심호흡 중이었다.
옆에서 리더가 말했다.
“루아야, 차라리 빨리 봐.”
“안 돼요, 보고 나면 한 다섯 시간은 일에 집중을 못 한단 말이에요.”
“그래? 우리 루아 프로네.”
루아는 히히 웃은 후에 집중해서 촬영을 마쳤다.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할 때까지도 이성을 잡고 있다가, 그 직후에 차로 달려갔다. 다행히 루아의 다급함을 아는 어느 누구도 그걸 막지 않았다. 루아의 팬들은 심지어 여태 못 보고 참은 걸 기특해하기까지 했다.
차에 앉자마자 루아는 호흡을 가다듬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Good fellas’
31초짜리 짧은 영상이었다.